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8화. 계명 ( 3 )
“끄아아아아아아!!!”
“이, 이건 너무 신성하다아아아앗!!”
“위대한 하나 된 분이시여 영원한 빛으로 나를 인도하소서!! 위대한 하나 된 분이시여 영원한 빛으로 나를 인도하소서!! 위대한 하나 된 분이시여 영원한 빛으로 나를 인도하소서!!”
귀마개를 챙긴 데모닉의 선택은 실로 탁월했다. 팔라딘의 권한으로 긴급 소집한 대사제들에게 간밤의 꿈과 전해 받은 석판을 보여줬더니, 곧바로 터져 나오는 신앙의 포효라니!
귀마개는 무적이고, 데모닉은 팔라딘이었기에 고막은 무사할 수 있었다. 실로 노련한 선택.
“크하아아아아아!! 하나 된 분이시여!! 당신은 어디까지 나를 미치게 할 것입니까!!!”
“계명!! 새로운 계명!! 하, 한 번만 보게 해주게!! 어서 나에게 그 석판을!!!”
“크으으… 이, 이 지고한 신성력!! 거기에 계명이라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군!!”
시뻘게진 눈과 날름거리는 혓바닥, 꾸물거리는 손가락.
대사제들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다가오니 어쩐지 데모닉은 성추행당하는 아낙네가 된 기분이었다.
“자, 잠시!! 진정하십시오!! 차근차근 줄을 서시면 제가 알아서 보여드릴 테니! 잠, 잠시만!! 크리스 대사제님!! 멈추십시오!! 크아아악!! 안토니오 대사제님!!”
“석판…! 석판을 보게 해주게 데모닉! 딱 한 번만 보면 되니까!”
대사제로 이루어진 해일에서 데모닉이 비명을 질렀다.
그가 자유의 몸이 된 것은 모든 대사제가 석판을 한 번씩 돌려가며 진득하게 탐독한 이후였다.
“…”
“그, 흠, 크흠! 팔라딘 데모닉. 화… 났는가?”
“…화나지 않았습니다.”
“거 참. 미안하네 허허… 늙으니까 이런 일에도 쉽게 흥분하게 되는구먼. 허허허. 내가 나중에 밥이라도 한 번 사겠네.”
대사제들이 허허 웃으며 그리 말하니 데모닉도 마냥 심통을 부릴 수는 없었다. 짬에서 밀리는 것이 한이다.
“휴. 뭐, 됐습니다.”
데모닉이 조심스럽게 석판을 챙겼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하나 된 분에게서 직접 석판을 받은 것은 데모닉 자신, 즉 데모닉은 계명의 적법한 전달자였다.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데모닉의 말에 대사제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흐음. 아무래도 다섯 신 시절의 아홉 계명과는 조금 다른 부분이 많기도 하지.”
“비슷한 부분도 분명히 있기는 하지만…”
“신께서 직접 전하신 가르침이니 마땅히 널리 알려서 만백성을 이롭게 하는 데 쓰여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요. 하지만 무엇을 더 중시해야 한단 말입니까? 아홉 계명입니까? 아니면, 지금의 육 계명입니까?”
“아홉 계명은 인간의 기본적인 행실 위주로 설명했지만, 육 계명은 조금 더 체계화된 도덕적 규율로 정의된ㅡ”
대사제 간에 토론의 열기가 점차 올라갈 기미가 보이자 데모닉이 이를 중재했다.
“다들 너무 흥분하셨습니다. 그리고 잊으신 것 같은데, 다섯 신은 결국 하나 된 분의 분신(分身)이었습니다. 아홉 계명과 육 계명, 모두 같은 분으로부터 나온 계명이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렇게도 볼 수 있겠군.”
대사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신학적 관점에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말이기도 했다.
“흠. 아홉 계명과 육 계명이라… 뭔가, 조금만 더 연구하면 괜찮은 주제가 하나 나올 것 같기도 한데.”
“내 밑에 있는 제자들한테 관련 자료를 좀 찾아오라고 해봐야겠군.”
