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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

       

       

       

       

       

       《뭐…?》

       《한 명만 골라보라고. 우리 넷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사람 말이야.》

       

       마음에 드는 사람…?

       그, 그런 게 있을 리 없잖아….

       

       《꺅! 놔, 놔줘!》

       《이 벌레 같은 년아. 네년도 눈알이란 게 있으면 보일 거 아니냐. 아카데미 4총사의 우월한 용모가 말이야.》

       《큭큭. 그래. 너 같은 년에겐 과분하지만, 어디 한번 골라보라고.》

       

       없어….

       너희처럼 나쁜 인간을 누가 좋아해.

       고르기 싫어….

       싫다고….

       

       퍼억!

       

       《끄으윽…!》

       《하, 이년이. 또 말귀를 못 알아먹네? 그리 입 닫고 있으면, 끝날 거 같아?》

       《어허. 카일 공자. 지금 우린 저 벌레 같은 년에게 ‘간택’을 받아야 하는 걸 잊은 겐가?》

       《아하. 잠시 잊었군요. 역시 현명하십니다. 블런드 공자님께선.》

       

       대체 왜들 이래…?

       나보고 벌레 같은 년이라며….

       그런 년한테 선택 받는 거, 너희들 원하지 않잖아….

       

       《데론 공자님. 그리 뒤에만 계시다간 승기를 빼앗기실 수도 있습니다?》

       《푸훗. 원래 강자는 말이 없는 법이라네.》

       《어이, 엘든 공자? 자네도 얼른 ‘매력 어필’을 해야지 않겠나? 아니면 태평하게 있을 정도로 자신감이 넘친다는 겐가?》

       《……유치한 놀이에 끼고 싶지 않을 뿐이네.》

       《쯧쯧. 자넨 역시 진정한 재미를 모른단 말이지. 자! 에린시아? 어서 고르라고. 그래야 빨리 끝나는 거, 이제 잘 알지?》

       

       제발… 이러지들 마….

       부질없는 짓이잖아….

       어차피 내가 선택해봤자 기분 나쁘다며 때리기나 할 거잖아…….

       

       퍼억!

       

       《끄으윽!》

       《아오, 답답하다. 답답해. 네년은 꼭 처맞아야 정신을 차리더라? 그리 멍청해서 이 험난한 세상 어찌 살아갈래?》

       

       콰직!

       

       《꺄으윽! 소, 손 아파아…!》

       

       알겠어….

       알겠다고….

       제발, 때리지마….

       아파….

       죽을만큼….

       

       《큭큭. 그럼 골라봐. 위대한 아카데미 4총사 중, 누가 가장 멋진 사내인지 말이야.》

       

       

       ……엘든 라펠리온.

       

       

       《풉, 푸하하하하-!!》

       《하하하! 거 봐! 엘든 자네가 매력을 어필하지 않으니 이 벌레 같은 년한테 선택 받는 거 아니겠나!》

       《푸흐흡, 엘든 공자. 자네 아주 기쁘겠어? 에린시아 벨로크의 흠모를 받다니 말이야. 으하하하-!》

       《…….》

       

       그, 그런 거 아니야…!

       그냥, 그냥 고를 사람이 없어서 고른 거 뿐이라고…!

       그냥 너희들이랑 달리 나서서 때리지는 않아서 고른 것뿐이야…!

       엘든도 너희들도 전부 똑같아…!

       다 나쁘다고…!

       

       《크하하! 엘든, 자네를 얼마나 업신여겼으면 그리 선택하겠나.》

       《그래. 자네가 우리처럼 늘 재미나게 놀아주질 않으니까 투정을 부리는 거 아니겠나.》

       《투정을 부리면 응당 혼이 나야겠지? 엘든, 대답을 보여주게. 어서.》

       《…….》

       

       그, 그런 눈으로 보지마!

       나도, 나도 고르고 싶어서 고른 거 아니라고…!

       나도 네가 역겹고 경멸스러워!

       토가 나올 정도로 네가 싫다고…!!

       

       퍼억!

