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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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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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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뿔, 못해도 5m는 넘어 보이는 키, 소의 머리와 인간의 몸, 소 발굽이 달린 발을 가진 마물의 이름은 미노타우로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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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덩치가 얼마나 큰지 미노타우로스가 만든 그늘 안에 리안을 포함한 모든 노예가 삼켜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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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져 나오는 함성과 무어라 소리치는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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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챙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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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사이로 겁에 질려 검을 떨어뜨리는 이들이 있었다.
    ​
    ​
    “이,이런 걸 이길 수 이,있을리가 없잖아!”
    “전부 죽을 거야, 죽을 거라고! 난 죽고 싶지 않아!”
    ​
    ​
    겁에 질린 두 명의 노예가 비명을 지르며 자신이 나왔던 통로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가장 앞에선 리안을 노려보던 미노타우로스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
    ​
    잔뜩 흥분한 포식자 앞에서 등을 보이고 도망가는 건 죽여달라는 의미나 다를 바 없었다.
    ​
    ​
    쿵! 쿠웅!
    ​
    ​
    미노타우로스는 가볍게 발을 구르더니 발에 스프링이라도 달아놓은 것처럼 순식간에 날아올랐다. 거대한 투기장의 높이만큼 뛰어오른 미노타우로스는 허겁지겁 도망가는 노예의 앞에 떨어져 내렸다. 
    ​
    ​
    “흐아아악..!”
    “사,살려 -…”
    ​
    ​
    우득,촤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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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손에 쥐고 있던 양날의 도끼가 노예 둘을 찢어발겨 버렸다. 순식간에 반으로 갈라져 죽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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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털썩.
    ​
    ​
    어떻게든 도망가지 않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검을 들고 있던 밤톨이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덩치 큰 노예도 방패를 든 채 넋을 놓은 표정을 지었다.
    ​
    ​
    “저,저런걸 어..떻게 이기라고? 불가능하잖아!”
    ​
    ​
    밤톨이는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왔다는 사실에 겁에 질려,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
    ​
    원래 인간은 공포에 질리면 살아남기 위해 분노가 차오르는 법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존재하는 기능이었지만 지금은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
    ​
    “크흥.”
    ​
    ​
    밤톨이의 외침은 피를 보고 흥분한 미노타우로스를 자극할 뿐이었다. 미노타우로스의 시선이 정확히 밤톨이를 향했다. 
    ​
    ​
    “히이익?!”
    ​
    ​
    밤톨이는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기어가려고 했다. 몸에 힘이 과도하게 들어가 바닥에서 허우적거리는 듯한 몸짓이 되었을 뿐이었다. 
    ​
    ​
    “우우우우!”
    “푸하하하하! 죽여라 죽여버려!”
    ​
    ​
    순식간에 죽어버린 노예의 모습에 야유하는 목소리와 노예를 가지고 놀다가 죽이라는 관중들의 목소리가 투기장에 울려 퍼졌다. 
    ​
    ​
    “던져! 높이 던져버려!”
    “크하하하! 목을 뽑아버려!”
    ​
    ​
    주변에서 쏟아지는 소리에 밤톨이는 숨이 턱 막혔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
    ​
    쿵,쿠웅.
    ​
    ​
    미노타우로스가 약물로 인해 붉게 충혈된 눈으로 콧김을 내뿜으며 천천히 다가왔다. 도망치지도 못하는 사냥감을 가지고 놀 생각인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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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 -. 나는 죽는구나.
    ​
    ​
    밤톨이와 덩치, 두 노예의 머리에 같은 생각이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태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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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건 모자이크가 되는데 내 몸은 왜 안되지? 아, 눈 달린 장기 때문인가?”
    ​
    ​
    리안이 밤톨이 옆을 지나 앞으로 걸어갔다. 제 발로 죽음으로 걸어가는 리안의 모습은 너무나 태연해 보여 마치 산책이라도 나온 것처럼 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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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오오오오! 저 비실비실한 놈 죽이지 말고 써먹게 밖에다 팔아라!”
    “반질반질한 얼굴을 갈아버려!”
    ​
    ​
    다른 노예에 비해 어려 보이는 데다가, 미래에 여자를 많이 울릴 것같은 아름다운 얼굴은 가진 리안이 미노타우로스 쪽으로 걸어가자 온갖 추악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
