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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

       알렉스 선생님의 수업은 어떤 의미로는 버겁다.

         

       교탁 뒤에서 제 존재감을 과시하는 근육도 근육이지만, 진도를 나가는 속도가 거의 빛과 같기 때문이다. 아직 학기 초인데 너무한 거 아니냐고.

         

       강의를 들으면서 졸거나 하진 않는다. 아니, 못 잔다. 큰 소리로 설명하시는데 태연하게 엎드려 있을 만한 친구가 어디 있을까. 아침이라고는 해도 알렉스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정신이 바싹 차려지기 마련이었다.

         

       그러니 졸리더라도 잠드는 건 무리다.

         

       “코오….”

         

       무리가 아니었네.

         

       이 상황에서도 프레이는 태연하게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쟤는 이론마도는 잘 듣는데, 정작 이런 과목에는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알렉스 선생님이 프레이를 안 깨운 건 아니다. 깨워도 다시 엎드리니까 문제지.

         

       아무리 그래도 프레이는 특별반에 들어온 우수 입학생이다. 공부하기 싫어서 저러는 게 아니라, 전날 너무 열심히 해서 피로가 쌓인 것이리라고 알렉스 선생님은 생각하는 듯했다. 전교 1등이 수업시간에 자고 있으면 쟨 뭔가 이유가 있겠거니, 하며 넘어가는 경우와 비슷한 맥락이다.

         

       “좋아, 다음 챕터로 넘어가지! 교과서 46쪽을 펴라!”

         

       촤라락, 하고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가 교실에 울려퍼졌다. 46쪽부터는 인간형 마수에 대한 내용이 적혀있었다.

         

       “너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인간형 마수에 대한 대처법이다! 최근에는 약아빠진 놈들이 하도 많아서 적진에 대놓고 쳐들어오는 간 큰 연놈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지! 여기서부턴 그런 잠입형 마수를 대처하는 방법을 배운다!”

         

       [쉽게 말해서 간첩 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거네요.]

         

       “기본적으로 인간형 마수는 찾아내기가 어렵다. 그래서 전부 재앙급 이상으로 분류하고 있지. 뒷공작을 펼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나라에 위협이 되니 말이다!”

       “전투력과는 관계가 없는 건가요?”

       “음, 여기가 시험 출제 포인트다! 어디까지나 마수의 분류 기준은 국가에 해를 끼치는 정도다! 인간형 마수는 비록 힘이 약하더라도 약아빠졌기에 어떤 식으로든 국가 전반에 큰 타격을 준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마수는 없나요?”

       “좋은 질문이다! 안타깝게도 그런 녀석들은 여태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왜냐,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으면 웬만해선 찾아낼 수가 없거든.”

         

       예컨대 수상한 놈 중에서만 수사를 해서 잡아 족친다는 소리다.

         

       모든 마수는 마석을 달고 다니기 때문에 속을 파 보면 마수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비파괴검사가 불가능하다. 목을 따거나 심장을 도려내는 정도가 아니라면 마수 여부를 특정하기 어렵다.

         

       “인간형 마수는 지능이 높은 애들이 태반이지. 여기선 발각된 녀석들이 주로 사용했던 유형을 정리해서 알려주겠다. 첫 번째는 미인계 유형이다!”

         

       가장 흔하다. 경국지색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국가수반에 미녀나 미남이 끼어들어서 나라를 망치는 경우를 뜻한다.

         

       “미인계의 경우라고는 해도 특정하긴 어렵지. 정말 아름답기만 한 인간 여성일 수도 있거든. 마수가 아니더라도 색욕 때문에 망한 나라는 수도 없이 많다!”

       “그럼 별 의미 없는 거 아닌가요?”

       “아니, 그러니까 더욱 의미가 있지! 그걸 노리고 그 틈에 섞여서 나라를 망치는 진짜들이 있으니 말이다! 어떤 경우든 간에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두 번째 경우.

         

       “두 번째는 국가 최상층까지 올라가서 정무를 보고 있는 녀석들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황제 폐하나 사대공작 같은 사람들 말인가요?”

        “그래. 이 경우 미인계보다 훨씬 잡기 어려워진다. 대개 이쪽에 있는 마수들은 행정처리나 학문에도 능하거든. 미인계를 쓰는 녀석들보다 머리가 좋지. 역사적으로 걸린 사례도 천 년에 걸쳐 단 두 건이 전부다.”

         

       와, 시발. 바로 이거였다. 하스펠트 교수는 마수인 게 분명해.

         

       그게 아니라면 날 그렇게 굴려먹을 리가 없잖아? 역시 인간이 아니었다…!

         

       [여기 귀족들은 대부분 그런데요? 노예를 같은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는 게 정통파 귀족들이에요.]

         

       그럼 그 귀족들이 전부 다 마수였네. 아무래도 제국이 망조에 든 모양이다.

         

       “그러면 그렇게 높은 지위에 있는 마수들은 어떻게 잡나요?”

         

       타당한 질문이었다. 황제 같은 최고권력자가 마수라면 어지간해선 못 잡는다. 누군가가 마수인 걸 알아채더라도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할 것이다.

         

       “흠, 아주 좋은 질문이군!”

