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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

   소울 아카데미의 전투학 교수이자 한 때 기사로써 여러 전장을 돌아다녔던 노장 안톤은 대련장 위에서 펼쳐지는 전투를 보다 웃음을 흘렸다.

   

   전투의 양상은 일방적이었다.

   

   공격을 하는 것은 베인즈 가문의 메릴 영애고.

   

   그걸 받아내는 건 알른 가문의 루시 영애였다.

   

   보통 전투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은 공격을 하는 쪽이다.

   

   허나 이번에 한해서 그 상식은 틀렸다.

   

   루시 알른은 단 한 번의 공격을 하지 않은 채로 메릴 베인즈를 장난감 다루듯 하고 있었으니까.

   

   이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그도 그럴 것이 메릴 베인즈는 여러 공식 석상에 나와 자신의 무재를 증명했던 사람이다.

   

   동시대의 천재들과 비교하면 부족한 것이 사실이나 수재라 불릴 재능은 충분히 지니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스스로 지닌 상승욕구가 무척이나 커서 앞으로가 기대되는 유망주 중 하나였다.

   

   그에 반해 루시 알른은 어떤가.

   

   그녀에 관해 퍼진 이야기는 여러 악평들 뿐이었다.

   

   인성에 대해서나. 무재에 대해서나.

   

   오죽 그녀의 평가가 처참했으면 저 영애가 정말 철혈백 베네딕의 자식이 맞는가라는 의심이 귀족들 사이에 공연히 퍼져 있었겠는가.

   

   워낙 베네딕 알른이 자신의 딸을 아끼기에 다들 말을 아끼고 있었지만 모두들 루시가 패악질을 부리는 걸 볼 때마다 혹시나라는 생각을 마음 한켠에 품었다.

   

   과거 대륙을 공포로 물들였던 철혈백과 계단을 올라가는 것도 벅차하는 여자아이가 아비와 자식이라는 사실을 믿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

   

   그랬기에 안톤은 어젯저녁 메릴 베인즈가 루시 알른에게 주먹다짐을 걸었다가 패배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무언가 다른 요소가 끼어들어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메릴이 질 이유가 없으니까.

   

   허나 그 광경을 직접 보았던 다른 무기학 교수인 루카는 열띈 눈으로 교수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내일 대련에서 루시 알른과 메릴 베인즈를 상대로 붙이지요. 두 사람을 붙이면 분명 서로의 실력을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서로간에 증오가 새겨져 있으니 서로를 해하는 데 망설임이 없을 것이고, 재능은 루시 알른이 뛰어나지만 경험은 메릴 베인즈가 더 많으니 분명 볼만한 승부가 될 겁니다!’

   

   안톤을 포함한 다른 무기학 교수들은 그의 제안을 미심쩍어했다.

   

   한 걸음 양보해서 루시 알른에게 재능이 있고 요 근래에 실력이 늘었다는 걸 인정한다 하더라도.

   

   걸음마를 떼었을 때부터 검을 잡아 수많은 연습과 실전을 경험해 본 이와 이제 막 무기를 잡은 이가 어찌 대결을 펼칠 수 있겠나.

   

   그래서야 대련이 시험이 아닌 일방적인 괴롭힘으로 변모할 뿐이지 않나.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제 말을 믿어주십시오!’

   

   만일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면 징계를 받는 것은 물론이고 메릴과 루시를 위한 새로운 상대를 자신이 찾아오겠단 루카의 말에 다른 교수들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요 몇 년 간 자신의 안목을 증명해 온 루카 교수가 저렇게까지 이야길 하는 게 고갤 저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안톤은 루카 교수의 말이 옳았다는 것을 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따지자면 루카 교수마저도 틀렸다.

   

   그는 루시와 메릴의 실력이 엇비슷할 것이라 이야기했으니까.

   

   루시가 지닌 재능은.

   

   알른 가문의 핏줄에 새겨진 재능은!

   

   교수들의 알랑한 상식으로 재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메릴이 검을 휘두름과 동시에 루시가 방패를 움직인다. 평생 동안 검을 달련해 온 이가 내지르는 일검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시의 방패는 굳건했다.

   

   또 다시 메릴의 검을 막아낸 루시의 입가에 미소가 새겨진다.

   

   “경이롭군요.”

   

   루카 교수가 면접관 사이에 만연해 있던 침묵을 깨트렸다.

   

   대련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보는 누구라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짙은 희열이 새겨져 있었다.

