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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9

       메리가는 졸업할 때까지 클라이스와 엎치락뒤치락했다.

       

       어떨 때는 1등을 찍어보기도 했고, 또 어떨 때는 치명적인 실수로 장학금을 놓치기도 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졸업은 했다.

       

       10등 이내라는, 그럭저럭 좋은 성적으로.

       

       수석이나 차석은 아니라는 것이 씁쓸하기는 했지만, 괜찮았다. 이 정도면 충분히 잘한 것이니까.

       

       적어도 교수 임용에 걸림돌이 될 만한 학점은 아니었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

       

       귀족의 작위를 받는 것뿐이었다.

       

       “소위로 임관한 메리가입니다.”

       

       메리가는 학군사단으로 편입되어 장교로 군 복무를 시작했다.

       

       그녀의 친구인 클라이스 또한 같은 계급이었다.

       

       “마수가 판치는 세상이다. 군에 낙하산 따위 있어서는 안 된다.”

       

       사단장이 목울대에 힘을 주어 말했다.

       

       “국가는 너희가 얼마나 마수를 많이, 빠르게 족칠 수 있는지에만 관심이 있다. 출신 성분, 돈, 기존의 명예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다. 틸레트 아카데미를 나온 엘리트라고 해서 목숨도 여럿일 것이라는 생각은 버리도록.”

       

       메리가와 클라이스는 군기가 바짝 든 목소리로 알겠다고 답했다.

       

       그 사단장의 말을, 두 사람은 끝까지 가져갔다.

       

       이곳은 전쟁터.

       

       마수가 내뿜는 독기와 철탄 앞에선 모두가 평등하다.

       

       그걸 알았으니 최대한 생존에 집중하려던 메리가였다. 반면에, 클라이스는 생존을 중요시하면서도 마수를 최대한 많이 죽여 공적을 세우려고 했다.

       

       “오늘도 서른여섯 마리를 잡았어요.”

       “너무 나가는 거 아니야?”

       “이 정도로는 아직 부족하죠.”

       

       클라이스는 마석을 뜯어내며 입김을 뿜었다.

       

       제 친우의 눈에서 분노와 한기가 엿보인다.

       

       “생각해 봐요. 메리가 사는 집에 몸길이 6미터짜리 독사가 들어왔다고요. 어떻게 하실래요?”

       “그야 잡아 죽이거나… 도움을 요청하겠지.”

       “마수는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어요. 여긴 우리 집 앞마당이고요.”

       

       엘랑카야 산맥의 남부는 하스펠트 공작의 본가가 있는 곳이다.

       

       동시에, 북부에서 제국 중심으로 향하는 유일한 길목이기도 했다.

       

       하스펠트 집안의 앞마당임과 동시에, 제국민의 앞마당이기도 한 것이다.

       

       “이 땅은 우리가 사수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그래.

       

       죽지 않으면서 이곳을 몇 년이고 수비해야 한다.

       

       제국은 1천 년 역사를 지녔다. 마수도 그에 준하는 기간 동안 이 북방을 침공해 왔다. 선조들은 그 침공을 모조리 막아냈고, 이제는 클라이스와 메리가의 대까지 내려온 셈이다.

       

       한 번이라도 막아내지 못한다면 패배.

       

       아렌스 대륙은 괴물들의 노리개가 될 것이다.

       

       메리가는 북방 하늘을 올려다보며 스태프를 꽉 쥐었다.

       

       모든 웨이브를 막아내고, 살아 돌아가서, 귀족이 되어, 아카데미 교수에 취임하겠노라.

       

       다시 한번 다짐한 메리가였다.

       

       

       **

       

       

       그리 다짐한 게 햇수로 벌써 6년째다.

       

       “하아, 하하….”

       

       뚝뚝뚝뚝뚝.

       

       그동안 잘 버텨왔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이런 어이없는 곳에서 죽게 될 줄이야.

       

       오른쪽 눈에서 피가 콸콸 넘쳐흘렀다. 시야가 흐릿하고, 머리가 징징 울렸다.

       

       하늘 위.

       

       커다란 비공정이 다음 포격을 준비하고 있다.

       

       “──!!”

