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6

    숨을 몰아쉬며 어둑어둑한 복도를 전력으로 달렸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복도. 

    내가 뛰는 것에 맞춰서 불안하게 흔들리는 손전등의 불빛은 불안한 마음을 대변하는 것만 같았다.

    동료들은 모두 무언가에 붙들려 타죽어 버렸다.

    그건 도대체 뭐야? 유령? 오브젝트?

    콰당.

    복도가 너무 어두운 탓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이었을까.

    나는 바닥에 튀어나온 무언가에 발을 걸려 그대로 굴러버렸다.

    “흐억, 흐억.”

    숨이 제대로 쉬어지질 않는다.

    손에 들린 손전등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필사적으로 떨어트린 손전등을 찾아봤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떨어진 충격으로 망가져 버린 건가?

    어둠으로 가득한 복도에서 찾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긴장과 공포로 후들후들 떨리는 무릎을 필사적으로 부여잡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창문도 없고, 손전등도 없다.

    광원이 없는 어두운 복도, 게다가 바닥은 파이고 튀어나온 부분이 많아 울퉁불퉁했다.

    극도의 긴장으로 식은땀이 멈추질 않았다.

    흥건하게 젖은 등판을 느끼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벽에 손을 짚고, 넘어지지 않게 발을 질질 끌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복도가 이렇게 까마득하게 멀지 않았었는데! 

    도대체, 도대체 왜 이렇게 먼 거야?

    복도의 끝이 보이질 않는다.

    허억허억, 숨이 가쁘다. 

    어지러워.

    ‘!’

    찰박찰박.

    적막만 가득한 복도에서 맨발로 걷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이런 건물에서 맨발?

    숨을 삼키듯이 멈추고, 그저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봤다.

    유령처럼 흔들거리는 불빛이 보였다.

    뭔가가… 뭔가가 다가오고 있어!

    “허억 허억.”

    입에서 나는 소리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숨소리를 참으려고 양손으로 입을 막아봤지만, 숨소리는 가라앉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찰박찰박.

    점점 발소리는 가까워져만 갔다. 

    어떻게 해야 하지?

    복도의 끝은 불길한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마치 저승으로 인도하는 유황불 같았다.

    지금이라도 도망가야하나?

    동료가 타죽었던 곳으로 돌아가야 하나? 

    아니면 어딘가로 숨어? 

    숨을 쉬어도 쉬어도 숨이 계속 차올랐다.

    과호흡이라는 걸 이해해도 숨이 제대로 쉬어지질 않았다.

    귀에서는 이명이 들렸다.

    땀이 너무 나서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다.

    숨이, 숨이 너무 차.

    허억. 헉. 허억.

    ***

    훌쩍거리며 벽을 긁는 여자 귀신을 지나치자 나타난 건 엄청나게 긴 복도였다.

    무언가 깨진 것처럼 움푹 파인 부분도 많고, 의자나 책상 같은 것들이 마구잡이로 널려있는 지저분한 복도였다.

    창문도 없어서 암실처럼 어두운 복도였는데, 장애물도 많아서 다니기 불편해보였다.

    나처럼 눈에서 빛을 쏘는 게 아니면 손전등은 필수!

    복도를 중간 정도 왔을까, 파랗게 질린 남자가 한 명 쓰러져 있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던 남자였는데, 복도에 들어선 내 얼굴을 보더니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기절한 줄 알았던 남자는 자세히 보니 숨도 안 쉬고, 심장도 안 뛰고 있었다.

    뭐야, 날 보고 심장마비라도 걸린 거야?

    나는 그대로 점프해서 남자를 밟았다.

    폴짝 뛰어서 콩하고 가슴팍을 밟았다.

    콩콩콩. 

    몇 번 반복하다보니 콜록거리며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이대로 죽어버리면 기분이 안 좋으니까 기본적인 구호 활동을 한 셈이었다.

    그대로 정신을 차릴 법도 했는데, 힘든 일이 많았는지 여전히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어느새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든 남자를 뒤로하고 나는 복도 깊숙한 곳으로 다시 여정을 떠났다.

    ***

    피로 물든 글씨가 벽 위에 스르륵 스르륵 써지고 있었다.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집으로. 보내줘. 보내줘.>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집으로. 보내줘. 보내줘.>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집으로. 보내줘. 보내줘.>

    유령이 안 보였다면 꽤 크리피한 분위기를 낼 것 같은 글씨였다.

    글씨체도 꽤 신경 써서 썼는지, 유령다움이 물씬 느껴졌다.

    글을 쓰고 있는 게 쪼그마한 남자애였다는 점을 제외하면 말이다.

    생각해 보니 귀신이 보이는 쪽이 더 무서워야 하는 거 아닌가?

    지금 보니 저 남자애도 눈두덩이가 후벼 파져 있고 피를 뚝뚝 흘리고 있으니까 말이다.

    왜 안 무섭지? 하고 생각하다보니 느껴지는 점이 있었다.

    ‘귀신이다!’ 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다.

    얘네들도 오브젝트구나.

    이 남자애도, 입구의 우는 여자도 사실 오브젝트였던 것이다.

    하긴 오브젝트가 된 입장에서는 오브젝트가 무섭다고 느끼기가 힘들었다.

    내가 글씨를 쓰는 남자애를 계속 쳐다보고 있는 걸 눈치챘는지, 벽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흉흉하게 벽에 쓰여 있던 글씨도 같이 사라졌다.

    내 입장에서 이 폐건물은 사실상 유령의 집이었다.

    다음에는 유령이 보이는 사람을 신경 써서 어트랙션을 준비해 줬으면 좋겠다.

