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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

       “맥스라고 합니다. 이번 토벌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철판이 들어간 가죽 갑옷을 입은 남자가 고개 숙였다.

         

       “후작 각하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레이스 상단주가 부채로 상대를 가리켰다.

         

       “전 전투에 참여하진 않아서요. 항행 이후 요구하실 게 있으시면 맥스에게 말하면 돼요.”

         

       파스텔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 부탁해요!”

       “저야 말로요.”

         

       손을 건네고 악수했다.

         

       “차후 크래프트 상단의 호위 병력을 책임지게 될 분이기도 하고요.”

         

       오잉.

         

       이 사람이 자동 밀무역의 핵심 파츠?

         

       전 재산을 털어 밀무역품을 보냈는데 해적에게 당해 비공정째로 잃어버리면 파스텔은 그대로 쫄쫄 굶게 되는 거였다.

         

       학생회 장부를 제때 복구시키지 못해 횡령 사실이 들키는 건 보너스.

         

       맥스 이분, 완전 중요한 사람!

         

       “더 잘 부탁해요!”

         

       파스텔은 악수한 손을 격렬히 휘저었다.

         

       잘 부탁함 백 배!

         

       그러다 더 격렬히 휘저었다.

         

       잘 부탁함 백만 배!

         

       잡은 손이 붕붕붕.

         

       손바람이 불어요!

         

       맥스가 손이 격렬히 휘저어지며 당혹스러워했다.

         

       “예, 예.”

         

       파스텔은 반응을 보다가 눈이 동그랗게 됐다.

         

       허억, 맞아.

         

       “이럴 때가 아니죠! 초면에 악수만 하고 있다니 완전 시간 낭비! 맥스 씨! 가죽 갑옷에 철판은 무겁지 않아요?! 제가 철판만 들어드릴까요?!”

       『이 타이밍에 그 질문은 왜 나오는 거냐. 어떤 사고를 거쳐야 하는 거야.』

         

       악마님은 아이스 브레이킹도 모르시나? 원래 분위기를 녹여야지 사이도 좋아지고 그러는 거다. 어쩐지 칙칙한 정장을 입고 다니시더라. 친구가 없어 보이긴 했어.

         

       맥스가 얼떨떨해했다. 그러며 본인의 가죽 갑옷을 툭툭 쳤다. 갑옷에 붙은 철판이 두드러졌다.

         

       “무거운 건 맞지만 괜찮습니다. 생명줄이니까요. 이게 없으면 총에 너무 무방비해서요.”

         

       우왕.

         

       완전 프로페셔널!

         

       굶주린 아이의 전 재산을 선량한 과정을 거쳐 두 배로 불려줄 자격이 있다!

         

       파스텔은 볼이 발그레해졌다.

         

       “크래프트 상단은 성과제로 운영될 계획이니 우리 같이 부자가 되어 보자고요!”

         

       만세~!

         

       부자다, 부자!

         

       파스텔은 양팔을 들고 빙글빙글 돌았다.

         

       너도 부자.

         

       나도 부자.

         

       우리 모두 부자.

         

       허억.

         

       그러면 모두가 밀무역을 하는 세상일까?

         

       오이잉.

         

       혼자 놀라는 소녀를 보며 맥스와 그레이스가 수군댔다.

         

       “원래, 이런 분이십니까?”

       “저도 오늘 처음 봬서 잘은 모르겠답니다. 크래프트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비슷하죠. 하지만 보이는 대로 같긴 해요.”

       “크래프트 각하, 시라는 거죠?”

       “아직은 아닌 거 같아요. 파스텔 각하 아닐까요.”

       “뭐가요?”

         

       파스텔은 웃으며 둘을 돌아봤다.

         

       그레이스 상단주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실례했군요. 맥스, 각하께 병력을 소개해 주세요.”

       “예.”

         

       파스텔은 맥스의 안내를 받아 상단 병력을 구경했다.

         

       “상단의 호위 병력입니다. 평상시에는 이 인원끼리 상행을 지킨다고 보시면 되죠. 종종 용병을 추가로 고용하긴 해도 핵심은 저희입니다.”

