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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

       여학생의 말을 들은 예나와 무영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흐윽…우리도 아크라테스 세 마리에게 습격당했어…섬광으로 겨우 눈을 멀게 하고 빠져나온 거야…”

       

       여학생은 몸을 벌벌 떨어댔다.

         

       아크라테스는 마법사처럼 필드가 발달되어 화기가 통하지 않는 2급 마수종.

         

       3급으로 분류된 북쪽 구획의 마수들하고는 여러모로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대상이다.

         

       개활지도 아닌 이런 숲속에서, 더구나 방입자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도 않은 학생들이 상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세라야, 진정해…우선…”

       

       -퍼엉! 퍼퍼엉!

         

       예나가 여학생을 달래주려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무언가 시끄러운 소리가 나더니 주변의 풍경이 온통 붉게 물들었다.

         

       사방의 여기저기서 구원을 청하는 폭죽 마법 수십 개가 하늘로 솟아 터져댔다.

         

       이어 멀리서 들려오던 웅얼거리는 소음들이 갈수록 가까운 거리에서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진짜 무슨 일이라도 터진 거 아니야…?”

         

       무영이 겁먹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람이 지르는 듯한 비명, 마법이 명중하는 파열음, 무언가 낮은 소리로 으르렁대는 소리를 구분할 수 있는 지경이었다.

         

       이현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의 한복판에 떨어진 듯한 기분을 느꼈다.

         

         

       -콰아아아!!

         

       “꺄아악!”

         

       곧 한 차례 엄청난 강풍이 그들을 순식간에 휩쓸어버리고 지나갔다. 예나는 비틀거리며 거의 몸을 겨누지 못할 지경이었다.

         

       저릿저릿하게 울리는 온몸은, 정상적인 바람이 아닌 무언가 인위적으로 발생시킨 현상임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현아, 우리도 우선 돌아가자…이러다…”

         

       “…아니, 너희는 돌아가. 나는 계속 가야겠어.”

       

       “…현아?”

         

       예나가 몸을 추스르던 와중이었다.

         

       문득 들려오는 이현의 믿기 힘든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

         

         

       여학생의 증언이 맞다면, 분리벽에 구멍이 뚫린 곳은 중앙 경로의 끝자락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왔던 경로로는 아직 마수들이 도달하지 못했을 테니, 자신이 없어도 안전지대까지 후퇴하는 데에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아크라테스 같은 놈들이 몇 마리나 더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라면 딱히 상대하지 못할 수준도 아니다.

         

         

       “어차피 이런 상황에서 너희를 전부 지키면서 싸우기는 힘들어. 우리가 왔던 쪽의 마수들은 다 죽여버렸으니까 위험하지는 않을 거야. 그럼 얼른…”

         

       그런 계산에서 나온 이현의 발언이었지만, 예나는 양팔을 벌리며 이현의 앞을 가로막았다.

         

         

       “안 돼! 절대 안 돼!! 얘기 들었잖아! 혼자 가서 무슨 일을 당할 줄 알고…!”

         

       “괜찮아.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오히려 지금이 완벽하게 1등을 차지할 수 있는 기회…”

         

       “바보야! 그걸 말이라고 하고 있어!”

         

       예나가 빽-소리를 질렀다.

         

         

       “이 와중에 1등이 무슨 소용이야! 애초에 시험이 정상적으로 진행될지도 모르는 마당에…”

         

       “혹시 모르잖아. 이 상황도 시험의 일부일 지도. 그리고 나는 이번 시험에서 꼭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해. 만에 하나의 가능성이라도 놓칠 수는 없어.”

         

       “조장. 생각보다 정신 나간 사람이었구나…”

         

       무영이 이현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꼭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뭔데?”

         

       “지금 설명하기는 좀 길어. 나중에 알려줄게.”

         

       예나가 문득 섭섭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지금 이현에게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혹시 퇴로가 봉쇄당하기라도 하면 이들은 꼼짝없이 이 장소에 갇혀 버리게 될 테니. 그럼 자신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길도 사라지게 된다.

         

         

       “미안. 무영. 나머지 사람들 데리고 안전지대로 돌아가. 올 때 경로는 기억하고 있지?”

         

       “어? 어…”

         

       “그럼 부탁 좀 할게.”

         

       이현은 말을 마치고 그대로 목적지로 향했다.

         

       그러고는 에테르를 불어 넣어 입자배열기를 조작한 뒤, 예측안의 마법식을 작성해 그대로 찍어냈다.