       

       뒤에서 뭐라뭐라 소리가 들리긴 하는데, 누구의 목소리인지는 모르겠다.

       

       이곳은 제1차 저지선이었다.

       

       인류가 오랜 시간 넘지 못했던, 마수들의 터전.

       

       그러나 얼마 전, 메리가와 클라이스의 부대가 인류 최대의 마법을 연달아 전개하면서 겨우 돌파할 수 있었다.

       

       핏물이 흐르는 그녀의 어깨에는 대령 계급장이 달려있었다.

       

       “메리, 괜찮아요? 정신 좀 차려봐요!”

       

       아, 클라이스였구나.

       

       자신은 피범벅인데, 제 친구는 눈물 범벅이 되어있다.

       

       그마저도 북방의 한파에 얼어붙어 우스꽝스러운 모양새였다.

       

       메리가는 웃을 수 없었다.

       

       더럽게 아프다.

       

       “제가 미안해요, 미안해요…. 언니의 복수를 하려고 하지만 않았어도…… 약속까지 했는데…!”

       

       1년 전, 하스펠트 가문의 일곱 번째 자매가 실종됐다.

       

       동북쪽 전선에서 마수와 전투하다가 그만 사라져 버리고 만 것이다.

       

       북방 전역에선 1년간 실종된 군인을 사망 처리한다.

       

       실제로 실종되었다가 돌아온 사람은 제국 1천 년 역사상 열 명도 채 되지 않았다.

       

       그 자매는 클라이스가 가장 순수하게 따르던 사람이었다. 그녀가 죽었을 때 클라이스는 전례 없을 정도로 크게 분노했다.

       

       그녀의 분노와 메리가의 보조가 없었더라면, 지금 1차 저지선을 뚫어내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겠지.

       

       다만 너무 나갔다.

       

       [살아있는 목표 발견. 소이탄의 집중 사격을 실시합니다.]

       

       쿠구궁.

       

       거대한 비공정이 하단부에 달린 포탑을 교체한다.

       

       “아….”

       

       메리가는 짧게 탄식했다.

       

       자신은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클라이스, 미안해. 너라도 도망쳐.”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하다.

       

       나는 여기서 죽는다.

       

       비록 귀족은 되지 못하겠지만, 숙부와도 같은 후작님께 은혜를 갚지도 못하겠지만.

       

       ‘명예로운 죽음이다.’

       

       추대 정도는 받을 수 있겠지.

       

       ‘기다려, 이사벨 언니. 곧 갈 테니까.’

       

       메리가가 남은 한쪽 눈을 감으려 한 순간이었다.

       

       “으아아아아아─!!”

       

       클라이스가 미친 듯이 울부짖었다.

       

       클라이스는 메리가를 반강제로 등에 업었다. 그러고선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뜀박질하기 시작했다.

       

       촤아아악!

       

       비공정이 하늘 아래로 불꽃을 흩뿌린다.

       

       탄환의 질료는 백린(白燐). 몸에 한 번 붙으면 살을 도려내지 않는 한 꺼뜨릴 수 없다.

       

       한 방이라도 맞으면 여기서 둘 다 개죽음이었다.

       

       펑, 펑, 퍼엉─!!

       

       [추격을 계속 진행합니다.]

       

       비공정이 엄청난 속도로 따라왔다. 클라이스는 남은 마력을 쥐어짜냈다. 최대한으로 움직임을 높였다.

       

       뛰었다. 뛰었다. 비공정이 따라오지 않을 때까지 뛰었다.

       

       [1차 저지선의 복구를 완수했습니다. 상급자의 명령에 따라 이 이상 추격을 감행하지 않습니다.]

       

       클라이스는 메리가를 업은 채로 수십 킬로미터를 남하했다. 가는 도중 그 어떤 생존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모두 죽었다.

       

       사랑하던 가족, 이끌던 부하들, 이끌어야 할 미래까지 모조리.

       

       잿더미가 되었다.

       

       “대령님. 대령님이 살아 돌아오셨다.”

       “빨리 야전병원으로 옮겨!”

