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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9

     무너진다.

     황금으로 빚어낸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증발하고, 소멸한다.

     황금으로 이루어진 모래시계도.

     그 모래시계를 휘감고 있던 황금의 드래곤도.

     나와 황제의 전투를 위해 서로의 무기가 되어줬던 무기들에 씌여있는 황금도.

     “…….”

     지평선 너머를 바라본다.

     어둠이 짙게 깔린 도심으로부터, 황금빛의 무언가가 연기처럼 흩어지는 모습이 펼쳐진다.

     모든 황금이 사라지는 걸까.

     아니면 거짓된 황금만 사라지는 걸까.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드래곤이 자신의 육신을 바탕으로 빚어낸 마력의 황금만 사라지는 것이 이치에 맞겠지만, 황금이라는 금속 자체가 드래곤으로부터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파스스.

     제복 소매 아래에 달려있던 황금의 커프스도 함께 사라진다.

     

     “하.”

     유일하게 남아있는 황금 하나는 반으로 쪼개져 덜렁거리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무슨 짓을 한 거냐.”

     황제는 한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손으로 눈을 가린 채, 허탈함만을 토해내고 있었다.

     “황금의 기적을, 너는 저버린 셈이다.”

     노스트럼 전체에 가득했던 황금은 이제 없다.

     “노스트럼을 지금까지 그 어떤 위기 속에서도 구해낸 기적을 스스로 없애버린 셈이란 말이다.”

     “예. 뭐, 문제라도 됩니까?”

     “뭐라고?”

     “덕분에, 앞으로 인간은 더더욱 선택을 고뇌하게 되겠지요.”

     엎어진 물을 주워담을 수 없듯이.

     앞으로 노스트럼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들이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불가역적인 선택을 내리게 되겠지.

     “황금룡의 기적에 의탁하여 역사를 뒤집어 엎어버리는 시대가 아닌, 모든 것이 인간의 선택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는 시대. …그거, 합스베르크 제국의 ‘얼’이 아닙니까.”

     “…….”

     

     황제는 말이 없다.

     “아니면 처음부터 기대하고 있었던 게 아닙니까? 그레이 지브롤터가 자신을 쓰러뜨리고, 이 황금의 모래시계를 부수기를.”

     “…….”

     애초에 답변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기를 바랐지.”

     만.

     “이긴 다음에, 굴복시켜서 선택을 지켜보기로.”

     

     황제는 제멋대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무릎 꿇리고 쓰러뜨려, 물어보려고 했다. 목에 칼을 겨눈 채, 회귀의 기회를 주려고 했다.”

     “직접 경험해보라고 했겠군요. 자신이 만들어나가는 제국을. 나리아를 임신 시킨 뒤, 20년 뒤에 그 아이로부터 기적을 양도받아 회귀해보라고 말했겠군요.”

     “그렇게 하면 그대도 생각이 달라질 테니까.”

     “퍽이나.”

     나는 황제를 향해 몸을 돌렸다.

     “비행황궁. 이제 추락하겠군요.”

     “그래.”

     “100% 거짓된 황금으로 연료를 채워둔 겁니까?”

     “아니. 그건 오직 공격용이었다. 이동을 위한 마력은 전부 백은으로 채워뒀지.”

     “참으로 징하십니다.”

     황제가 쓰러졌음에도 비행황궁은 여전히 노스트럼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황제가 쓰러진 순간, 비행황궁은 노스트럼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었다.

     “이야, 부끄럽군. 자네를 이기고 난 뒤에 이동하는 비행황궁을 통해 협박하려고 했는데.”

     “못 멈추죠?”

     “이미, 백은이 불타기 시작했다네. 거짓된 황금이 사라지는 순간, 그 자리에 백은의 가루가 들어가면서 마나가 불타며 마도엔진을 움직이게 만들었지. 아무리 자네라고 해도, 그 상태로 저지할 수는 없어.”

     “그렇습니까?”

     황제의 말에 따르면.

