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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

   EP. 36

     

   정무학관의 비무대회는 선뜻 가벼운 듯하면서도 강호의 수많은 인사들을 초청하는 자리였기에 학관의 모두가 관심을 가지는 중요한 행사였다.

     

   학관의 학생들은 각자 1년간 갈고 닦은 무예를 뽐내고 그들의 스승은 제자의 성장을 지켜보며 그들의 잠재성을 파악한다.

   그리고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처럼 명망이 높은 곳에서는 그들의 가치를 판단해 차후 강한 무인이 될 그들과 사전접촉을 통해 인맥을 쌓는 것이다.

     

   간혹 몇몇 알짜 학관생도들은 천하백대고수의 선상에 오른 저명한 무인의 제자가 될 기회까지 있었으니 이야말로 개천에서 용이 되기 위한 발판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어이 거기 새치기하지 마쇼!”

   “잠깐 뒷간 다녀온 건데 뭔 헛소리야! 내가 먼저 왔어!”

   “뭐? 이 새끼가…!”

     

   웅성웅성-

     

   사람들이 비무대회 신청 날짜에 인산인해를 이루는 것은 그리 해괴한 광경이 아니었다.

     

   “자자, 다들 싸우지들 마시고 줄들 서시오. 학관 학생이라면 앞으로 닷새간 참가 신청을 받아주니 너무 역정 낼 필요 없소!”

     

   녹색 무복을 입은 학관 사부의 외침에 콩나물 대가리마냥 다닥다닥 붙어 있던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줄을 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무리에 속해 있던 세 명의 장정들.

     

   그 이름도 유명한 구파일방이자 해남도 여모봉에 자리한 해남파의 3대 제자 셋은 최근에 있었던 모종의 사건을 떠올리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종악 사형, 김시인 그놈이 요즘 통 보이지 않습니다.”

   “너도 그렇냐? 나도 그렇다.”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원래 비무 도중에 그렇게 패도 결국에 수업은 꾸역꾸역 들어오던 놈입니다.”

   “무슨 상관이냐, 놈이 수업에 안 나오면 우리야 좋지 않으냐?”

     

   해남파 종자 배 대사형인 종악의 심드렁한 대꾸에 처음 입을 열었던 막내가 미간을 찡그리자 옆에 있던 둘째 종명이 말을 이었다.

     

   “사형, 종혁이 이 녀석 지난번에 그놈한테 당한 이후로는 제대로 잠도 못 들고 있습니다. 한 번은 꼭 직접 밟아야 속이 시원할 거 같다는데 김시인 그놈이 아무 수업도 출석을 안 하니 원……”

     

   종명의 설명에 첫째 종악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내려간다. 별것도 아닌 일에 심력을 낭비하고 있는 자신의 막내 사제가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고작 그런 일 가지고 아직도 뚱해 있는 것이냐? 벌써 한참이나 지났건만… 쯔쯧.”

   “사형! 고작이라니요? 저는 그때 일 때문에 밥도 잘 안 넘어갑디다. 그놈 때문에 해남파가 어떤 수모를 겪었는지 모르시는……”

   “해남파가? 아니지, 수모를 겪은 건 종혁, 네놈이 아니더냐?”

     

   종혁은 서서히 굳어지는 종악의 얼굴을 보고는 재빠르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종악은 구파일방인 해남파에서도 나름대로 재능이 있다고 여겨지는 인재였다.

   무공은 물론이요. 기관진식이나 진법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해남파의 장로들께도 인정을 받은 남자.

     

   아마도 저 성질머리만 아니었다면 차기 장문인으로도 거론될 수 있는 인물이 아닐까 싶었다.

     

   ‘젠장.’

     

   그런 사람이니 고작 같은 배분이라는 것만 말고는 부족함뿐인 막내 사제를 얼마나 못마땅해 하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눈치껏 이해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럴싸한 배경도 없고 제대로 된 무공도 배우지 않은 무명인을 상대로 패배한 막내에게는 더더욱 말이다.

     

   ‘김시인…… 다음에 만나면 작살을 내주마.’

     

   종혁은 김시인이 비무대회에 참가하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대진 운이 나쁘다면 애초에 만남이 성사될 수도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놈이 창피를 당하는 것 한 번만 보면 꿀잠을 잘 수 있을 같았기에 그까짓 대진 운은 아무렴 상관없었다.

     

   그런데 그때.

     

   “사람이 엄청 많네요.”

   “대회 신청 첫날이니까요.”

     

   그들의 옆에 있던 한 쌍의 남녀에게서 익숙한 목소리와 낯선 목소리가 함께 들려왔다.

     

   “화영 소저는 비무대회가 처음이 아니신가 봅니다?”

   “저는 이제 졸업반이니 네 번째 이지요. 그러는 시인 소협은 비무대회가 처음이신 건가요?”

