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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

       이 세계가 정말 내 소설과 똑같은 설정을 공유하는 세상이라면 그리 순탄하게 굴러가지는 않겠지.

       

       그야 난 한 번도 일상물을 써본 적이 없으니까.

       

       정확한 서사는 생각해 둔 게 없어, 세상이 멸망한다거나 누가 죽는다거나 그런 흉흉한 이야기는 잘 모른다.

       

       다만 설정 자체가 무슨 일이 터지기 쉽게 만들어졌다. 그래야 이야기가 굴러가니까.

       

       예를 들자면 이브. 모종의 이유로 흑화한 그녀는 미궁도시 전체를 뒤엎는 사건을 일으킬 예정이었다.

       

       물론, 그리되지 않도록 막을 생각이다만…그럴 가능성이 차고도 넘친다는 게 문제지.

       

       그리고 이런 위험 요소가 판 대륙 곳곳에 숨겨져 있다.

       

       사이비 집단인 황혼을 삼키는 자의 목적, 마탑의 실험 사고, 공방 연합의 타락, 미궁과 여신의 비밀 등등.

       

       실제로 이 모든 사건이 터진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애초에 스토리라는 건 좀처럼 작가의 생각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으니까.

       

       그저 어떤 상황에서도 써먹을 수 있도록 떡밥 정도는 뿌려뒀다. 전개가 어떤 식으로 굴러가건 주인공의 앞을 가로막는 역경이 되도록.

       

       역경은 곧 성장. 그리고 성장은 곧 보상.

       

       주인공은 내가 뿌려둔 떡밥 중 일부를 맞닥뜨리고, 극복하며, 최종적으로는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넣으리라.

       

       …하지만, 그 과정은 주인공이 아닌 이들에겐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올 것이다.

       

       엘리 또한 이에 휘말리는 사람 중 하나다. 조력자 포지션이라는 건, 달리 말해 이런 굵직한 사건에 한 다리씩 걸치는 사람이라는 소리니까.

       

       내가 구상해 둔 사건들이 정말 일어날지 아닐지도 알 수 없고, 주인공은 지금 어디서 뭘 하는지도 알 수 없으며, 내가 있는데도 엘리가 주인공과 엮이려 들것 같지는 않지만….

       

       앞으로 벌어지는 모든 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떠한 종류건 힘이 필요하다는 건 확실하다.

       

       뭐…엘리라면 당연히 나를 지켜주겠지. 그런 성격이기도 하고, 그만한 능력이 있기도 하니까.

       

       허나, 그렇게 보호만 받는 것은 성에 차지 않는다.

       

       이는 전생의 기억이 남긴 남자로서의 자존심이기도 하며, 원작자로서의 책임감이기도 하니까.

       

       다행히 이젠 힘을 키울 수 있는 조건이 맞춰졌으니 더는 망설일 필요가 없다.

       

       “엘리.”

       

       “응.”

       

       “엘리가 불쌍한 저를 귀여워한다는 건 잘 알고 있어요.”

       

       “불쌍해서 귀여워한다니…그런 거 아냐. 나는….”

       

       “괜찮아요. 이유가 뭐가 됐건 어쨌든 중요한 건 엘리가 저를 마음에 들어 한다는 점이니까요.”

       

       “요나야….”

       

       “다만 저는 이대로는 싫어요. 가능하면 엘리와 대등한 관계가 되고 싶거든요.”

       

       “대등한 관계?”

       

       “네. 제가 엘리보다 더 강해져서 엘리를 역강간하겠다는 소리예요.”

       

       “???”

       

       자기가 무슨 소리를 들었나 이해하지 못해 갸웃거리는 엘리. 까치발을 들어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엘리가 아무리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중요할 때 뒤로 빼는 겁쟁이라지만…상관없어요. 제가 강제로 덮쳐드릴 테니까요. 어때요? 엘리에겐 참 편리한 이야기죠?”

       

       “자, 잠시만. 그건 좀.”

       

       “그다음은 리디아 님이에요.”

       

       “…뭐?”

       

       “저는 엘리 말대로 성욕이 강한 핑챙이거든요. 엘리 하나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리디아 님에게 손을 댈지도 모르겠죠.”

       

       “요나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지만 언제나 첫 번째는 엘리일 거예요. 제가 돌아올 곳 또한 엘리의 옆이고요.”