    ​
    몸을 팔라는 소리는 기본이고, 얼굴 가죽을 뜯어내라는 잔혹한 얘기까지 있었다. 투기장에 있는 모든 관중이 리안의 참혹한 죽음을 기대했다. 
    ​
    ​
    “아 -, 조용히 좀 해봐. 금방 해본다니까?”
    ​
    ​
    리안은 주변의 야유를 일절 신경 쓰지 않고, 무언가와 대화를 나누는 듯 중얼중얼거리기 바빴다.
    ​
    ​
    미노타우로스가 손을 뻗으면 간신히 닿을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 리안이 손에 들고 있던 검을 들어 올렸다.
    ​
    ​
    “어디..이렇게 하면 되나?”
    ​
    ​
    리안이 대충 허공에 검을 휘둘렀다. 어떠한 기술도 들어가지 않은 손짓, 마치 장난감 코너에서 봤던 번쩍번쩍 빛이 나는 검을 장난스럽게 휘두른 것 같은 성의 없는 행동이었다.
    ​
    ​
    “크르릉!”
    ​
    ​
    미노타우로스는 멍청한 먹잇감의 행동에 코웃음을 치며 도끼를 들어 올렸다. 아니, 들어 올리려 했다.
    ​
    ​
    스륵.
    ​
    ​
    미노타우로스 상체에 생겨난 작은 실선, 마치 커터칼로 종이를 잘라낸 것처럼 깔끔한 선이 그어졌다.
    ​
    ​
    “…- ?”
    ​
    ​
    미노타우로스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멍한 표정으로 리안을 바라보았다. 얻어맞기라도 한 걸까? 그의 시야가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
    ​
    “애매하네.”
    ​
    ​
    리안의 중얼거림을 끝으로 미노타우로스는 혀를 길게 뺀 채 숨이 끊어졌다.
    ​
    ​
    “…”
    ​
    ​
    상상도 하지 못한 장면에 투기장 관중들은 입을 헤 벌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
    ​
    촤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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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노타우로스의 허리가 사선으로 깔끔하게 잘려 단면을 보이며 피를 뿜어냈다. 바닥에는 미노타우로스의 머리와 어깨, 팔뚝이 축 늘어져 있었다.
    ​
    ​
    비릿한 혈향이 미노타우로스의 패배를 알려주었다. 
    ​
    ​
    “와아아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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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땅이 흔들리는 듯한 어마어마한 함성이 폭발적으로 쏟아졌다. 진행자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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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가장 어린 나이의 검투사가 미노타우로스를 일격에 베어냈습니다! 새로운 스타의 탄생입니다!”
    ​
    ​
    흥분이 잔뜩 섞인 진행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과 동시에, 함성은 더욱 커졌다. 진행자의 목소리까지 먹힐 정도였다. 
    ​
    ​
    “편식하면 키 안 큰다?”
    ​
    ​
    리안은 주변 상황에 일절 신경 쓰지 않고 미노타우로스의 피는 맛이 없다며 칭얼거리는 마검을 툭툭 두드렸다.
    ​
    ​
    [ 이게 전부 네놈의 피가 너무 맛있어서 그런 거다! ]
    ​
    ​
    마검은 웅웅 검신을 울리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리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
    ​
    “어..고마워?”
    [ 이익…! ]
    ​
    ​
    리안은 마검이 칭얼되는 걸 뒤로하고, 자신이 나왔던 통로를 바라보았다.
    ​
    ​
    ‘빨리 아이리스에게 돌아가야겠다.’
    ​
    ​
    경기는 생각보다 금방 끝났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이었다.
    ​
    ​
    그사이 간 크게 아이리스를 덮치려는 이가 나타났을 수도 있고, 배가 고파 식당에 갔다가 아무거나 주워 먹고 있을지도 몰랐다.
    ​
    ​
    리안에겐 아이리스란 물가에 내놓은 갓난아기나 다를 바 없었다.
    ​
    ​
    “자, 그럼 기적의 검투사에게 인터뷰를 -…”
    ​
    ​
    진행자가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숨기지 못한 채, 허공을 날아다니는 신기한 양탄자를 타고 리안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
    ​
    머릿속에 온통 아이리스에 대한 걱정으로 꽉 찬 리안은 날아오는 진행자를 발견하지 못하고, 미노타우로스를 지나 통로 쪽으로 향했다.
    ​
    ​
    “어어? 지..지금 그냥 가면 안 되는데?”
    ​
    ​
    뒤쪽에서 진행자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개그 세계의 주민은 원래 한 가지에 꽂히면 냅다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게 당연하다.
    ​
    ​
    달려가는 개그 주민을 막아서면.
    ​
    ​
    “으아아앗!?”
    ​
    ​
    저 진행자처럼 날아가게 된다.
    ​
    ​
    ‘방금 뭐가 지나가지 않았나?’
    ​
    ​
    리안은 지극히 개그 세계 주민 같은 생각을 하며 통로를 지나갔다. 어마어마한 성적을 내서 그런지 아무도 그를 막지 않았다.
    ​
    ​
    ***
    ​
    ​
    쾅!
    ​
    ​
    “아이리스!”
    “…!”
    ​
    ​
    침대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아이리스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번쩍 들었다. 내 얼굴을 확인하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후다닥 다가왔다.
    ​
    ​
    나는 곧바로 아이리스의 손을 잡아주고자 손을 내밀었다. 
    ​
    ​
    “미안, 늦었 -…”
    ​
    ​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리스가 내 품에 폭하고 안겨버렸다. 나는 손을 내민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
    ​
    “으우…”
    ​
    ​
    아이리스가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문지르며 우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돌처럼 굳어있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다급하게 아이리스의 어깨를 잡아 밀어냈다.
    ​
    ​
    “아,아이리스 울어?!”
   
