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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

       

       내가 학교에 다니고 가장 불편했던 게 뭐냐면, 우선 남녀 분반이었다는 점이다.

       차라리 합반이면 마음이 편했을 텐데, 분반이라 오히려 불편했다.

       

       “생리대 남는 사람? 아, 이걸 깜박하네.”

       “어휴, 까먹을 게 따로 있지.”

       “…….”

       

       지금처럼 이런 대화를 들을 때면 참 반응하기 곤란하다.

       여자로 산 세월이 이제 어언 17년.

       충분히 적응되었고, 육신과 정신의 괴리도 이제 사라진 상태다.

       

       하지만, 묘하게 이런 분위기는 여전히 적응하기 어려웠다.

       오히려 전생이었으면 무덤덤했을 텐데.

       

       ‘심심해.’

       

       그 때문인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어언 석 달.

       친구가 단 한 명도 생기지 않았다.

       대체 왜지?

       나처럼 순하고, 친절한 성격이 또 없는데.

       

       “먼저 말을 걸면 되잖아, 멍청아.”

       

       그런 고민을 점심시간에 이지연에게 털어놓으면, 입에 물고 있던 막대사탕을 좌우로 흔들며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먼저 말을 걸려고 하면.”

       “하면?”

       “……도망가.”

       “흐응.”

       

       이지연은 뭐 대충 알겠다는 얼굴이다.

       

       “면상이 그러니, 확실히 부담스러울만 해.”

       ‘나 부담스러운 얼굴인가.’

       

       그보다 면상이 뭐야, 면상이.

       가끔 이지연은 너무 까칠하게 말하는 경향이 있다.

       

       “아무튼,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고.”

       “중요한 거야.”

       “그보다 아까 출연할 생각이 있다는 두 개가 뭔지나 좀 말해봐.”

       “중요한 거라니까?”

       

       이지연은 내 교우관계 따위는 아무래도 좋은지, 아침에 말했던 것을 잊지 않고 물어왔다.

       정말 너무해.

       나는 뾰루퉁 입을 내밀며 말했다.

       

       “연극.”

       “응?”

       “이번에 종로의 소극장에서 열리는 연극 오디션에 나갈 거야.”

       

       이지연은 그런 내 말에 두 눈을 깜박였다.

       마치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고 묻는 시선.

       

       “……내가 하나 물어다 줄까? 잘 말해보면 좋은 거 구할 수 있어.”

       

       드물게 상냥한 이지연의 말.

       그 정도로 연극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들렸던 모양이다.

       

       “그야, 그때 학교는 어쩌려고?”

       “공연 기간이 여름 방학과 겹쳐서 괜찮아.”

       

       연습은 학교 다니면서도 할 수 있고.

       학교에도 어느 정도는 허락을 받아둘 생각이다.

       

       “그리고 두 가지라며? 연극 말고는 또 뭐야?”

       “그건 연극을 해야 할 수 있는 거.”

       “뭔 소리야, 진짜.”

       

       이지연은 농담하지 말라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진담인데.

       

       ‘복귀 후, 첫 작품은 중요하니까.’

       

       사춘기가 지나고, 내 감정과 정신이 안정에 이르는 것을 느꼈다.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잘 해결될 수 있었다.

       

       내가 배우 일을 복귀하기로 마음먹은 것도 그쯤이다.

       막, 고등학교에 입학했던 봄.

       

       그때부터, 나는 복귀를 위한 첫 작품에 대해 여러모로 고민해왔다.

       

       ‘뭐가 좋을까.’

       

       나는 전생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그에 따라 무엇이 성공할 작품인지, 실패할 작품인지 대부분 알고 있었다. 학교의 수업과 관련된 건 어제 배운 것도 잘 떠오르지 않는 나지만, 이런 부분에선 기이할 정도로 선명하게 떠올랐으니까.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해도 몇 가지가 있었다.

       

       ‘다른 것보다 맡을 수 있는 배역이 중요해.’

       

       복귀 후 첫 작품이니 그만큼 임팩트를 주는 작품이 좋다.

       그중 오디션으로 뽑히는 작품은 그 수가 적고.

       그마저 대부분 서정적인 작품.

       

       ‘흐음.’

       

       그리고 그런 고민 끝에 내가 내린 건 하나.

       하지만, 그 하나를 위해선 선결될 조건이 있었다.

       

       그것이 내가 선택한 연극이다.

       다만.

       

       “?”

       

       나는 힐끗 지연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 시선을 느낀 지연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 했다.

       

       하나 걸리는 점은, 내가 배역을 따냄으로 생기는 여파였다.

       이지연이나, 조서희처럼.

       

       특히 이지연.

       이지연은, 본디 그 일을 계기로 악평을 잔뜩 먹게 된다.