       

       “…….”

       

       “그냥 이 말이 하고 싶었어요.”

       

       거기까지 말하고는 몸을 떨어뜨렸다. 잠시 멍하니 있던 엘리는 그런 내 모습에 피식 웃으며 품에서 마력초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나는 요나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인내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냐.”

       

       “오히려 좋은데요?”

       

       “글쎄. 그때도 지금같은 말을 할 수 있는지 보자고.”

       

       늑대 수인답게 사나운 미소를 지은 엘리가 라이터를 꺼내 담배에 불을 붙인다.

       

       이제는 완전히 평소와 같은 모습…잠깐, 라이터?

       

       “엘리. 그 라이터 처음 보는 거네요.”

       

       “아. 최근에 하나 잃어버려서 새로 샀지. 어때? 멋있지 않아?”

       

       “…….”

       

       내게 자랑하듯 내민 라이터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예전에 쓰던 녀석보다 더 비싸 보였다.

       

       괜한 박탈감이 들어 엘리가 물고 있는 담배 끝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미약한 불꽃.”

       

       화르륵!

       

       라이터의 불길을 덮어씌우듯 최대 출력으로 마법을 발현했다. 

       

       “어어?!”

       

       불씨가 붙는 게 아니라 아예 타오르는 연초의 끄트머리에 당황한 엘리. 그런 그녀의 앞에서 보란 듯이 바람을 불었다.

       

       “후우!”

       

       옮겨붙은 불이 꺼지며 내 마법으로 붙인 불씨만 남은 상황. 이에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 이제 가볼게요.”

       

       “응…아니, 근데 방금 건 대체….”

       

       어이없어하는 엘리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바깥이 아닌 2층으로 돌아갔다.

       

       “다시 올라가는 거냐? 바람 쐰다고 하지 않았어…?”

       

       “흥! 이젠 그럴 필요 없어졌어요!”

       

       라이터를 찾아오기는 무슨.

       

       가챠나 돌리자.

       .

       .

       .

       .

       .

       띠링!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잘 말린 마력초]

       [2성: 마력초 환단]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가공된 회복초]

       [1성: 최하급 회복 포션]

       [1성: 가공된 회복초]

       [1성: 잘 말린 마력초]

       [2성: 하급 해독 포션]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싱그러운 화환]

       

       “캬! 이거지!”

       

       2성이 2개. 즉. 본전의 2배는 뽑아먹었다. 당장 큰 도움이 될 만한 것은 없지만, 하나같이 있으면 좋은 것들이네.

       

       “전당포 라이터는…서비스 종료다!”

       

       엘리는 새 라이터나 쓰라 그래! 난 그 돈으로 가챠나 돌릴 거야!

       

       한바탕 덩실덩실 춤을 추고 난 뒤에야 침대 위에 널브러진 가챠의 결과물을 확인해 보았다.

       

       마력초랑 회복초는 볼 것도 없으니, 일단 입에 집어넣고 봤다.

       

       “음냠냠….”

       

       입안 가득 퍼지는 씁쓸하면서도 시원한 약초의 맛. 맛은 없지만, 애초에 약은 맛있으려고 먹는 게 아니잖은가.

       

       쉴 새 없이 입가를 우물거리며 나머지 물건들을 살펴보았다.

       

       마력초 환단, 최하급 회복 포션, 하급 해독 포션, 싱그러운 화환.

       

       마력초 환단은 익숙한 물건이었다. 내가 이번에 의뢰 맡겼던 마력초를 제련해 만든 영약이랑 비슷하게 생겼으니까.

       

       다만 완전히 똑같지는 않고, 훨씬 때깔이 좋아 보였다. 알도 굵고, 윤기도 나고, 한층 시원한 향기를 풍겼으니까.

       

       하기야. 저렴한 견습 연금술사가 만든 물건과 비교하면 뭐든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겠지.

       

       이건 어디까지나 내 추측일 뿐이지만, 가챠에서 나오는 물건은 나름 품질이 좋은 것들인 것 같더라고.

       

       마력초와 회복초 같은 건 까딱 잘못하며 벌레 먹기 딱 좋은데, 가챠에서 나온 약초에는 그런 게 전혀 없었으니까.

       

       뭐…잘 만들어져봤자 결국 마력초로 만든 것이다. 영약 중에서는 최하급에 속하는 거겠지.

