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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

       크로우필드.

        

       사실 크로우필드 백작령은 그 이름과는 다르게 까마귀가 그렇게 많은 곳은 아니었다. 적어도 단순히 까마귀가 많다는 이유로 그런 이름이 붙을만한 곳은 아니었다.

        

       넓은 초원이 하나 있기는 했다. 가을이 오기 전까지는 푸른빛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렇다고 가을에는 추해지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그저 초록빛이 황금빛으로 변해갈 뿐, 결코 황폐한 폐허가 되지는 않는다.

        

       도시는 다른 영지들에 비해 그럭저럭 현대화가 이루어졌다. 굴뚝에서 하늘을 가릴 듯 올라가는 어마어마한 양의 매연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저 멀리 검은 연기를 내뿜는 굴뚝을 가진 공장지대가 있었다.

        

       영지 자체가 그렇게까지 큰 곳은 아니었기에, 그렇게 공장지대가 있음에도 치안이 떨어지는 곳은 아니었다.

        

       그랬기에 영지 이름에서 꺼림직한 분위기를 느꼈던 사람들이 막상 영지를 방문해 둘러본 다음에는 이렇게 물어보곤 한다.

        

       이런 아름다운 곳에, 어째서 ‘크로우필드’라는 섬뜩한 이름이 붙었냐고.

        

       크로우필드는 원래 벨부르 왕국의 영토였다. 정확히는, 당시 벨부르 왕국과 아제르나 제국의 접경지였다.

        

       과거, 제국과 벨부르 왕국의 전쟁 중 가장 거대한 전투가 있었던 곳으로, 서로 몇 번이나 그곳을 점령하는 와중에 수많은 이가 죽었다. 제국군, 왕국군, 그리고 제국군에게 왕국민이라는 이유로 학살된 이들, 제국에게 점령된 사이에 제국과 내통했다는 이유로 죽은 이들…… 수많은 시체가 쌓이고 쌓였던 곳이다.

        

       제대로 수습조차 되지 못한 시체가 초원 여기저기 마구 널브러져 있었고, 숲에 대충 던져둔 시신이 썩어들어갔다.

        

       그리고 그 시체에 수많은 까마귀가 꼬여 들었다. 누구도 손대지 않으려는 시신을 뜯어먹으며 계속 번식했고, 한동안 그곳의 하늘은 날아다니는 까마귀 떼와 깍깍거리는 울음소리로 가득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곳을 지나는 이들은 어느새 그 지역을 ‘크로우필드’라고 부르고 있었다. 옛 이름은 거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았다. 그 지역을 고향 삼아 살아가던 이는 이미 그 지역에 거의 남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많은 이가 죽었는데도 제국은 확장을 멈추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지금의 국경을 확정 짓게 되었다. 지금은 크로우필드조차 ‘접경지’가 아니었다. 크로우필드와 벨부르 왕국 사이에는 작은 영지가 하나 더 끼어 있었으니까.

        

       더 이상 크로우필드에 시체가 쌓일 일은 없을 줄 알았다. 그저 이대로 계속 발전하며 영원히 그 번영을 누릴 줄 알았다.

        

       단 한 번의 폭발로 백작이 사망하기 전까지는.

        

       “……미아.”

        

       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나고 얼마 뒤, 백작 부인이 미아를 불렀다.

        

       눈물로 젖은 미아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쓸어 닦아준 뒤, 미아를 가만히 끌어안은 채 등을 토닥이던 어머니는 말했다.

        

       “이번 일은 황제가 꾸민 일이다.”

        

       “……네?”

        

       공식적인 발표는 마차 아래를 지나던 가스관의 폭발로 백작과 그를 호위하던 이들이 가득 타고 있던 마차가 날아갔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가스관이 터지는 사건은 종종 있는 일이었기에, 미아는 자기 아버지가 사망한 사건을 그저 끔찍한 불운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황제…… 황제의 짓이야. 어쩌면 그 아이들이 벌인 짓일지 몰라.”

       

       확실하지는 않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째서인지, 미아는 알 수 없었지만.

        

       “어머니?”

        

       “미아. 내 딸아.”

        

       미아를 꽉 끌어안은 어머니는 미아의 귀에 대고 말했다.

        

       “그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말아라. 지금 당장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지만……”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게, 오로지 자신의 유일한 혈육인 딸의 귀에만 들리도록 작게, 어머니는 말했다.

        

       “언젠가, 황실이 ‘크로우필드’가 되는 날까지.”

        

       *

        

       크로우필드 백작이 사망한 뒤로 그 부인은 꾸준히 정보를 모았다. 그 정보 중에는 정확한 것도 있고, 불확실한 것도 있었지만, 별로 개의치는 않았다. 크로우필드의 복수 대상에는 어차피 그 모두가 적혀 있었으니까.

        

       정보를 모으는 것은 그저 증오를 잊지 않기 위함일 뿐이다. 혹시 다른 이를 끌어들일 수 있다면 그렇게 하기 위해서.

        

       적어도, 복수하기 위해서는 크로우필드가 더 유리한 상황에서 싸워야 하지 않겠는가.