         

       깔끔한 가죽 갑옷을 일관된 복장으로 차려입은 사병이 줄지어 섰다. 맥스가 손짓하자 사병들이 파스텔을 향해 동시에 경례했다.

         

       우와앗.

         

       프로페셔널!

         

       오잉오잉 파스텔은 따라갈 수 없는 전문성!

         

       오잉오잉.

         

       『호오, 민간 상단답지 않은 강병이군. 준기사급까진 협공으로 대처할 만한 수준이야. 제법이다.』

       “여러분 잘 부탁해요! 크래프트 상단은 성과제로 운영될 계획이니 다 같이 부자가 되어 보자고요!”

         

       와아, 와아.

         

       “예?”

         

       맥스가 당황했다.

         

       “일부 인원만 크래프트 상단에 차출할 겁니다. 저희 상단도 운영은 해야 하니까요.”

         

       파스텔은 와아 거리다가 멈칫했다.

         

       엣.

         

       하긴 그런가.

         

       사병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우아앗.

         

       남들 다 보는 앞에서 혼자 이상한 소리했어.

         

       이거 완전, 완전…….

         

       웃기다!

         

       파스텔은 혼자 빵 터졌다.

         

       아하하.

         

       “부끄러운 실수! 아이 창피해! 저희 상단에 여기 모두와 함께 할 수 없다니 아쉽네요! 그럼 일부만이라도 부자가 되어 보죠! 많은 참여 부탁해요!”

         

       오예.

         

       사병을 소개받곤 용병을 만나러 갔다.

         

       “경고는 해뒀지만 입이 거친 사람들이라 무례한 발언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바로 대처할 테니 일부 양해해 주십쇼, 각하.”

       “아 괜찮아요!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거죠! 전 그런 말에 마음 담아두고 하지 않아요!”

         

       흘려듣기 달인.

         

       무려 악마의 속삭임까지도 흘려듣는 천재.

         

       용병들이 공터에 모였다. 사병과 다르게 복장과 장비 수준이 제각각이었다. 일부는 공터에 모인 게 싫은지 엄청 귀찮아했다.

         

       응응, 용병이니까.

         

       머리가 헝클어진 용병이 숙취가 풀리지 않은 얼굴로 목을 벅벅 긁었다.

         

       “그 아가씨가 그 후작 각하쇼? 아무리 봐도 그냥 소녀신데? 온실 속에서 검 좀 배우다 꿈에 부풀려 나오셨나?”

         

       오우.

         

       술 덜 깬 발언.

         

       맥스가 당황하다가 파스텔에게 고개 숙였다.

         

       “죄송합니다. 무례한 것들이라.”

         

       용병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무례하다니, 너무한 평가 아니쇼?”

         

       맥스가 대뜸 손짓했다. 사병이 순식간에 몰려가더니 용병을 걷어차고 짓밟았다.

         

       우와앗.

         

       술 깰 폭력!

         

       비명이 울렸다.

         

       파스텔은 눈이 동그랗게 됐다.

         

       아니, 사람 잡을 폭력!

         

       “잠시만요! 무례한 발언은 맞았지만 제 외견상 신뢰를 주기 어렵긴 했어요!”

       “역시 무례하다 느끼셨군요.”

         

       멈추던 사병들이 더 거세게 용병을 밟았다.

         

       비명이 더 커졌다.

         

       아앗.

         

       발언 실수!

         

       아닌 척 기름 붓는 악덕 상사가 된 기분!

         

       악덕 상사 파스텔……!

         

       파스텔은 양팔을 허우적댔다.

         

       “멈춰요, 멈춰어!”

         

       악덕 상사 파스텔은 그마안.

         

       후작 각하의 단호한 명령에 상황은 금세 정리됐다.

         

       용병이 들것에 실려 갔다. 축 늘어진 팔이 들것에 걸쳐져 흔들렸다.

         

       으아.

         

       “저분 괜찮으신 건가요?”

         

       맥스가 움찔하더니 크래프트를 상대할 땐 이 정돈 각오했다는 눈길로 속삭였다.

         

       “몰래 괜찮지 않게 할까요?”