       

       하나 먹어보기도 하지 않았나. 큰 기대는 하지 말고 약초들이랑 같이 먹으면 되겠지.

       

       다음은 최하급 회복 포션인데…이건 뭐 볼 거 있나. 바로 벨트 구석에 달아뒀다. 하급 해독제도 마찬가지였고.

       

       전부 여차할 때를 대비한 상비약 같은 것들이니까.

       

       …그나저나 해독제가 생겼으니 다음에 적당한 독을 하나 먹어봐야겠네.

       

       탐식의 위장으로 소화할 수 있는지 아닌지 확인은 해봐야 하니까. 만약 안 된다면 그때 해독제 마시면 그만이지.

       

       마지막으로 화환. 이건 예쁘긴 한데 어디다 써야 할지는 모르겠다. 잠시 고민하다 적당히 벽에 걸어두었다.

       

       본래라면 엘리의 목에 걸어주고 조금 놀려줬겠지만…지금은 좀 그렇잖은가.

       

       “좋아. 이제 자야지.”

       

       내일은 다시 미궁에 가야 하니 슬슬 컨디션을 조절해야 한다. 남은 약초와 환단을 죄다 입안에 욱여넣고는 이불을 덮었다.

       

       ***

       

       다음 날 아침. 아침만 간단히 먹고 리디아를 따라 판 그레이브 광장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내 눈치를 보던 리디아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요나. 엘리 선배랑 화해했어? 잠깐 보니까 다시 괜찮아진 것 같던데.”

       

       “애초에 싸우지도 않았거든요? 그냥 서로 약간 의견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에요.”

       

       “응. 뭐가 됐건 다시 사이좋아졌다면 다행.”

       

       눈에 띄게 안도하는 리디아. 그런 그녀를 향해 씨익 웃어보였다.

       

       “맞아요. 리디아 님. 엘리가 없는 곳에서 만지게 해준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럼 지금은 괜찮은 거죠?”

       

       “…지금 말고 다음에. 여긴 사람이 많잖아.”

       

       슬쩍 시선을 피하는 리디아. 그런 그녀를 도끼눈으로 쏘아보며 입을 열었다.

       

       “다음이라면 언제요? 던전에 들어가서요?”

       

       “그건….”

       

       “던전에서는 던전은 위험하니 안 된다고 하겠죠. 밖으로 나오면 지금처럼 사람들이 보니까 안 된다고 할 거고, 요정과 은화에서는 엘리가 보니까 안 된다고 할 생각이죠?”

       

       “…….”

       

       정곡을 찔렸다는 듯이 입을 꾹 다문 리디아. 이 와중에서 걸음에 맞춰 상하좌우로 리드미컬하게 흔들리는 가슴이 참 압권이었다.

       

       갑옷이라는 구속구에서 벗어난 가슴은 이렇게 엄청난 거구나….

       

       무언가에 홀린 듯 뻗어나가는 손.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자연스레 머리로 가져다 댔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다는 것처럼.

       

       그리고는 앞머리를 손가락으로 비비 꼬며 대수롭지 않다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괜찮아요. 리디아 님이 왜 저를 피하는지, 그게 정말 엘리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이제 신경 쓰지 않기로 했거든요.”

       

       “…그래?”

       

       미안함과 아쉬움이 뒤섞인 표정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는 리디아. 

       

       그런 리디아의 앞에서 보란 듯이 양팔을 들어 올려 무해하다는 어필을 했다.

       

       “만지는 건 안 돼도 구경하는 건 괜찮겠죠?”

       

       “본다고 닳는 것도 아니니 뭐….”

       

       “이번엔 제대로 약속해 주세요!”

       

       새끼손가락을 내밀자, 잠시 고민하다 마주 걸어주는 리디아.

       

       그녀의 새끼손가락을 꽈악 붙잡았다. 도망치지 못하도록.

       

       “언제 어디서든 리디아 님이 가슴을 보여준다니! 감사해요!”

       

       “…그런 말 안 했어!”

       

       어허. 이미 도장 찍었어. 낙장불입이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응애 나 아기 오리너구리.

    붕괴 스타레일 죄다 천장침…

    스파클 천장, 전광 반천장 픽뚫 1번 하고 2번째에서 확정 뽑일때 또 천장…

    가챠는 나쁜문명…분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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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

EP.36





       이 세계가 정말 내 소설과 똑같은 설정을 공유하는 세상이라면 그리 순탄하게 굴러가지는 않겠지.