       

       베이스캠프까지 도착한 클라이스는 탈진하기 직전이었다. 의무병들이 재빨리 두 사람을 병원으로 이송했다.

       

       이날, 메리가는 수술을 받고 어떻게든 살아날 수 있었다.

       

       운이 좋았다.

       

       제아무리 방탄 결계를 펼쳤다고는 하나, 그런 괴물 같은 공격에 눈 하나만 잃고 생존할 수 있었으니.

       

       자신만큼은 살려내겠다는 전우의 집념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죽음을 각오한 몸이었지만, 상상도 하기 싫었다.

       

       “…….”

       

       야전병원 침대에 누운 채로, 메리가는 생각에 잠겼다.

       

       외상을 입은 건 자신이지만, 정신병을 겪게 될 사람은 클라이스다.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다친 부위는 돌아오지 않는다.

       

       의료기술이 발달하면 의안이 나올 수야 있겠지만, 자신이 죽기 전에는 그런 발전을 보지 못할 것 같았다.

       

       “옛날 자료에서 확인했습니다. 대령님의 눈을 앗아간 녀석은 ‘캐슬 브라보’, 절멸급 마수입니다.”

       “큭, 킥킥.”

       “뭐가 그리 웃기십니까?”

       

       부관의 물음에, 메리가는 오른쪽 얼굴을 쓸어내리며 대답했다.

       

       “어때? 이 정도면 명예로운 상처 아니겠어?”

       “명예나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전장 전체를 장악해야 하는 지계마도사가 외눈이라뇨?”

       

       골렘을 다루는 전투마도사의 경우, 넓은 전장을 바라보고 각 골렘을 세밀히 조작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눈 하나로는 무리입니다.”

       

       부관은 자신이 전역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물론 명예로운 일은 맞습니다. 남작… 아니, 최소한 자작 작위는 떼놓은 당상이십니다.”

       “교수직은?”

       “그동안 해 놓은 과업이 있으시니, 무리 없이 임용되겠지요.”

       

       눈 한쪽에 작위에 교수직까지?

       

       메리가는 킥 웃고 말았다.

       

       “싼값에 먹혔다고 생각해야겠네.”

       

       그녀는 한 달간의 휴식 끝에 퇴원했다. 동시에 상이군인으로서 명예 전역했다. 최종 계급은 여전히 대령이었다.

       

       본래 장성급으로 추대해도 됐었으나, 메리가는 거절했다.

       

       전투에서 패퇴한 장교가 진급하는 건 도리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계급장 새로 만들 돈 있으면 그걸로 병사들 배식이나 신경쓰라고.”

       

       그리 말하니 평민 출신이라도 존경하지 않는 귀족이 없었다.

       

       메리가는 전역한 뒤 로베스피에르의 도움을 받아 틸레트 아카데미의 교수가 되었다.

       

       그로부터 얼마 안 있어 클라이스도 교수가 되었고, 두 사람은 여전히 함께할 수 있었다.

       

       제국 수도는 평온했다.

       

       전장과는 다른 이질감.

       

       메리가는 오랜만에 평화를 만끽했다.

       

       그러나 자신의 친구, 클라이스의 안색은 날이 갈수록 어두워졌다.

       

       클라이스는 어느 날 가문에서 편지 한 통을 받더니, 인상을 굳히고는 새로운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뭐 연구해?”

       “말해줄 수 없어요.”

       

       친구가 변했다.

       

       사실 메리가도 뼈저리게 느끼긴 했다.

       

       ‘절멸급 마수는 쉽게 죽일 수 없어. 이대로라면 앞으로도 전란이 끊이질 않겠지.’

       

       그때 그 마수가 왜 자신을 끝까지 쫓아오지 않았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농락당하고 있다.’

       

       마수들의 목적이 단순히 ‘인류의 멸절’이 아닌 것만큼은 유추할 수 있었다.

       

       그러니 더더욱.

       

       후학이 절실하다.

       

       아주 강력한 한 방짜리 마법을 만들어서, 절멸급이고 뭐고 싹 다 밀어붙일 수 있을 재목이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걸 못 해.’

       

       메리가는 자신의 재량을 잘 알았다.

