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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7

       “이번 기수는 입학식부터 삐거덕거리는군.”

       

       입학식.

       

       교수들이 연대에 선 두 소녀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한 명은 귀족적인 느낌이 흘러넘치는 소녀였으나, 다른 한 명은 그런 기품이 없었다.

       

       “평민이 수석이라니, 이게 말이 되나?”

       

       불과 10년.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제국에는 귀족주의가 능력주의에 비해 강세였다.

       

       제아무리 수석이라도 평민으로 타고 난 이상 졸업하여 작위를 받을 때까지는 견디고 또 견뎌야 한다.

       

       메리가는 졸지에 입학식부터 몇몇 고압적인 교수에게 찍힌 셈이었다.

       

       “…해서, 입학식은 이것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입학식이 끝난 후, 학생들은 안내에 따라 반으로 들어갔다.

       

       반 배정은 입학성적 순이다. 1등부터 25등까지가 한 반, 26등부터 50등까지가 다시 한 반….

       

       메리가와 클라이스가 같은 반이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너 평민 출신이라며?”

       “공부는 잘했겠네. 공부만.”

       “우린 저쪽으로 가서 앉자.”

       

       대놓고 싸움을 거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차별과 모멸 어린 시선을 받는 건 종종 있었다.

       

       감내해야 한다.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보란 듯이 성공해서, 자신을 거두어 준 숙부에게 보답할 것이다.

       

       메리가는 서글서글한 성질을 죽인 채 학업에만 열중했다.

       

       열중하려 했는데 말이다.

       

       “이봐, 평민.”

       

       적의를 품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메리가는 얼굴을 굳히고 고개를 슬쩍 들어올렸다. 깐깐하게 생긴 패거리가 팔짱을 낀 채로 코앞에 서 있었다.

       

       “입학 성적 좋다고 우쭐대지 말라고. 귀족이 되려면 못해도 2년은 전장에서 굴러야 할 테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틸레트를 졸업한다고 바로 작위를 받을 수 있다면 어불성설. 북방 전역에서 뭐 빠지게 구르며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야 한다.

       

       “으응, 새겨들을게.”

       

       메리가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어쭈. 평민이면서 반말을 해?”

       “본때를 보여줘야겠군.”

       

       그래, 쉽게 지나가리라고 생각은 안 했어.

       

       신분제가 있는 한, 어느 학교에나 이런 소악당은 존재한다. 합격했던 순간부터 각오하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메리가는 피하지 않았다.

       

       “같은 학생이면서 존대할 필요는 없지.”

       “뭐?”

       “틸레트에 들어온 순간부터 모두가 엘리트. 바깥은 신분제여도, 학교 내에서만큼은 모두가 평등하다고….”

       “하!”

       

       남학생이 웃으며 말을 가로챘다.

       

       “표면상 그런 거지, 학교에서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실제로 평등할 것 같아?”

       

       틸레트 아카데미가 신분제의 영향을 받지 않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북부의 마수와 싸울 재원을 모집하이 위함이다.

       

       “입학이 다가 아니야. 우리와 눈높이를 맞추고 싶으면 졸업하고, 군 복무도 착실히 이행하라고.”

       “알겠어? 평민?”

       

       메리가는 너스레를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게.”

       

       털털한 태도에, 도리어 메리가에게 시비를 건 학생들의 표정이 불퉁해진다.

       

       “이봐, 평민.”

       “왜?”

       “그럴 땐 ‘왜요’라고 해야지.”

       “왜요.”

       “흐흠, 네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보고 싶은데.”

       

       귀족적인 풍모를 지닌 여학생이 고개를 까딱였다.

       

       “이따 끝나고 한 번 대련이라도 하지?”

       

       

       **

       

       

       입학 첫날부터 눈에 띄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도 세상은 메리가를 가만히 두질 않는다. 차별이라는 이름으로 괴롭히고, 방해하고, 못살게 군다.

       

       이쯤 되니 슬슬 지겨웠다.

       

       ‘공부 좀 하자.’

       

       당장 다음 학기 장학금을 노리느라 공부할 시간도 부족할 지경이다. 보다 건설적인 토론을 할 줄 아는 친구라면 모를까, 호승심에 불타는 귀족 자제들과 어울릴 시간은 없다시피 했다.

       

       “이겨, 벨라! 완전히 짓밟아 버려!”

