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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8

       새내기들이 들어온 지 2주일.

       

       아카데미 한가운데에 자리한 대운동장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굉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쾅, 콰앙─!!

       

       “쟤들 또 싸우냐?”

       “젊다는 건 좋네….”

       

       대학원생들이 허허 웃으며 지나간다.

       

       이렇듯 며칠 전부터는 학부와는 연관 없는 이들조차도 대운동장 폭음의 원인을 알게 됐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콰콰쾅─!!

       

       다시 한번 파공음이 터져 나왔다.

       

       하늘에 잿가루가 날리고, 화마(火魔)가 천지를 씹어 삼킨다.

       

       대련용 결계 마법진이 없었더라면 아카데미 일대가 쑥대밭이 되었을 것이다.

       

       “두, 둘 다 너무 하는 거 아니니?”

       

       틸레트 아카데미의 보건교수, 세피아 글리스턴이 쩔쩔매며 두 사람의 싸움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결계 마법진이 사르르 풀렸다.

       

       “하아, 하아….”

       “헉, 허억….”

       

       금발 머리의 여인과, 은발 머리의 여인이 땅바닥에 뒹굴며 숨을 헉헉대고 있다.

       

       한 명은 클라이스 하스펠트였고, 다른 한 명은 메리가였다.

       

       두 사람 모두 땀이 폭포수처럼 흐른다.

       

       “다, 당신… 조금 하는데요…….”

       “하아, 하아… 너야말로…….”

       

       명목상 학부생 간의 대련.

       

       실질적으로는 모의 전투 훈련.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마법을 부려댄 결과, 두 사람은 2주간 급속도로 친해지고 말았다.

       

       “얘들아, 괜찮니?”

       “괜찮아요.”

       “저도 괜찮아요.”

       

       클라이스와 메리가는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싸워댔지만, 탈진하는 일 따위 없이 척척 걸어서 대련장 밖으로 나왔다.

       

       “강의 듣고 과제 할 체력은 남겨 놓아야죠.”

       “이하동문입니다.”

       

       글리스턴 교수는 두 사람을 경이로운 눈으로 두 학생을 쳐다보았다.

       

       제국의 장래가 밝구나.

       

       그리 생각하고 만다.

       

       클라이스와 메리가는 샤워실에서 몸을 씻은 뒤 옷을 갈아입고 교실로 들어갔다. 오후의 이론 수업을 듣기 위해서였다.

       

       “저기 두 사람 봐. 딱 붙어 다니네.”

       “언제 친해졌지?”

       “저 평민이 설마 하스펠트의 공녀와 호각을 다툴 줄은….”

       

       어떤 사람은 경탄했고, 또 어떤 사람은 두려워한다.

       

       대대손손 뛰어난 전투마도사들을 배출해 온 명문가에서도 천재라고 일컬어지는 하스펠트의 팔녀.

       

       그리고 그런 공녀와 2주 동안 격렬하게 대련하고도 한 번도 나가떨어지지 않았던 평민 출신의 기재.

       

       이제 그 누구라도 메리가의 실력에 토를 달지 않았다. 아니, 달 수가 없었다.

       

       “클라이스.”

       “무슨 일이죠?”

       “내 친구가 되어 줘서 고마워.”

       “뭔가요…. 갑자기.”

       

       홱.

       

       클라이스는 고개를 돌렸다.

       

       “네가 아니었더라면 지금도 다른 애들한테 해코지당하고 있었겠지. 귀찮은 일이 많았을 거야.”

       “고마워 할 필요는 없어요. 저는… 그냥 당신을 이용하는 것뿐이니까.”

       

       이용이라.

       

       메리가는 작게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 말, 귀족 사이에서 하면 실례인 거 아니야?”

       “그래요. 분명히 실례겠죠.”

       “뭐야. 그럼 나는 평민이라서….”

       

       그 순간.

       

       “아니에요.”

       

       클라이스는 딱 잘라 말했다.

       

       “치, 치, 치….”

       “응? 치, 뭐?”

       “치, 친구니까…….”

       

       그리 말하는 클라이스의 입술이 달달 떨렸다.

       

       “친구라고 생각하니까… 이런 말도 할 수 있는 거예요.”