       

       지계마도의 핵심 전략은 버티는 것이다. 전선을 천천히 끌어올리고, 전장을 관조하는 일 따위를 한다.

       

       마수들을 단번에 쓸어버릴 강력한 무기?

       

       그런 걸 만드는 건 화계마도사들의 영역이다.

       

       그러나 요 몇 년 새에 이런 말이 오가고 있었다.

       

       – 화계마도의 위력이 한계에 다다른 듯합니다.

       – 제아무리 강한 화계로도 절멸급 마수의 장갑은 뚫을 수 없을 테죠.

       

       그런 소리가 한 번씩 들릴 때마다 클라이스의 성격은 더더욱 파탄났다.

       

       의무적으로 모여야 하는 정기 컨퍼런스나, 교수들이 의례차 가지는 술자리가 아니라면 얼굴을 비추지도 않았다.

       

       심지어 메리가를 만나는 일도 거의 없었다.

       

       과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 일은 메리가도, 아니.

       

       “황제 폐하의 칙명이다. 1차 저지선을 돌파한 공로를 인정하여, 그대를 헤를라인 백작으로 임명한다.”

       

       헤를라인 백작도 모른다.

       

       꿈에 그리던 귀족이 되었건만. 여전히 제 친구가 무엇을 연구하는지, 어떻게 하면 저 광증을 고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기다릴 수밖에 없어.’

       

       그저 기다려야 한다.

       

       이 대전쟁을 끝낼, 천하의 기재가 나올 때까지.

       

       그렇게 학생들을 가르치며 살던 어느 날, 클라이스가 노예 시장에서 금안족 소녀를 한 명 데려왔다.

       

       ‘금안족?’

       

       금안족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런데.

       

       “이게 법치냐? 이게 나라냐?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에서 자란 이 내가아아악─!!”

       

       금안족치고는 입담이 거칠다.

       

       ‘민주주의?’

       

       카우렐리아의 정치제도 아닌가?

       

       잠깐 교환학생으로 일리야드에 다녀온 적이 있었던 메리가였기에 금안족 소녀의 말에 궁금증이 생겼다.

       

       메리가는 며칠에 걸쳐 그 금안족을 관찰했다. 클라이스는 그 금안족에게 말단 연구를 맡기거나, 잡다한 계산을 시키거나, 회계 장부를 정리하게 하거나, 자기 연구실을 끊임없이 청소하게 하거나….

       

       ‘세상에. 너무 굴리는 거 아니야?’

       

       메리가도 뜨악할 정도로 소녀를 심하게 굴려댔다.

       

       “여신 씨발년아아아!!”

       

       소녀는 클라이스가 안 보는 틈을 타서 쌍욕을 내뱉고는 했다.

       

       이상하다. 금안족은 종족 대부분이 순하다고 들었는데….

       

       어쩌면 순하게 보인다는 것이, 체념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리가는 클라이스 몰래 금안족 소녀를 더 면밀히 관찰했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알 제곱 사인 세타, 디 알 디 세타 디 파이….”

       

       노예시장에서 사 왔다는 소녀가, 딱히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아카데미 학부 수준의 수학을 척척 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혹시나 싶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추적 관찰했다.

       

       소녀는 욕을 찍찍 뱉으면서도 클라이스가 주문한 일을 전부 처리했다. 얼마 안 가서 불평도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세간에서 알고 있는 대로 순종적으로 변한 것이다.

       

       메리가는.

       

       ‘저 소녀라면.’

       

       가능성을 보았다.

       

       아무래도 다짐을 새로이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미안하지만.

       

       정말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딱 한 번, 메리가는 제 친우에게 실례를 저지르자고 생각했다.

       

       그녀가 행동을 개시한 건 그 금안족 소녀, 에테르가 아카데미의 고급 노예로 들어 온 지 3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헤를라인 과거편이 끝났습니다.

    이제 뭐부터 써야할지 모르겠네요 ㅎㅎ

    로즈마리 과거편도 괜찮고, 레니냐와 유피엘의 미래편도 괜찮습니다. 이태연과 김성현이 소주 까는 이야기도 가능한 한 빨리 써보고 싶어요.

    이것 말고 다른 게 더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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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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