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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

    <36 – 반입물품 보안검색>

     

    기프트 아카데미는 특수한 ‘섬’에 존재한다.

    공간이동 마법진과 비슷한 효과가 반영구적으로 발동하는 <차원관문>을 통해서만 출입이 가능하다.

    명목상의 이유야 많다.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서라거나.

    외부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거나.

    플레이어에게는 코웃음만 나오는 변명이다.

     

    ‘아카데미에서 사망한 회차가 한두 번도 아니고 뭐만 했다 하면 침입자가 들어오는데 무슨 침입방지야?’

     

    진짜 이유는 보다 심플하다.

    귀족과 평민, 인간과 아인종.

    조금만 달라도 상대를 같은 지성체로 인정하지 않고 차별하려 드는 문명에 교화되지 않은 야만인들을 길들이기 위해서다.

    사회에서 누리던 부와 권력.

    아카데미 바깥의 힘을 철저하게 배제하며 학생들이 본연의 재능을 가꾸는데 집중할 환경을 조성한다.

    그 시작이 마법장비 반입금지.

    장비를 장착하지 않으면 생명유지에 문제가 발생하는 의료용 장비나 비상시에 대비한 제어장비, 비상시에 대비한 구조장비 정도를 제외하면 장비도 압수다.

     

    “반입금지 물품입니다.”

    “이런.”

     

    지젤의 마법배낭도 물론 반입금지에 걸렸다.

     

    “으하핫! 비겁하게 템빨로 시험을 보더니 결국 입학 후에는 덜미를 잡혔군. 고용주 양반.”

    “그쪽의 커다란 봉은 소지는 가능하지만 개인훈련 이외의 용도로 사용하려거든 교내 사용허가를 따로 받아야 합니다. 소지허가만 드리겠습니다.”

    “그건 너무하지 않은가!”

     

    손오천의 커다란 봉은 장식용이 됐다.

    사실상 오십보백보다.

     

    “이사벨 신입생의 짐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카데미 보안검색대의 보안검색마법사들은 한 치의 자비도 없이 온갖 소지물품을 소화물 보관함에 차곡차곡 집어넣었다.

    며칠 쉬는 사이에 온갖 물품을 다 싸들고 온 내 짐들이 몰수당하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아카데미에 입학하면서 이렇게까지 별난 반입요청물품은 처음 보는군요.”

     

    보안검색마법사가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나침반과 천에 둘러싸인 야광석, 케이스에 담긴 구조거울과 금속막대, 나이프 따위를 늘어놓았다.

    옆에서 검사를 받던 모험단 출신 이사벨의 짐보다 이쪽이 더 모험가로 보이는 내용물이었다.

     

    “어디 던전이라도 탐사하러 오셨습니까?”

    “일단은 저도 모험가니까요.”

     

    멋 따위는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 냉혹한 모험가세트 기본복장을 입은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이런 순간을 위해서다.

    요리사가 웍과 조리도구를 지니고 있는 것이 당연하듯이 모험가가 모험도구를 지니고 있는 것도 당연하다.

    준비성이 유별나다는 시선을 받더라도 모험가라면 그럴 수 있지, 하고 넘어가게 된다.

     

    ‘준비해두면 언젠가는 쓸 일이 있겠지.’

     

    아카데미가 던전으로 식별된다면 <초대형><생지옥><탈출불가><초고렙존>은 확정이다.

    세계제일의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에 세계제일의 실력자들이 우글거리는 것은 당연지사.

    교수들만 해도 어지간한 외부던전의 보스급보다 더 강한 양반들이 즐비하다.

    그런 아카데미의 교육이 가혹한 것은 당연지사.

    유비무환이라고 먼 미래에 대비해 미리미리 준비를 해둘 필요가 있다.

     

    “이걸 다 몰수한다고요?”

    “부득이한 조치입니다. 필요한 물품은 아카데미 내에서 직접 만들거나, 구비를 하거나, 포인트를 벌어 사용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포인트요?”

