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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

       월요일 아침.

        

       언제나 일어나는 시간에 일어나, 몸을 씻었다. 샤워가 끝날 때쯤 양혜인이 방으로 들어온다. 의자에 앉으면 양혜인이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려주고, 정성스럽게 빗겨준다.

        

       그렇게 한동안 머리가 다 마르기를 기다리며 꾸벅꾸벅 졸다가, 마지막으로 양혜인의 점검이 끝난 후 교복으로 갈아입는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양혜인의 안내를 따라 방 밖으로 나와 식당으로 내려가다가—

        

       평소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눈치챈다.

        

       사용인들은 기본적으로 예사라에게 별다른 반응을 하진 않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예의는 차린다. 말을 걸거나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는 않더라도, 예사라가 아주 가깝게 지나가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예사라가 다 지나가고 나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 사용인들이 그것마저 하지 않게 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보다 ‘조금 더’ 행동을 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러니까, 평소에는 하지 않던 행동을 했다는 말이다.

        

       보통 고개를 숙인 사용인은 나를 바라보지 않았다. 인사를 하는 건지, 시선을 피하는 건지 알기 힘들 정도로 땅을 바라보며 내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하지만, 내 옆을 지나가던 사용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멈춰서서 고개를 숙이긴 했지만, 순간 눈동자만 들어 나를 바라보다가 눈을 딱 마주친 것이다.

        

       사용인은 다시 황급하게 시선을 내렸다.

        

       별것 아닌 행동이었다. 솔직히, 개인의 처지에선 충동적으로, 자신도 모르게 할 수도 있는 행동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그러면서 동시에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지금까지 이 저택 안에서, 내가 부르지 않아도 나와 눈을 마주치는 사용인은 양혜인 하나뿐이었으니까.

        

       아마 내가 조금만 더 방심하고 있었다면 그대로 무슨 볼일이라도 있냐고 물어봤을 것이다.

        

       “……아가씨.”

        

       간신히 관심을 죽이고 말없이 그 옆을 지나가자, 내 뒤를 따르던 양혜인이 작게 말했다.

        

       “잠시 뒤에, 차 안에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양혜인은 저 사용인이 저런 반응을 보인 이유를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묵묵히 식당으로 향했다.

        

       *

        

       차에 타자마자, 내 옆자리에 앉은 양혜인이 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보여주었다.

        

       화면에는 기사 하나가 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제목을 읽기도 전에, 그 기사가 무슨 소식을 전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야 그 기사에 대문짝만하게 사진이 한 장 있었으니까.

        

       모자를 푹 눌러쓰고, 검은 티셔츠에 청바지, 회색 점퍼라는, 다소 보이시하다고도 할 수 있는 복장의 나.

        

       그리고 그런 나의 팔을 매달리듯 끌어안고, 나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고 있는 유하늘.

        

       ……아이러니하게도, 사진에서는 유하늘의 얼굴에서 나오는 빛이 보이지 않았기에, 나는 그녀의 얼굴을 훨씬 더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

        

       걱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순수하게 행복한 표정.

        

       [수년 만에 모습 드러낸 유진 그룹 후계자…… 그녀와 함께 있는 의문의 또래 소녀?]

        

       제목에 ‘열애’ 비슷한 단어도 없기는 했지만, 그 제목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주 명확했다. 아마 나와 유하늘의 사이를 그런 쪽으로 몰아가서 조회 수를 올려볼 생각이겠지.

        

       기사 내용은 짧았다. [유진 그룹의 유일한 후계자, 예사라가 수년 만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또래로 보이는 소녀와 함께 서 있는 그녀는 퍼져있는 루머와는 다르게 즐거워 보였다.]

        

       사실 기사 내용이라기보다는, 그냥 사진에 대한 설명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하겠다. 혹시 속보라는 형식이라 그런 건가?

        

       “……그러니까, 저택에 있는 사용인들이 이걸 봤기 때문에 저를 그렇게 바라봤다는 말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제 불찰입니다.”

        

       “네?”

        

       양혜인의 갑작스러운 사과에, 나는 다소 놀라서 그렇게 되물었다.

        

       “아가씨께서 밖으로 나가실 때 이런 일이 있을 것을 예상했어야 했습니다.”

        

       “예상하다뇨?”

        

       “……아가씨는 일반적인 재벌가 자제분들과는 다르니까요.”

        

       확실히, 그렇기는 했다.

        

       내가 살던 세상에서도 종종 재벌가의 자식들이 뉴스에 나오거나 인터넷에 사진이 떠돌아다니는 경우가 있었다. 사고를 쳐서 나오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사람들의 관심 때문에 떠도는 사진을 말하는 거다.