       “…….”

       “…아닌가요?”

       

       붉은 눈동자에 비치는 것은 불안감과 초조함.

       

       어린 시절부터 수많은 인간군상을 만나 온 메리가는 알 수 있었다.

       

       이 공녀님은, 아직 어리다.

       

       겨우 2주 만난 사람이, 제아무리 친구라 불러달라고는 했으나, ‘널 이용하고 있다’라는 말까지 서슴없이 하다니.

       

       물러도 너무 물러.

       

       온실 속 화초로 자라 온 것이 틀림없다.

       

       “맞아. 친구끼리는 그런 말 해도 되지. 서로 기분만 상하지 않는다면 말이야.”

       

       메리가는 어물쩍 넘어가기로 했다.

       

       이 소녀보단 자신이 더 어른이니까. 조금 서툰 면이 있더라도 싫어하지 말고 돌봐주자.

       

       그래. 몇 년 전에 죽어버린, 창관의 어느 소녀를 대신해서.

       

       “그러니까 너도 나를 편하게 이름으로 부르면 돼.”

       “그러면… 메리?”

       “메리?”

       “귀족들은 친한 사람의 이름을 축약해서 불러요. 안 되나요?”

       “아, 안 될 거 없지!”

       

       메리가는 클라이스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다만, 난감했다.

       

       이 친구의 이름은 어떻게 축약해서 불러야 하는지 원.

       

       “클레어라든지, 리스는 이미 있는 이름이에요. 각각 제 둘째 언니와 외사촌 이름이죠.”

       “하아…. 그러면 이를 어쩐다.”

       “이전처럼 편하게 클라이스라고 불러주시면 돼요.”

       “그래, 그러면. 클라이스.”

       

       클라이스는 여전히 무표정을 유지했다.

       

       눈을 깜빡이며 도도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선 우아함을 너머 존귀함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도 인간의 감정이란 쉽게 숨길 수 없는 법.

       

       이따금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라든지, 눈이나 입을 샐긋거리는 모습에서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얘한텐 내가 첫 친구구나.

       

       

       **

       

       

       메리가와 클라이스의 사이는 날이 가면 갈수록 깊어졌다.

       

       주변 인맥을 쌓지 않은 것은 아니나, 기본적으로 두 사람은 함께 먹고 자고 공부했다.

       

       실습 훈련을 나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메리가가 전열, 클라이스가 후열을 맡으면 당해낼 마수가 없었다.

       

       “저 둘은 나중에 교수가 되겠는걸.”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다.

       

       그쯤에서 메리가는 머릿속에 담아두었던 생각을 명료화했다.

       

       나는, 선생이 된다.

       

       틸레트 아카데미의 교수, 그 너머의 존재가 되어 학생들을 인솔하고 싶다.

       

       그래서 평민으로 입학했더라도 자기 재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싶다.

       

       메리가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품은 대의(大意)였다.

       

       그렇게 고학년이 되었다. 메리가는 하루하루 수련과 실습, 이론 공부에 매진하며 졸업 준비를 착실히 밟아나갔다.

       

       그러던 중, 룸메이트인 클라이스 편에 편지가 하나 도착했다.

       

       “아….”

       

       넷째 언니의 부고 소식이었다.

       

       – 하스펠트 가문에서 한 명이 또 죽었더군.

       – 재앙급 마수에게 둘러싸여 어쩔 수가 없었다고 하던데.

       – 안타깝게 됐어.

       

       북방을 지키는 하스펠트 공작 가문의 집안 사정은 그리 좋지 못하다.

       

       가정이 화목하지 못하다는 게 아니라, 천부적인 군인 집안이었기에 젊은 장교의 사망률이 높았다.

       

       아버지로부터의 넷째 언니 부고 소식을 들은 클라이스는 몸을 세차게 떨었다.

       

       “아, 으, 으.”

       

       그날, 메리가는 크게 망가진 제 친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클라이스는 오열하거나 하지 않았다. 

       

       단지, 감정 없는 인형처럼 온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침대 위에 고즈넉히 앉아 있었을 뿐이었다.

       

       “클라이스?”