         

       허억.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발언!

         

       맥스 씨 완전 사악……!

         

         

         

       #

         

         

         

       상단 연합의 비공정들이 떠올랐다.

         

       하늘고래를 모방한 비공정이 하늘을 헤엄치는 광경은 고래 떼의 유영을 연상시켰다.

         

       고래가 플랑크톤을 삼키고 자연의 순환을 돕듯이 비공정 또한 물자를 삼키고 재화의 순환을 도왔으니 둘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은 것인지도 몰랐다.

         

       이 순간만큼은 더욱 그럴 것이다.

         

       상단 연합은 고래를 본받아 자연의 순환을 위해 움직인 참이었다. 해적의 명줄을 끊어 물고기 밥으로 던져주는 자연 친화적 행위 말이다.

         

       “우와아.”

         

       파스텔은 비공정 난간에 기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고래예요! 완전 짱짱 큰 고래!”

         

       대빵 큰 비공정이 선두에서 날아갔다.

         

       『군함이군. 본래라면 폐함일지라도 민간엔 넘기지 않을 텐데 용케 매입한 모양이다. 아니, 제국이 군사적으로까지 부패한 건가.』

         

       파스텔은 칙칙한 발언을 흘려들었다.

         

       “짱짱 큰 고래!”

         

       우와아.

         

       헤벌레.

         

       한참을 날아갔다. 비공정 집단이 나뉘며 다른 하늘길을 탔다.

         

       “저희는 소굴 토벌 대신 길목에 대기했다가 본대를 피해 도망쳐 온 해적선 무리를 격파할 겁니다.”

         

       완전 본격적.

         

       마른침을 꼴깍.

         

       파스텔은 차이를 전혀 모르겠는 어느 하늘에 당도하자 비공정이 단체로 멈춰 섰다.

         

       『하늘청새치 영역의 중간에 낀 좁은 하늘길인가. 좁은 길목이라 많은 비공정이 매복하기 어렵지. 여기로 도망쳐 올 해적선은 꽤 있겠군.』

         

       하늘 청새치?

         

       그 송곳 같은 주둥이를 가진 사람보다 큰 물고기?

         

       파스텔은 눈이 동그랗게 됐다.

         

       “좌우 서식지에 청새치들이 날아다닌다는 거죠? 별 이유 없이?”

         

       『그래. 마주치면 좋은 꼴은 되지 못할 거다. 비공정이 뚫리는 광경을 볼 수도 있겠군.』

         

       으아아.

         

       하늘고등어의 몸통 굵기가 파스텔 머리만 한 세상에 청새치는 얼마나 클까.

         

       분명 난 파스텔 꼬치가 될 크기일 거야.

         

       파스텔 꼬치.

         

       덜덜덜.

         

       난 그냥 닭꼬치 먹을래애.

         

       사병과 용병들이 갑판 위에서 긴장한 채 무장을 정비했다.

         

       우아우아.

         

       지휘권을 물리고 어영부영 난간에 혼자 나온 파스텔은 분위기를 따라 마검을 뽑아 손수건으로 슥슥 닦았다.

         

       슥슥슥슥.

         

       검날을 살펴봤다.

         

       빤짝빤짝.

         

       허억, 거울인 줄.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정말 싸우려는 거요?”

         

       고개를 돌리자 무례한 발언을 했다가 실려 갔던 용병이 발을 살짝 절며 다가왔다.

         

       전투를 준비했는지 가죽 갑옷 차림의 완전 무장 상태였다. 큼지막한 도끼가 어깨에 걸쳐져 있었다.

         

       앗.

         

       “몸은 괜찮으세요?”

         

       발목이?

         

       용병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거, 내 몸이야 내가 알아서 챙기지.”

         

       으에.

         

       완전 밉보인 듯.

         

       파스텔 울상.

         

       “해적선이다!”

         

       척후 담당이 망원경을 보다 소리쳤다.

         

       시선들이 저 하늘로 쏠렸다. 해적선 몇 채가 전속력으로 날아왔다. 상단 비공정들이 바로 반응하고 해적선을 맞이하러 나갔다.

