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59

       사실 처음에 내가 내 자매들에게 게임을 보여주지 않았던 이유는, 내가 그 게임을 플레이했던 기억으로 미래를 파악했다는 사실 외에도 게임을 플레이한 클레어나 앨리스에게 트라우마가 남을 것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게임 자체는 완전한 성인 등급 게임은 아니었다. 심지어 그 깐깐한 한국의 등급위원회에서도 성인 등급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는 게임 시리즈니까.

        

       하긴 게임 그래픽이 그래픽이다 보니 사실적인 폭력묘사가 불가능하긴 하지만. 게다가 따지고 보면 일본의 게임 심의는 한국보다 더 엄격해서, 이런 식으로 콘솔로 발매되는 게임은 성적인 묘사가 지나치게 많으면 곤란하기도 했다.

        

       실제로 내가 입문하기 전 시리즈, 그러니까 고전 PC로 발매되었던 시리즈들은 성적인 묘사가 훨씬 노골적이었다고 한다. 후에 발매된 리메이크나 콘솔 이식 작은 심의 문제와 콘솔 게임기를 만드는 업체의 요구로 그런 장면들이 대거 삭제되었고.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클레어의 과거에 대해서는 꽤 명확하게 대놓고 나오는데도, 내가 마치 게임 속의 실비아를 나라고 인식하지는 않았듯 클레어도 조금의 부끄러움은 느낄지언정 그 캐릭터를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따지자면 일종의 가능성 취급이라고 해야 하나.

        

       다만—

        

       “자, 클레어, 언니라고 불러 봐.”

        

       게임에서 묘사된 캐릭터들의 묘사는 클레어와 앨리스 두 사람에게 다른 의미로 꽤 많은 영향을 끼쳤다.

        

       “아닌데? 아닌데? 나는 저 클레어가 아니거든? 나는 어렸을 때 언니라곤 실비아 언니밖에 없었으니까. 널 언니라고 부를 일은 없거든?”

        

       “생각해보니까 그 세상 속에서도 너는 비슷한 이미지였던 것 같기도 하고. 벨라랑 친했잖아?”

        

       “벨라랑 친하긴 했어도! 칼까지는 이어받지 않았거든!? 복장도 비슷하게 입은 적 없어! 나는 저렇게 머리를 풀고 돌아다니지도 않았고, 가슴이 반쯤 드러난 코르셋을 상의랍시고 입고 다닌 적도 없었어!”

        

       참고로 그 가슴이 반쯤 드러난 코르셋 덕분에 클레어의 피규어는 인기가 꽤 많았다. 가슴 부분을 꽤 말랑말랑해 보이게 조형을 잘 해두었으니까. 물론 실제로 만지면 그냥 플라스틱이라 딱딱했겠지만.

        

       사실 그 피규어가 나왔을 때는 돈이 없어서 예약하지 못했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돈이 있었다면 당당하게 구매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지금쯤 클레어의 멘탈은 지금보다 더 심하게 박살 났겠지만.

        

       “두 사람, 혹시 환상 속에서도 이렇게 싸웠습니까?”

        

       “그야 당연히 앨리스가 먼저 시비를 걸었으니까!”

        

       “너야말로 언제나 짜증 난 상태였잖아? 먼저 시비를 건 쪽은 너 아니야?”

        

       허.

        

       환상 속에서의 클레어도 헤어스타일만 빼면 지금과 크게 다른 복장은 아니었기에 성격도 그대로였을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니거든? 아니거든!? 나는 그렇게 파렴치한 복장으로 다닌 적 없거든!?”

        

       나의 시선에 클레어가 바로 항변했다. 아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저는 물어본 적 없으니 굳이 그렇게 반응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지? 언니는 나 믿지?”

        

       “……물론입니다. 믿고 있습니다.”

        

       내가 그렇게 대답한 후에야 클레어는 조금 진정했다. 물론 앨리스를 흘겨보는 것을 빼먹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게임 속에서 파렴치한 모습을 보이는 건 나뿐만이 아니거든? 너도 레오를 엄청나게 부려 먹고 있잖아? 기껏 도와줘도 말을 툭툭 내뱉고.”

        

       “……나는 실제로는 저러지 않았으니 상관없는 일 아니야?”

        

       그렇게 대답하는 앨리스의 얼굴도 조금 붉게 물들어있었다.

        

       그래. ‘레오’한테 그런 적은 없겠지. 이 세상에서는 레오를 만나기 전에 행동이 교정되었으니까.

        

       “설마 언니한테 그러고 살았던 거 아니야? 아카데미 들어오기 전까지?”

        

       “…….”

        

       앨리스는 여러모로 부정하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바로 옆에서 내가 멀거니 바라보고 있으니 차마 그렇게는 말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것 봐! 너도 찔리는 데가 있었네!”

        

       “찔리는 데? 찔린다고 했어? 그럼 너도 찔리는 거 아냐? 그런 상황이었으면 그런 옷을 입고 있었다는 말 아니야?”

        

       “아니, 지금 네가 저지른 짓을 이야기하는데 왜 이야기가 거기로 새는 거야?”

        

       …….

        

       엄청나게 정신없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참 친해 보인다. 예전에는 내가 중간에 있지 않으면 어딘가 어색한 분위기가 풍겼었는데, 이제는 나를 빼놓고도 아무렇지도 대화하네.