    ​
    세상에는 울려선 안 되는 존재들이 있다. 그 중 첫 번째가 어린아이고, 두 번째가 여자이다. 특히 예쁜 여자를 울렸다면 절벽에서 다이빙하는 게 더 나은 삶을 위한 선택이다.
    ​
    ​
    아이리스는 예쁜 여자 아이다. 무시무시한 존재라는 말이다. 거기다 그녀는 무려 원작 주인공이기까지 하다! 
    ​
    ​
    그런 존재를 울렸다는 건 곧,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왔다는 말과 같았다.
    ​
    ​
    ‘아이리스가…암살자였나?’
    ​
    ​
    그런 생각을 하며 아이리스를 떼어놓고 방 한가운데로 걸어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
    ​
    “어머니, 소자 먼저 갑니다.”
    ​
    ​
    손에 들고 있던 검을 목에 가져가며 이슬 같은 눈물을 흘렸다. 앞으로 일어날지 모를 잔혹한 클리셰에서 도망치기 위해선 이런 식의 표현이라도 보여줘야 한다.
    ​
    ​
    “…?!”
    ​
    ​
    아이리스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으로 순식간에 다가와 내 검을 뺏어 들었다.
    ​
    ​
    [ 오오! 드디어 제대로 된 인간에게 -…크아아아악! 이,이건 설마 신성력?! 놔! 날 놓아라! 신의 개놈아! 끄아아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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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안같이 비정상적인 인간이 아닌, 제대로 된 인간의 손에 들어갔다고 신나 하던 마검이 비명을 내질렀다.
    ​
    ​
    이대로 있다간 쓸만한 무기를 잃을 것 같아 아이리스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
    ​
    “착하지 아이리스. 빨리 그거 이리 줘.”
    ​
    ​
    그러자 아이리스가 검을 등 뒤로 숨기더니 고개를 마구 저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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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혈소연님! 헤엄치는 새님! chaoszero님! 후원 감사합니다! 연재 열심히 하겠습니다! ヽ(・∀・)ノ
Ilham Senjaya님!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마검을 히로인화 시키자는 이야기가 많던데 ..