   “아… 예, 뭐. 그렇죠?”

     

   김시인이다.

   해남파…… 아니 해남파 3대 제자의 막내인 그에게 수모를 주고 비겁하게 몸을 숨겨 버렸던 나쁜 새끼.

     

   “이거 비무대회 신청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겠는데요? 먹을 거라도 들고 올 걸 그랬나?”

   “외부인의 대회 접수는 사흘 뒤부터 시작이니 지금은 신원확인에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거예요.”

   “어? 외부인들도 참가 신청을 해요?”

   “많지는 않지만 아주 없진 않죠. 정무학관은 관官과 무림의 협약으로 만든 기관이라 모두에게 열려 있거든요.”

   “오호.”

     

   주변에 있던 몇몇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그들을 바라봤지만 두 사람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시시덕거리며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칠흑 같이 검은 머리에 희고 검은 옷을 입은 음침한 사내와 그 옆에 있는 한 떨기 꽃을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소저.

   그저 잠깐 보고 넘기기에는 너무도 독특한 조합이라 계속해서 시선이 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김시인에게 원한이 있는 종혁만 빼고.

     

   ***

     

   “어이.”

     

   화영과 함께 대화를 주고받으며 궁금했던 것들을 신나게 나누던 나는 옆에서 들려온 불쾌한 말투에 슬쩍 고개를 돌렸다.

     

   “네놈이 왜 여기 있는 거냐?”

     

   흔한 얼굴에 청색 무복을 차려입은 못생긴 남성.

   특별할 것 없는 얼굴이었지만 왠지 낯익은 그의 모습에 나는 손가락을 들어 그를 가리키며 화영에게 말했다.

     

   “혹시 화영 소저 지인입니까?”

     

   나의 단순한 반응에 그 못생긴 녀석이 더 못생긴 얼굴을 하며 윽박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이 새끼가 어디서 장난질을…!”

     

   하지만 그의 투덜거림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정확히는 뒤에 있던 두 일행이 막아섰기에 더 이상 이어질 수 없었다는 게 맞는 말인 것 같지만.

     

   “종혁아. 그쯤 해라. 보는 눈이 많다.”

     

   사실 그들에게 청색 무복을 입은 학관 학생들은 눈치를 볼 만한 대상이 아니었다.

   구파일방에 속한 해남파의 제자들인 그들에게 굳이 시비를 걸 멍청이는 이곳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학생들에 한정된 말일 뿐. 그들을 가르치는 사부들에게 굳이 밉보일 필요는 없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쳇… 운 좋은 줄 알아라.”

     

   삼류 악당 같은 대사를 뱉으며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는 녀석.

   하지만 그 대사를 듣는 순간, 눈앞의 놈들이 2층에 올라온 첫날, 나에게 시비를 걸었던 그 쭉정이들임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검을 보니…… 해남파인가?’

     

   그들의 옆구리에 매인 장검이 눈에 들어왔다.

   칼집에 그려진 나란한 파도 문양. 천월신공을 배우는 동안 화영에게 들은 정보를 취합하니 나름대로 그들의 소속이 추측이 됐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해남파의 제자 중 가장 키가 크고 훤칠하게 생긴 놈이 내 앞으로 걸어 나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놈도 비무대회를 참가하겠다고?”

     

   가만히 보고 있으니 이놈이 이 셋 중 가장 대장인 것 같았다.

   무슨 만화 속 엑스트라도 아니고 키 순서대로 첫째, 둘째, 셋째가 뭐냐… 유치하게스리.

     

   “그런데?”

     

   나는 나름 긍정의 의미로 놈의 눈을 바라보며 간단히 대꾸했다.

   어차피 그렇게 중요한 인물도 아닌 것 같고 굳이 입씨름을 해봐야 얻는 것도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녀석의 이어진 말은 은근한 호승심을 불러일으켰다.

     

   “김시인, 웬만하면 예선은 통과해라. 그때 내가 해남파의 이름으로 널 밟아 줄 테니까. 물론 그럴 능력이 된다면 말이야.”

     

   그의 말에 뒤에 있던 똘마니1,2도 눈을 부라리며 나를 쏘아봤다.

   놈들은 내가 저 종혁이라는 녀석을 한 방에 제압한 게 계속해서 신경 쓰였던 모양이었다.

     

   해남파라는 이름.

   이곳에는 구파일방의 속가 제자들도 있었지만 본가의 제자들도 있었기에 한 번의 패배가 자존심에 상당히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는 모양이었다.

     

   “어, 뭐 너도 힘내.”

     

   하지만 나는 딱히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뭐 어쩌라는 건가. 너희들이 쌈박질을 하든 영역싸움을 하든.