     

    그런데 이거, 묘한 기능이 나타났다.

    포인트라면 앞서 입학시험장에 도착하면서 받았던 그것이 아닌가.

     

    “입학시험에서 여러분이 받은 점수 또한 포인트로 변환됩니다.”

     

    게임에서는 몇 달에 한 번씩 아카데미 내에 등장하는 포인트상점.

    그것이 현실성 패치와 함께 아카데미의 물품반입에 사용하는 재화로 변화했다.

     

    “소지포인트는 모든 신입생에게 일괄 지급된 마법시계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마법시계.

    시계 본연의 기능인 시간확인 외에도 소지포인트 확인, 강의시간표 확인, 공지사항 확인 등의 기능이 줄줄이 딸린 손목시계에 스마트폰이 합쳐진 물건이다.

     

    <포인트내역>

    ━━━

    탑승편 조기도착 보너스 +55200

    입학시험 상급반 1차 관문 수석달성 보너스 +100000

    입학시험 상급반 2차 관문 조기입학 보너스 +50000

    입학시험 보유점수 교환 +12200

    ━━━

    합계 217400포인트

     

    역시 시험은 잘 치르고 볼 노릇이야.

    어느새 포인트가 두둑하게 쌓였다.

     

    <포인트사용>

    ┗<소지 및 사용허가신청>

    ━━━

    나침반 -50포인트

    배낭 -500포인트

    ……

    천으로 감싼 야광석 -2000포인트

    ━━━

    합계 -10250포인트

     

    와 이건 못 참지.

    곧바로 플렉스를 해버리려는 내 앞에 어느 날 삶에 불현 듯 찾아오는 사회의 쓴맛처럼 묵직한 절망이 돌아왔다.

     

    [신입생은 소지허가신청이 불가능합니다.]

    [신입생은 사용허가신청이 불가능합니다.]

     

    “???”

     

    그림의 떡.

    화중지병畫中之餠.

    Pie in the sky.

     

    눈에 보이는데 먹을 수는 없는 절망.

    희망고문이 나를 괴롭혔다.

     

    “원망스러워…”

    “안됐군요. 조금 더 원망 받을 일이 생겨서.”

     

    보안검색마법사가 사탕주머니랑 돌주머니까지 반입금치물품에 올려놓았다.

    억울해서 눈물부터 나오려고 하니까 이사벨이 다가와 어깨를 다독였다.

     

    “마법사님. 잠깐 저 좀 봅시다.”

     

    보다 못한 지젤이 마법사를 따로 불러냈다.

    둘이 무슨 얘기를 하는 걸까.

    한동안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더니, 세상 모든 물건을 반입금지물품함에 집어넣지 않으면 죽는 병에 걸린 마법사가 사탕주머니와 돌주머니를 꺼냈다.

     

    “미안하게 됐습니다. 그런 사정이 있으면 진즉 말하면 좋았을 것을… 이건 돌려드리겠습니다.”

    “사정이요?”

    “오크노디양. 이럴 때는 그냥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시면 됩니다.”

     

    하긴 이유가 뭐 중요하겠어.

    리프가 건네준 소중한 사탕과 나만의 작은 보물인 스탯석주머니를 지켜줬는데.

     

    “고맙습니다!”

     

    극진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두 손을 배 위에 모으고 고개 숙여 배꼽인사를 했다.

    지젤이 굉장히 흐뭇해하는 얼굴로 인사를 받아줬다.

    이런 인사를 좋아하다니.

    역시 지젤은 늙었어.

    그치만 만학도라고 놀리면 주머니를 압수당할까봐 참기로 했다.

     

     

    * *

     

     

    “검사는 어떻게 무사히 끝났습니까? 작년처럼 폭탄을 가져온 테러리스트나 통신마법기기를 숨겨온 신입생이 나오지만 않으면 좋겠군요.”

    “특이사항이 있습니다. A그룹 오크노디 신입생에 대한 제보입니다.”