        

       예를 들어, 자신의 아버지가 회장으로 있는 회사의 경쟁사 제품을 이용하고 있는 자식의 사진이라던가, SNS에 중2병 감성의 글을 써버려 그 내용이 인터넷 곳곳에 퍼져버린다던가.

        

       하지만 보통은, 당연히 연예인들의 기사보다는 영향력이 떨어진다. 평소에 자주 언론이나 미디어에 얼굴을 비추는 것도 아니고, 사실 부모 잘 만났다는 것 빼면 관심을 끌 만한 요소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미친 갑질을 하지 않는 이상은 우스갯소리 이상의 관심을 받기는 힘들었다.

        

       그런데, 예사라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기는 하다.

        

       무려 시가 총액 3,600조짜리 기업의 후계자였으니까.

        

       단순히 국내 최대가 아닌, 이 세계관 최대의 회사. 전 세계 사람 중 30퍼센트 정도가 이 회사에서 제조한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파운드리 시장의 50%를 선점하고 있고, 반도체 설계 또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회사였다.

        

       단순히 시총 1위가 아니라 그냥 정신 나간 수준의 규모를 가진 회사라는 소리다. 솔직히, 이렇게 클 때까지 어디서 두들겨 맞지 않은 게 신기한 수준. 국뽕 한 사발 들이켠 사람들이 영상 만들어다가 스트리밍 사이트에 올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회사라는 뜻이었다.

        

       “아가씨께서 정식으로 상속받으신 지분만 5.7퍼센트이니까요.”

        

       그렇다. 아마 나는 전 세계의 십 대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아니 십 대 중에서는 가장 재산이 많은 존재일지 모른다.

        

       물론 엄밀히 따지면 그건 내 재산이 아니라 예사라의 재산이긴 했지만.

        

       주식만 그 정도고, 부동산을 포함하면 재산은 더 늘어나겠지. 물론 주식만큼 많지는 않겠지만.

        

       당장 그 돈을 마음대로 쓰지는 못하더라도, 아무튼 나와 누군가가 결혼이라도 하면 그 상대에게도 어마어마한 재산이 생기는 거니까.

        

       아직 왕족이 있는 나라에서 왕자나 공주에게 스캔들이 따라붙는 것과 다를 게 없는 걸까?

        

       “그리고, 아가씨께서는 어린 시절부터 외모로 유명하기도 하셨습니다.”

        

       인터넷에 예사라의 이름을 검색하면 그 어린 시절에조차 ‘국내 부자 외모 탑티어’ 어쩌고 하면서 사진이 나오긴 했다.

        

       “…….”

        

       그러네, 진짜 유명해질 만한 이유가 전부 응집되어있구나.

        

       게다가 지난 세월 동안 언론에 얼굴을 드러내지도 않았으니 본의 아니게 신비주의까지 생겨서 이미지가 더 굉장해졌을지도.

        

       “……이런 사진은 누가 찍었을까요?”

        

       “그건 확인해봐야 합니다. 이 신문사에서 직접 찍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까요.”

        

       사진을 찍어서 판 사람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는 말이다.

        

       “아마 이미 본사에서 조사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그렇다는 건…….”

        

       “예, 회장님께서도 이미 알고 계실 가능성이 있습니다.”

        

       잠깐 차 안에 침묵이 감돌았다. 외제 고급 세단은 그 큰 엔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차 내부가 극도로 조용했다.

        

       “……혹시 연락이 왔나요?”

        

       “아직은 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손으로 눈두덩을 비볐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제가 너무 생각 없이 나간 거죠.”

        

       내 말에, 양혜인은 입을 꾹 다물었다.

        

       내가 너무 안일했다.

        

       적은 내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와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조차 나를 사냥감으로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예사라는 너무 유명한 존재였던 것이다.

        

       *

        

       내가 반 안으로 들어가자, 웅성거리던 소리가 딱 멎었다.

        

       순간적으로 반의 아이들이 모두 나를 바라보았다.

        

       인터넷에 퍼진 기사 때문일까?

        

       평소라면 내가 들어가도 흘끗 바라보고는 다시 할 일을 하는 아이들이었는데, 순간적으로 아예 시선을 빼앗긴 것처럼 나를 보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평소랑은 다르게 행동했다.

        

       평소라면 아이들이 나를 무시하던 것처럼 나도 아이들을 무시했을 거다.

        

       하지만 나를 쳐다본다면, 나도 쳐다봐 주는 것이 도리겠지.

        

       나는 시선을 쭉 돌리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를 보고 있는 아이가 있으면 눈을 하나하나 마주치면서.

        

       예사라는 예쁜 얼굴을 하고 있긴 하지만, 동시에 상당히 날카로운 눈매를 가지고 있다. 살짝 흘겨보거나 치켜뜨는 것만으로도 눈빛으로 뭔가 베어낼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당연히, 나와 눈이 마주친 애들은 다들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하나하나의 시선을 모두 치워버린 나는, 천천히 내 자리로 걸어가 앉았다.