       


       그야 난 한 번도 일상물을 써본 적이 없으니까.


       


       정확한 서사는 생각해 둔 게 없어, 세상이 멸망한다거나 누가 죽는다거나 그런 흉흉한 이야기는 잘 모른다.


       


       다만 설정 자체가 무슨 일이 터지기 쉽게 만들어졌다. 그래야 이야기가 굴러가니까.


       


       예를 들자면 이브. 모종의 이유로 흑화한 그녀는 미궁도시 전체를 뒤엎는 사건을 일으킬 예정이었다.


       


       물론, 그리되지 않도록 막을 생각이다만…그럴 가능성이 차고도 넘친다는 게 문제지.


       


       그리고 이런 위험 요소가 판 대륙 곳곳에 숨겨져 있다.


       


       사이비 집단인 황혼을 삼키는 자의 목적, 마탑의 실험 사고, 공방 연합의 타락, 미궁과 여신의 비밀 등등.


       


       실제로 이 모든 사건이 터진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애초에 스토리라는 건 좀처럼 작가의 생각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으니까.


       


       그저 어떤 상황에서도 써먹을 수 있도록 떡밥 정도는 뿌려뒀다. 전개가 어떤 식으로 굴러가건 주인공의 앞을 가로막는 역경이 되도록.


       


       역경은 곧 성장. 그리고 성장은 곧 보상.


       


       주인공은 내가 뿌려둔 떡밥 중 일부를 맞닥뜨리고, 극복하며, 최종적으로는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넣으리라.


       


       …하지만, 그 과정은 주인공이 아닌 이들에겐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올 것이다.


       


       엘리 또한 이에 휘말리는 사람 중 하나다. 조력자 포지션이라는 건, 달리 말해 이런 굵직한 사건에 한 다리씩 걸치는 사람이라는 소리니까.


       


       내가 구상해 둔 사건들이 정말 일어날지 아닐지도 알 수 없고, 주인공은 지금 어디서 뭘 하는지도 알 수 없으며, 내가 있는데도 엘리가 주인공과 엮이려 들것 같지는 않지만….


       


       앞으로 벌어지는 모든 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떠한 종류건 힘이 필요하다는 건 확실하다.


       


       뭐…엘리라면 당연히 나를 지켜주겠지. 그런 성격이기도 하고, 그만한 능력이 있기도 하니까.


       


       허나, 그렇게 보호만 받는 것은 성에 차지 않는다.


       


       이는 전생의 기억이 남긴 남자로서의 자존심이기도 하며, 원작자로서의 책임감이기도 하니까.


       


       다행히 이젠 힘을 키울 수 있는 조건이 맞춰졌으니 더는 망설일 필요가 없다.


       


       “엘리.”


       


       “응.”


       


       “엘리가 불쌍한 저를 귀여워한다는 건 잘 알고 있어요.”


       


       “불쌍해서 귀여워한다니…그런 거 아냐. 나는….”


       


       “괜찮아요. 이유가 뭐가 됐건 어쨌든 중요한 건 엘리가 저를 마음에 들어 한다는 점이니까요.”


       


       “요나야….”


       


       “다만 저는 이대로는 싫어요. 가능하면 엘리와 대등한 관계가 되고 싶거든요.”


       


       “대등한 관계?”


       


       “네. 제가 엘리보다 더 강해져서 엘리를 역강간하겠다는 소리예요.”


       


       “???”


       


       자기가 무슨 소리를 들었나 이해하지 못해 갸웃거리는 엘리. 까치발을 들어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엘리가 아무리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중요할 때 뒤로 빼는 겁쟁이라지만…상관없어요. 제가 강제로 덮쳐드릴 테니까요. 어때요? 엘리에겐 참 편리한 이야기죠?”


       


       “자, 잠시만. 그건 좀.”


       


       “그다음은 리디아 님이에요.”


       


       “…뭐?”


       


       “저는 엘리 말대로 성욕이 강한 핑챙이거든요. 엘리 하나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리디아 님에게 손을 댈지도 모르겠죠.”


       


       “요나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지만 언제나 첫 번째는 엘리일 거예요. 제가 돌아올 곳 또한 엘리의 옆이고요.”


       


       “…….”


