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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

       * * *

       

       

       

       

       

       이 무렵, 페트로그라드의 영혼의 골수 볼셰비키들은 겹겹이 도시를 포위한 백군들을 두려워하면서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

       

       이제 세력을 확장할 원동력도 잃고 페트로그라드에 갇힌 몸이지만, 차리나가 제국의 수도를, 차르의 궁전이 있는 곳을 쉽사리 공격하지는 못하리라.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전세를 뒤집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페트로그라드가 버티면 전국 각지의 볼셰비키들이 다시 들고 일어날 것이다.

       

       그렇게 희망 회로를 돌리고 있었다.

       

       혁명의 도시에 남아 있는 볼셰비키들은 정말로, 공산주의 사상으로 영혼까지 덧칠해진 빨갱이 그 자체였다.

       

       그렇기에 이런 골수 빨갱이들에게 아나스타샤의 항복 제안은 감히 고민할 가치도 없는 것이었다.

       

       

       “어차피 반동의 수괴 황녀는 이곳을 넘지 못하오.”

       “차르의 도시를 파괴할 수는 없을 터. 그럼 직접 도시로 진입해야 하는데, 그거야말로 우리가 바라는 일.”

       “우리의 혁명이 옳았음을 증명합시다.”

       “트로츠키 동지께서 우리를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실제로 페트로그라드는 혁명이 일어난 도시로 각지에서 몰려든 진골 볼셰비키 시민들조차도 혁명파, 볼셰비키들로서 이곳에서 모두 죽을 각오를 했다.

       

       하지만 그렇게 기세등등한 것도 잠시였다.

       

       콰과광! 콰아앙!

       

       하늘에서는 폭탄이 너희는 폭격 실험대라고 각인시켜 주듯이, 소나기를 뿌리는 것처럼 원 없이 폭탄을 떨구고 있었다.

       

       여기에 야포가 다시 시내를 포격하기 시작하면서 페트로그라드는 건물이 무너지고, 그 건물에 사람이 깔리거나 포격에 육편이 되어가면서 피해가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 아비와는 다르게 강단이 있군. 우리를 완전히 뿌리 뽑겠다는 것인가.”

       

       

       트로츠키는 혀를 찼다.

       

       사실상 혁명은 실패.

       

       이것을 인정하고 있지만, 인정한다 해도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절대 저 제국주의와 공산주의는 양립할 수 없다.

       

       어느 한 곳은 반드시 뿌리 뽑혀야만 한다.

       

       이 페트로그라드는 혁명이 성공한 도시다. 그러니 기를 쓰고서라도 이 페트로그라드를 죽음으로서 막아 혁명이 여전한 것을 알려 준다.

       

       이미 백군이 지배하기 시작한 러시아 전역에서 볼셰비키를 두드려 잡기 위해 힘을 모은 다면 그것이 거대한 파도가 될 것을 트로츠키도 알았다.

       

       그 제국주의의 거센 파도를 막는다.

       

       혁명이 옳았음을 증명한다.

       

       황녀는 알고 있을까? 혁명의 적이 나타난 것만으로도 페트로그라드의 볼셰비키들은 오히려 죽기 살기로 싸울 거라는 걸.

       

       그렇게 의지를 불태우며 악착같이 페트로그라드를 방어하는 트로츠키였다.

       

       물론 그것과 별개로 압도적인 화력 앞에 페트로그라드는 파괴되어갔다.

       

       

       “트로츠키 동지. 도망치셔야 합니다.”

       

       

       볼셰비키들은 트로츠키에게 다시 도망치자고 했다.

       

       

       “어디로 가란 말인가? 대체 어디로.”

       

       

       이미 늦었다.

       

       레닌 동지도, 스탈린도 잡혔다.

       

       레닌 동지를 데려오는 것도 실패했고, 스탈린은 물론이거니와 수많은 동지가 잡혔다.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처형당했다던데.

       

       그런 마당에 자기 혼자 살아서 무엇할까.

       

       

       “독일 공산당의 룩셈부르크 동지가 독일에서의 혁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일단 북해를 통해 탈출한 다음. 룩셈부르크 동지와-”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핀란드도 반동들에게 붙었다.

       

       이제는 핀란드 대공이 아니라 아예 핀란드 국왕 자리를 저 여우 같은 황녀가 겸한다드라.

