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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

   

    “자자! 그러면 결혼도 했겠다! 이제 커팅식이 있겠습니다!”

    “허어억…!”

   

    검을 뽑아든 서준이 성큼성큼 다가가자 기겁한 성 씨가 뒷걸음질 쳤다. 그러다 제 발에 걸려 쿵- 엉덩방아를 찧고는 사색이 되어 손을 내저었다.

   

    “왜, 왜 이러십니까 도대체! 세상일을 전부 힘으로 해결하려 들면 안 되지요!”

    “아니, 이 새끼. 왜 갑자기 논리적인 척이야.”

    “논리적인 척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틀렸어.”

    “예?”

   

    한 걸음 크게 다가간 서준이 허리를 굽혀 성 씨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충고 하나 할게.”

   

    서준의 검은 눈 너머로 흐릿한 황금빛 기류가 흐른다.

   

    눈이 마주친 성 씨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와 대면하는 듯, 하얗게 비워진 머리가 오로지 생존을 갈구했다.

   

    “무림에서는 힘이 곧 법도요, 약자는 곧 죄인이니. 가끔은 힘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억울한 일을 당하기 마련이지.”

   

    한 단어 한 단어가 백지가 된 머릿속에 뚜렷하게 새겨진다.

   

    멍하니 입을 벌린 성 씨의 몸이 덜덜 떨렸다.

   

    “협객이 칭송받는 것 역시 같은 이치.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홀로 나아가는 것이 아닌, 약자들의 처지를 살피기 때문이야.”

   

    거역할 수 없다. 저항할 수 없다.

   

    머릿속에 새겨진 낱말들이 곧 절대적인 법칙이 되어 성 씨의 몸을 옭아맨다.

   

    “근데 난 협객이 아니거든. 알아듣겠어? 응? 같잖게 굴면 뒤진다고.”

   

    허억…, 허억…. 성 씨의 숨이 거칠어진다.

   

    서준의 눈에 맺힌 황금빛 기운이 더 짙어지자 성 씨는 정신이 희미해져 가는 것을 느꼈다.

   

    “대답 안 하냐?”

    “끄윽….”

   

    털썩, 눈이 뒤집힌 성 씨가 쓰러졌다.

   

    서준이 당황해 데굴 눈을 굴렸다.

   

    “뭐야. 나 아무것도 안 했는데…?”

   

    성이향과 이름 모를 사내 쪽을 돌아보자 사내가 성이향의 손을 잡고 슬쩍 물러났다.

   

    “아니…. 진짜 억울한데….”

   

    마음이 아프다 진짜.

   

   

    *

   

   

    사내의 이름을 들었다. 양추일이라는 모양이다.

   

    딱히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그저 성이향의 증언을 통해 서준 자신이 무고한 시민이라는 것을 알릴 수 있어 만족했다.

   

    “그게…, 연기였다는 말씀이십니까?”

    “엄청 티나지 않았어요? 연기에는 영 소질이 없는 것 같은데.”

    “아, 그…, 음….”

   

    양추일은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진또배기 미친놈인 게 틀림없어 보여서 연기인지 아닌지 눈치챌 틈도 없었다는 말을 내뱉기에는 아무리 그래도 너무 무례하지 않은가.

   

    그런 이유로 양추일이 입을 다물고 있자, 서준이 가만히 턱을 쓰다듬었다.

   

    “의외로 내가 연기에 소질이 있나보네.”

   

    전혀 아니었지만 성이향이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감사해요. 솔직히 머리에 피가 쏠려서 홧김에 저지르긴 했지만…, 아직도 확신이 서진 않네요. 정말 제가 아저씨에게 폐가 되지는 않는 걸까요….”

    “향아, 그게 무슨 말이냐. 전혀 그렇지 않아.”

    “아저씨….”

    “향아….”

   

    금세 둘만의 세계에 빠져버린 남녀를 앞에 둔 서준이 혀를 찼다.

   

    “괜히 배 아프네 이거.”

   

    누구는 여자친구 하나 없는데 눈앞에서 저게 뭐 하는 짓이란 말인가.

   

    에잉 쯧쯧. 혀를 찬 서준이 기절한 성 씨를 집어들어 대충 그의 집 안에 던졌다.

   

    던지기 전에 내공으로 내부를 좀 건드려놔서 앞으로 힘 쓸 일 있으면 고생 좀 할 거다. 

   

    사실 원래는 팔다리를 하나쯤 잘라놓으려 했지만…, 김이 빠졌다. 이게 더 효율적이기도 하고. 

   

    아마 성이향이랑 맞다이 떠도 성 씨가 두드려 맞다 질 거다. 

