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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9

 

   #359

 

 

 

 

   한참 전, 연구원이 요구했던 것.

 

   여러 개가 있었고, 전부 내 몸에서 나는 것들이었다.

 

 

   피와 침 같은 건 돈이 드는 것도 아니기에 흔쾌히 넘겨줄 의향이 있었다.

 

   당연하게도 손톱이나 머리카락 몇 가닥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인류의 미래가 어두워지겠지만, 우리의 미래는 한없이 밝아지니까.

 

   그래서 단 한 개를 제외하면 전부 넘겨주었었다.

 

 

   “……그건 왜.”

 

 

   “갑자기 생각나서. 혹시 그게 없다고 연구에 큰 지장이 생기고 그러지는 않겠지?”

 

 

   “연구원이 일단 없이 해보겠다고 했잖아. 본인이 알아서 잘하겠지.”

 

 

   “흐으으으음…….”

 

 

   걱정하는 듯한 모습.

 

   그리 걱정할 것까지 있나, 하다가 안 되면 다시 논의하면 될 것을 말이다.

 

 

   “강시야, 궁금한 게 한 가지 있는데. 너는 만약 이번 연구가 성공하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으로 생각해?”

 

 

   “미안한데, 나는 이 연구로 애당초 뭐가 나올지조차도 감이 안 잡혀.”

 

 

   시간이 느려지는 것까지는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그걸로 뭐가 나올지는 여전히 몰?루에 가까웠다.

 

 

   “특정 범위의 시간을 일시적으로 느리게 만들어주는 물약.”

 

 

   “성능이 별로라서 큰 리턴까지는 없을 것 같아. 신비한 샘에서 떠와 만든 TS 물약과 다르게 말이야.”

 

 

   “……정말?”

 

 

   “정말.”

 

 

   천마리가 무한 야근 같은 헛소리를 내뱉기는 했으나, 그게 진정으로 이뤄질지는 의문이었다.

 

   시간을 유의미하게 감속하고, 적당한 유지 시간을 갖춘 물건은 처음부터 나오지 않으리라.

 

 

   또한, 특수한 조건이 붙을 가능성도 있었다.

 

   예를 들자면 시간 초능력자가 근처에 있어야 한다든지 같이.

 

 

   그러지 않고서야 내 몸의 표본이 필요할 리가 없었다.

 

   애당초 프로토타입, 초기 버전이라는 건 그러기 마련이었다.

 

 

   “젠장, 네가 그렇게 말하면 진짜로 그럴 텐데.”

 

 

   “애당초 지금까지 양산이 한 번도 이뤄지지 않은 종류의 물건이잖아. 초기 성능이 극도로 떨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야.”

 

 

   “하…… 이러면 내 꿈인 세계 정복이─”

 

 

   “세계 정복?”

 

 

   “어음, 세계 정화. 세계수로부터의 정화 말이야.”

 

 

   말 돌리는 것 보소.

 

   이 녀석 이걸로 근무 효율 향상 같은 게 아니라 아주 수상한 짓을 하려고 했었구나.

 

 

   “네가 그럼 그렇지.”

 

 

   나는 병신에게 더는 먹이를 주지 말자는 마인드로 고개를 천마리를 등졌다.

 

   다시 눈을 감은 채, 잠을 청하려고 했다.

 

 

   “크흠흠, 강시야~ 다시 생각해도 진짜 그런 것 같아? 반등의 여지는 하나도 없어?”

 

 

   “이번 연구, 나르티카에 큰 도움이 얼마나 안 될 것 같아?”

 

 

   “프로토타입을 거치고 초기형을 시장에 내놓는다고 해도 안 팔릴 것 같아? 혹시 까다로운 부분이나 안전으로 망하려나?”

 

 

   조잘 조잘 조잘.

 

   나에게 관심 좀 가져달라는 듯 입을 놀려댔다.

 

 

   그렇기에 더더욱 대꾸해주면 안 된다.

 

   여기서 대답하는 순간 말이 꼬리의 꼬리를 물고 나락에 처박히리라.

 

 

   그렇게 무시와 달관이 하염없이 이어졌다.

 

   천마리가 장난을 치듯 내 옆에 누웠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 * *

 

 

 

 

   고모와 고모부가 일하러 나간 다음 날 아침이었다.