       “평민 상대로 지면 일 년 치 밥값은 네가 내는 거야! 알겠어?”

       

       결투가 벌어지는 대운동장.

       

       메리가는 고까운 넋두리를 들으며 가볍게 몸을 풀었다.

       

       상대방은 이름난 백작 가문의 장녀.

       

       물 마법으로는 나름 수재라고 불리는 모양인데, 실제 맞붙었을 때 어떨지는 모르겠다.

       

       스르릉.

       

       메리가는 스태프를 꺼내며 대전 링 안으로 들어갔다.

       

       핑크빛 머리카락에, 마빡이 넓은 소녀가 기세등등한 표정을 지으며 덩달아 들어왔다.

       

       “너, 전투마도에서 몇 점 받았어?”

       “한 2점 깎인 것 같은데.”

       “2점씩이나? 푸흣! 나는 만점이야. 수석이라고 방심하지 말라고.”

       

       메리가는 상당한 몸치였다.

       

       2점밖에 안 까인 것만 하더라도 장족의 발전이었다. 이조차도 로베스피에르 후작에게 배운 것이 컸다.

       

       “나보다도 점수가 낮은데 북부 전선에 가서 살아남을 수 있겠어?”

       “긴지 짧은지는 대 봐야 알지.”

       

       가볍게 스태프를 휘두르는 메리가. 너트 파쇄기를 닮은 흉흉한 물건이 파공음을 내며 돌아간다.

       

       그에 비해 상대편 소녀의 스태프는 보잘것없었다.

       

       스태프의 모양새는 심상을 반영한 결과.

       

       심상이 무르익지 않았다면 평범한 나무나 플라스틱 재질의 형상을 가진 것이 나타난다.

       

       쉽게 말해, 심적으로 개고생하지 않고서야 특수한 스태프를 소환할 수 없다.

       

       상대편이 피식 웃으며 메리가를 힐난했다.

       

       “네 스태프, 되게 못생겼다.”

       “평범하게 생긴 것보다야 낫지.”

       

       땡!

       

       그 말을 끝으로 대련을 시작하라는 종이 울린다.

       

       핑크 머리의 여학생, 벨라가 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그 주위로 거대한 이슬이 솟아났다.

       

       이슬은 공기 중의 수분을 먹고 자라더니, 사람 한 명쯤은 거뜬히 익사시킬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해졌다.

       

       장대한 부피, 막강한 수압.

       

       맞으면 최소한 몸이 수 미터를 날아갈 것이다.

       

       “흐아아!”

       

       벨라가 스태프를 조작해 물방울을 끌어쳤다.

       

       타악!

       

       메리가는 땅에 스태프를 꽂으며 피식 웃었다.

       

       “뭐야, 공격을 안 해?”

       

       좌중이 술렁거렸다.

       

       스태프를 땅에 꽂고 기다리는 행위는 보통 둘 중 하나.

       

       마도사가 공격의 의사가 없음을 알리는 표시이거나.

       

       아니면.

       

       “미쳤어? 소환이라고?”

       

       자기 대신 싸워줄 크리쳐를 뽑아내는 것이거나.

       

       하지만 그 누구도 메리가가 처음부터 소환마법을 전개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야, 소환마법은 안전한 상황에서 천천히, 하나씩 뽑아내는 것이 보통이었으니까.

       

       “…….”

       

       경기 초반부를 지켜보고 있던 클라이스 곁으로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공녀님. 저년, 아주 미친년 같습니다.”

       “자기가 대마법사인 줄 아는 모양이에요. 큭큭.”

       

       클라이스는 옆을 째려보듯이 흘겼다.

       

       “당신들에 비하면 대마법사의 자질이 충분하니까 염려하지 마세요.”

       “…네?”

       “이 아카데미의 수석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에요.”

       

       클라이스가 오연하게 턱짓했다. 잔말 말고 경기나 마저 보라는 뜻이었다.

       

       콰아앙!

       

       “뭐, 뭐야…?”

       

       땅이 움푹 파였다. 그 앞으로 물이 흥건하게 젖었다. 벨라가 쏘아던진 물폭탄이 그 자리에 착탄한 것이다.

       

       그러나 메리가는 물폭탄에 맞지도, 물폭탄이 만든 충격파에 튕겨 나가지도 않았다.

       

       그 앞에 거대한 장벽이 있었기에.

       

       “…토벽?”

       

       이만한 걸, 찰나의 순간에 연성하고 배치했다고?

