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6

       원래 루즈는 밤에는 시끄럽지만, 낮에는 비교적 차분한 도시였다.

       유흥도시가 다들 그렇듯 해가 지면 북적거리다, 해가 뜨면 한산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서커스 그랑프리의 개막식이 2주 앞으로 다가오자, 루즈의 낮도 요란스러운 소리와 빛깔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서커스 그랑프리에 참여하기 위해 곡예사들이 세계 각지에서 속속들이 루즈로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누구라도 어깨를 들썩이게 만드는 흥겨운 가락들이 골목마다 흘러나왔다.

       곡예사들이 거리 곳곳에서 각자 가진 재주를 힘껏 뽐냈다.

         

       구르는 공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아가며 춤을 추는 무희.

       황소개구리 떼를 몰고 다니는 조련사.

       양팔과 양다리가 비대칭적으로 움직이는 광대 등.

         

       주체할 수 없는 유쾌함이 도시 전체에 흘러넘쳤다.

       루즈에서 가장 엄격한 가정의 부모조차도 매일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판을 기웃거릴 정도였다.

         

       거리에서 재주를 펼치는 이들은 대부분 개인으로 혹은 소규모로 활동하는 곡예사들이었다.

       그들은 대로나 광장, 또는 유명한 서커스단이 머무르는 숙소 앞에서 자신들의 재주를 과시했다.

       그들이 서커스 그랑프리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대형 서커스단에 들어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서커스 그랑프리에서 세상의 모든 곡예단을 하나하나 심사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주최 측에서는 그랑프리에 참여하기 위한 몇 가지 조건을 만들었다.

         

       우선 보유한 곡예사의 수가 일정 이상 되어야 했으며, 그중 키르쿠스의 은총을 입은, 즉, 인스피라를 지닌 곡예사가 1명 이상 있어야 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 요구사항이었다.

       서커스 그랑프리에서 경쟁하려면, 그 정도 실력은 기본이었기 때문이다.

         

       가장 까다로운 장벽은 따로 있었다.

       바로 ‘후원자’ 제도였다.

         

       그랑프리에 참여하는 서커스단은 사회적 위치가 있는 명사의 보증을 받아야 했다.

       거기다 보증인은 서커스 그랑프리에 일정한 금액 이상을 투자해야 했다.

         

       인적 관리에 있어서도, 자본 유치에 있어서도, 대회 운영을 수월하게 만드는 제도였다.

         

       그러나 그 때문에 소규모 곡예단이나 개인 곡예사들은 서커스 그랑프리에 참여하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후원자들은 대부분 이름난 대형 서커스단을 원했기 때문이다.

       

       이번 서커스 그랑프리에 투자하기로 한 상회, 기업, 가문의 수는 총 100여 곳.

       즉, 100여 개의 곡예단이 이번 대회에 참가할 자격을 얻었다.

         

       이는 현존하는 곡예단의 수보다 현저히 적은 것이었다.

       그래서 개막식이 2주 남은 이 시점에서, 서커스 그랑프리의 무대에 오르길 희망하는 곡예사들은 예선전이 열리는 6개 도시에 몰려들었다.

       대형 서커스단에 자신의 재주를 어필하고 입단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서커스 그랑프리에 참여하는 서커스단들의 바람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그들도 되도록 대회가 시작되기 전에 곡예사를 최대한 많이 확보하길 원했다.

         

       대회의 규정상 일단 예선전이 시작되고 나면, 곡예사를 추가로 영입하는 데는 제한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정한 영입과 영합을 방지하기 위한 규칙이었다.

         

       무려 2년 반 동안 진행되는 대회였다.

       앞으로의 일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었다.

       우수한 후보군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그래서 그랑프리에 참여하는 서커스단에서는 개막식 전까지 거리를 쏘다니며 우수한 곡예사를 발굴하기 위해 힘썼다.

         

       물론, 찾기는 쉽지 않았다.

       정말 이름나고 유명한 곡예사들은 대회 2주 전이 아니라, 이미 그 전에 영입이 다 완료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뽑으려는 사람들은 백사장에 묻힌 보석을 찾는 심정으로, 뽑히려는 사람들은 자신이 그 보석이길 희망하며 오늘도 거리에 나왔다.

         

       그 과정에서 곡예사들끼리 서로 자리를 놓고 다투는 일도 빈번했다.

         

       “<알렌과 조>가 5분 뒤 시작합니다!”

       “<뱀 피리 조련>이 4분 뒤 시작합니다!”

       “정정합니다! <알렌과 조>가 3분 뒤 시작합니다!”