       

       《끄으으윽!》

       《큭큭. 잘했네. 엘든 공자. 자네도 이렇게 한번씩 놀아주고 그래야 정도 쌓이고 하는 법이지 않겠나.》

       《…다 노셨으면 이제 진짜 놀러가시지요. 오늘 벨페치노 윤락가에서 수인족 창녀를 섭외했다고 하더군요.》

       《뭐? 저, 정말인가? 어서 가지!》

       

       ……그래. 늘 이렇게 끝이였지.

       장난감이 재미없어지면 다른 장난감을 찾으러 가는.

       그렇게 홀로 남겨진 난, 욱씬거리는 고통을 느끼며 멀어져가는 너희들의 뒷모습만 봐야 했었어.

       

       참으로 나약하게.

       참으로 무력하게 말이야.

       

       그나저나.

       

       돌이켜보면 너한테만 벌써 두번 거절당한 거나 다름없구나?

       에린시아 벨로크로서 한번.

       르미앙 윈터펠로서 한번.

       물론 두번 다 마음에 없는, 어쩔 수 없이 해낸 선택이었지만… 참으로 역겨운 일인 건 사실이야.

       결과적으론 너 같은 악인에게, 사랑 받을 자격조차 없는 너에게 두번이나 거절을 당한 거니까.

       

       하하.

       

       그래.

       

       그건.

       

       정말이지.

       

       웃긴 일이야.

       

       그렇지 않아?

       

       엘든?

       

       하하.

       

       

       

       **

       

       

       

       ‘대체 무슨 일이 있으셨길래….’

       

       제 3대공녀의 전속시녀 마리엔.

       평범한 평민가 태생인 그녀가 르미앙의 전속시녀가 된 데에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

       전속시녀.

       대공가 뿐 아니라, 후작가 이상의 가문에 고용된 시녀들은 대개 평민 출신이다.

       그 중, 가문인을 밀착 보필하는 전속시녀나 전담집사들은 하급 귀족이 도맡아했었다.

       혼약식을 올리지 않은 남작가의 영애가 시녀장 직속 휘하의 전속시녀를, 도련님들이 집사장 직속 휘하의 전담집사를 맡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마리엔이 전속시녀가 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로건 대공도 귀족들의 생리에 대해 잘 아는 자작가 이상의 영애를 전속시녀로 붙이려 했으나, 르미앙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었다.

       

       《제게 필요한 이는 오직 마리엔 뿐이에요.》

       

       우연한 마주침이었고, 우연한 충돌이 계기였었다.

       로니카의 사고사 이후, 홀로 연구와 실험을 이어가던 르미앙이 실험 도구와 재료, 책을 직접 챙겨 이동하던 중, 길을 잃어버린 신입 시녀 마리엔과 부딪힌 게 계기가 됐던 것이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도구와 재료, 책의 제목을 보고선 어떤 실험에 대한 것인지 정확히 유추해낸 마리엔이 르미앙의 눈에 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었고, 둘은 때려야 땔 수 없는 사이가 되었었다.

       

       척하면 척.

       

       눈빛만 봐도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읽어냈고, 손만 뻗어도 무엇을 쥐고 싶은지 알아내는 둘이었다.

       

       그렇기에.

       

       “…….”

       

       침실로 돌아온 르미앙에게 무슨 일이 있음을 단번에 알아챈 마리엔이었다.

       그리고 그 일은, 분명 엘든 공자와 관련된 것이리라 생각했다.

       요즘 들어 온통 그에 대한 생각과 말을 하는 아가씨였으니까.

       

       절뚝, 절뚝.

       

       마리엔이 오른발을 절뚝거리며 차 한잔을 달여왔다.

       다소 호전된 상태에 목발은 반납했지만 아직 붕대를 풀지는 못 했었다.

       

       “아가씨…?”

       

       르미앙이 가장 좋아하는, 심신이 불안정할 때면 늘 찾는 겨울꽃차였다.

       그것을 받기 전, 르미앙이 가면을 벗어 침대 옆 탁자에 놓았다.

       마리엔이 안타까운 시선으로 그녀를 살폈다.

       가면을 벗은 르미앙의 얼굴이 유독 창백해 보였던 까닭이다.