        

       미아 또한 그 증오를 기억했다. 끊임없이 학습하고, 잊지 않도록 외우고.

        

       소문 중에는 그런 것이 있었다.

        

       ‘제국의 유력 인사가 죽는 날에는 황제 주변에 있던 자식 중 하나가 사라진다.’

        

       오로지 그것 뿐인 소문이었지만, 제국 귀족들은 사실 그 소문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이미 고위 귀족들 사이에 떠도는 정보 중에선 ‘제국 인사가 사망한 날 사라졌던 아이’의 명단도 돌아다니고 있었다. 철저하게 정황만을 보고 의심만 해볼 뿐이었지만, 적어도 귀족의 사인과 사라졌던 아이의 특기는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 황제는 그런 소문을 단속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이 명단이 진실이라면, 황제는 명단이 돌아다닌다는 사실조차 알고 있었을 텐데.

        

       미아 크로우필드는 그렇기에 황제가 더 미웠다.

        

       마치 그 높은 자리에 앉아 올 테면 와보라는 듯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황제가.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도 태연한 황제가.

        

       크로우필드 백작이 죽은 날 사라졌던 존재는 당시 열두 살, 미아와 동갑이었던 실비아 팬그리폰이었다.

        

       사실 그랬기에 그 명단을 믿지 않는 귀족도 있었다. 열두 살짜리 아이가 삼엄한 경비를 뚫고 백작 저택으로 가 마차에 폭탄을 설치하여 백작을 암살했다는 사실 자체가 어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저 음모론에 사실을 꿰맞췄을 뿐이 아닌가.

        

       아무리 황궁 내의 시녀와 하인들에게서 얻어낸 정보라지만, 그렇다고 그 정보가 정확한 것도 아니다. 날짜는 착각할 수 있고, 어쩌면 그 황녀가 그저 방에서 나오지 않았거나 다른 곳을 방문 중일 수도 있으니까.

        

       심지어 그런 식으로 목록에 적힌 귀족 중에는 그저 병사한 귀족도 있었고.

        

       하지만…….

        

       수업 첫날 있었던 대련에서, 실비아 팬그리폰은 화약 병기를 사용했다. 총기를 사용하는 이의 입장에서는 극도로 불리한 초근접전에서조차 황제의 딸은 침착하게 상대의 공격을 모두 피해내고 상대를 제압했다.

        

       교본……에 나온 몸동작은 아니다.

        

       이미 상대의 다음 움직임을 알기에 취할 수 있는 움직임.

        

       저런 능력을 갖추고 있는 이가, 백작령에 침투하는 것이 과연 어려운 일일까?

        

       이상한 점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학생회의 초대장을 받고 학생회실에 갔다가 마주한 실비아 팬그리폰은, 살기가 담긴 미아의 시선을 받고도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어쩌면 마법사인 미아의 살기가 너무 부족해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런 것 치고는 바로 옆에 앉아있는 앨리스 팬그리폰과 샤를로트 드 벨부르 왕녀는 다소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무려 제국 황녀 앞에서 보인 살기였다. 당황하지 않는 것이 이상했지만……

        

       실비아 팬그리폰은 태연했다.

        

       마치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

        

       방으로 돌아와, 책상을 보았다.

        

       그곳에는 작은 액자 하나가 서 있었다. 안에 있는 흑백사진에 나온 것은 세 사람.

        

       미아와 그 부모의 모습이었다.

        

       귀족은 보통 사진이 아니라 초상화를 더 선호한다. 그게 더 ‘고급스럽고’, ‘귀족답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는 행동 따위 초상화를 기다릴 시간이나 화가를 구할 돈도 없는 이들이나 하는 짓이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초상화에 나온 자기 얼굴은 사진보다 미화되는 법이니까.

        

       문자 그대로 현실만을 그려내는 사진과는 다르게, 초상화는 화가의 해석이 들어간다. 그리고 그 해석은 돈을 내는 귀족의 입맛에 맞춰지는 일이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미아는 방에 가족 초상화를 걸어놓지 않았다.

        

       어린 시절, 미아가 기억하던 그 아버지.

        

       늘 영지민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시느라 밤에 집에 없을 때도 있으셨고, 다소 수척해 보이는 인상이지만, 그래도 그 모습이 늘 노력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라는 것을 미아는 기억하고 있었다.

        

       미아는 시선 한 번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 보던 실비아 팬그리폰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 표정에는 일말의 죄책감도 담기지 않은 것 같았다.

        

       피가 묻은 것이 분명한 손으로 태연히 차를 마시던 실비아 팬그리폰.

        

       “……용서 못 해.”

        

       미아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가슴 깊숙이 증오를 한 번 더 되새긴다.

        

       실비아 팬그리폰은 죽을 것이다. 죽음으로 그 죗값을 치를 것이다.

        

       설령 그걸 위해서 미아가 자기 목숨을 버리는 일이 있더라도.

        

       *

        

       두 사람 다 팬그리폰이라서일까. 앨리스 팬그리폰은 실비아 팬그리폰에게 친근하게 대했다.