   

   “보십시오. 여러분. 저 방패의 움직임을! 보통 싸움에 서툰 이들은 방패를 무작정 공격을 막아내는 방어구라고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알른 영애는 다릅니다. 그녀는 방패를 능동적으로 움직일 줄 알고 있습니다.

   검로에 끼어들어 위력을 줄이고.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고. 때로는 검을 쳐내어 상대의 틈을 만들어 냅니다.

   저건 단순히 배웠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저건 재능입니다!”

   “호들갑 적당히 떨어요. 루카 교수님. 저희도 다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요.”

   

   흥분해서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는 루카 교수를 다른 교수가 제지한다.

   

   “저걸 보고서 어찌 진정하란 소리십니까.”

   “빛나는 원석을 발견해서 기쁜 건 알겠지만 여긴 시험장입니다. 다른 한편을 일방적으로 옹호해선 안돼요.”

   “…아. 죄송합니다. 제가 본분을 잊었군요.”

   

   루카교수가 지적을 받고서 입을 다물었다.

   

   허나 그 뿐이었다.

   

   그의 과도한 흥분을 막았을 뿐 그의 의견에 반박을 하는 이는 없었다.

   

   모두들 그의 심정에 공감하고 있었기에.

   

   당장 작년 사교계에 나왔던 루시 알른은 티 하나 없는 새하얀 손을 지닌 영애였다.

   

   그 손은 그녀가 여태까지 실전은커녕 단 한 번의 연습조차 해 본 일이 없음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랬던 루시 알른이 고작 일 년 만에 저만한 실력을 지니게 되다니.

   

   메릴 베인즈의 경험을 찍어 누를 수 있을 정도로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다니!

   

   대체 그녀가 지닌 재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기에.

   

   그녀라는 원석이 얼마나 아릅답게 빛나는 별이었기에.

   

   알른이라는 핏줄에 새겨진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 것이었기에 저렇게 사람이 변한단 말인가.

   

   “그에 반해 오늘 메릴 베인즈는 실망스럽군요.”

   

   면접관 중 누군가 그리 이야기를 하자 모두들 동의를 표했다.

   

   “아무리 악연이 깊다지만 너무 감정적입니다.”

   “상대에게 놀아나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듯 하군요.”

   “생각을 하고 검을 휘두르는 게 아니라 무작정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면접관이 하나 둘 말을 꺼낸다.

   

   그 내용은 서로 제각각이었지만 지적하는 문제점은 한가지였다.

   

   감정의 조절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저렇게 쉽게 감정적이 되어버리는 사람은 실전에서 좋지 않은 변수를 만들어 낸다.

   

   특히 한 번의 실수가 파티의 전멸을 야기할 수 있는 던전 내라면 더더욱.

   

   “더 볼 필요가 있겠습니까?”

   

   루카 교수가 모두의 의견을 대표하듯 그리 말했고 다들 거기에 동의를 표했다.

   

   의견이 모아진 것을 확인한 안톤은 자리에서 일어나 대련장의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허접. 벌써 지친거야? 개들은 체력이라도 좋은데 넌 그것보다도 못한가보네?”

   “닥…쳐!…”

   “할 줄 아는 말이 그것밖에 없어? 머리는 큰데 뇌는 자그마한가 보네. 그것도 개를 닮았다! 신기하네!”

   “닥쳐어어어!”

   

   가진바 재능을 개화하기는 했으나 저 성질머리는 여전한 건가.

   

   한참 전부터 쓰러트릴 수 있던 상대를 여태 가지고 놀고 있던 때부터 예상한 일이지만 가까이서 듣게 되니 어질어질하군.

   

   “면접관 권한으로 이만 대련을 끝마치겠습니다.”

   

   안톤이 목소리를 내자 두 사람의 시선이 그에게로 몰려들었다.

   

   그 중에 먼저 반응을 보인 건 메릴 베인즈였다.

   

   “아닙니다! 전 더 할 수 있습니다!”

   “베인즈 영애. 전 분명 끝을 내겠다고 했습니다.”

   “그치만 전 저 빌어먹을 년한테!”

   “메릴 베인즈. 부정행위로 시험에서 탈락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검을 물리십시오.”

   

   메릴은 거친 숨을 내쉬며 입을 곱씹었지만 그렇다 하여 면접관이 하는 말을 거스를 용기도 없었는지 검을 내렸다.

   

   그를 보고서 반대편에 서 있던 루시도 방패를 내렸다.

   

   그 때였다.

   

   무방비해진 루시를 본 메릴이 루시를 향해 달려들었다.