       차디찬 달빛보다 더더욱 말이다.

       

       “이거라도 좀 드세요.”

       

       며칠째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않는 아가씨.

       그 좋아하던 연구와 실험은커녕, 잠조차 쉬이 들지 못 하는 아가씨였다.

       모신 이래 처음 보는 모습들이었고, 그래서 그녀가 무척이나 걱정스러운 마리엔이었다.

       

       “…고마워.”

       

       차를 건넨 마리엔이 쟁반을 탁자에 놓으며 그녀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조심스레 물었다.

       

       “무슨 일… 있으셨던 거에요?”

       

       르미앙의 입술이 벌어졌다, 다시 닫혔다.

       마리엔과는 서로 숨기는 것없이 허심탄회하며 막역한 사이였다.

       그녀는 이 복수극에 대해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이자, 훌륭한 조언자였다.

       선도와 참회의 계획은 마리엔의 조언과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니까.

       그럼에도, 방금 있었던 일에 대해선 쉬이 입이 열리지 않았다.

       

       창피했다.

       

       엘든이란 무식한 이가 낸 난제 하나를 해결하지 못 해 질질 끌려다니는 자신이.

       실패에 굴하지 않던,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늘 의기양양했던 자신의 나약함과 무력감이.

       

       그리고.

       

       선도와 계몽으로써 진심어린 참회를 빚어내겠단 초기의 마음과 달리, 미련한 집착과 아집만 남아버린 제 마음이.

       그럼에도 도저히 멈출 수가 없는, 멈추는 방법을 모르겠는 제 어리석음이.

       누구보다 악인의 변화를 바래놓고, 그것을 바라지 않았던 것처럼 눈을 감아버리는 자신이.

       

       너무도 창피하고 수치스러웠다.

       

       철혈의 원수와도 같은 악인에게 ‘차였다’는 것 또한 말이다.

       

       물론 그것이 마음 한줌 담기지 않은, 진심 한스푼 곁들이지 않은 고백이었고, 악인을 복수의 구렁텅이로 끌어들이기 위한 작전일 뿐이었지만, 왜인지 모르게 수치스럽고 창피했다.

       그가 그 고백을 진실되게 거절한 것 같아 억울했다.

       그런 자신을 배짱 있는, 강단 있는 사내라 여기며 뿌듯해 할 것 같아 억울했다.

       

       답답하고 짜증이 솟구쳤다.

       얄밉고 가증스러웠다.

       그것들이 들끓는 천불을 더욱 억세게 타오르게 만든다.

       

       더군다나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미행 중인 감시자조차 늘 한결 같은 보고를 하고 있었다.

       도서관과 훈련장을 전전하고 있음을.

       그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에 대해 진심을 다하고 있다고.

       거짓은 일절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는 믿기 힘들 선행도 저지르고 있다고.

       쓰레기를 줍거나, 흐트러진 것을 정리하거나, 망가진 것을 고치거나, 등등.

       주색잡기엔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그저 심신의 수양에만 전념하고 있다고 말이다.

       

       “하…….”

       

       깊어진 밤보다 더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한숨으로써 비워낸 속에 달콤한 차를 채웠다.

       겨울을 머금은 겨울꽃차는 타오르는 열기를 진화해주어야 했다.

       하지만, 불길이 얼마나 거센지 좀체 진화되질 않는다.

       찻잔을 잡은 채, 위태로이 일렁이는 겨울꽃차를 내려다보았다.

       그 시선을 읽은 마리엔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니면, 그의 기권을 받아들이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뭐?”

       “지금 아가씨 얼굴을 보세요. 반쪽이 되셨어요.”

       

       문득, 르미앙이 고개를 틀어 침대 옆 탁상 위에 놓인 거울을 쳐다보았다.

       창백히 질린, 초췌해진, 그리고 초라해진 한 여인의 초상이 떠올랐다.

       

       “…….”

       “걱정되어요. 이러다, 오히려 아가씨께서 쓰러지시는 건 아닌지….”

       

       시선을 마리엔에게로 옮긴 르미앙이 애써 미소지었다.

       마리엔의 눈엔, 그 어느 때보다 유약하고 연약한 미소였지만.