저만의 세계에 빠져 중얼거리는 대사제들을 보며 데모닉이 한숨을 쉬었다. 신학의 정점에 이르면 자신도 저렇게 되는 걸까.
“팔라딘 데모닉.”
“아. 안토니오 대사제님.”
하얗게 센 수염을 쓰다듬으며 안토니오 대사제가 다가왔다.
“우선 그 계명은… 만신전의 이름으로 반포하도록 하지. 이러나저러나, 우리는 모두 결국 신의 종. 주인께서 새로운 계명을 알리셨으니 널리 알려야 하지 않겠나.”
“그렇습니다.”
“자네가 계명의 전달자로 임명받았으니, 이후의 처분에 대해서는 자네에게 맡기겠네.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지 말하게.”
“흠. 그렇다면ㅡ”
데모닉과 안토니오, 그리고 정신을 차린 대사제 몇 명은 오래도록 이후의 방침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데모닉이 새로운 계명을 받은 당일의 오후.
만신전의 깃발을 꽂은 전령 수십이 저마다 고급스러운 양피지를 품에 안고 땅을 박찼다.
하나 된 신의 가르침, 새로운 여섯 개의 계명이 대륙의 곳곳으로 퍼져가기 시작했다.
* * * * *
띠링ㅡ!
《‘육 계명’이 선포되었습니다.》
《각 계명의 해석에 따라 대륙의 정세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1. 악마를 숭배하지 말라 : 악마 계약자의 출현이 급격히 감소합니다.》
《2. 신을 모독하지 말라 : 신앙심이 모이는 속도가 + 25% 증가합니다.》
《3. 기도함에 있어 항상 거룩하라 : 성(聖) 계열의 모험가들이 이로운 효과를 받습니다.》
《4. 네 이웃에게 베풀고 나누어라 : 빈곤층에서 범죄 발생률이 조금 낮아집니다.》
《5. 남의 아내와 재물을 탐내지 마라. : 간통과 절도의 발생률이 조금 낮아집니다.》
《6. 신께서 보고 계심을 잊지 말라. : 각종 범죄의 발생률이 조금 낮아집니다.》
“오.”
아침에 일어나서 양치하면서 게임을 확인하니, 데모닉에게 전달한 계명이 제대로 반포가 된 모양.
“그런데 내가 직접 계명을 선포했는데 범죄율이 ‘조금’ 줄었다고?”
이 부분은 조금 실망이었다. 막 선포된 따끈따끈한 계명이라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거나, 모르는 사람이 많을 수 있으니 조금 기다리면 나아지겠지.
옷을 갈아입으며 한 손으로 계속 핸드폰을 확인했다.
“신앙심. 맞아 이런 것도 있었지.”
참 오랜만에 보는 재화였다. 그간 확인할 일이 없어 좀 소홀했는데.
‘아마 신앙심을 써서 랜덤 상점에서 아이템이나 이런 걸 사는 거였지?’
주로 선물용 잡템이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가끔 무기나 새로운 레시피도 나왔고.
간만에 랜덤 상점을 둘러봤지만 별로 쓸만한 건 없었다.
“뭐야 이건… ‘니콜라스 성인의 초상화’이랑 ‘최초의 성녀이자 최고의 미녀인 케넬름의 자화상’…”
음.
띠링ㅡ!
《5,000 신앙심을 소모해 ‘최초의 성녀이자 최고의 미녀인 케넬름의 자화상’을 구매했습니다.》
이건 소장용으로 가지고 있을까.
* * * * *
새롭게 반포된 육 계명.
이는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혼란과 충격을 안겨줬다.
“계명이 여섯 개라고…? 그러면 전에 알고 있던 아홉 계명은?”
“어, 음… 둘 다 지키면서 살아야 하는 건가? 아니면, 육 계명을 위주로 지키나?”
만신전에서 명확하게 선포했다.
“다섯 신도, 하나 된 분도 모두 같은 분이시다. 아홉 계명과 육 계명 모두 지키라.”