         

       예측안 마법식의 적용이 완료된 순간부터, 주변의 흐름이 약간 느려지고 오직 본인만이 정상 속도를 유지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뒤편의 일행들은 순식간에 멀어져 보이지 않았다.

         

       예측안은 말 그대로 상대의 움직임을 미리 예측해 대응하는 거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보통 순환계 범용마법은 신체 일부의 근력이나 반응속도, 안력을 제한적으로 강화하는 것에 그치지만, 예측안의 다중 배열 마법식은 모든 부위의 폭발적인 강화를 가능케 했다.

         

       예측안은 흑련 사씨를 그 위치에 있게 한 순환계 최강의 고유마법이었지만, 당연히 들어가는 코스트 역시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서로 얽힌 7개의 입체 마법식은 무지막지한 입자를 소모했다. 또한 사용자의 신체 역시 강화의 부하를 견딜 수 있을 정도로 강건해야 했다.

         

       하지만 물리적인 단련을 아무리 공들인다고 해도, 샘을 통해 마법에 적합한 육체로 변이된 다른 마법사들에 비할 수는 없다.

         

       대를 이어 감응성을 누적한 흑련 사씨 가문의 최적화를 따라잡는 건 더더욱 불가능하다.

         

       그러니 대기 중에서 에테르를 끝없이 끌어올 수 있다고 해도, 이현은 태생적인 한계로 예측안을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처럼 3경로까지 개통하는 경우는 길어야 한두 시간, 4경로라면 30분, 5경로라면 15분, 6경로라면 5분, 7경로까지 모두 개통한다면 그 미만.

         

       하루에 그 이상으로 마법을 사용하면 수명이 깎일 정도의 심각한 과부하를 받을 수 있으니, 바로 사재혁이 이현의 마법에 엄격한 제약을 걸었던 이유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무리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3경로까지 뚫어두는 것만으로도 2급 마수종들을 상대하기는 차고 넘친다.

         

       그렇게 빠르게 중심부로 향해 인식표를 찍고, 제한 시간 내로 다시 돌아오는 게 이현의 계획이었다.

         

         

       -휘익!

       

       별안간 옆의 둠벙에서 무언가 덮쳐들었다.

         

       이현은 그대로 몸을 비틀었고, 그가 있던 자리에는 곧 날카로운 발톱과 갈고리가 덮쳐들었다.

         

       털이 부숭부숭하고 몸집은 황소만한 거대한 절지동물이 눈앞에 있었다. 라시도라스. 나무 위에 숨어 있다가 사냥감을 덮쳐 독을 주입하는 2급 마수종이다.

         

       놈의 독은 제약회사들의 연구용으로 아주 인기가 좋았지만, 지금은 그를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이현은 이어 달려드는 마수의 머리 위로 도약했다. 그리고 가슴 부위에 블레이드를 찍어버린 다음 그대로 그어버렸다.

         

       배가 반으로 갈라진 마수가 초록색 체액을 내뿜으며 부들부들 떨었다. 아직 신경절이 살아있기는 하지만 곧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이현은 그새 날이 무뎌진 블레이드의 카트리지를 열어 날을 교환했다. 확실히 보급용으로는 고위 마수들의 두꺼운 거죽을 상대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예비 날이 다 떨어지기 전에 목적을 이뤘으면 좋겠는데.

         

       이현은 그대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갔다. 도착하기만 하면 1위는 따놓은 당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스스로 성취하는 기쁨이 그의 발길을 재촉했다.

         

       하지만 이현은 나아갈수록 무언가 이상한 점을 느낄 수 있었다.

         

       너무 많다.

         

       라시도라스, 티그리누스, 무스텔라, 히로스, 스크로파. 하나같이 까다롭다고 알려진 2급 마수종들이다.

         

       그 짧은 시간에 마주친 것만 해도 벌써 다섯 종이다. 마릿수로는 이미 그 이상이고.

         

       마수로 변이하기 전 원종이 뭐였든 간에, 고위 마수는 최종적으로 영역 동물로 수렴해 진화한다는 특징이 있었다. 인근의 다른 생물이 내뱉는 파장에서 생기는 간섭을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들은 삶의 대부분을 자신의 영역 안에서 보내며, 어지간해선 한번 정해진 영역 바깥으로는 나오지 않는다.

         

       그런 마수들이 영역을 벗어난다면 이유는 대개 두 가지였다. 우선은 영역 내에 먹이가 전부 소진되었을 때.