       

       탈출하려면 어지간히도 운도 좋아야 하고, 애초에 트로츠키는 이곳을 빠져나갈 생각도 없었다.

       

       

       “안 되네. 더는 도망쳐서는 안 되네. 독일의 혁명은 혁명이고 나는 결코 내 의지를 꺾지 않을 것이네.”

       

       

       독일의 혁명은 독일만의 것이다.

       

       당장 낙후된 러시아에서조차 혁명에 실패했는데, 자기가 독일로 간들, 혁명의 패자가 목숨이나 빌붙으려 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동지.”

       “자네들이나 빠져나가게.”

       

       

       트로츠키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다.

       

       자신은 이곳을 탈출할 자격이 없다.

       

       이제 곧 복수심에 미친 황녀가 백군 반동을 끌고 이 중심부까지 밀고 들어오겠지.

       

       그럼 반동을 한 명이라도 더 죽이다가 장렬하게 산화한다.

       

       좋다. 러시아의 혁명을 짓밟은 제국주의자 여제를 보는 것도 좋겠지.

       

       뭣하면 총으로 딱 틈을 노려 같이 죽는 것도 혁명에 다시 불을 지필 수 있으리라.

       

       그리하여 순교자로 남으리라.

       

       그것이 트로츠키에게 남은 마지막 과제였다.

       

       물론 어디까지나 트로츠키 혼자만 그리 생각했다.

       

       

       ‘저 인간이 나가야 다른 공산주의자들도 따를 거 아니야!’

       

       

       트로츠키의 결심과 달리 트로츠키를 따라온 다른 공산주의자들은 트로츠키를 이해해 줄 생각이 없었다.

       

       지금이 아니라면 도망칠 수도 없다.

       

       

       “죄송합니다 동지.”

       “뭐?”

       

       

       트로츠키는 함께 온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반강제로 끌려갔다.

       

       얼마후 볼셰비키들은 의식불명의 트로츠키와 함께 페트로그라드를 떠났다.

       

       

       

       * * *

       

       

       쾅 콰과광! 퍼어엉!

       

       

       페트로그라드를 포위해서 포격만 한지 시일이 꽤 흘렀다.

       

       아직 보병을 진입시키지 않았다.

       

       최대한 털 때까지 털어 버리고 내부로 진군해 피곤에 찌든 볼셰비키들을 사냥한다.

       

       오랫동안 이어진 포격은 페트로그라드를 폐허로 만들어갔다.

       

       도로도, 건물도 파괴되고 수많은 인명이 죽어 나갔다.

       

       

       “주여. 저 붉은 환자들을 죽음으로서 죄를 사하소서.”

       

       

       페트로그라드의 붉은 역병이 죽음으로 정화되어 간다.

       

       너무 도시를 파괴하는 게 아니냐고 하는데.

       

       이미 유데니치가 공격하는 시점에 페트로그라드에서 피난 나올 사람들은 다 나왔다더라.

       

       그러니까 저기에 남은 건 오로지 진골 볼셰비키 뿐.

       

       저들은 항복이든 뭐로든 답이 없다.

       

       레닌과 그 빠돌이 빠순이들이 포살형으로 다 죽은 것처럼 철저히 박멸해야 한다.

       

       정확히는 트로츠키가 어떻게 행동할지 궁금하다.

       

       빨갱이의 순교자가 될 생각인가.

       

       그도 아니면 실제 역사처럼 멕시코로 런하듯 다른 나라로 갈 생각인가.

       

       나는 별생각이 없긴 했는데.

       

       후일 러시아가 어디 참견하려면 결국 빨갱이들을 이용하는 게 답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트로츠키 놈이 차르일가를 죽인 죗값은 달게 받아야 하지만.

       

       순교자로 죽게 내버려 두는 것보다는 공산주의를 약화시키면서 한참 이용하다 죽이는 것도 방법이다.

       

       

       “황녀님. 이제 페트로그라드는 사실상 다 벗겨진 상태입니다. 이제 보병들이 진입해도 될 듯합니다.”

       

       

       그래. 그럼 들어가야지.

       

       

       “들어갑시다.”

       “친히 입성하시기에는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위험하겠지.

       

       하지만 로마노프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적어도 아나스타샤란 황녀가 단순히 백군이 내세운 허수아비 차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니까.