 

   집에 멍하니 앉아만 있는 천마리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엇, 블라소바 연구원?”

 

 

   어제 만났던 연구원의 전화였다.

 

   다행히 좋은 소식이 있는지 천마리의 표정이 밝아졌다.

 

 

   “오, 오오오…… 그래? 그러면 이제 프로토타입 개발에만 들어가면…… 뭐? 이걸로는 뭘 만드는 게 힘들다고?”

 

 

   단숨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무래도 연구가 개같이 망해버린 모양이었다.

 

 

   “아, 아니, 그렇게 표본을 많이 가져갔는데 아직도 데이터가 부족하다니…… 아무래도 ‘그게’ 필요할 것 같다고?”

 

 

   천마리는 슬쩍 고개를 돌리더니 나를 쳐다보았다.

 

 

   좆된 상황을 얼굴만으로 표현하는 그녀.

 

   이윽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 하…… 일단은 알겠어. 표본…… 어떻게든 잘 말해서 구해볼게.”

 

 

   뚝.

 

 

   휴대폰이 내려졌다.

 

   천마리는 심각한 눈빛과 함께 내 곁에 앉았다.

 

 

   “강시야, 우리 좆된 것 같아.”

 

 

   “연구 망했대? 그럴 줄 알았다.”

 

 

   “아니, 망한 건 아니고 더는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데…….”

 

 

   그게 망한 거지.

 

   연구를 더는 진행할 수 없는 시점에서 연구의 가치는 수직하락 하니까.

 

 

   “그…… 추가로 연구를 진행하려면 물건이 하나 더 필요하다네.”

 

 

   “무슨 물건?”

 

 

   “마지막 표본. 네 그것 말이야.”

 

 

   “…….”

 

 

   할 말이 없어졌다.

 

   나는 천마리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리고 한참 뒤.

 

   공허하기에 짝이 없는 시선으로 내뱉었다.

 

 

   “왜?”

 

 

   “왜냐니, 당연히 연구원이 필요하다고 했으니까.”

 

 

   “아니, 정확하게 내 것이 필요한 이유가 뭔데? 무슨 상황이 벌어졌으니까 요구를 하는 것일 거 아니야.”

 

 

   “듣자 하니까. 데이터 부족으로 진척이 더 안 되는 상황이래.”

 

 

   완전히 망했구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끝이네 뭐.”

 

 

   “응? 끝이라니? 너 혹시 그거 줄 생각이 없…….”

 

 

   “당연히 없어. 내가 아무리 너와 친해도 그렇지. 그걸 대체 왜 줘?”

 

 

   솔직히 많이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천마리가 연구물을 갖고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었다.

 

   이번 사안으로 브레이크를 잡으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였다.

 

 

   “강시야아아아~ 제발!”

 

 

   “그리고 어차피 별 이득도 안 되는 연구잖아.”

 

 

   “그래도오오오~ 이렇게나마 데이터를 쌓아두면 장차 좋은 곳에 쓰일지도 모르잖아아아~”

 

 

   달라붙은 채 하염없이 졸라댔다.

 

   어떻게든 거부하려고 했으나, 다리를 붙든 채 놓아주질 않으니 방법이 없었다.

 

 

   “나중에 꼭 되갚을 테니까 응? 이번 한 번만 나 도와주면 안 돼?”

 

 

   “에휴…… 하…….”

 

 

   사실 이 자리에서 거부해도, 이후에도 부탁을 안 할 것 같지는 않았다.

 

   어차피 철면피를 깐 채 또 반복될 상황, 끝내려면 가능한 한 빨리 끝내는 게 맞았다.

 

 

   “그래, 알겠어.”

 

 

   “와! 고마워! 역시 우리 강시가 최고야!”

 

 

   “내 인생 왜 이렇냐 진짜.”

 

 

   그래도 치욕스럽기는 했다.

 

   세상에, 살다 살다 소꿉친구 회사에 나의 그것을 넘겨줘야 한다니.

 

 

   아무래도 나는 제 명에 못 살 것 같다.

 

   이번 일이 끝나면 추후 할복할 묫자리나 마련해둬야겠다.

 

 

   “시안 도련님! 이 천마가, 이렇게 감사 인사를 올립니다!”