그건 마검을 특정 조건을 가지고 인간화 시켜서 히로인으로 만들자는 건가요? 아니면…..(흐린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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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르릉.

거대한 뿔, 못해도 5m는 넘어 보이는 키, 소의 머리와 인간의 몸, 소 발굽이 달린 발을 가진 마물의 이름은 미노타우로스였다.

덩치가 얼마나 큰지 미노타우로스가 만든 그늘 안에 리안을 포함한 모든 노예가 삼켜질 정도였다.

터져 나오는 함성과 무어라 소리치는 진행자.

챙그랑.

그 사이로 겁에 질려 검을 떨어뜨리는 이들이 있었다.

“이,이런 걸 이길 수 이,있을리가 없잖아!”

“전부 죽을 거야, 죽을 거라고! 난 죽고 싶지 않아!”

겁에 질린 두 명의 노예가 비명을 지르며 자신이 나왔던 통로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가장 앞에선 리안을 노려보던 미노타우로스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잔뜩 흥분한 포식자 앞에서 등을 보이고 도망가는 건 죽여달라는 의미나 다를 바 없었다.

쿵! 쿠웅!

미노타우로스는 가볍게 발을 구르더니 발에 스프링이라도 달아놓은 것처럼 순식간에 날아올랐다. 거대한 투기장의 높이만큼 뛰어오른 미노타우로스는 허겁지겁 도망가는 노예의 앞에 떨어져 내렸다.

“흐아아악..!”

“사,살려 -…”

우득,촤아악!

한 손에 쥐고 있던 양날의 도끼가 노예 둘을 찢어발겨 버렸다. 순식간에 반으로 갈라져 죽고 말았다.

털썩.

어떻게든 도망가지 않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검을 들고 있던 밤톨이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덩치 큰 노예도 방패를 든 채 넋을 놓은 표정을 지었다.

“저,저런걸 어..떻게 이기라고? 불가능하잖아!”

밤톨이는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왔다는 사실에 겁에 질려,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원래 인간은 공포에 질리면 살아남기 위해 분노가 차오르는 법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존재하는 기능이었지만 지금은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크흥.”

밤톨이의 외침은 피를 보고 흥분한 미노타우로스를 자극할 뿐이었다. 미노타우로스의 시선이 정확히 밤톨이를 향했다.

“히이익?!”

밤톨이는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기어가려고 했다. 몸에 힘이 과도하게 들어가 바닥에서 허우적거리는 듯한 몸짓이 되었을 뿐이었다.

“우우우우!”

“푸하하하하! 죽여라 죽여버려!”

순식간에 죽어버린 노예의 모습에 야유하는 목소리와 노예를 가지고 놀다가 죽이라는 관중들의 목소리가 투기장에 울려 퍼졌다.

“던져! 높이 던져버려!”

“크하하하! 목을 뽑아버려!”

주변에서 쏟아지는 소리에 밤톨이는 숨이 턱 막혔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쿵,쿠웅.

미노타우로스가 약물로 인해 붉게 충혈된 눈으로 콧김을 내뿜으며 천천히 다가왔다. 도망치지도 못하는 사냥감을 가지고 놀 생각인 것처럼 보였다.

아 -. 나는 죽는구나.

밤톨이와 덩치, 두 노예의 머리에 같은 생각이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태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건 모자이크가 되는데 내 몸은 왜 안되지? 아, 눈 달린 장기 때문인가?”

리안이 밤톨이 옆을 지나 앞으로 걸어갔다. 제 발로 죽음으로 걸어가는 리안의 모습은 너무나 태연해 보여 마치 산책이라도 나온 것처럼 보였다.

“우오오오오! 저 비실비실한 놈 죽이지 말고 써먹게 밖에다 팔아라!”

“반질반질한 얼굴을 갈아버려!”

다른 노예에 비해 어려 보이는 데다가, 미래에 여자를 많이 울릴 것같은 아름다운 얼굴은 가진 리안이 미노타우로스 쪽으로 걸어가자 온갖 추악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몸을 팔라는 소리는 기본이고, 얼굴 가죽을 뜯어내라는 잔혹한 얘기까지 있었다. 투기장에 있는 모든 관중이 리안의 참혹한 죽음을 기대했다.

“아 -, 조용히 좀 해봐. 금방 해본다니까?”

리안은 주변의 야유를 일절 신경 쓰지 않고, 무언가와 대화를 나누는 듯 중얼중얼거리기 바빴다.

미노타우로스가 손을 뻗으면 간신히 닿을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 리안이 손에 들고 있던 검을 들어 올렸다.

“어디..이렇게 하면 되나?”

리안이 대충 허공에 검을 휘둘렀다. 어떠한 기술도 들어가지 않은 손짓, 마치 장난감 코너에서 봤던 번쩍번쩍 빛이 나는 검을 장난스럽게 휘두른 것 같은 성의 없는 행동이었다.

“크르릉!”

미노타우로스는 멍청한 먹잇감의 행동에 코웃음을 치며 도끼를 들어 올렸다. 아니, 들어 올리려 했다.

스륵.

미노타우로스 상체에 생겨난 작은 실선, 마치 커터칼로 종이를 잘라낸 것처럼 깔끔한 선이 그어졌다.

“…- ?”

미노타우로스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멍한 표정으로 리안을 바라보았다. 얻어맞기라도 한 걸까? 그의 시야가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애매하네.”

리안의 중얼거림을 끝으로 미노타우로스는 혀를 길게 뺀 채 숨이 끊어졌다.

“…”

상상도 하지 못한 장면에 투기장 관중들은 입을 헤 벌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촤아아악!

미노타우로스의 허리가 사선으로 깔끔하게 잘려 단면을 보이며 피를 뿜어냈다. 바닥에는 미노타우로스의 머리와 어깨, 팔뚝이 축 늘어져 있었다.