       

       “걱정 마. 나, 그 정도로 약하진 않으니까.”

       “알아요. 아가씨께서 그 누구보다 강하신 거. 그냥… 아가씨께서 힘들어하는 걸 보기 힘들어서 그래요. 어려우시겠지만, 엘든 공자의 변화, 한번 믿어보시는 건 어때요…?”

       

       아직 잊혀지지 않았다.

       엘든 공자와 부딪혔던 그 순간을.

       죽음과 충돌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그 아찔한 순간을.

       발목을 접지른 자신에게, 직접 도움의 손길을 건네던 엘든 공자를 말이다.

       

       그리고.

       

       도와준 것을 남에게 발설하면, 그땐 진짜 뒤지는 거라며 섬뜩한 살인예고를 하던 엘든 공자를 말이다.

       아가씨께 들었던 것과 달랐던 첫 만남이었었다.

       그것도 정반대로.

       심기를 거슬렀단 이유 만으로 시녀를 참수할 악인이, 고통은 열배든 백배든 되갚아주는 악인이 엘든 공자였는데, 그는 외려 자신을 도와주었다.

       

       평가단이 보는 앞이라 그런 걸까, 싶었지만 주변엔 어떤 시선도 없었다.

       혹여 자신이 제 3대공녀의 전속시녀임을 알고 그런 것일까 싶었지만, 건넨 손길과 시선은 순수했었다.

       만약, 그 선행이 계획적인 거라면 주변에 알리는 것을 바랐을 터였다.

       하지만 그는 침묵을 요구했다.

       오히려 제 선행이 귀찮은 소문이 되어 들러붙지 않을지 걱정했었다.

       

       ‘…말씀드릴까?’

       

       그때 느꼈던 엘든 공자의 순수한 호의를 전할까 싶었지만, 섬뜩한 살인경고도 그렇고, 이제 와 그것을 전한다 해도 아가씨의 상태가 호전될 것 같지 않았다.

       아니.

       분명 더 집요하게 파고들려 할 것 같았다.

       그날로 돌아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것만 같았다.

       이 지독한 과제를 말이다.

       그렇기에, 그저 그의 변화를 인정하고 활기차고 명량했던 아가씨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리엔이었다.

       

       하지만.

       변화를 인정하란 간청은 여지없이 묵살되고 만다.

       

       “싫어.”

       

       단호한 대답으로써.

       

       “…네?”

       “믿을 수 없어. 어차피 대면식이 거행되면 들통나게 될 거야. 아니. 그렇게 만들고 말 거야. 기필코.”

       “그전에 대공전하께 그냥 말씀 드리는 게….”

       “됐어. 이건 내가 선택한 일이고 내가 직접 해내야만 하는 일이야. 그래야 완전히 해방될 수 있을 테니까.”

       “그치만….”

       

       마리엔이 그녀를 설득해보려 했지만, 찻잔을 놓아버린 르미앙이 침대에 누워버렸다.

       그리고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며 옆으로 몸을 돌리고 말았다.

       

       “미안한데, 오늘밤은 혼자 있고 싶어. 나가줘.”

       “아… 네.”

       

       결국 찻잔을 쟁반에 도로 담은 마리엔이 침실을 나서야 했다.

       쌀쌀맞은 아가씨의 말씀이 다소 서운했지만, 무엇이 그녀를 조급하게 만드는지, 비이성적으로 만드는지 너무도 잘 아는 마리엔은 그리 물러갈 수밖에 없었다.

       

       부디, 제 아가씨의 밤이 무탈히 지나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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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migrated Into A Tragic Romance Fantasy

Transmigrated Into A Tragic Romance Fantasy

후피집물의 후회캐가 되었습니다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was curious about what a female-oriented tragic romantic fantasy was like, so I skimmed through only the free chapters. And then… “…Ha.” I found myself transmigrated into one of the main male characters, destined for tears of regret, exhaustion, and obsession. So, the first thing that had to be done was… “I, Elden Raphelion, hereby declare my withdrawal from the competition for the betrothal of the Third Northern Duchess.” To escape this trage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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