    타다닥.

    인기척이 없는 건물 안에서 무언가 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리의 근원을 찾아보니 쪼그마한 여자애가 빈방에서 발을 구르고 있었다.

    여자애 귀신은 나를 발견하자, 깜짝 놀라서 벽 너머로 도망가 버렸다.

    이 폐건물은 꽤 흥미로운 어트랙션이긴 했는데, 정체를 숨길 생각을 안 하는 점이 문제였다.

    가다보니 살금살금 다가오는 아저씨가 있었다.

    가까이 와서 이해할 수 없는 소리로 중얼거리는 아저씨는 내가 돌아보자 스르륵하고 멀어졌다.

    웅얼웅얼거리던 이유는 혀를 목도리로 감고 있는 아저씨라서 그랬다. 

    왜 저런 목도리를 하고 있는 걸까?

    계속 깊숙이, 깊숙이 나아가다보니 메인 어트랙션으로 보이는 장소에 도착했다.

    방금 태운 것 같은 생생한 탄내.

    빛을 거부하는 지하 계단.

    새카맣게 완전히 타버려서 원형을 알아볼 수 없는 탄 덩어리들.

    나름 분위기가 괜찮았다.

    두근두근. 기대감을 안고 계단을 한 칸 한 칸 내려갔다.

    계단의 모퉁이를 도는 순간 불에 탄 아저씨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온 몸에서 불을 뿜어내는 아저씨는 손을 내밀며 내 목을 조르려는 것처럼 손을 뻗어왔다.

    뻗어왔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곤, 손을 다시 천천히 내렸다.

    그리고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머쓱한 분위기를 풍기며 벽 너머로 사라져갔다.

    인기척이 나서 돌아보니, 계단 위쪽에도 수많은 타버린 아저씨들이 튀어나왔다.

    아마 계단에서 도망치면 놀라게 하는 역할이었나?

    내가 쳐다보니 위쪽의 아저씨들도 후다닥 도망가는 게 느껴졌다.

    계단을 마지막으로 유령의 집 어트랙션이 끝난 게 느껴졌다.

    조금 아쉬웠다.

    ***

    지하로 내려가자, 길쭉한 복도를 중심으로 양옆에 수많은 격리실이 도열해 있었다.

    흔히 볼 수 있는 본격적인 실험실.

    아쉽게도 지상에서 나타나던 귀신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점점, 조합 오브젝트를 제작한 게 인간이라는 심증이 굳어져 갔다.

    마치 일부러 뿌려놓은 것처럼 널브러진 종이들이 많았는데, 알아볼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았다.

    격리실에 남은 도구들은 드릴과 거대한 톱 같은 흉흉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저 흉측한 도구들로 인간의 팔다리를 자르고, 파내서 빈자리에 오브젝트를 이식하는 실험을 주로 했던 것 같다.

    보고서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요 재료가 있었다.

    황금뿔.

    오브젝트이면서 황금처럼 손쉽게 녹여서 물건을 만들 수 있는 오브젝트.

    다만 한국에서는 황금뿔을 취급하는 것이 불법이었다.

    왜냐면, 황금뿔이라는 게 사람 머리에서 채취하니까 말이다.

    물론 불법이라도 오브젝트를 가장 쉽게 가공/연구 할 수 있는 특징 덕에 관련 사건이 끊이질 않았다.

    퍽치기처럼 벽돌로 사람을 기절시키고 뿔만 잘라가는 등, 범죄가 끊이질 않고 있었다.

    여기 도착해서 보니 알겠다.

    좀비의 황금 심장은 황금뿔로 만들었구나.

    흩뿌려진 종이들을 지나쳐서 계속 나아갔다.

    지하의 가장 깊숙한 방에 도착하자, 익숙한 얼굴들이 잔뜩 보였다.

    글씨를 쓰는 눈이 파인 꼬맹이.

    입구에서 울고 있던 여자.

    목도리 때문에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던 아저씨.

    까맣게 탄 아저씨들.

    발을 구르던 여자애.

    모두 기계장치가 틀어박힌 채, 좀비가 되어 도살장의 돼지처럼 행거에 걸려있었다.

    좀비들의 표정이 다들 일그러져 있는 이유가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황금 심장이 계속 그들을 여기에 묶어둔 것이다. 

    그리고 행거에 걸린 좀비들 너머, 의자에 고정되어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실험 가운을 입고 있는 뚱뚱한 아저씨였는데, 복장으로 보면 이 연구소 소속으로 보였다.

    온 몸에 전선이 꽂힌 채로 죽어있어서, 정말로 연구소 소속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이 아저씨가 좀비들의 본체 같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아저씨의 몸속에는 황금 심장이 잔뜩 박혀있었다.

    사실상 내장을 전부 황금심장으로 대체한 수준이었다.

    파괴조건은 간단했다.

    [전기 공급을 중단한다.]

    나는 발로 전선을 밟아 끊어버렸다.

    전기 공급이 끊어지자, 실험가운의 아저씨는 심장이 사방으로 튀어나가며 폭발해버렸다.

    그와 동시에 행거에 걸려있던 좀비들도 재가 되어 사라졌다.

    남은 건 실험복 아저씨의 머리통, 그리고 사방으로 날아간 황금 심장들뿐이었다.

    이걸로 강철탑 사건은 끝난 거겠지.

    이 실험실을 만든 사악한 조직의 추적 같은 것들은 아마 다른 사람들이 해줄 거야.

    위층에서 울리는 다수의 발소리와, 차량 소리를 들으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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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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