비릿한 혈향이 미노타우로스의 패배를 알려주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땅이 흔들리는 듯한 어마어마한 함성이 폭발적으로 쏟아졌다. 진행자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가,가장 어린 나이의 검투사가 미노타우로스를 일격에 베어냈습니다! 새로운 스타의 탄생입니다!”

흥분이 잔뜩 섞인 진행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과 동시에, 함성은 더욱 커졌다. 진행자의 목소리까지 먹힐 정도였다.

“편식하면 키 안 큰다?”

리안은 주변 상황에 일절 신경 쓰지 않고 미노타우로스의 피는 맛이 없다며 칭얼거리는 마검을 툭툭 두드렸다.

[ 이게 전부 네놈의 피가 너무 맛있어서 그런 거다! ]

마검은 웅웅 검신을 울리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리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어..고마워?”

[ 이익…! ]

리안은 마검이 칭얼되는 걸 뒤로하고, 자신이 나왔던 통로를 바라보았다.

‘빨리 아이리스에게 돌아가야겠다.’

경기는 생각보다 금방 끝났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이었다.

그사이 간 크게 아이리스를 덮치려는 이가 나타났을 수도 있고, 배가 고파 식당에 갔다가 아무거나 주워 먹고 있을지도 몰랐다.

리안에겐 아이리스란 물가에 내놓은 갓난아기나 다를 바 없었다.

“자, 그럼 기적의 검투사에게 인터뷰를 -…”

진행자가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숨기지 못한 채, 허공을 날아다니는 신기한 양탄자를 타고 리안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머릿속에 온통 아이리스에 대한 걱정으로 꽉 찬 리안은 날아오는 진행자를 발견하지 못하고, 미노타우로스를 지나 통로 쪽으로 향했다.

“어어? 지..지금 그냥 가면 안 되는데?”

뒤쪽에서 진행자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개그 세계의 주민은 원래 한 가지에 꽂히면 냅다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게 당연하다.

달려가는 개그 주민을 막아서면.

“으아아앗!?”

저 진행자처럼 날아가게 된다.

‘방금 뭐가 지나가지 않았나?’

리안은 지극히 개그 세계 주민 같은 생각을 하며 통로를 지나갔다. 어마어마한 성적을 내서 그런지 아무도 그를 막지 않았다.

***

쾅!

“아이리스!”

“…!”

침대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아이리스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번쩍 들었다. 내 얼굴을 확인하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후다닥 다가왔다.

나는 곧바로 아이리스의 손을 잡아주고자 손을 내밀었다.

“미안, 늦었 -…”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리스가 내 품에 폭하고 안겨버렸다. 나는 손을 내민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으우…”

아이리스가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문지르며 우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돌처럼 굳어있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다급하게 아이리스의 어깨를 잡아 밀어냈다.

“아,아이리스 울어?!”

세상에는 울려선 안 되는 존재들이 있다. 그 중 첫 번째가 어린아이고, 두 번째가 여자이다. 특히 예쁜 여자를 울렸다면 절벽에서 다이빙하는 게 더 나은 삶을 위한 선택이다.

아이리스는 예쁜 여자 아이다. 무시무시한 존재라는 말이다. 거기다 그녀는 무려 원작 주인공이기까지 하다!

그런 존재를 울렸다는 건 곧,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왔다는 말과 같았다.

‘아이리스가…암살자였나?’

그런 생각을 하며 아이리스를 떼어놓고 방 한가운데로 걸어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어머니, 소자 먼저 갑니다.”

손에 들고 있던 검을 목에 가져가며 이슬 같은 눈물을 흘렸다. 앞으로 일어날지 모를 잔혹한 클리셰에서 도망치기 위해선 이런 식의 표현이라도 보여줘야 한다.

“…?!”

아이리스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으로 순식간에 다가와 내 검을 뺏어 들었다.

[ 오오! 드디어 제대로 된 인간에게 -…크아아아악! 이,이건 설마 신성력?! 놔! 날 놓아라! 신의 개놈아! 끄아아악! ]

리안같이 비정상적인 인간이 아닌, 제대로 된 인간의 손에 들어갔다고 신나 하던 마검이 비명을 내질렀다.

이대로 있다간 쓸만한 무기를 잃을 것 같아 아이리스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착하지 아이리스. 빨리 그거 이리 줘.”

그러자 아이리스가 검을 등 뒤로 숨기더니 고개를 마구 저었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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