       “<뱀 피리 조련>은 2분 뒤!”

       “<알렌과 조>! 1분 뒤!”

       “<뱀 피리 조련>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이 망할 여자가! 갑자기 어디서 나타나서는! 딴 데 가서 해!”

       “너희들이나 꺼져!”

       “우린 그저께부터 여기 있었어!”

         

       그리고 가끔 도가 지나쳐 그런 경쟁이 곡예사들끼리의 다툼으로 번지기도 했다.

         

       지금 메트로폴 호텔의 앞에서 벌어지는 싸움이 그랬다.

         

       <알렌과 조>의 간판 뒤에 선,

       중절모를 쓰고 검은 정장을 입은 지팡이를 짚은 두 명의 남자.

         

       <뱀 피리 조련>의 간판 뒤에 선,

       보석 박힌 터번을 두른 젊은 여자.

         

       둘이 서로를 팽팽히 노려보았다.

         

       뱀 조련사 수아브는 호텔의 2층 테라스를 흘끗 올려다보며 흐트러진 터번을 정리했다.

       테라스에는 척 봐도 귀족으로 보이는 남녀와 곡예사 복장을 한 무리가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수아브는 속으로 미소지었다.

       작전 성공이다.

       일단 시선을 끄는 데는 성공했다.

         

       그녀가 괜히 저 둘에게 시비를 건 게 아니었다.

       둘을 자신의 재주를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삼기 위해서였다.

       그녀가 원하는 관객은 저 호텔에 묵고 있는 투숙객들이었다.

         

       수아브는 후원을 받는 곡예단이 메트로폴 호텔에 머물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신생 서커스단이었지만, 그 후원자는 아주 유명한 상회였다.

       심지어 그 상회의 회장이 직접 챙기러 왔을 정도로 서커스단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들었다.

         

       분명 엄청난 자본력을 투입해서 엘리트 곡예사들이 모아 조직한 소수정예 집단일 것이다.

       그녀가 여기서 재주를 펼친다면, 그들에게 눈도장을 단단히 찍을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얌전히 재주를 펼치는 것보다 인상적인 활약을 남겨야 했다.

         

       그래서 저 얼빠진 희극인 둘에게 시비를 건 것이다.

       별 웃기지도 않은 만담에 참신하지도 않은 몸개그를 시도하는 것들이었지만, 그 호들갑 떠는 반응 하나는 마음에 들었다.

         

       -이봐, 알렌! 도와줘! 신발에 못이 박혔어! 어이쿠우우!

       -조! 멈춰! 멈추라고! 우아악!

         

       이미 이틀에 걸쳐 사전 조사를 마쳤다.

       소리 지르고 넘어지는 것 외에는 별 재주도 없는 자들이었다.

         

       자신의 뱀 앞에서 그 정도의 반응을 보여준다면, 훌륭한 쇼가 될 것이다.

         

       뱀 조련사는 피리를 불었다.

       단지에 들어있는 킹코브라가 혀를 날름거리며 고개를 쳐들었다.

       동시에 그녀의 등에 멘 망태기가 꿈틀거렸다.

       그 안에는 검은 코브라보다 크기가 작은 녹색의 뱀들이 있었다.

         

       수십 마리의 뱀들이 그녀의 피리 소리에 맞춰 일제히 망태기 밖으로 기어 나왔다.

         

       싸움 구경을 하려 몰려든 군중들이 우하며 뒤로 물러났다.

       뱀들은 정장을 입은 희극인 둘을 향해 스르르 미끄러지며 다가갔다.

         

       수아브는 둘이 벌벌 떨고 있는 것을 기대하며 그들을 바라봤다.

         

       그러나 둘은 예상외로 침착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둘의 표정은 무서울 정도로 싸늘했다.

         

       “조, 원치 않는 우리로 돌아갈 시간이군.”

       “이 서늘한 감각. 오랜만이다.”

         

       둘은 지팡이 안에서 칼을 빼 들었다.

         

       지팡이를 짚을 때마다 미끄러지고 자빠지던 둘이었다.

         

       그저 슬랩스틱용 소품인 줄 알았는데?

         

       설마 그 안에 칼이 들어있을 줄은 몰랐다.

         

       번쩍하는 빛과 함께 알렌의 근처에 있던 뱀 둘의 목이 날아갔다.

       거기에 수아브가 반응하기도 전에 조에게 목을 치켜세우던 뱀 한 마리가 그대로 그의 검에 꼬챙이에 꿰뚫리듯 몸이 관통되었다.