        

       혹시 실제로는 꽤 친했던 거 아닐까? 실제로 게임에서도 두 사람은 마지막에 화해했으니까.

        

       클레어는 앨리스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렸고, 앨리스는 그런 클레어를 보고 정신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마지막 순간에 두 사람은 화해한 것이다.

        

       ……내가 플레이하는 최신작에서는 그것들도 없던 일이 되어버렸지만.

        

       나중에 기억을 찾으려나?

        

       “두 사람 다, 사이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은 좋지만, 목소리는 조금 낮춰주시지 않겠습니까? 이곳은 방음이 그렇게 좋지는 못해서 계속 그렇게 싸우다가는 아랫집 사람이 올라올지 모릅니다.”

        

       “사이 좋기는 누가?”

        

       “혹시 시력에 문제라도 생겼어?”

        

       두 사람이 한 번에 나를 돌아보면서 그런 말을 하길래, 나는 순간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클레어와 앨리스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두 사람은 어떻게 반응할까?

        

       벌써 궁금해지네.

        

       *

        

       내가 인터넷 방송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인터넷 방송이라는 것을 하는 사람들이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웬만한 철인이 아닌 이상에야 오후에 방송을 틀어 밤늦게까지 방송하면, 설령 그 방송 내용이 게임같이 앉아서 하는 것이라도 건강을 해치고 만다. 특히 밤늦게까지 방송하고 영상을 관리해야 하는 방송인들은 아예 밤낮이 바뀌어버리기도 하고.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쉬는 날이다.

        

       물론 내가 밤늦게까지 방송하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원래 사람이 일하면 쉬어야 하는 법이 아니겠는가.

        

       만약 내가 이쪽 세상에서 교류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남아있었다면 그 휴방일을 주말로 해두었겠지만, 어차피 이 세상에서 지금 내가 교류하는 사람들은 나와 함께 사는 앨리스와 클레어뿐이었다.

        

       그래서 우리 셋이 정한 휴방 일은 월요일과 화요일.

        

       ……그렇다. 2주 내내 쉬지 않고 방송한 뒤에야 ‘언제 쉬냐’는 말이 나와서 급하게 정한 날이 바로 월요일과 화요일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월요일이었고.

        

       생각해보니, 이쪽으로 온 뒤 이 두 사람과 밤거리를 걸어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아, 오늘은 셋이 함께 밤거리로 나왔다.

        

       “한밤중에 여자끼리 모여 걸어도 안전할까?”

        

       그런 의견을 내놓았던 클레어는, 밤거리의 환한 모습에 조금 감탄한 것 같았다.

        

       ……이렇게 써두면 종종 인터넷이나 방송에 나오는 ‘밤거리를 여자 혼자 돌아다녀도 되는 신기한 나라’ 같은 국뽕컨텐츠 같아진다만, 실제로도 아제르나 제국은 밤거리를 여자 혼자 돌아다니기에는 치안이 불안정한 곳이긴 했다.

        

       그야 산업혁명기의 영국을 모티브로 한 곳이니 당연하지.

        

       다만, 그런 이야기를 클레어가 하는 것은 조금 우스웠다. 클레어야말로 새벽에 일어나서 레오와 단둘이 의뢰를 해결하려 여기저기 쏘다녔으니까.

        

       나도 한동안은 그 두 사람 쫓아다니느라 고생했었고.

        

       별다른 목적 없이 그런 생각을 멍하니 하며 클레어와 앨리스 사이를 걷고 있는데—

        

       “……?”

        

       문득 내 왼팔에 위화감이 느껴져 고개를 돌려보니 클레어가 내 팔에 자기 팔을 감고 있었다.

        

       “이 나라에서는 여자끼리 이 정도 신체 접촉은 해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고 해서.”

        

       클레어는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도 씩 웃으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아, 여자끼리는 팔짱 끼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들은 걸까?

        

       “…….”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앨리스도, 은근슬쩍 내 오른팔에 자기 왼팔을 끼웠다.

        

       볼을 붉히면서도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귀엽기는 했지만…….

        

       뭐랄까, 두 사람 다 평소에 너무 내 진짜 자매처럼 굴어서인지 뭔가 대단한 감정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외모는 분명 아름다웠고, 몸매도 좋은 편이라서 내 팔에 고스란히 느껴지기는 했지만— 하긴, 내가 이런 것에 반응했다면 앨리스가 바니걸 복장을 하고 있었을 때 무슨 사고가 일어났을 거다. 내가 고백을 했다가 차이거나 차이거나 했겠지.

        

       그런 의미에서는 다행일까.

        

       “그럼 아이스크림이나 먹으러 갈까요.”

        

       나는 그런 의견을 제시했다.

        

       생각해보니 이쪽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어본 적이 없다. 특히 맛을 마음대로 골라서 야드파운드법을 준수하는 아이스크림 통에 담아주는 그 브랜드의 아이스크림을 안 먹은 지도 벌써 한참이 흘렀다.

        

       아제르나에서 먹던 수제 파르페도 맛있었지만, 원래 이런 기호식품은 대량생산으로만 재현할 수 있는 맛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언니, 조금은 부끄러워해 주면 안 돼?”

        

       그게 목적이라는 걸 아는데 굳이 장단을 맞춰줘야겠니.

        

       나는 투덜거리는 내 자매들을 이끌고 아이스크림 가게로 향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