 

 

   “으이그 요란 떨기는…… 일단, 화장실에서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넌 쉬고 있어.”

 

 

   나는 힘없이 화장실로 향했다.

 

 

 

 

   * * *

 

 

 

 

   끼이익.

 

 

   “오, 됐어?”

 

 

   “…….”

 

 

   온갖 상념이 떠오르는 상황.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응? 왜?”

 

 

   “아무리 해도 안 됐어.”

 

 

   “아니, 안 나왔다고?”

 

 

   “최대한 노력해봤는데 반응조차 없었어.”

 

 

   휴대폰을 보면서 이리저리 시도도 해봤지만, 원하는 건 하나도 건지지 못했다.

 

   내가 얻은 것은, 오직 여기서 대체 왜 이 지랄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감상이었다.

 

 

   어떻게 자극이 단 1%도 안 느껴질 수 있는 거지?

 

   쿼터 엘프가 된 뒤로 처음 해보는 자기 위로이기에, 어느 정도는 힘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지경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뭔가 남자의 중요한 걸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당장이라도 백병원에 들어가고 싶었다.

 

   힘없이 고개를 숙였고, 천마리는 그런 나를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어…… 아, 설마 화장실이라서 그런가? 강시야, 내가 네 방 비켜줄 테니까. 여기서 해볼래?”

 

 

   “……실수하면 청소는 어쩌고?”

 

 

   “그러면 내가 나중에 청소해줄게. 일단 난 거실에 나가 있을 테니 여기서 한 번 해봐.”

 

 

   소꿉친구가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졌는데, 정작 감정적으로 아무런 관심이 없어 보이는 그녀.

 

   오히려 이번 연구 혹은 어쩌면 다른 무언가에만 관심이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사실 오히려 다행이었다.

 

   적어도 이러면 나중에 놀림은 안 받을 것 같거든.

 

 

   “아니면 궁금하기도 한데 내가 옆에서 봐줄─”

 

 

   “하아, 알겠어. 그럼, 내 방에서 한 번 해보지 뭐…….”

 

 

   “어…… 그래! 우리 강시, 화이팅……!”

 

 

   나는 내 방에 덩그러니 홀로 남게 되었다.

 

   혼란한 마음을 다잡고, 이번에는 휴대폰이 아닌 컴퓨터를 켰다.

 

 

 

 

   * * *

 

 

 

 

   “…….”

 

 

   “……아.”

 

 

   그런 방법도 소용없었다.

 

   나는 나 자신이 형편없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씨발, 진짜 자괴감 든다.”

 

 

   “……강시야, 너 혹시 어디 병 있는 거 아니야? 같이 병원 가볼래?”

 

 

   “야! 없거든?”

 

 

   “아니, 아무리 해도 그렇지. 남자가 이렇게까지 못하던가? 야한 매체에서는 때가 되면 잘만 뿌리던데.”

 

 

   회귀자의 직설.

 

   더더욱 자괴감이 들었다.

 

 

   “흐으음…… 강시야, 너 혹시 안 꼴리는 거 본 거 아니니?”

 

 

   “몰라 인마.”

 

 

   그래도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며 괜찮은 걸 골라봤다고.

 

   내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섀넌과 해보기도 한 만큼 아예 욕구가 없지는 않았다.

 

 

   물론 천마리 앞만 오면 팍 식어버리기는 한다.

 

   잠깐만, 설마 천마리가 있어서 이런 건가?

 

 

   “쯧쯧, 표정을 보니 맞구만. 어지간히 노꼴들만 찾아 봤구만.”

 

 

   “그러면 너는 꼴림이 뭔지는 알아?”

 

 

   “당연히 알고말고! 아, 그래. 이번 기회에 내가 회귀를 수없이 해오며 터득한 진정한 꼴림을 알려줄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내 방으로 향했다.

 

   키보드와 마우스를 붙잡고 천마리 자신의 계정에 로그인했다.

 

 

   이윽고 합법적인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어떤 영화 하나를 켰다.

 

   검은 화면이 나타났고, B급스러운 로고가 떠올랐다.

 

 

   “자, 의자 가져와서 여기 옆에 앉아.”

 

 

   대체 어떤 대단한 것이길래?

 

   반신반의하며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내가 개쩌는 것을 보여줄게.”