       


       “그냥 이 말이 하고 싶었어요.”


       


       거기까지 말하고는 몸을 떨어뜨렸다. 잠시 멍하니 있던 엘리는 그런 내 모습에 피식 웃으며 품에서 마력초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나는 요나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인내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냐.”


       


       “오히려 좋은데요?”


       


       “글쎄. 그때도 지금같은 말을 할 수 있는지 보자고.”


       


       늑대 수인답게 사나운 미소를 지은 엘리가 라이터를 꺼내 담배에 불을 붙인다.


       


       이제는 완전히 평소와 같은 모습…잠깐, 라이터?


       


       “엘리. 그 라이터 처음 보는 거네요.”


       


       “아. 최근에 하나 잃어버려서 새로 샀지. 어때? 멋있지 않아?”


       


       “…….”


       


       내게 자랑하듯 내민 라이터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예전에 쓰던 녀석보다 더 비싸 보였다.


       


       괜한 박탈감이 들어 엘리가 물고 있는 담배 끝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미약한 불꽃.”


       


       화르륵!


       


       라이터의 불길을 덮어씌우듯 최대 출력으로 마법을 발현했다. 


       


       “어어?!”


       


       불씨가 붙는 게 아니라 아예 타오르는 연초의 끄트머리에 당황한 엘리. 그런 그녀의 앞에서 보란 듯이 바람을 불었다.


       


       “후우!”


       


       옮겨붙은 불이 꺼지며 내 마법으로 붙인 불씨만 남은 상황. 이에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 이제 가볼게요.”


       


       “응…아니, 근데 방금 건 대체….”


       


       어이없어하는 엘리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바깥이 아닌 2층으로 돌아갔다.


       


       “다시 올라가는 거냐? 바람 쐰다고 하지 않았어…?”


       


       “흥! 이젠 그럴 필요 없어졌어요!”


       


       라이터를 찾아오기는 무슨.


       


       가챠나 돌리자.


       .


       .


       .


       .


       .


       띠링!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잘 말린 마력초]


       [2성: 마력초 환단]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가공된 회복초]


       [1성: 최하급 회복 포션]


       [1성: 가공된 회복초]


       [1성: 잘 말린 마력초]


       [2성: 하급 해독 포션]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싱그러운 화환]


       


       “캬! 이거지!”


       


       2성이 2개. 즉. 본전의 2배는 뽑아먹었다. 당장 큰 도움이 될 만한 것은 없지만, 하나같이 있으면 좋은 것들이네.


       


       “전당포 라이터는…서비스 종료다!”


       


       엘리는 새 라이터나 쓰라 그래! 난 그 돈으로 가챠나 돌릴 거야!


       


       한바탕 덩실덩실 춤을 추고 난 뒤에야 침대 위에 널브러진 가챠의 결과물을 확인해 보았다.


       


       마력초랑 회복초는 볼 것도 없으니, 일단 입에 집어넣고 봤다.


       


       “음냠냠….”


       


       입안 가득 퍼지는 씁쓸하면서도 시원한 약초의 맛. 맛은 없지만, 애초에 약은 맛있으려고 먹는 게 아니잖은가.


       


       쉴 새 없이 입가를 우물거리며 나머지 물건들을 살펴보았다.


       


       마력초 환단, 최하급 회복 포션, 하급 해독 포션, 싱그러운 화환.


       


       마력초 환단은 익숙한 물건이었다. 내가 이번에 의뢰 맡겼던 마력초를 제련해 만든 영약이랑 비슷하게 생겼으니까.


       


       다만 완전히 똑같지는 않고, 훨씬 때깔이 좋아 보였다. 알도 굵고, 윤기도 나고, 한층 시원한 향기를 풍겼으니까.


       


       하기야. 저렴한 견습 연금술사가 만든 물건과 비교하면 뭐든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겠지.


       


       이건 어디까지나 내 추측일 뿐이지만, 가챠에서 나오는 물건은 나름 품질이 좋은 것들인 것 같더라고.


       


       마력초와 회복초 같은 건 까딱 잘못하며 벌레 먹기 딱 좋은데, 가챠에서 나온 약초에는 그런 게 전혀 없었으니까.


       


       뭐…잘 만들어져봤자 결국 마력초로 만든 것이다. 영약 중에서는 최하급에 속하는 거겠지.