        

       물론 그런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 실비아 팬그리폰의 표정이 바뀌는 일은 없다. 앨리스 팬그리폰의 말이 아무리 길어져도, 보통 실비아 팬그리폰의 대답은 단답형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두 사람 사이에는 정체 모를 화기애애함이 있었다. 두 황녀 모두 웃는 표정을 잘 짓지 않고, 두 사람 모두 언제나 엄격한 표정인데도.

        

       어째서 저렇게까지 담담할 수 있는 걸까.

        

       혹시, 실비아 팬그리폰의 눈으로 보기에 미아 크로우필드는 복수 같은 것은 할 줄 모르는 순진한 영애로 보였기 때문일까?

        

       “……아.”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미아를 보는 앨리스 팬그리폰의 얼굴이 조금 흐려졌다. 어제 봤을 때와는 또 다른 표정이었다. 어제는 그저 미아가 실비아 팬그리폰에게 보내는 살기에 당황했을 뿐이었는데.

        

       아니, 어쩌면 오히려 그렇기에 오늘 보인 표정이 흐려졌을지 모른다.

        

       지팡이도 없이 앨리스 팬그리폰에게 덤벼봐야, 미아는 그저 제압당할 뿐이다. 황녀는 훌륭한 검사였으므로.

        

       그러니 사실, 살기 때문에 겁먹었을 리는 없다.

        

       혹시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끼는 걸까?

        

       “……미아 크로우필드.”

        

       “……황녀님.”

        

       적어도 오늘은, 그 증오심을 조금은 숨기기로 했다. 아무리 증오스러운 상대라도 언제나 그런 분위기를 내뿜고 있으면 성공할 일도 실패하기 마련이다.

        

       그래도, 내가 성공할 수 있을까.

        

       “…….”

        

       미아를 가만히 바라보는 실비아 팬그리폰의 얼굴이 보인다.

        

       소름 끼치도록 무표정한 그 얼굴에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자기 앞에 있는 미아 크로우필드라는 존재가 아무런 가치도 없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겠다는 듯, 그저 차갑기만 한—

        

       “배고파?”

        

       갑자기 앨리스 팬그리폰이 실비아 팬그리폰에게 물었다.

        

       미아를 향해있던 차가운 시선이 앨리스 팬그리폰에게로 돌아갔다.

        

       “…….”

        

       실비아 팬그리폰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럼 얼른 가자. 아침은 먹어야지. 너, 아침식사는 은근히 많이 하는 편이잖아.”

        

       “…….”

        

       실비아 팬그리폰은 여전히 아무 대답이 없었다.

        

       혹시 앨리스 황녀는 일부러 실비아 팬그리폰의 시선을 끈 것일까?

        

       어째서?

        

       “그럼, 우리는 먼저 가 볼게. 밥은 삼시세끼 전부 먹어야 제대로 움직일 수 있어서.”

        

       “아, 네…….”

        

       그런 앨리스 팬그리폰의 말에 미아의 표정도 조금 깨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내 가슴 속에 다시 불이 지펴졌다.

        

       “…….”

        

       역시, 신경조차 쓰지 않는 걸까.

        

       그렇다면 반드시 이 정당한 분노가 무시무시한 칼날이 되어 찌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이다.

        

       멀어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미아 크로우필드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노려보았다.

        

       *

        

       아니, 어떻게 알았지?

        

       내 배에서 꼬르륵 소리라도 들렸나? 앨리스가 그런 판단을 내릴 근거가 전혀 없었을 텐데?

        

       “얼굴에 그대로 쓰여 있던데, 왜?”

        

       내 얼굴에?

        

       “……아니, 그렇게 봐도…….”

        

       내가 앨리스를 빤히 바라보자 앨리스는 다소 민망하다는 듯 시선을 돌렸다.

        

       혹시 시력이 현미경 급이라서 다른 사람은 눈치채지 못하는 내 얼굴 근육의 미세한 떨림을 알아보기라도 한 것일까? 나 자신도 깨닫지 못할 정도로 미세한 움직임일 텐데?

        

       “……그리고, 상대가 증오를 보인다고 해서 무조건 받아주고 있을 필요는 없어.”

        

       “무조건 받아줄 생각은 없습니다.”

        

       앨리스가 조언하듯 말하길래, 나도 그렇게 대답했다.

        

       “다만, 그 분노 자체는 당연하단 생각을 했을 뿐입니다.”

        

       자기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니까.

        

       게다가 진상을 모르기도 하고. 어제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내가 바로 말해준다고 해서 바로 받아들이지도 못할 거다.

        

       차라리 자기가 직접 알아볼 수 있도록 힌트를 주는 쪽이 낫겠지.

        

       “…….”

        

       혼자 그런 생각을 하는 나를, 앨리스가 빤히 바라보았다.

        

       무표정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알아볼 수 있는 표정은 아니었다. 여러 감정이 마구 섞여서 두루뭉술하게 보이는 표정.

        

       ……앨리스는 내 표정을 읽을 수 있는데, 나는 앨리스의 표정을 읽지 못한다는 것이 조금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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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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