   

   자신이 검을 내린 것은 어디까지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처럼.

   

   허나 메릴이 잊고 있었던 건 그녀의 옆에 있는 안톤은 그녀로써는 감당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강자였단 것이다.

   

   그는 메릴의 팔목을 비틀어 검을 떨어트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메릴 베인즈. 다시 한 번 말하겠습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당신을 실격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

   

   <여아야. 이번 일은 너무 과했다.>

   ‘…네. 맞아요. 이번일은 명백하게 제 잘못이에요.’

   

   할배의 말이 옳았다.

   

   방금 난 메스가키 스킬이 주는 고양감에 취한 나머지 필요 이상으로 과한 도발을 반복했다.

   

   아무리 어제의 악연이 있다고는 하지만 저 정도까지 영애를 괴롭힐 필요는 없었다.

   

   그녀에게 굴욕을 안겨주고 싶었다면 적당한 패배를 안겨주는 것이면 충분했다.

   

   이전에 고블린이나 오크를 상대할 적엔 이 고양감에 취해도 문제가 없었다.

   

   그들은 인류의 적인 마물이고. 그들에게 어떤 최후를 안겨주더라도 도덕적으로 걸릴 게 없었으니까.

   

   그렇지만 지금은 다르다.

   

   평범한 사람들을 상대할 땐 고양감에 취해버려선 안 된다.

   

   들뜬 나머지 평소보다 과한 행동을 반복하는 나는 언젠가 문제를 일으킬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니까.

   

   당장 오늘만 하더라도 영애를 과히 도발한 나머지 그녀에게 불이익을 안길 뻔하지 않았는가.

   

   만일 내 상대가 저 영애가 다른 고위 귀족이었다면?

   

   아니면 내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강자였다면?

   

   그 결과는 어떤 방향으로는 최악으로 치닫고 말았을 것이다.

   

   <네가 지닌 축복은 뛰어난 효과만큼이나 문제가 될 여지도 많구나.>

   ‘그러게요.’

   

   스킬의 고양감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지만 당장은 구할 수 없다.

   

   정신계 스킬은 게임 초반부에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나마 구할 수 있는 것들도 공포극복이나 무너지지 않는 의지 스킬의 하위호완들밖에 없으니 그를 위해 시간과 재화를 들일 이유가 없다.

   

   당장은 최대한 자제를 하는 수밖에 없겠지.

   

   하아. 어쨌든 간에 첫 번째 실기시험은 충분히 잘 넘겼다.

   

   할배의 이야기에 따르면 방금 전 그 영애는 그리 약한 사람도 아니었던 모양이니 그를 여유롭게 상대해보인 나는 면접관들에게 스스로 지닌 재능을 제대로 어필했다 봐도 무방하겠지.

   

   이제 남은 것은 마지막 난관뿐이다.

   

   소울 아카데미에서 만들어 낸 던전을 공략하는 것.

   

   본래라면 난 이 던전 공략에 목숨을 걸어야 할 거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딱히 그렇지만도 않았다.

   

   할배의 도움 덕분에 시험도 그럭저럭 잘 친 것 같고,

   

   첫 실기인 대련에서도 높은 점수를 얻었을 테니까.

   

   굳이 특별입학을 노리지 않아도 소울 아카데미에 합격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렇다 해서 던전 공략을 대충할 생각은 없다.

   

   나는 소울 아카데미의 썩은물이니까.

   

   다른 사람들한테 기록에서 밀리는 걸 견딜 수 있는 인종이 아니라고.

   

   파티원으로 괜찮은 사람들이 뽑히면 좋을 텐데.

   

   아카데미 입학시험의 던전 공략은 무작위로 추첨된 세 사람이 함께 던전을 공략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니 던전 공략의 기록을 내기 위해선 되도록 파티원들이 좋은 사람들로 뽑혀야 한다.

   

   전위는 내가 서면 되니까 뒤에서 화력지원을 해 줄 사람으로.

   

   기왕이면 다재다능한 마법사면 좋을 것 같다.

   

   그럼 공략의 속도를 높일 수 있을 테니까.

   

   하늘께서는 나의 기도를 들어 주었다.

   

   후방에서 여러 일을 해줄 수 있는 다재다능한 마법사를 파티원으로 데려다 주었으니까.

   

   “망나니 영애님. 저희의 악연은 꽤 깊은 것 같네요.”

   

   문제는 그게 나와 내기를 하고 있는 얼빵영애였다는 거겠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허접 작가는 공모전에서 광탈을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이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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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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