         

       하지만 지금까지 그가 마주친 마수들의 행동은, 어떻게 봐도 먹이를 구하는 포식자의 패턴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성급했고, 무모했고, 저돌적이었다.

         

         

         

       “…”

         

       중심부로 나아가는 이현의 주변에는 더욱 기이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곳곳의 아름드리나무들이 부러져 있거나, 무언가 거대한 것이 밀고 지나간 것처럼 숲 사이에 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한편으로는 자기들끼리 싸우다 뒤엉켜 죽어버린 마수들의 모습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린 의문을 간직한 채로, 이현은 마침내 목적지인 북쪽 구획의 중심부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와 식별기계 사이에는 마지막 장애물이 남아있었다.

         

       숲 사이에 펼쳐진 평지였음에도 불구하고, 이현의 주변에는 어쩐지 그림자와 어둠이 가득했다.

         

       이현은 머지않아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여러 개의 겹눈 사이로 흉하게 튀어나온 독니에는 녹색의 독이 질질 흘렀다. 그 독은 땅바닥에 떨어질 때마다 취익-소리를 내며 주변을 부식시켰다.

         

       거대한 네 개의 더듬이는 사방을 쉴 새 없이 탐색했고, 그 끝자락에는 움직임의 찰나마다 작은 불꽃이 반복적으로 점멸했다.

         

       수십 개로 나뉜 외골격의 각 관절부에는 각각 한 쌍의 다리가 달려 모두 수십이었다.

         

       그런 생김을 종합해, 이현은 놈의 정체를 식별했다. 아이테라누스. 필드의 발달은 물론이고, 입자를 운용해 원시적인 마법까지 사용할 수 있어 1급 위험종으로 분류된 마수.

         

       아무래도 아까 정체 모를 강풍의 원인을 찾은 것만 같다.

         

       하지만 놈은 보통의 아이테라누스보다도 더욱 거대했다. 또한 몸 곳곳에서 기괴한 진화의 흔적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입자에 과감응해 한 차례 더 진화를 이루어낸 변이종이자, 식별명을 부여받은 특등급의 마수가 분명해 보였다.

         

       왜 이런 게 학생들의 시험장에 와 있는 거지?

         

         

       “…”

         

       이어 이현은 놈에게서 앞선 마수들과의 공통점을 발견해낼 수 있었다. 두려움, 즉 생존본능의 발호였다.

         

       놈은 과하게 사방을 경계해대며 이현의 작은 움직임에도 과민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현은 전후 사정을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아까의 2급 마수들은 아이테라누스의 출현에 두려움을 느낀 것일 수도 있지만, 1급 마수종은 생태계 먹이사슬의 가장 꼭대기에 위치한 짐승이다.

       

        사실상 그들을 두려움에 떨 수 있게 만드는 존재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노련한 헌터조차 한 끗만 실수해도 곧 그들의 가벼운 식사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

         

       예전에 단장과 누나들이 북동부의 산맥에서 아이테라누스를 토벌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입자에 저항성이 있는 외골격은 어지간한 방출계 마법은 그냥 튕겨 버렸다. 놈이 사방으로 벼락을 쏘아대는 탓에 접근전도 성립되지 않았다.

         

       결국 누나들이 벼락을 만들어내는 놈의 네 더듬이를 모두 자른 후에야 단장의 일격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이현은 잠시 생각했다. 이쯤 되니 그 역시 시험이 아니라 실제로 벌어진 상황이라는 걸 확실하게 알 수 있었지만, 그는 이미 마수의 반경 안에 들어와 있었다.

         

       이대로 돌아선다 한들 놈이 이현을 내버려 둘 리도 없다.

         

       하지만 그들조차 마수의 사냥에 상당히 귀찮은 과정을 거쳐야 했다. 심지어 눈앞에 있는 놈은 개별적인 변이를 추가로 이루어내기까지 했고. 이런 마수를 혼자서 상대하는 게 가능할까?

         

       고민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야 답이 뻔한 문제다.

         

       이현은 놈을 그대로 치워버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여기까지 온 김에 겸사겸사 인식표도 찍어 높은 순위도 차지하기로.

         

       그는 곧 블레이드를 빼 들고 자세를 다잡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헤엄치는새 님 10코인 후원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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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recting the Villainess of the Academy

Correcting the Villainess of the Academy

아카데미 악당영애 교정하기
Score 3.8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reunited with the girl who left me when I lost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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