         

       우와앗.

         

       전투다아!

         

       파스텔은 손이 떨렸다.

         

       덜덜덜.

         

       자동 밀무역의 사리사욕을 위해 사악한 해적을 처단하러 왔지만 막상 상황이 닥치자 안절부절못하는 파스텔……!

         

       안절부절.

         

       우왕좌왕.

         

       허둥지둥.

         

       해적선이 코앞까지 당도했다. 용병이 도끼를 매만지다 해적선과 파스텔을 번갈아 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난간을 꽉 잡으쇼.”

       “네?”

       “난간을 꽉!”

         

       말 잘 듣는 파스텔은 난간을 꽉 잡았다.

         

       그리고 암묵적 합의로 속도를 줄이고 회전한 비공정과 해적선이 빗겨 충돌했다. 고래를 닮은 인공물들이 연달아 충돌하고 굉음이 울렸다.

         

       “으아아!”

         

       분홍톤 소녀가 난간을 잡은 채 붕 떴다.

         

       “파스텔 살려어!”

         

       으에에.

         

       잠시 뒤 충격이 가셨다.

         

       판자가 해적선 난간에 걸쳐졌다. 상단 병력이 무기를 뽑았다.

         

       “해적선 약탈이다! 하하!”

         

       상단 연합에서 환호가 울렸다.

         

       으아?

         

       파스텔은 헝클어진 머리로 주저앉은 채 어리벙벙하게 상황을 지켜봤다.

         

       사악한 맥스 씨가 해적선을 가리켰다.

         

       “마음껏 약탈해라!”

         

       함성과 함께 상단 병력이 해적마냥 해적선에 올라탔다. 해적선의 해적들이 가련한 피해자인 양 비명을 질렀다. 전투가 벌어졌다.

         

       우아?

         

       갑자기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뀐 기분?

         

       뭐 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벌떡 일어나 검을 들었다.

         

       “와아! 돌격!”

         

       돌격! 돌격!

         

       판자를 엉금엉금 기어(떨어질까 무서워) 해적선에 올라탔다.

         

       병장기 부딪히는 소음이 온 사방에 울렸다. 가끔씩 총성도 났다. 사람이 죽고 피가 흘렀다.

         

       어어.

         

       파스텔은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돌리는 시야마다 열댓 명이 싸우는 광경을 보다가 검을 꼭 끌어안았다.

         

       너, 너무 본격적.

         

       잘못 온 기분.

         

       발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리자 해적이 달려왔다. 해적검이 들어 올려졌다.

         

       으아아.

         

       용병이 파스텔 앞을 가로막았다.

         

       “온실 속 화초가 이런 구렁텅이에서 뭔 명예를 얻겠다고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도끼가 휘둘러졌다. 해적검과 부딪히고 그대로 저항을 압살하며 해적을 쪼갰다.

         

       용병이 어깨에 도끼를 걸치며 돌아봤다.

         

       “후작쯤 되는 각하면 뒤에 빠져 있다가 이길 때쯤 슬그머니 나와도 아무도 뭔 말 안 하니 위험하게 있지 말고 빠져계쇼.”

         

       파스텔은 눈이 동그랗게 됐다.

         

       표현이 거칠 뿐 착한 사람.

         

       새 해적이 달려들었다.

         

       “아 거! 말하는데!”

         

       용병이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돌렸다. 도끼가 들리고 발이 지면을 밟았다.

         

       순간 강한 충격에 발목이 삐끗하고 용병의 자세가 무너졌다.

         

       “엇.”

         

       도끼가 허공을 찍었다. 해적검이 용병을 노렸다.

         

       분홍 머리가 휘날렸다.

         

       신의엔 신의를.

         

       검과 검이 부딪혔다.

         

       호르몬이 폭주했다.

         

       분홍 눈동자가 몽롱해졌다.

         

       소녀의 한 손이 무심하게 움직였다.

         

       품속에서 마석 나이프가 떠올랐다.

         

       이것은 약자 멸시의 궤적.

         

       닿을 곳은 전방위.

         

       은빛 궤적이 무자비하게 몰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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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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