         

       하지만 제국도 그리 호락호락하진 않나 보다.

         

       “대응 매뉴얼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방금 질문은 군사 기밀에 속한다! 제군들은 이것 하나만 알아두도록! 언젠가 벌어질지도 모르는 위기에 대비하여 뒤에서 몰래 힘쓰시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렉스 선생님의 그런 외침과 함께 오늘 수업은 끝이 났다.

       

       **

       

       

       황자는 조금 더 안정을 취해야 했다.

         

       이사장이 있었기에 곧바로 관련 서류를 작성했다. 황자의 병결은 정상적으로 처리될 것이다.

         

       “그럼, 전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다른 곳에 일이 있어서요.”

         

       맨 처음으로 침실을 나간 사람은 블랜튼 공작이었다. 그 다음으로 하스펠트 공작이 황제에게 고개를 숙인 뒤 문밖으로 향했다. 마지막으로 빠져나온 사람은 헤를라인 교수와 로베스피에르 이사장이었다.

         

       하스펠트는 저 멀리 앞서나가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몰라도 요새 바빠 보였다. 헤를라인 교수는 애써 그 점까진 물어보지 않았다.

         

       “푸히힝.”

         

       본궁의 앞마당에는 마차 여러 대가 줄지어 서 있었다.

         

       황성과 아카데미 사이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걸어서 이삼십 분 정도면 오갈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무릇 귀족이란 그 거리조차도 발을 움직이기 귀찮아하는 존재들이었다.

         

       적어도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선 네 발로 움직이는 걸 타고 돌아다녀야 한다. 편리한 교통수단을 두고 발을 움직이는 건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하스펠트는 자신의 공작가 문양이 새겨진 마차에 홀로 탔다. 그와는 달리, 기껏해야 백작과 후작위에 속한 헤를라인과 로베스피에르는 같은 마차를 타고 움직였다.

         

       두 사람이 탄 마차의 문이 덜컥, 하고 닫혔다. 마차 내부의 공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헤를라인과 이사장은 한동안 서로의 눈치를 보다가, 이윽고 마차가 출발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사장이 말했다.

         

       “이쯤 하면 됐네.”

         

       [중급 고유마도 ─ 의지(Willpower)] → 해제

       [상급 고유마도 ─ 세뇌 저항(Resistance)] → 해제

       [상급 고유마도 ─ 강인한 의지(Strengthen)] → 해제

       [최상급 고유마도 ─ 불복종(Disobedience)] → 해제

         

       “으하…! 죽는 줄 알았어요.”

       “고생했어.”

         

       이사장이 쓴웃음을 지으며 마력초 한 개비를 내밀었다. 헤를라인은 익숙한 솜씨로 마력초를 문 뒤 라이터가 담긴 경량화 스크롤을 궐련의 끝에 가져갔다. 알싸한 마력향이 마차 안을 가득 메웠다.

         

       자욱한 연기 탓에 눈앞이 살짝 흐려졌지만 창문을 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공기 중으로 흩어진 잔류 마력조차도 지금의 헤를라인 교수에겐 귀했다. 횡격막이 위로 올라갈 때마다 2차 흡연으로 추가 마력을 보충할 수 있었다. 아예 남은 것까지 싹싹 긁어마시겠다는 의지였다.

         

       마력이 웬만큼 보충되자 헤를라인의 사고가 다시 돌아갔다.

         

       “물증도 없으면서 엘리예프 자작가를 털어버리겠다고 했을 땐 소름이 돋았습니다.”

       “나도 그럴세. 공작위가 황실을 저리 주무르다니, 제가 섭정이라도 되는 줄 아나 보군.”

       “그렇지 않을까요? 지금 나라 꼴을 보면 타인에게 국정을 의탁해도 될 수준이에요.”

         

       두 사람은 각자 방금 전의 상황을 머릿속에서 복기했다.

         

       황자와 황제와의 관계는 여태까지 보고 들은 것 중에서 가장 좋았었다. 그러나 마지막에 황자의 태도가 급변하는 걸 보고 위화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로베스피에르의 경우에는 황자를 어릴 때부터 봐 왔기 때문에 기시감까지 들었다. 마치 과거가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듯했다.

         

       잠깐의 생각 끝에 먼저 입을 연 건 헤를라인 교수였다.

         

       “이사장님, 이걸로 확실해진 것 같습니다.”

         

       헤를라인이 던진 화두를 로베스피에르가 받아든다. 그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래. 인간도 아닌 놈이 똬리를 틀고 앉아있는 모양이구나.”

       “국운이 다한 걸까요?”

       “더 두고 봐야지. 현재의 우리로서는 나라에 망조가 들려는 걸 어떻게 해볼 수 없다.”

         

       그 말에 헤를라인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어이가 없어서 그랬다.

         

       ‘필리우트 제국 천 년의 역사가 이런 식으로 끝장나는군.’

         

       그리 생각하니 오히려 초연해졌다. 거대한 역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단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기에.

         

       “결국 이 정세를 뒤집으려면 그 방법밖에 없지 않을까요?”

         

       헤를라인의 질문에 로베스피에르는 계속해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암. 좋은 문화는 수입하라고 있는 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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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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