     이대로 내가 가만히 있으면.

     “비행황궁, 노스트럼 왕도에 처박겠군요.”

     비행황궁의 추락은 저지할 수 없다.

     “톨레도일 수도 있는데.”

     “제국 예산이 미친듯이 들어간 제국식 건물과 노스트럼 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왕국의 건물 중 무엇이 테러당할지는 자명한 사실 아니겠습니까?”

     “10점짜리 문제였군.”

     황제가 피식 웃는다.

     “그래서, 멈출 생각은 없나?”

     “제가 뭐하러.”

     “…….”

     “비행황궁이 움직이는 걸 보고, 아니 그 이전부터 보고를 들은 나리아 여왕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을 겁니다. 왕도의 시민들을 일시적으로 피난시키든 아니든.”

     “노스트럼의 무지렁이들이 그 말을 들을 것 같나?”

     “안 들으면 뒤지는 거죠.”

     “…….”

     황제는 말하지 않는다.

     나는 조용히 제복 안주머니에 손을 밀어넣은 뒤, 하얀 종이봉투를 꺼냈다.

     “그건….”

     “백은입니다.”

     “그냥 백은이 아닌데.”

     “예. 아시는 군요.”

     나는 한손으로 종이봉투를 돌돌 말아 긴 막대를 만든 뒤, 그 끝을 황제의 입에 놓았다.

     “내 안주머니.”

     오른쪽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네모난 물건 하나를 꺼낸다.

     “라이터라는 걸세.”

     “압니다.”

     치직, 칙.

     “……후우.”

     황제가 덜덜 떨리는 손을 당겨, 백은을 채워넣은 연초를 크게 흡입한다.

     회복?

     그런 게 가능할 리가.

     백은이 깃들어있는 걸 출혈 상태에서 흡입한다면, 그건 오히려 출혈을 가속화시키는 독이다.

     “잔인하군.”

     “예. 빨리 뒤지십쇼.”

     “이걸 마시면 자네는 살아남을 수 있을텐데. 여기에도 마나가 있으니.”

     “백은을 직접 피우는 건 아스타시아가 싫어해서.”

     휘이잉. 

     바람이 분다. 

     이전보다 더 빠르게, 죽음이 다가오듯 비행황궁이 빠르게 노스트럼을 향한다.

     “같이 죽어드릴 의리도 없고, 죽일 힘도 없지만, 유언 정도는 들어주시겠습니까?”

     “육신에 상처를 주더니, 이제는 영혼에 상처를 입히려고 하는 것인가?”

     “그게 자식 잃은 부모의 마음이라는 겁니다.”

     “……아아. 그런가.”

     황제가 헛웃음을 흘린다.

     “이것이 그들이 그렇게 울부짖던 고통인가.”

     “…….”

     어쩌면.

     나는 황제에게 있어, 가장 치명상을 입힌 걸지도 모르겠다.

     “…….”

     

     털썩.

     다리에 힘이 풀린다.

     시야가 어두워지고, 전신에서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쨍그랑.

     마나로 억누르고 있던 검이 빠져나가며, 피가 아래로 쏟아진다.

     

     “…….”

     마지막.

     흐릿해지는 시야 속에서, 나는 백은의 향기에 눈을 감았다.

     * * *

     “…….”

     밤하늘은 검다.

     별들은 빠르게 움직이고, 땅은 하염없이 어느 한 방향만을 향해 움직이기만 한다.

     “그레이.”

     반응이 없다.

     

     “…후우.”

     타들어가는 백은의 연기를 크게 흡입하지만, 몸을 일으킬 기력은 없다.

     오히려 호흡을 할 때마다 피가 흘러나오고, 현기증이 날 뿐.

     “이것이 죽음인가.”

     흘러내리는 피가 아래에서부터 끈적하게 몸을 적신다.

     천천히 사람을 익사시키듯, 죽음의 향기가 아래에서 피어나 전신을 휘감는다.