     

    명호스님이 나이에 맞지 않은 천진한 미소를 띠며 다가왔다.

     

    “오크노디. 그 신입생이라면 저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분명 1차 시험에서 조기입학을 할 수 있었던 인물이었죠. 어떤 제보입니까?”

    “아이가 독내성 훈련을 받고 있어서 독사탕을 압수하거든 독의 제어와 체질에 큰 문제가 생겨 몸의 균형이 깨질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위험한 독을 아이가 먹고 있단 말입니까?”

     

    보안검색마법사는 식은땀을 흘렸다.

    웃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명호스님에게서 느껴지는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마치 거대한 몬스터를 목도한 기분.

    손가락 하나만 까딱했다간 물려죽을 것처럼 차오르는 긴장감.

    단단히 긴장한 그 모습을 보고 나서야 명호스님이 아차 하더니 기운을 풀었다.

     

    “소승도 아직 수행이 부족하군요. 이 정도로 감정이 흐트러지다니. 못 볼꼴을 보여드려 부끄럽습니다.”

    “아, 아닙니다. 저도 만만찮게 동요했었습니다.”

     

    보안검색마법사는 겨우 한숨 돌렸다.

    호흡 한 번에 기의 출납을 자유자재로 한다.

    동방 출신이라고 무시할 수 없는 정말 대단한 스님이었다.

    그런 스님의 주목을 받는다.

    오크노디 신입생의 자질도 범상치 않다는 뜻이다.

     

    “아이가 돌을 먹는 버릇이 있다고 합니다.”

    “돌을 먹는다?”

    “가혹한 훈련으로 마음이 무너지면서 생긴 정신질환이 아닌지 의심된다는 제보였습니다. 섣불리 아이에게서 돌을 빼앗았다간 마음이 무너질 것이라고…….”

    “허어.”

     

    기구한 아이였다.

     

    “몸은 독에 의지해야 하고 마음은 한낮 돌에 의지해야 하니. 자립도 자존도 없는 삶의 고달픔과 애환이 아이가 겪기엔 지나치게 무겁구나!”

     

    명호스님은 동체대비同體大悲를 느꼈다.

    중생들의 고통과 슬픔을 제 것처럼 아프게 여긴다.

    자연과 교감하는 드루이드.

    정령과 교감하는 정령사.

    마나와 교감하는 마법사.

    검과 교감하는 검사.

    수많은 직종의 달인들이 그러하듯이 그 또한 영혼의 교감을 이루었다.

    스님이 교감하는 대상은 세속의 중생들.

    중생이란 삶을 누리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뜻한다.

    그렇기에 스님의 교감력은 세상 그 어떤 클래스의 달인들보다도 가장 깊다.

     

    “이 일은 다른 교관이나 교수들, 상부에는 함구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명호스님. 마음은 이해하지만 원칙적으로 모든 특이사항은 위에 보고해야 합니다.”

    “소승이 책임지고 지켜보겠습니다. 지극히 귀의하면 정성은 감응하기 마련입니다. 중생이 서로를 감응도교感應道交의 마음으로 헤아리지 않는다면 무엇을 위한 법과 규칙이겠습니까.”

     

    기준에 맞지 않는 이들을 금지하고 규제한다.

    서방의 엘리트원칙주의를 따르고 있다고는 하나, 조금의 흠결도 용납지 않는 가혹한 법으로는 모든 중생을 불행과 도탄에 빠뜨릴 뿐이다.

    명호스님의 그런 진심을 보안검색마법사는 응원하고 싶어졌다.

    불쌍한 아이를 돕고자 스스로 책임을 지겠다 말하는 참된 어른에게 맞서기에는 그가 지닌 양심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부디 무탈하시기를.”

    “평안하십시오.”

     

    두 어른은 서로 합장하며 결심했다.

    한 사람은 모든 일을 잊고 침묵하기로.

    한 사람은 모든 짐을 짊어지고 책임지기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본인만 행복하다면야 괜찮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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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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