   내 목표는 비무대회 결승에 진출하는 것이다. 그래야 화영의 인정을 받게 될 것이고 탑의 3층으로 올라가며 모든 능력을 전수받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내 심드렁한 반응이 그들의 자존심에 또 다른 상처를 남겨 줬나보다.

     

   “크읏. 그 오만함도 조만간 후회가 될 것이다. 각오해라.”

     

   그는 뒤를 돌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어이가 없게도 그들의 자리는 우리의 바로 옆 줄.

   어차피 계속 옆에 서 있을 거면서 왜 이런 불편한 상황을 만들었는지 참 이해가 가지 않았다.

     

   ***

     

   그날 저녁.

     

   나는 이제는 개인 침대가 되어 버린 의약당 나무침대에서 가부좌를 튼 채, 조심스레 눈을 떴다.

     

   띠링.

     

   [음의 기운이 양의 기운과 충돌합니다.]

   [‘운기’에 실패했습니다.]

     

   온몸에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있었다.

   음의 무공을 배운 상태에서 양의 무공을 익힌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젠장…”

   “그러게 내가 포기하라 말하지 않았느냐. 음의 무공을 익히고 양의 무공까지 탐내다니, 욕심도 많은 제자로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당휘소가 혀를 끌끌 차며 중얼거렸다.

     

   당휘소는 내가 천월신공이라는 무공을 익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자신의 무공을 전수하기를 포기했었다.

     

   음의 기운을 받아들인 사람이 양의 무공을 받아들이는 건 하늘이 내려 준 천무지체의 육신이 아닌 이상 불가능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고 그의 눈으로는 내가 그저 똥고집을 피우는 한심한 제자였을 뿐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무려 A급 난이도의 임무. 게다가 사천당가의 무공이라는 달콤한 보상이 눈앞에 아른거리는데 도저히 손을 놓고 싶지가 않았다.

     

   “사부, 혹시 뭔가 다른 방법 없습니까? 그 맛대가리 없는 단약을 사발로 먹으래도 먹을게요.”

   “개소리 마라. 불가능은 불가능이니. 천년화리의 내단이라도 있으면 몰라. 그냥 힘으로 음의 기운을 밀어내는 건 불가능하다.”

     

   당휘소의 설명에 나는 맥이 풀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영약을 어디서 어떻게 구한단 말인가. 당연하게도 지금 나는 이 학관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 하는 상태였고 벗어날 수 있다고 해도 시간이 너무나도 촉박하다.

     

   ‘튜토리얼 상점에도 물건은 없는 것 같았고.’

     

   혹시나 튜토리얼 포션이 음기를 밀어낼 수 있을까 싶어 당휘소 몰래 한 잔을 마시고 운기를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포션을 마시는 순간 몸이 건강해져 음기가 강해졌을 뿐, 양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포션으로 양기만 강하게 끌어올릴 방법은 없나?’

     

   나는 양기를 받아들일 방법이 없을까 계속해서 고민했다.

   지금 문제는 음기가 내 몸에 차지하는 공간이 너무 많아 양기가 들어올 자리가 없다는 것.

   천년화리의 내단처럼 화기가 강한 영약이 있는 게 아니라면 그 음기를 약화시킬 방법이 없……

     

   어?

     

   ‘약화시킨다?’

     

   지금 나의 몸은 음기로 가득 채워진 상태였다. 그것은 물론 천월신공을 배우면서 그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였기 때문.

     

   그렇다면 그 기운을 모두 버릴 수만 있다면?

     

   벌떡.

     

   “어우 깜짝이야. 놀랐잖아!”

   “방법이 있어요!”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냐?”

   “사부님, 혹시 사부님이 만든 단약 중에 양기가 강한 단약이 있습니까?”

   “뭐, 있긴 있다만 그런 걸로는 턱도 없다.”

   “상관없습니다. 양기 첨가물 정도만 있어도 충분하니까요. 혹시 부탁드릴 수 있겠습니까?”

     

   나의 갑작스러운 반응에 당휘소가 끄응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도 내가 무슨 짓거릴 할지 궁금했는지 군말 없이 구석에 만들어 둔 누리끼리한 단약을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어…… 이것밖에 없나요?”

   “이게 양기는 제일 세다. 싫으면 말든가.”

     

   그가 내민 것은 내가 2층에 처음 올랐을 때 섭취했던 쾌청단.

   그걸 잡는 순간 몸이 움찔거리며 격한 거부 반응을 일으켰지만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전혀 쾌청하지 않은 단을 입안에 쑤셔 넣었다.

   그러고는.

     

   [전심전력(C+)을 발동합니다.]

     

   1분 30초간 압도적인 능력치의 상승을 가져 오지만 그 부작용이 상당해 사용을 꺼리던 스킬.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부작용이 기대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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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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