        

       ……생각해보면, 이건 그저 위기이기만 한 게 아니다.

        

       나는 지금의 상황, 그러니까 회장이 나를 쥐고 좌지우지하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원작의 예사라를 벤치마킹하기로 했으니까.

        

       물론 게임에 나왔던 예사라처럼 완전히 망가질 생각은 없다.

        

       그저 그 게임 속에 나왔던 예사라처럼, ‘아무도 나를 무시하지 못하게’ 만들 생각이다.

        

       돈으로 아이들의 부모를 움직여서 예사라를 무시하게 해? 학교 자체를 움직여서 예사라를 투명 인간이 되도록 만들어?

        

       그렇다면 그 돈으로 다 처리하지 못할 정도로 개판을 쳐버리면 되는 것이다.

        

       단, 모든 것을 놔버렸던 원작의 예사라와는 다르게, 기왕이면 최대한 신사적으로.

        

       드륵, 하고 다시 교실의 문이 열렸다.

        

       이번에도 교실 문을 향해서 시선이 몰렸다.

        

       “……어?”

        

       시선을 받은 아이는 당황한다. 평소에도 종종 받곤 하던 시선이었지만, 이번에 몰린 시선은 이전의 무관심한 흘끗거림보다 훨씬 더 묵직하고 날카로웠다.

        

       “하늘!”

        

       시선을 받고 굳어있는 유하늘에게 그렇게 외치자,

        

       “……어어!?”

        

       이번에는 더 놀란다.

        

       ……아, 맞다. 나 쟤보고 이름으로 불러준 적이 없었나?

        

       뭐, 그건 지금 당장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교실 책상은, 원래 한 줄씩 따로 떨어져 있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는 친한 친구와 붙이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적어도 수업받는 도중에는 원래 자리끼리 떨어져 있는 것이 정석이라는 것이다.

        

       뭐, ‘투명 인간’인 나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나는 손을 뻗어, 유하늘의 책상을……

        

       내 쪽으로 끌려다가 멈칫했다.

        

       ……무겁다.

        

       책상 서랍에 대체 뭘 넣어놨기에? 설마 교재 말고 다른 책도 가득 들어있기라도 한 것인가?

        

       “끙.”

        

       몸을 일으켜 체중을 실어 책상을 내 쪽으로 끌었다.

        

       그래도 오래 걸리지 않아, 유하늘의 책상은 바로 내 책상 옆에 딱 붙었다.

        

       그래. ‘투명 인간’이니까, 무슨 행동을 해도 상관없다는 말이지?

        

       기왕 오늘 관심 끌게 된 거, 잘됐다.

        

       나는 오늘부터 존나 관종이 되겠다.

        

       어차피 회장이 알게 되는 것은 기정사실이니, 더 물러날 곳도 없고.

        

       나는 유하늘을 바라보며, 내 옆자리에 딱 붙어있는 의자를 손으로 탁탁 두드렸다.

        

       “자, 와서 앉아.”

        

       그리고 씨익 웃어 보였다.

        

       그래, 예사라 혼자였기에, 지금까지 무슨 짓을 해도 상대방들이 무시할 수 있었다면,

        

       협력자가 몇 명이나 생긴 지금은 과연 무시할 수 있을까?

        

       파문은 여러 개가 겹칠수록 불규칙해지고 예상하기 어려워지는 법이다.

        

       “어어어??”

        

       유하늘은 여전히 엄청나게 당황한 표정이었다.

        

       뭐, 이제 시작일 뿐이야.

        

       누가 이길지 한번 해 보자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이일님, 후원 감사합니다!

    지난번 소설도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7개월간 연재하면서 정말 즐거웠던 소설입니다. 노벨피아에 소설을 처음 연재하면서 그렇게 많은 독자분들과 만날 수 있게 될 줄은 몰랐고, 그렇게 많은 응원과 관심을 가지게 될지 몰랐습니다. 아직은 너무나 부족한 저에게 그렇게 큰 기쁨을 주신 분들께는 지금까지도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때의 그 경험이 있었기에, 이렇게 차기작을 쓸 수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지금 이 소설을 읽어주신다는 말씀도 너무나 감사합니다. 플러스 소설은 읽어주시기만 해도 도움이 아주 많이 되는데, 이렇게 따로 후원까지 해 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부디 독자님께서도 제가 독자님의 응원을 받았을 때만큼, 이 소설을 읽으시며 즐거우셨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독자님들께 받기만 하는 것 같아서 너무 죄송합니다. 이렇게 후원해주신 돈과, 저의 소설을 읽으며 투자해주신 시간이 아깝지 않도록, 언제나 노력하는 작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소설, 이번 소설 모두 좋아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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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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