   

    “아무튼 저 인간은 조심들 하세요. 저러다 확 칼 들고 덤비는 건 아닌가 몰라.”

    “겁에 질려 자살이라도 하면 모를까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만…. 일단 알겠습니다.”

   

    양추일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서준이 힘차게 기지개를 켰다.

   

    아무튼 이걸로 짝짓기 대작전은 대성공!

   

    남은 미션은 삐진 금춘봉 달래기뿐이었다.

   

   

    *

   

   

    춘 노파네 집으로 돌아온 서준은 훌쩍 담장을 넘어 방으로 들어섰다.

   

    방 안을 들여다보니 우리 금춘봉 씨는 여전히 숙면 중.

   

    아무리 그래도 낮잠을 너무 오래 자는 것 같아 그녀를 흔들어 깨웠다.

   

    “야야, 춘봉아. 너 그러다 밤에 못 잔다?”

    “우으…. 시끄러…. 오 분만….”

    “어허! 안 일어나지! 빨리 안 일어나면 나 확 그냥 장가 가버린다?”

   

    춘봉이의 눈이 번쩍 떠졌다.

   

    “으기이익…!!”

   

    얼굴이 새빨갛게 물든 춘봉이가 발버둥쳤다.

   

    “내가…! 내가 어떻게 잊었는데…!”

    “음. 효과 확실하구만.”

    “개새끼야!”

   

    냥냥펀치를 실컷 얻어맞고 난 뒤, 서준이 그녀를 번쩍 안아들어 목마 태웠다.

   

    “자자, 우리 춘봉이. 오빠랑 산책 갈까?”

    “…또 어딜?”

    “산채?”

    “…도대체 산책을 멀쩡한 데로 가는 적이 없어.”

   

    하아…. 춘봉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툴툴대면서도 따라올 거 다 안다.

   

    그렇게 춘봉이를 목마 태운 채 방을 나섰다.

   

   

    *

   

   

    “와, 다시 봐도 좀 개쩌는 듯. 무슨 예술작품 같지 않냐 이거?”

   

    서준은 여전히 꽁꽁 얼어붙어 있는 산채를 보며 감탄했다.

   

    그때 힘을 조금 많이 쏟았더니 산채를 뒤덮은 음기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게 꼭 폼페이에서 발굴된 화산재에 파묻힌 유해 같았다.

   

    산적 얼음 동상이 한가득 있다는 말이다.

   

    “이걸 보고 예술작품? 너 진짜 머리 이상한 거 아니냐?”

    “거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오.”

    “니 머리 상태가 더 심한 거 같아.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헉.”

   

    예의상 놀라는 척을 하며 산채 내부에 들어선 서준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보자…. 뭐 쓸 만한 거 없으려나?”

    “글쎄.”

   

    춘봉이도 서준의 어깨 위에서 폴짝 뛰어내려 산채를 뒤지기 시작했다.

   

    근데 말이 산채지, 이건 뭐 그냥 산에 있는 마을 수준이다.

   

    산적 주제에 의외로 인테리어를 깔쌈하게 해뒀다.

   

    “오, 여기가 두목이 쓰던 곳인가 보네.”

   

    산채에서 유독 커다란 건물 하나. 나무로 된 문을 부수고 들어간 서준이 그 내부를 보고 감탄했다.

   

    “이야…. 이 새끼는 청소를 안 하고 살았나?”

   

    진짜 존나 개판이다. 꽁꽁 얼어붙었는데도 뭔 희한한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게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진다.

   

    “으엑…. 남자들은 원래 이렇게 정리를 안 하고 사냐?”

    “어허, 금춘봉! 그런 성차별적 발언은 진짜 큰일나요!”

    “지랄.”

   

    콧방귀를 뀐 춘봉이 한 손으로 코를 막은 채 검을 빼들고 이곳저곳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서준도 동참해 온갖 짐이며 쓰레기 따위를 들췄다.

   

    “오. 이거 뭐냐?”

   

    은자 몇 개, 온갖 잡동사니, 그냥 쓰레기. 그러다 조금 쓸 만해 보이는 걸 발견했다.

   

    “어디 봐봐.”

   

    자그마한 주머니를 열어 그 내용물을 살핀 춘봉이 쯧 혀를 찼다.

   

    “거령신단巨靈神丹이네.”

    “신단? 좋은 거냐?”

    “대부분은 거령잡단이라고 많이 부르지. 쓰레기 같은 단약이라서.”

    “뭣.”

   

    근데 왜 이름이 신단이야. 괜히 기대되게.

   

    “녹림 놈들이 원래 그래. 자기네들 무공도 거령신공이니 뭐니 하면서 부르는데 신공은 무슨. 그냥 병신 무공이야.”