       


       하나 먹어보기도 하지 않았나. 큰 기대는 하지 말고 약초들이랑 같이 먹으면 되겠지.


       


       다음은 최하급 회복 포션인데…이건 뭐 볼 거 있나. 바로 벨트 구석에 달아뒀다. 하급 해독제도 마찬가지였고.


       


       전부 여차할 때를 대비한 상비약 같은 것들이니까.


       


       …그나저나 해독제가 생겼으니 다음에 적당한 독을 하나 먹어봐야겠네.


       


       탐식의 위장으로 소화할 수 있는지 아닌지 확인은 해봐야 하니까. 만약 안 된다면 그때 해독제 마시면 그만이지.


       


       마지막으로 화환. 이건 예쁘긴 한데 어디다 써야 할지는 모르겠다. 잠시 고민하다 적당히 벽에 걸어두었다.


       


       본래라면 엘리의 목에 걸어주고 조금 놀려줬겠지만…지금은 좀 그렇잖은가.


       


       “좋아. 이제 자야지.”


       


       내일은 다시 미궁에 가야 하니 슬슬 컨디션을 조절해야 한다. 남은 약초와 환단을 죄다 입안에 욱여넣고는 이불을 덮었다.


       


       ***


       


       다음 날 아침. 아침만 간단히 먹고 리디아를 따라 판 그레이브 광장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내 눈치를 보던 리디아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요나. 엘리 선배랑 화해했어? 잠깐 보니까 다시 괜찮아진 것 같던데.”


       


       “애초에 싸우지도 않았거든요? 그냥 서로 약간 의견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에요.”


       


       “응. 뭐가 됐건 다시 사이좋아졌다면 다행.”


       


       눈에 띄게 안도하는 리디아. 그런 그녀를 향해 씨익 웃어보였다.


       


       “맞아요. 리디아 님. 엘리가 없는 곳에서 만지게 해준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럼 지금은 괜찮은 거죠?”


       


       “…지금 말고 다음에. 여긴 사람이 많잖아.”


       


       슬쩍 시선을 피하는 리디아. 그런 그녀를 도끼눈으로 쏘아보며 입을 열었다.


       


       “다음이라면 언제요? 던전에 들어가서요?”


       


       “그건….”


       


       “던전에서는 던전은 위험하니 안 된다고 하겠죠. 밖으로 나오면 지금처럼 사람들이 보니까 안 된다고 할 거고, 요정과 은화에서는 엘리가 보니까 안 된다고 할 생각이죠?”


       


       “…….”


       


       정곡을 찔렸다는 듯이 입을 꾹 다문 리디아. 이 와중에서 걸음에 맞춰 상하좌우로 리드미컬하게 흔들리는 가슴이 참 압권이었다.


       


       갑옷이라는 구속구에서 벗어난 가슴은 이렇게 엄청난 거구나….


       


       무언가에 홀린 듯 뻗어나가는 손.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자연스레 머리로 가져다 댔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다는 것처럼.


       


       그리고는 앞머리를 손가락으로 비비 꼬며 대수롭지 않다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괜찮아요. 리디아 님이 왜 저를 피하는지, 그게 정말 엘리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이제 신경 쓰지 않기로 했거든요.”


       


       “…그래?”


       


       미안함과 아쉬움이 뒤섞인 표정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는 리디아. 


       


       그런 리디아의 앞에서 보란 듯이 양팔을 들어 올려 무해하다는 어필을 했다.


       


       “만지는 건 안 돼도 구경하는 건 괜찮겠죠?”


       


       “본다고 닳는 것도 아니니 뭐….”


       


       “이번엔 제대로 약속해 주세요!”


       


       새끼손가락을 내밀자, 잠시 고민하다 마주 걸어주는 리디아.


       


       그녀의 새끼손가락을 꽈악 붙잡았다. 도망치지 못하도록.


       


       “언제 어디서든 리디아 님이 가슴을 보여준다니! 감사해요!”


       


       “…그런 말 안 했어!”


       


       어허. 이미 도장 찍었어. 낙장불입이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응애 나 아기 오리너구리.

    붕괴 스타레일 죄다 천장침...

    스파클 천장, 전광 반천장 픽뚫 1번 하고 2번째에서 확정 뽑일때 또 천장...

    가챠는 나쁜문명...분쇄한다!!!!!!
    다음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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