     “그레이 지브롤터.”

     다시금 이름을 부른다.

     분명 옆에 희미한 존재가 느껴지지만, 숨을 쉬지 않는다.

     “…….”

     오른손에 닿은 또다른 붉은 액체는 황제의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이의 것일까.

     “…계약을.”

     황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계약을 이행하라. 에스코바르.”

     “…어머나.”

     황제의 말과 함께, 황제의 옆으로 붉은 핏방울이 솟아나며 하나의 존재를 갖추기 시작한다.

     “흡혈귀의 힘을 빌리지 않겠다더니. 어떻게 된 거람?”

     바토리 에르제베트.

     장례식에 찾아온 듯 검은 드레스에 양산을 쓴 백발적안의 흡혈귀가 공간을 넘어 비행황궁에 나타났다.

     “살려라.”

     “당신을?”

     “나의, 미래를.”

     “흡혈귀의 힘을 이용해서라도?”

     “나의, 제국의, 그리고 대륙의 미래다.”

     “흐ㅡ응.”

     바토리는 잠시 눈을 깜빡이며 황제를 내려다봤으나.

     “그래, 그래. 계약에 따를게.”

     곧 두 손을 들며, 쓰러진 그레이 지브롤터를 향해 다가갔다.

     “하지만 내가 뭔가 할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

     “뭐?”

     “당신을 위해서 목숨을 걸어줄 사랑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지만, 이 아이를 위해 자기 목숨을 걸 사람은 여럿 있는 것 같아서.”

     “……그런가.”

     황제가 눈을 감고, 바토리가 앞으로 다가가 그레이를 번쩍 들어올린다.

     “정말 운이 좋으면 살릴 수는 있겠네.”

     바토리는 검지와 중지를 붙여 입술에 키스를 한 뒤, 한손으로 든 그레이의 심장을 향해 가볍게 눌렀다.

     “지상 수천미터에서 추락하는 사람이 있고, 하늘까지 날아와서 구하려고 하는 이가 있다면 말이지.”

     바토리가 그레이를 든 채로 벽을 향해 다가가더니, 그대로 향해 한쪽 발을 들어 그대로 걷어찼다.

     

     콰ㅡㅡ앙!

     폭발이 일어나듯 벽에 구멍이 뚫렸다.

     순식간에 바람이 구멍을 향해 쏟아져나가며, 바토리는 그레이를 구멍을 향해 쭉 뻗었다.

     “안녕, 바르셀로나 총독 각하.”

     휘ㅡ잉.

     흩어지는 황금의 바람과 불타오르는 백은 연초의 잿불과 함께, 한 명의 인간이 비행황궁으로부터 날아간다.

     “후. 정말이지.”

     “…안 가나?”

     황제가 억지로 몸을 일으킨다.

     

     “어딜?”

     “살러.”

     “내가?”

     바토리는 키득거리며 황제의 옆에 쪼그려앉아, 품에서 길쭉한 파이프를 꺼냈다.

     “배신자가 살아갈 곳이 어디에 있다고.”

     “…….”

     “이야, 쟤 밑으로 들어가면 안 돼. 죽을 때까지, 아니 죽고 나서도 괴롭힐 거야. 나는 연구를 하고 싶었던 거지, 노예가 되고 싶은 게 아니거든.”

     “…….”

     점점 초점이 흐릿해지는 황제의 시선에도 바토리는 너스레를 떨며 파이프 끝에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후아. 살다살다 이런 일도 있네. 제국의 황제폐하랑 맞담도 하고.”

     “기술이, 아깝지 않나?”

     “전할 건 다 전했어. 당신도 마찬가지잖아. 안 그래?”

     “…아아.”

     황제는 반쯤 타버린 종이백은을 잠시 빼낸 뒤, 회색의 짙은 연기를 뿜어내며 한탄했다.

     “그레이는 네가 있는지 몰랐다.”

     “응.”

     “녀석은 진짜로 죽으려고 했어.”