    “허세가 좀 있는 친구들이네.”

    “근데 총채주가 초절정이긴 해.”

    “뭣.”

   

    그정도면 신공 맞는 거 아닌가?

   

    서준이 눈을 끔뻑이자 춘봉이 비소를 머금었다.

   

    “총채주가 이상한 거지. 적당한 문파에만 들어갔어도 이름을 날렸을 텐데. 왜 그런 재능을 가지고 녹림에 들어간 건지.”

    “오….”

    “오는 무슨 오. 개잡놈의 새끼한테.”

    

    춘봉이가 총채주를 많이 싫어하는 모양이다.

   

    쓱쓱 소리가 날 정도로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춘봉이가 경기를 일으키며 좋아했다.

   

    “갸아악! 하지 맛!”

    “아유 귀여워.”

    “그 귀엽다는 소리도 좀 하지 마!”

    “오구 그래. 우리 춘봉이 너무 예쁘다!”

    “이익…!”

   

    펄펄 날뛰는 춘봉을 보며 낄낄 웃던 서준이 거령신단 하나를 입에 털어넣었다.

   

    “그걸 왜 쳐먹어!”

    “잠시 효능 검증이 있겠습니다.”

    “아니! 미친놈아! 빨리 뱉어! 그거 내공 폭주 시키는 단약이라고 병신아!”

   

    안색이 새하얗게 질린 춘봉이가 달려들었지만, 이미 거령신단은 삼킨 뒤였다.

   

    “배, 뱉어! 빨리! 토하라고!”

   

    춘봉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저대로 명치를 후려칠 심산인 것 같았다.

   

    기겁한 서준이 손을 내저으며 물러섰다.

   

    “야! 잠깐! 멀쩡하니까 잠시만! 살려줘!”

   

    춘봉이 속이 타는 듯 발을 동동 굴렀지만, 서준은 태연했다.

   

    구역질 나는 맛과 함께 목구멍으로 넘어간 거령신단이 육신에 스미며 내공을 간지럽히는 것이 느껴진다.

   

    ‘과연. 이런 식인가?’

   

    내공의 흐름이 거칠고 투박해진다. 또한 그래도 일단 딴에는 신단이라 이름 붙일 정도는 된다는 듯 내공이 순간적으로 불어나는 듯한 느낌도 있었다.

   

    서준은 눈을 반개한 채 가만히 그 흐름을 관찰했다.

   

    폭주하는 내공과 뜨거워지는 육신. 마약 성분이라도 섞여있는지 묘하게 정신이 들뜨는 듯도 하다.

   

    “후우….”

   

    내뱉는 숨에 거령신단의 약효를 모조리 뱉어낸 서준이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이정도인가. 거령신단의 수준, 파악했다.”

    “괘, 괜찮아…?”

   

    춘봉이가 까치발을 들어 서준의 안색을 살폈다.

   

    서준은 양 손바닥으로 그녀의 볼살을 꾸욱 누르며 미소지었다.

   

    “아유 그럼요. 그래도 나름 효과는 있네.”

   

    영약은 아니다. 춘봉이의 말대로 내공을 폭주시키는 각성제라 볼 수 있었다.

   

    정확히는 잠력을 폭발시킨다 해야 하나?

   

    온몸에 있는 힘을 죄다 끌어쓴 뒤 며칠 내내 앓아누울 것 같은 단약이었다.

   

    “내 이 무공에 친히 거령신공이라는 이름을 붙이겠노라.”

    “…뭐 인마?”

    “잠력을 폭발시켜서 한계 이상의 힘을 내는 무공이라 할 수 있지.”

   

    간단히 말해 한계돌파다. 근데 쓰고 나면 좀 많이 아픈.

   

    다만 춘봉이가 꽂힌 부분은 그게 아니었다.

   

    “거령신공은 새끼야! 녹림 놈들 무공 이름이고!”

    “아니지. 잘 생각해봐. 어차피 녹림 친구들은 만나면 목을 썰든 어디 문파에 넘기든 할 범죄자들이잖아?”

    “근데.”

    “그러면 어차피 만나자마자 족칠 건데, 내가 걔네 다 족치면 거령신공도 내가 원조인 거 아님?”

    “네가 거령신공 쓴다고 하면 다른 사람들이 참 좋게 보겠다?”

    “내가 이거 쓸 때 거령신공! 하고 외칠 것도 아닌데 뭐 어때.”

   

    춘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가?”

    “그런 거지.”

    “맞는 거 같기도 하고?”

    “그렇지?”

   

    그럼 결정이다.

   

    이제부터는 이게 거령신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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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무공 뭐 별거 없더라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fell into a phony martial world. But they say martial arts are so hard? Hmm… is that all there is t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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