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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8

        

       이제순은 독기와 광기로 번들거리는 눈초리로 중얼거렸다.

         

       그는 고통조차 잊은 채 하염없이 신발이었던 것을 바라보았다.

       신발이었던 천조각들.

         

       조금 전까지 그의 보물이었지만, 이제는 쓰레기가 되어버린 신발.

         

       그는 깨진 치아와 온몸에서 느껴지는 고통조차 잊은 채 계속해서 그 쓰레기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무언가 결심했는지 이를 악물며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너무 맞았던 탓일까?

         

       그냥 일어서는 것조차도 힘이 들었다.

       다리가 맛이 가기라도 했는지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아 엉덩방아를 몇 번 찧었고, 그나마 잘 움직이는 다리 하나를 지지대로 삼아 몸을 일으키려 해도 몸이 휘청거리며 바닥에 다시 굴러버렸다. 그는 몸을 벽에다가 기댄 채 팔과 다리를 어떻게든 움직여 벽에 기대는 형태로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끄윽.”

         

       그는 벽에 몸을 비비다시피 천천히 움직여 컨테이너의 문까지 도달했다.

         

       철컥.

         

       문고리를 지지대라도 되는 것처럼 체중을 실어 붙잡았고, 그것을 돌려서 문을 열었다.

         

       그렇게 밖으로 나온 이제순은 만취한 취객처럼 몸을 이리저리 휘청이면서 움직였다.

       잘 움직이지 않는 한쪽 발을 질질 끌기도 하고, 넘어질 것 같으면 가로등이나 나무, 벽에 몸을 기대서 쉬었다.

         

       “기다려라, 개자식들아….”

         

       그는 그렇게 휘청거리며 어둠 속으로 나아갔다.

         

       옷은 폭력에 노출되어 이리저리 해지고 먼지투성이가 되었고, 몸은 두들겨 맞아 제대로 가눌 수조차 없었지만….

         

       그의 눈은.

       분명히 광기에 번들거리고 있었다.

         

         

         

        * * *

         

         

         

       “아, 스트레스 잘 풀었다.”

         

       이제순을 손봐주고 복귀한 무인 둘은 상쾌한 얼굴로 몸을 씻고 숙소에서 쉬고 있었다. 그들은 숙소의 냉장고에 미리 들어가 있던 맥주를 한 캔씩 들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 직장에서 퇴근한 사람이 가벼운 안주에 맥주 한 캔을 하면서 하루의 피곤을 녹일 때의 모습과 참 닮아있었다.

         

       치익.

         

       “간빠이(かんぱい)!”

         

       “간빠이(かんぱい)!”

         

       둘은 소파에 앉은 채 동시에 맥주캔을 따서 건배했다.

         

       그리곤 호쾌하게 단숨에 맥주를 들이켰다.

         

       하지만 호쾌하게 맥주를 들이켜기 시작한 그들의 표정은 서서히 변해갔다. 기대감에서 실망으로 말이다.

         

       그들은 맥주를 단숨에 비우고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쯧. 별로 맛이 있지는 않네.”

         

       “일본 맥주 비슷한 맛이 나기는 하는데, 그냥 따라 하려다가 실패한 맛이 나.”

         

       “그래. 하위호환 느낌이야.”

         

       “이럴 거면 일본 맥주나 넣어놓을 것이지….”

         

       콰득.

         

       둘은 실망했다는 듯 손에 힘을 줘서 맥주캔을 그대로 꾸깃꾸깃 접어버렸다. 그리곤 손가락을 튕겨서 맥주를 쓰레기통에 날려 보내곤, 그대로 소파에 몸을 파묻어버렸다.

         

       그렇게 둘은 소파와 한 몸이 된 것 같은 모습으로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덜컹.

         

       정찰을 하러 갔던 다른 이들이 돌아올 때까지 말이다.

         

       “벌써 끝났어?”

         

       그들은 우르르 숙소로 들어오며 소파에 몸을 파묻고 있는 둘에게 말을 걸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의아함과 부러움이 묻어있었는데, 소파에 있던 둘은 그들의 부러움 가득한 시선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약골 새끼 만져주는 게 뭐 그리 오래 걸린다고.”

         

       “좀 후려치니까 살려만 달라고 질질 짜더군.”

         

       둘은 무용담처럼 이제순을 팬 이야기를 했다.

         

       “그건 뭐 알아서 했겠지. 우린 별로 관심 없어.”

         

       “대신에 정보 캐온 거나 공유를 좀 했으면 하는데.”

         

       하지만 다른 이들은 둘의 무용담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약해빠진 사람을 둘이서 두들겨 팼다는 이야기에 불쾌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마저 있었다.

       둘은 그들의 반응을 보며 김이 샜다는 듯 쳇, 하고 혀를 차더니 서서히 몸을 일으켜 그들을 바라보았다.

         

       “알았어. 정보라…. 뭐 잘 캐왔지.”

         

       둘은 이제순에게 캐온 정보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제순이 어떤 경로로 추적을 한 것인지.

       주물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한 단서가 다른 방송인들이라는 것까지.

         

       “흠.”

         

       둘의 말을 들은 다른 사람들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어렵지는 않겠군.”

         

       능력자나 군인, 직위가 높은 공무원 같은 난이도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방송인이다.

       그것도 그다지 중요한 위치에 있지도 않은, 따지자면 말단 쪽에 있는 방송인.

         

       그런 사람에게서 정보를 캐내는 게 어려울 리가 없었다.

         

       “일단 좀 쉬고, 내일부터 캐보자고.”