     “그랬더라. 미친놈이야, 정말. 누구 어렸을 때 보는 줄 알았다니까?”

     “…….”

     황제는 다시 연초를 입에 물었다.

     호흡을 내뱉을 때마다 피가 몸에서 계속 흘러넘치지만, 황제는 계속 연초를 입에 문 채 숨을 헐떡였다.

     “고맙다.”

     “…고맙다고? 뭘?”

     “네가 챙긴 거지, 그녀.”

     “…….”

     “아니었으면, 그 무능왕 미친놈에게 당했을지도 모르지. 그레이는 나를 실망시켰을지도 모르고.”

     “…누구 때문에 쓸데없는 정이 생겨서 그런 거잖아.”

     “부탁한 것도 아닌데, 도와줘서 고맙군.” 

     “결과적으로 잘 된 거지, 따지고보면 나는 당신도 배신한 셈인데? ……뭐, 나로서는 졸지에 원하지도 않는 후계자를 남겨둔 셈이지만.”

     바토리는 겸연쩍은듯 볼을 긁적였다.

     “장수종…이라고 하기에는 생각 이상으로 더 길게 살겠지. 불로불사라는 게 좋은 것만 있는 게 아닐 거라고. 사랑으로 키운 자식들이 먼저 죽는 걸 보는 고통도 있을 수도 있고, 뭐 그런 거지.”

     “…….”

     “듣고 있어? 벌써 쓰러지는 건 아니지?”

     “……하.”

     어느새 연초는 꽁초만 남을 정도로 타들어갔다.

     

     “저거 봐.”

     바토리는 황제를 부축하며 앞을 가리켰다.

     “네가 그렇게 부수고 싶어하던 노스트럼이야.”

     “…….”

     “보여? 보고 있니?”

     비행황궁의 고도가 서서히 내려간다.

     그와 동시에, 마치 기울어지듯이 땅 전체가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나한테 진짜로 고맙다고 할 건 없어? 막, 마지막을 함께해줘서 고맙다거나.”

     “그런…감상적인 말을 하기에는 내가 유별나서.”

     “지가 유별난 건 아네. 히힛.”

     “지? 황제에게 못하는 말이 없군.”

     황제가 남은 꽁초를 하늘로 튕긴다.

     

     “에르제베트. 제국의 마지막 흡혈귀여.”

     “응.”

     “역사는,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글쎄. 흡혈귀 감성으로 당신의 마지막 기억을 채우고 싶은 거야?”

     “빨리.”

     황제가 재촉한다.

     절반 이상 눈이 감긴 황제를 보며, 바토리는 서서히 가까워지는 노스트럼의 왕궁을 내려다보며 옅게 웃었다.

     “마왕 합스베르크, 영웅 그레이에게 패배하다.”

     “…….”

     만족스러웠던 걸까.

     “그건…나에게 있어.”

     아니면 그저 헛웃음이 나온 걸까.

     “최고의, 완성이로군.”

     “…….”

     합스베르크 황제는 입 안에 고여있던 회색의 연기를 뿜으며, 미소를 지은 채 그대로 굳었다.

     “…아쉽네. 마지막까지, 보고 갔으면 좋았을 텐데. 노스트럼이 무너지는 걸.”

     바토리 에르제베트는 무표정한 얼굴로, 추락하는 비행황궁의 위에서 황제의 얼굴을 손으로 덮었다.

     “잘 자렴, 아이야. 너는 내가 본 황제 중 가장 미친놈이었지만, 가장 열심히 살았던 미친놈이었어.”

     추락과 함께 빠르게 다가오는 노스트럼 황궁의 첨탑 끝이 자신을 향하는 것을 보면서도, 바토리는 황제를 손으로 누르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 * *

     겨울의 마지막 달.

     새벽달이 뜨는 날.

     

     지브롤터 협곡을 넘어온 제국의 황궁이, 그대로 운석처럼 노스트럼 왕국의 수도 톨레도를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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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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