졸지에 계명이 15개로 늘었지만, 이에 불만을 품은 이들은 소수였다. 애당초 계명이라는 것이 절대다수의 평범한 이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도덕이었기 때문이다.
“어디 보자. 악마를 숭배하지 말고… 기도를 열심히 하고… 이웃에게 나누고 베풀고… 흠.”
“뭐, 이웃에게 나누라는 부분을 빼면 나머지는 거의 다 평범한데? 으음. 이번에 신전에 가면 기부라도 해야하나?”
“남의 마누라랑 돈을 탐하지 말라는 것도.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런 놈들은 아주 그냥 탄탈로스에 떨어져야지.”
“흠, 크흠!”
“? 자네?”
지레 뜨끔한 몇몇 소수의 사람이 야밤을 틈타 신전에 고해성사하는 일도 있었으나, 대다수의 시민들은 그냥 그렇구나 ㅡ하고 계명에 대해 받아들였다.
“크아아아악!! 어찌!! 하나 된 분은 아홉 계명을 내리고!! 또다시 육 계명을 내리셔서!!”
“어라…? 2년을 준비한 내 논문이… 쓰레기가 됐다? 계명이 늘었… 다고? 어째서…?”
“흐히히히히! 으히히! 계, 계명이 복사가 된다고!! 내가 학부생을 있을 때 교육 과정이 실시간으로 바뀐다고!!! 으헤헤헤!!”
몇몇 소수의 사람들… 그러니까 신학을 전공으로 하는 이들의 비명이 드높았지만, 으레 그렇듯 소수의 비명은 큰 물결에 소리 없이 묻혔다.
그리고ㅡ
대륙 동쪽에 위치한 어느 빈곤한 판자촌.
타탓.
판자촌 유일한 치료소의 딸, 테레시아가 품에 약재와 붕대를 한가득 안고 타박타박 뛰었다. 미로처럼 꼬인 골목을 능숙하게 오가는 모습이 날쌘 다람쥐처럼 보였다.
이윽고 넓은 공터에 도착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갈 곳 없는 부랑자들이 모여 자던 곳이었고, 온갖 쓰레기와 오물이 넘쳐나던 곳이었다.
“…아저씨들? 계세요?”
지금은 옛날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말끔하게 정리된 공터였다.
테레시아가 깔끔한 공터를 보며 중얼거렸다.
“약이랑 붕대 전해주러 왔는데… 다들 어디 가셨지? 일하러 가셨나?”
인기척 하나 없는 공터. 가운데 깊이 박힌 검만이 은은한 광휘를 뽐내고 있다.
테레시아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검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흐음. 이게 그 아저씨들이 말하는… 상스러운? 성스러운 칼이구나?”
아저씨들이 하는 대화를 엿들었을 때는, 분명 하늘에서 번쩍! 하는 빛과 함께 검이 내려왔다고 했었다.
“흐으으음.”
가만 보니 하얀 올가미가 검을 꽁꽁 묶고 있다.
아저씨들은 이 검이 신께서 우리처럼 가진 것 없는 자들을 아낀다는 뜻이라며 막 소리 질렀는데, 진짜 그런 걸까?
힐끗.
딱 봐도 뽑지 못하게 되어 있으면 뽑고 싶어지기 마련.
공터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테레시아가 조막만 한 손으로 검 자루를 힘껏 붙잡았다.
평범한 검이라면 아직 여덟 살도 되지 않은 테레시아에게 뽑힐 리가 만무했으나ㅡ
덜컥! 스르르르륵…
“어, 어어?!”
뽑힌다!
너무나 가볍게 뽑히는 검에 되려 테레시아가 놀랐다. 검을 묶고 있던 하얀 올가미가 점점 흐려지며 사라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아, 안 돼!’
테레시아는 아직 어렸지만, 이 검이 뽑히면 안 되는 검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아저씨들이 절대 뽑히지 않는 검을 두고 신의 약속이라며 기뻐하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이이익! 들어가! 들어가!”