         

         

         

        * * *

         

         

         

       작전에 파견된 이들은 두 사람이 가지고 온 정보를 토대로 작전을 시작했다. 이제순이 말한 방송 관계자들의 주위에 붙어서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였고, 그들의 컴퓨터와 메모에서 정보를 캐냈다.

         

       “흠. 이것들은 자기들이 발굴한 주물이 어디 있는지도 몰라. 멍청한 조센징같으니.”

         

       “뭐, 조센징이니 어쩔 수 없겠지. 태생적 한계랄까?”

         

       주물과 관련된 사안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일까?

       관계자들은 주물이 어디로 갔는지, 누구의 손으로 갔는지, 어디에 보관하고 있는지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 그들이 아는 것은 오직 단 하나,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들이닥쳐서 주물을 들고 갔고, 비밀서약서를 쓰게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닌, 그냥 단순히 평범한 종이에 만들어진 서약서일 뿐이었지만…. 어겼을 때의 후환이 두려운 모양인지, 그들은 함부로 입을 열지 않았다. 게다가 술자리에서 잘못하다가 입을 놀릴까 염려한 모양인지 술조차 입에 대지 않았고, 대신에 비밀서약서를 쓴 동료를 만난 자리에서만 관련된 이야기를 조금씩 흘릴 뿐이었다.

         

       그 때문일까.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 여겼던 정보 수집에 꽤 시간을 잡아먹혔다.

         

       게다가 이제순 때처럼 납치한 다음 폭력을 동원하지 않고, 그저 은신한 채 스토커처럼 그들을 뒤따라가며 정보를 캤으니 더더욱 더딜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간을 투자하자 충분히 정보들이 모였고, 그들은 그렇게 모은 정보들을 정리해 주물이 있을법한 위치를 알아낼 수 있었다.

         

       “흐음. 문화재청, 한국은행 금고, 박진성 주술사의 거처, 고양 초자연 연구소, 서울과학수사연구소….”

         

       “더럽게 많군.”

         

       물론 그 위치라는 것도 꽤 많았다.

         

       저렇게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 전부 스태프들이 주물이 있을법한 곳을 추측한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문화와 관련되었으니 문화재청으로 갔을 것이다.

       중요한 물건인 것 같은데 견고한 금고가 있는 한국은행 비밀금고로 갔을 것이다.

       경기도 고양시에 초자연 연구소가 있는데 거기서 연구하고 있을 것이다.

       연대를 파악하기 위해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갔을 것이고, 국과수 중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서울과학수사연구소에서 연구하고 있을 것이다.

       주물을 발견한 당사자인 박진성 주술사님이 조사하고 있을 것이다.

       …

       …

       …

         

       방송국 사람들의 입에서는 끊임없이 추측이 흘러나왔다.

         

       정말로 끊임없이 말이다.

       주물의 위치를 추측하는 것이 무슨 오락거리라도 되는지, 그들은 가십거리를 씹어대듯 주물의 거처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개중에는 그것을 재료로 외계인을 부르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느니, 국방부로 보내서 전략무기로 사용할 수 있을지 연구한다거나, 미국에 팔아넘길 준비를 하고 있다는 등의 허무맹랑한 추측까지 있었다.

         

       그들은 이러한 허무맹랑한 정보들을 추리고 또 추렸다.

         

       “일본 정부에 넌지시 제안했다지? 대가에 따라 넘길 생각도 있다는 것이니 물건이 망가지는 것은 원치 않을 터. 그렇다면 연구라는 선택지는 제외하는 게 맞다.”

         

       “다른 나라에 팔아넘기려고 하는 것 역시 제외해야 한다. 일본 정부에 접촉하지 않았으면 모를까, 이미 접촉한 상태에서 다른 나라에 접촉해서 팔아넘기려고 할 리가 없지. 만약 실제로 그런 움직임이 있다고 하더라도, 주물의 값을 올려서 일본 정부에 돈을 뜯어내려는 블러핑일 것이다.”

       

       그렇게 추려진 결과물은 셋.

         

       문화재청.

       박진성 주술사.

       한국은행 금고.

         

       저렇게 셋만 남은 이유는 간단했다.

         

       저 세 가능성이야말로 주물의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는 선택지였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은 문화재를 관리하는 데 노하우가 있다.

       그렇기에 혹시 모를 훼손이나 변질의 위험 없이 주물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고, 고고학이나 민속학, 문화학 등의 전문가들을 긁어모아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측정하기에도 적합하다.

         

       박진성 주술사도 마찬가지.

       주술 불모지의 주술사라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능력은 있을 터이니, 주물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것이 가능하리라. 그리고 운이 좋다면 주물의 기능을 알아낼 수도 있으니, 가치를 뻥튀기시킬 수도 있겠지.

         

       한국은행 금고?

       가치를 뻥튀기 시킬 수는 없으나, 도난의 염려가 가장 적은 곳이다.

       군대가 쳐들어와도 뚫기 힘들 정도로 철저한 보안이 유지되고 있는 한국은행 금고는, 알려진 시설 중에서는 가장 안전한 보관장소였다.

         

       “흠. 셋이라….”

         

       “나쁘지 않군.”

         

       “사람을 나누도록 하지.”

         

       그들은 세 선택지를 보며 사람을 나눴다.

         

       가장 가능성이 큰 문화재청에는 많은 숫자를, 가장 가능성이 작은 한국은행 금고에는 적은 숫자를.

         

       그리고, 박진성 주술사에게는.

         

       “조센징이라고 하더라도 조심하기는 해야겠지.”

         

       잠입에 재주가 있는 무인 셋.

         

       “이따 밤에 갔다 오도록 하지.”

         

       “주술 불모지 출신의 애송이 주술사다. 우리를 눈치채지도 못할 거다.”

         

       박진성을 담당하는 셋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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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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