       그 뒤 크게 눈에 띄지 않다가 성우 관련 이슈로 영원히 업계를 떠난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 악평을 먹었을 CF를 내가 가져가며 도리어 무난히 잘 성장해나가고 있었다.

       이대로 라면 인기 드라마의 주역을 맡는 것도, 그리 먼 일이 아니겠지.

       

       ……역시 너무 잘 풀렸어.

       아니, 이지연이 잘 풀린 건 다행이긴 한데…….

       

       

       “뭐야. 왜 그렇게 봐?”

       “……아니.”

       

       나는 이지연을 슬쩍 바라보다, 스마트폰에 표시된 날짜를 보았다.

       얘도 본래라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기인데 어쩌지.

       

       이대로 있어도 괜찮나.

       여러모로 복잡한 생각이 오갔다.

       

       “이지연.”

       “응?”

       “그, 다음에 우리 집 한번 놀러 오지 않을래?”

       “너희 집? 그러지 뭐.”

       

       지연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아무튼 이지연과 관련된 일은 그때 어떻게 해보도록 하고.

       문제는 내 복귀에 관한 것.

       

       ‘종로에서 열리는 연극 오디션.’

       

       청소년 연극이 아닌 한, 보통 10대 연극배우는 거의 뽑지 않는다.

       하지만, 나라면 어떻게든 해낼 수 있겠지.

       

       ‘제목이 아마.’

       

       「눈을 감고」라는 이름의 연극이다.

       전생에는 여러모로 화제를 모았던 연극이었지. 

       나름 인기를 모은 건 물론, 이후 거기에 출연했던 배우가 영화에도 출연하여 큰 화제가 되었다.

       

       그래, 이게 딱 좋다.

       이후 벌어질 사건을 생각한다면.

       

       ***

       

       ‘또 이상한 생각 하나 보네.’

       

       이지연은 결국 제대로 설명도 안 해주고, 점심시간이 끝나자마자 자신의 반으로 돌아가는 서연의 뒷모습을 보았다.

       

       ‘연극이라.’

       

       솔직히 의아한 부분이 많다.

       왜 갑자기 연극일까.

       

       ‘태숨달 연화공주’라는 간판을 내세우면, 여전히 먹힐만한 곳이 많다.

       물론 10년이나 쉬었으니, 반드시 검증은 거칠 필요가 있겠지.

       

       하지만 서연이 그런 간단한 검증조차 통과하지 못할 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쟤는 진짜 배우니까.’

       

       진짜 배우.

       지연은 그런 말을 곱씹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케이블 드라마에서 그럭저럭 잘해나가고 있는 지연이지만, 서연의 연기를 볼 때면 역시 차이를 느낄 수밖에 없다.

       

       예전에는 그저 감정연기만을 내세웠다면, 지금 서연의 연기는 ‘굳이’ 그걸 하지 않아도 충분히 다채로웠다.

       천재.

       그녀를 가르치던 모든 연기 강사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던 말이다.

       오히려 10년이나 쉰 게 이해가 안 됐다.

       

       솔직히 언제든, 출연할 만한 작품은 얼마든지 있었는데.

       

       “하여간.”

       

       지연은 서연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반에서 친구가 없다고 했던가.

       

       뭐, 그럴만하지.

       서연은 타인이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분위기를 풍긴다.

       존재감, 이라고 해야 할까.

       태생이 배우여서, 평범한 사람은 서연의 앞에서 보통 입도 벙끗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마 자신을 제외하고 서연을 상대로 말을 가장 많이 한 건, 그녀가 방문하는 편의점 알바생들 정도일 거다.

       뭔 편의점을 그렇게 순회하며 돌아다니는지 이해가 안 되지만, 학교에서 친구가 없는 건 당연하다.

       

       ‘연기는 뒀다 뭐하는 건지.’

       

       좀 화사하게 웃으면서 먼저 다가갔으면, 이미 친구들이 아침마다 일렬종대로 서서 기다렸을 텐데. 하지만 지연이 굳이 그런 충고를 하지 않은 건, 그냥 이게 편하기 때문이다.

       

       친구가 많은 주서연은, 어쩐지 주서연 같지 않으니까.

       

       ***

       

       아무튼 마음을 먹었으니, 서연은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수아에게 그 말을 전했다.

       

       “저, 이제 복귀해보려고 생각 중인데요.”

       “우리 딸. 공부하기 싫어서 그런 건 아니지?”

       “…….”

       

       순간 그 말에 서연은 바로 대답 못했다.

       

       ‘아차.’

       

       바로 대답했어야 했는데.

       스스로의 실수에 반성하면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설마요. 공부는 꾸준히 할 거예요.”

       “흐음.”