 

 

   투자사 로고가 사라지고 첫 장면이 나왔다.

 

   동물원 우리에 전라의 남녀 둘이 갇혀 있었다.

 

 

   “아, 이건 그냥 야외…….”

 

 

   “쉿, 영화가 시작했잖아.”

 

 

   쓰으읍.

 

   별 재미없을 것 같은데.

 

 

   그렇게 뻔하디뻔한 장면으로 이어지나 싶은 순간이었다.

 

   갑자기 남녀의 뒤에서 트리플-엑스 사이즈의 호랑이 하나가 나타났다.

 

 

   잠깐, 뭐야 씨발.

 

   닌자도 아니고 호랑이 새끼가 왜 갑자기 튀어나오는 거야.

 

 

   – “냐옹~!”

 

 

   – “꺄아아아악!!!”

 

 

   – “테에에엥!!”

 

 

   이윽고 빅-냥이의 냥냥펀치에 남녀가 사정없이 찢겨나갔다.

 

   옷이 찢겨나갈 뿐만 아니라 사지가 와장창 분해되었다는 소리다.

 

 

   – “냠냠.”

 

 

   호랑이가 실시간으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휴먼 먹방이 모니터에 비춰졌다.

 

   나는 천마리를 보며 이게 무슨 짓이냐며 물었다.

 

 

   “고어 영화 특. 이런 식으로 야한 거 종종 나옴. 그러다가 진짜로 꽤 좋은 장면도 나옴.”

 

 

   “미친 새끼 아니야 이거.”

 

 

   나는 천마리의 등을 팡팡 때렸다.

 

   힘껏 두들겨 맞은 천마리는 침대 위에 유기됐다.

 

 

   “어휴, 그냥 내가 찾아서 보고 만다.”

 

 

   이런 도움이 안 되는 소꿉친구 같으니라고.

 

   장난을 칠 때가 있고 안 칠 때가 있지.

 

 

 

 

   * * *

 

 

 

 

   하염없이 영상들을 고르고 있을 때였다.

 

   체력을 회복한 천마리는 스리슬쩍 옆에 다시 착석했다.

 

 

   “오, 저거 좀 꼴려 보인다. 어서 눌러봐.”

 

 

   “별로일 것 같은데.”

 

 

   “이건 내 정신 속 조승상이 보증할 수 있어. 저건 맛있는 밀프물이 분명해!”

 

 

   친구와 함께 야한 것 감상.

 

 

   이미 그런 적이 몇 번 있기에 아주 못할 짓까지는 아니었다.

 

   문제는 지금 내가 단순히 감상만 하려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아 뭐야. 와꾸도 딸리고 키도 작고 가슴도 평평하고. 이건 썸네일 사기잖아. 그냥 뒤로 가자.”

 

 

   대체 언제 나갈 생각이니.

 

   얘가 있으니까 뭘 할 수가 없는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호는 집필에 큰 도움이 됩니다!

+++

[Q]
아니, 이번 화 왜 19+ 내용없음?
작가 양반 너무 늘려쓰는 거 아님?

[A]
죄송해오… 전부 작가의 예상 실패에오…

일부 묘사가 생략된 것에서 알 수 있다시피, 원래는 그냥 빠르게 진행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냥 마구잡이로 진행해버리자니 내용이 묘하게 이상하더군요.

천마리를 노꼴로 생각하고, 성욕이 적은 남성 엘프인 강시안.
강시안에 대한 감정이 아직 애매한 천마리.
이런 상황에 무작정 전개해버리면 필요 이상의 급발진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연구 떡밥과 이어지고, 서서히 가까워지는 이런저런 내용을 넣었는데…
그것만으로도 이렇게 늘어졌네요…

무어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기대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작가의 능력 부족입니다…

일단, 제한적인 19+회차는 다음 편부터입니다.
또한 이번 6장을 365화까지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

그런데 이번 화는 19+회차로 지정하지 않아도 될 수위인지 모르겠네요…
일단 걸릴 만한 것들은 다 쳐낸 상황인데…

다음화 보기

 


           


I Became Childhood Friend of Villain

I Became Childhood Friend of Villain

악역의 소꿉친구가 되었다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Everyone has a seemingly plausible plan. Until things actually hap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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