콩. 콩.
테레시아가 조막만 한 손으로 칼자루를 콩콩 때리자 부드럽게 뽑히던 검이 스르륵 들어가기 시작했다.
“휴우. 됐다…”
하얀 올가미도 완전히 빛을 되찾고, 검도 무사히 원래대로 돌아왔다.
본 사람은 없겠지?
목격자가 없음을 꼼꼼하게 확인한 테레시아가 구슬땀을 닦았다.
“너! 그렇게 막 뽑히면 안 되지! 아저씨들이 네가 절대 안 뽑힌다고 얼마나 좋아하셨는데!”
놀란 가슴을 달래며 애꿎은 검에게 잔소리를 쏟았다.
“넌 뽑히면 안 되는 검이야! 네 덕분에 아저씨들이 오늘도 일하러 가셨잖아. 그런데 네가 그렇게 막 뽑히면 어떻게 되겠어!”
매일매일 시체처럼 죽어가던 사람들이 희망을 붙잡고 살아보겠다며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몸이 고된 노역과 하수도 처리 같은 일이라도 해서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니까 오늘처럼 막 뽑히면 안 돼! 알겠지?”
테레시아는 검을 향해 으름장을 놓고는, 공터 한구석에 약재와 붕대를 놓고 낙엽으로 꼼꼼하게 가렸다.
“으앗 늦겠다!”
이상한 검에 너무 시간을 빼앗겼다며 테레시아가 부리나케 공터를 빠져나갔다.
파르르…
땅 깊숙이 박힌 검이 불어오는 바람에 처연한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 * * * *
《흠.》
이리저리 움직이며 하급, 중급 악마들을 헤아리던 발가르가 침음을 삼켰다.
요 며칠간 하급, 중급 악마들을 꾸준하게 탄탈로스로 옮겨져 영혼을 정화했다.
처음에는 그 수가 몇백에 불과했지만, 탄탈로스에서 규모를 확장하며 이제는 한꺼번에 수천에 가까운 악마의 영혼 정화가 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모아둔 악마의 군세가 점점 눈에 띄게 줄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더 이상 미뤄둘 수 없는 문제다.’
다른 대악마들은 몰라도 펜리르는 줄어드는 악마를 눈치챈 것 같다. 조금씩 이상하다는 눈빛을 하고는 했다.
발가르가 마음을 굳혔다.
《지고한 어버이와 대화해야겠구나.》
절반의 영혼이 타락한 이들, 절반의 영혼이 깨끗한 악마들.
‘더 늦기 전에 이들에 대한 처분을 결정해야 한다.’
이들에 대해 어찌 영혼을 정화할지.
만약 정화할 수 없다면… 어찌할 것인지.
타탓.
심연의 으슥한 곳에 도착한 발가르가 하늘 높게 걸린 일곱 개의 별을 향해 기도했다.
《지고한 어버이시여… 당신의 우매한 자식이 이리 기도하옵니다. 부디 저의 말을 들어주소서.》
숭배하는 마음으로 기도한다.
《…어버이시여. 당신의 어린 자식이 그대의 지혜를 빌리고자 합니다. 부디 저에게 응답하소서.》
하지만 기도라는 건 때론 응답받지 못할 수도 있는 법이다. 혹은 기도에 응답할 신이 어떠한 사정으로 엄청 바빠서 잠깐의 여유조차 없다거나.
그럴 때면 아무리 간절한 기도라도 닿지 않는 법.
《……어버이시여?》
그건 신이 직접 빚은 발가르도 예외는 아니었다.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엄청나게 무지막지하게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 감사합니다…!! ??? 네?? 아니, 비용이 그렇게 나오고 검사를 그렇게 많이 받았으면 보통 심각한게 아니잖아욧!!!!! 에엑…!! 인대라는게 한번 다치면 재생이 되던가요…?? 오에엑. 심각한 부상인 것 같은데 얼른 완치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쾌유, 압도적인 쾌유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