       

       이제 겨우 아카데미에 들어온 신입생이?

       

       ‘못해도 졸업생 수준이잖아.’

       

       벨라는 놀라서 입을 떡 벌렸다.

       

       “나 미술 좋아하는데. 혹시 부조(浮彫)라고 알아?”

       

       스륵, 스륵.

       

       메리가가 스태프를 빠르게 휘두른다.

       

       나비가 춤추는 것처럼, 서예가가 붓을 놀리는 것처럼, 흙의 장벽을 신속하게 조각해 나간다.

       

       터엉─!!

       

       둔탁한 쇳소리가 나고, 그 위로 추가 연성진과 축조진이 덧씌워진다.

       

       이윽고.

       

       쿵!

       

       벨라의 눈앞에 거대한 흙의 거인이 나타났다.

       

       “고, 골렘….”

       

       메리가가 소환한 것은 골렘이었다.

       

       조각된 수준으로 보았을 때 명백한 상급. 마수와의 전투에 즉시 투입되어도 될 만큼 양질의 피조물이었다.

       

       클라이스의 눈이 부릅떠졌다.

       

       “꺄악!”

       

       메리가가 조종하는 흙의 골렘은 멍하니 서 있던 벨라를 가볍게 들어 링 바깥으로 내려놓았다.

       

       무살상, 무피해.

       

       보건실을 찾을 필요도 없이, 시합은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메리가의 골렘에게 공주님 안기를 당하고 있는 벨라가 얼굴을 붉히며 빼액빼액 소리를 질러댔다.

       

       “이건 인정할 수 없어. 다시 해!”

       “다시 하기는 무슨. 이걸로 승부는 난 거야. 귀족이라면 깨끗하게 승복하라고.”

       “이, 이게…!”

       

       이후 벨라는 그녀를 따르는 무리에게 잡혀가 1년 동안 학식을 사 주어야만 했다.

       

       또한 크고 아름다운 골렘의 자태를 본 학생들이 대부분 입을 다물어 버리면서 그 누구도 메리가와 싸울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이젠 좀 편해지겠는걸.’

       

       대신 교수님들의 러브콜을 피해야 할 테지만.

       

       대학원은 조금 더 생각해 보고 결정할 계획이었다. 만약 교수를 하려 한다면 반드시 거쳐야겠지만.

       

       전투마도사는 군에 복무하면서 대학원에 다닐 수 있다고 한다. 그 제도에 대해선 차차 찾아볼 계획이다.

       

       ‘배고프다.’

       

       학식이나 먹으러 가야겠는걸.

       

       틸레트는 밥이 맛있다고 들었다. 메리가가 입꼬리를 씰룩이며 링을 나가려고 할 무렵이었다.

       

       “잠시만요!”

       

       타악, 탁.

       

       금발 하나가 인파를 제치고 날아온다. 클라이스였다. 메리가는 그녀의 부름에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았다.

       

       클라이스가 메리가의 어깨를 붙잡으며 고압적으로 말했다.

       

       “상급 골렘을 소환할 정도라니… 당신, 정체가 뭐예요?”

       “응? 나야 그냥 평민 출신….”

       “이론 공부는 어떻게 했죠? 연성할 때 어떤 접근방식을 사용했던 거예요?”

       “어, 어?”

       

       메리가를 사정없이 볶아대는 클라이스.

       

       메리가도 당황했고, 길을 떠나려는 관객도 당황했고, 심지어 대기하고 있던 아카데미 교수들조차도 당황했다.

       

       그 모두가 아는 하스펠트 가문의 공녀가, 평민을 상대로 저리도 평정을 잃은 모습이란.

       

       “방법이 뭐죠?”

       

       클라이스의 어조는 여느 귀족처럼 오만했다. 하지만 동시에, 여유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고, 메리가는 피식 웃었다.

       

       비록 눈 색깔은 다르지만, 같은 금발.

       

       메리가는 이런 유형의 귀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조급해하는 클라이스에게 손을 내밀며 다음과 같이 청할 수 있었다.

       

       “나랑 친구해 주면 알려주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360화 완결은 결국 실패할 것 같네요. 맨 처음 기획은 200화, 그 다음은 300화, 그런데 지금은…

    허허

    연참밖에 답이 없어요

    그런데 체력이 받쳐주질 않네요… 늙었나봐요

    **

    볼드모트님, 1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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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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