         

       ‘이, 이것들이?’

         

       예상외의 실력.

       검을 휘두르는 둘에게서 우스꽝스러운 희극인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완벽하게 단련된 검객들이었다.

         

       수아브는 테라스를 흘끗 돌아봤다.

       그녀가 사로잡으려던 관객들은 이제 자신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검을 휘두르는 두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둘의 솜씨에 완전히 매료된 듯했다.

         

       ‘아, 안돼! 이러면 내가 광대가 된 셈이잖아.’

         

       수아브는 피리를 고쳐 잡았다.

       더 공격적인 명령을 내려야 했다.

       다소 상처를 입히더라도…… 어차피 내게 해독제가 있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의도를 파악한 알렌이 재빠르게 대응했다.

       그의 손에서 지팡이 검이 번개처럼 쏘아져 나갔다.

         

       서걱.

         

       검은 뱀 조련사의 몸을 하나도 건들지 않고 오직 피리만 두 동강 내고는 그녀의 목과 어깨 사이로 지나갔다. 검은 돌벽에 박혀 파르르 떨었다.

         

       “어지간히 하지. 조는 몰라도 나는 인내심이 그렇게 크지 않거든.”

         

       안색이 새파랗게 변한 수아브.

       그녀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두동간난 피리를 바라봤다.

         

       그러나 그녀의 입에서 나온 것은 항복의 말도, 독기어린 말도 아니었다.

         

       “미, 미친! 피리를 자르면 어떡해! 나는 피리로만 뱀들을 다룰 수 있단 말이야!”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그것이 뱀들의 심기를 자극했다.

       주인의 경계심 어린 태도에 뱀들이 흥분했다.

         

       수아브는 아차 싶었다.

       실수였다.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 안 되는 것이었다.

         

       뱀들은 날카롭게 주변에서 웅성대는 다른 사람들을 돌아봤다.

         

       소리, 땀 냄새, 진동.

       모든 것이 뱀들을 자극했다.

         

       당황한 것은 수아브 뿐만 아니라, 알렌과 조 둘 다 마찬가지였다.

       상황을 끝내기 위해서 한 행동이 상황을 악화시킨 것이다.

         

       뱀들은 부채꼴로 넓게 퍼지며 사람들 쪽으로 기어갔다.

       군중들은 딱딱하게 굳은 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먼저 움직이는 쪽이 뱀들의 공격을 받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일촉즉발의 상황.

         

       그때, 휘파람 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졌다.

         

       “어?”

         

       그 소리를 듣고 놀란 것은 수아브였다.

       이 곡조는 그녀가 뱀들을 다시 단지로 불러들일 때 내는 곡이었기 때문이다.

         

       뱀들의 가청주파수는 아주 좁았다.

       그래서 전용 피리로만 뱀들을 다룰 수 있었다.

         

       그런데 이 휘파람은 정확히 그 음역으로 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쉬익.

       -쉭쉭.

         

       뱀들이 고개를 숙였다.

       그들의 흥분이 가라앉는 것이 보였다.

         

       좋은 의미로 잘 훈련된 뱀들이었다.

       그들은 수아브의 다리 밑을 지나 자신들의 둥지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녹색 뱀들은 그녀의 망태기로, 검은 킹코브라는 짚으로 만든 단지로.

         

       그렇게 정리된 현장의 중앙에는 검은 정장을 입고, 검은 망토를 두른 금발의 남자가 있었다.

       그가 방금 휘파람을 부른 남자였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 쏠렸다.

         

       수아브는 그가 누군지 알아봤다.

         

       방금까지 호텔 테라스에 있던 남자였다.

         

       그는 사람들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프랑크 원더스타인이라고 합니다. 원더스타인 곡예단의 단장이죠. 거리의 곡예사들과 잠시 합작으로 간단한 쇼를 펼쳐봤습니다. 즐거우셨나요?”

         

       작은 다툼에서 벌어진 소동.

       뱀들이 튀어나오며 놀랐고, 예상치 못한 검객들의 솜씨에 감탄했고, 그러다 흥분한 뱀들 때문에 떨었고, 마지막으로 그것을 정리하는 단장의 우아한 실력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제야 상황을 파악한 군중들은 와 하며 손뼉을 치고 함성을 내질렀다.

       모두 준비된 상황이었던 것이다.

         

       당연히 그딴 거 모두 거짓말이다.

       그건 상황을 주도한 세 사람이 잘 알고 있었다.

         

       멍하니 그를 바라보는 세 사람을 향해 원더스타인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