       

       수아는 약간 의심스런 눈으로 딸을 보았다.

       언제나 대단한 우리 딸이지만, 공부를 싫어하는 게 너무 티가 났다.

       중학교 때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은 성적이었지만.

       고교 첫 중간고사는 말 그대로 궤멸.

       모의고사 성적이 어떤지는 말해주지도 않았다.

       

       ‘애가 머리가 나쁘지는 않은데.’

       

       으음, 하고 그런 생각을 하던 수아지만 그냥 그러려니 했다.

       이미 너무 많은 재능을 가진 딸이다.

       여기서 공부까지 바라는 건 너무 욕심이 많은 거겠지.

       

       ‘엄마는 대체 피부관리를 어떻게 하는 걸까.’

       

       그리고 서연은 서연대로 그런 수아를 보며 내심 감탄했다.

       수아의 나이 서른 아홉.

       이젠 아줌마라 불려야 할 나이. 

       

       근데 외모는 10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가슴은 더 커진 것 같고.

       자신의 불가사의한 근력만큼이나, 엄마의 외모는 동양의 신비 그 자체였다.

       

       “그래, 딸도 오래 쉬었지. 이젠 정말 괜찮은 거니?”

       “네. 멀쩡해요.”

       

       서연은 그렇게 말하며, 양팔로 으쌰. 하는 자세를 보였다.

       그런 서연의 모습에 아래쪽에서 맑은 목소리가 들렸다.

       

       “언니, 웃겨!”

       

       검은 흑발을 양쪽으로 묶은 귀여운 여자아이.

       서연, 아니 굳이 말하면 수아를 닮은 작은 여자아이였다.

       이름은 주수연. 나이는 일곱 살.

       연자 돌림이라, 발음도 이름도 비슷한 서연의 여동생이었다.

       

       나이 차가 무려 열 살인 탓에, 어렸을 때는 서연이 직접 돌보는 시간이 많았다.

       

       “그럼 엄마는 수연이 데리고 장 좀 보고 올게. 밥은 냉장고에 있다?”

       “알겠어요.”

       “언니, 수연이 다녀올게. 빠빠.”

       “응, 빠빠.”

       

       굳이 데려간 걸 보면, 또 집에 있기 싫다고 칭얼거린 모양이다.

       동생을 배웅해주며, 서연은 문을 닫고 나가는 수아의 뒷모습을 보았다.

       배우 일을 한다고 했음에도 그냥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반응에 조금 김이 샜다.

       나름 열심히 고민해서 한 거였는데.

       

       “흠.”

       

       졸지에 집에 혼자남은 서연은, 대충 소파에 앉아 TV를 틀었다.

       그러자, 익숙한 얼굴의 여성의 광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엑.”

       

       「이슬만큼 사랑하세요」

       

       소주 광고 같지만 나름 화장품 광고였다.

       아무튼 화장품 광고는 대표적인 미남, 미녀가 찍는 광고다.

       또한 브랜드가치가 고급스러우며, 인지도도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

       

       즉, 대세 여배우를 뜻하는 지표가 바로 이 화장품 광고였다.

       

       「저, 서희와 함께.」

       

       생긋,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여성의 얼굴이 잡힌다.

       분명 서연 자신과 비슷한 또래로 아는데, 수상할 정도로 성숙한 얼굴이다.

       모르고 본다면 이십 대로 볼 외모다.

       

       ‘조서희.’

       

       현 십 대 배우 중, 단연 최고 중 하나라 칭할 수 있는 배우.

       태숨달에서 한번 꼬꾸라졌던 전생과 달리.

       10년 동안 화려한 커리어를 장식한 여배우.

       

       그리고 앞으로 승승장구할 일만 남은 여배우, 그것이 TV에서 나오는 조서희였다.

       

       ‘역시 화장품 광고는 좀 그래. 나중에 들어오면 거절해야지.’

       

       물론 서연은 그걸 보며, 별생각 없이 유튜브를 틀었다.

       그리고 이어 쭉, 표시되는 서연의 화려한 재생목록들.

       

       바로, 본격적으로 뜨기 시작한 버튜버 방송들이었다.

       그리고 그중, 서연의 눈에 띄는 것 하나.

       

       「곧 새롭게 공개될 세븐라이브 3기생!」

       

       거기에 쭉 뜬 목록을 본 서연은 눈을 가늘게 찌푸렸다.

       역시, 라고 해야 할지.

       본래 있어야 할 한 명이 빠져있었으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제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하는 서연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37화 내용 일부 파트 수정되었습니다(자세한 내용 공지 참조)

    다음화 보기


           


I Want to Be a VTu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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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I definitely just wanted to be a VTuber... But when I came to my senses, I had become an a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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