       

       24시간이 지난 끝에, 메리가는 용기를 내어 물어보기로 했다.

       

       “괜찮아?”

       

       여전히 묵묵부답.

       

       마치 감정을 상실한 헝겊과도 같다. 가볍고, 공허하고, 한없이 누덕누덕하다.

       

       클라이스는 다시 하루를 지난 끝에야 입을 열었다.

       

       “메리, 우리 친구가 되었을 때 기억나요?”

       “응. 당연하지.”

       “저는 당신에게 배우고 싶었어요. 배워서 강해지고 싶었어요.”

       

       비단 마법 지식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메리가 자신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보여준 강철 같은 멘탈을 클라이스는 본받고 싶어했다.

       

       그러나 이 부분은 철저하게 숨긴다.

       

       생각을 정리한 클라이스는 피상적인 부분만 이야기했다.

       

       “당신과 만나기 며칠 전, 종형제와 숙부가 같이 세상을 떠났어요.”

       

       병이나 사고 때문이 아니다.

       

       “마수 때문이었죠.”

       

       메리가는 입을 닫고 이어지는 말을 들었다.

       

       “우리 집안은 마수와 매일같이 싸워요. 이곳을 졸업하면 저 또한 북방으로 가겠죠. 거기는 제 본가가 있는 곳인데, 어릴 적 폭설이 쏟아질 때면 마수들이 시끄럽게 울어대는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곤 했었죠.”

       

       횡설수설.

       

       그러나 전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저는 그런 불안이 싫었어요. 본가에서 나고 자랐으나, 본가가 싫었죠. 빌어먹을 마수들 때문에….”

       “클라이스.”

       “졸업하면 대학원 과정도 밟고, 동시에 군 복무도 가능한 한 오래 할 거예요. 그래서, 최대한 마수를 잡아 죽여야죠. 죽이고 죽이고 또 죽여서… 그들의 기름으로 우리 가족이 흘린 피를 씻어낼 수 있을 때까지….”

       

       그런 말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클라이스의 눈에선 광기가 엿보였다.

       

       하지만 과연.

       

       이것을 광기라고 할 수 있을까?

       

       메리가는 속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부모님을 잃어도 일 년은 곡소리를 한다. 하물며 친하게 지냈던 사촌형제며, 친척이며, 형제자매까지.

       

       하나씩 하나씩. 양파 껍질을 까는 것처럼 잃어간다면.

       

       제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결국에는 무너지고 말 것이다.

       

       “메리, 당신도 북방 전선에 갈 거죠?”

       “그래야지. 귀족 작위를 받으려면 거기서 수백 마리는 잡아야 해.”

       “그렇다면 절대로 죽지 마세요.”

       “누가 죽고 싶어서 죽겠어?”

       

       메리가는 물 흐르듯 클라이스의 말을 받았다. 그러나 클라이스는 더욱더 얼굴을 굳히며 손을 내밀었다.

       

       스윽.

       

       새끼손가락이다.

       

       “걸어요. 걸어서 약속해요. 절대로 우리 둘, 죽지 않겠다고.”

       “그래.”

       

       절대로 죽지 않는다.

       

       설마 죽기야 하겠어?

       

       반드시 살아남아서, 틸레트 아카데미에 돌아와서, 후학을 양성하며 제국에 새로운 피를 수혈하겠다.

       

       그건 로베스피에르 숙부와의 약속이었으니까.

       

       “안 죽을 테니까 걱정 붙들어 매라고.”

       

       두 약속 모두 지킬 생각이다.

       

       메리가는 클라이스의 새끼에 자신의 새끼를 걸어 휘감았다.

       

       클라이스의 표정이 조금이나마 밝아졌다.

       

       그리고 이때를 기준으로 6년이 지난 어느 날.

       

       메리가는 마수에게 오른쪽 눈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익명의 후원자님, 2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후원에 보답하고자 제가 여름철 모기에 물리지 않는 방법을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밤에 자지 않는 것입니다!

    모기가 야행성이니 사람도 야행성이면 물릴 일이 거의 없는 것이에요!!

    저는 이 방법으로 매년 다섯 방 이하로만 물린답니다 🙂

    다음화 보기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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