       

       아마 여전히, 나를 일개 온실 속 화초 계집애로 보는 이들도 있을 테니까.

       

       직접 선두에 서서 싸워야 한다.

       

       

       “제가 직접 들어가야 저놈들 로마노프가 혁명을 종식했다고 알려지지 않겠습니까. 무엇보다도. 저는 죽지 않습니다.”

       “정히 그러하시다면 그래도 병사들과 함께 들어가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이전과 달리 총알이 좀 아프게 느껴지긴 해도.

       

       적어도 아직은 죽지 않을 거 같다

       

       그냥 그럴 거 같거든.

       

       어느 정도 포격이 끝나고 벌거벗은 듯, 방어력이 박살 난 도시로 백군의 전 병력이 페트로그라드를 향해 파도처럼 쇄도하며 덮쳤다.

       

       그 앞에서 나도 직접 말을 타고 나아가 포격을 피해 숨어 있다가 튀어나온 볼셰비키들을 총으로 쏴죽였다.

       

       

       “화.황녀다. 커흑!”

       

       

       끽해야 일제의 야마토 정신급, 혁명의 정신으로 무장하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던 붉은 역병의 환자들은 총알 한 발에 다 죽어 나갔다.

       

       타당 탕! 타앙!

       

       나는 보이는 대로 백군 군복을 입지 않은 볼셰비키들을 모조리 쏴죽였다.

       

       페트로그라드는 고립되어 있었다.

       

       음식조차 제대로 없고 무기도 부족하다.

       

       굶주린 자들. 겨우 포격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내가 날리는 총탄에 그저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간다.

       

       먼저 달려들지도 못했다.

       

       백군의 공격에 숨기에 급급했으니 먼저 공격한다는 선택지는 없었으니까.

       

       물론.

       

       그리 쉬운 것은 아니었다.

       

       도시 내부로 들어가면서 시가전에 들어가니 싸움이 더 격렬해졌다.

       

       볼셰비키들도 이제는 죽을 날이 머지 않았다.

       

       그런 각오라 그런지 이판사판으로 목숨을 던지며 전투에 임했다.

       

       당연히 가끔은 용감무쌍한 빨갱이들도 있었다.

       

       

       “황녀다! 황녀를 죽여라!”

       

       

       황녀를 죽이겠다고 날뛰는 자들도 있었다.

       

       탕! 탕 탕!

       

       도시에 진입해 들어가는데, 골목에서 튀어나온 몇 명의 빨갱이들이 나한테 기관단총으로 총탄을 퍼부었다.

       

       

       “아야.”

       

       

       여전히 적의 총탄은 나에게 죽음을 허용하지 않았다.

       

       진짜 좀 아프긴 한데, 상처는 나지 않았다.

       

       그냥 온몸을 딱밤으로 빠르게 때리고 빠진 정도. 가볍게 구타를 당한 기분이다.

       

       

       “황녀님! 어?”

       

       

       문제는 이번에는 나를 따르는 백군 보병들이 다 봤다는 것이다.

       

       어, 그런데 이건 진짜 위험한 거 아닌가.

       

       총탄을 무더기로 맞았는데도 황녀가 멀쩡하다.

       

       이상한 신격화가 또 일어날 거 같은데.

       

       아,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볼셰비키들의 사기도 낮출 좋은 방법.

       

       나는 양팔을 펼치고 백군과 적군 사이에서 당당히 외친다.

       

       

       “보아라! 나는 주께서 선택한 유일무이한 러시아의 성녀! 볼셰비키의 총탄 따위는 소용이 없다! 심지어 군복조차 뚫지 못했다! 마치 사람 하나 못 죽이는 총탄 같지 않은가?”

       

       

       나는 성녀라서 총알 따윈 먹히지 않는다.

       

       러시아의 천 명이 빨갱이가 아닌 나 아나스타샤에게 있음이 밝혀졌다.

       

       

       “아. 그러네.”

       “재들 진짜 혁명 왜 했냐.”

       “병신들이 따로 없네.”

       “혁명이라 하더니, 정작 볼셰비키 놈들은 그 붉은 군대의 총알로 성녀를 이길 수 없다! 이건 즉, 빨갱이는 무능하다는 뜻이다! 저딴 놈들이 러시아를 지배했으면, 러시아는 전 세계의 웃음거리로 전락했을 것이다!”

       

       

       

       

       볼셰비키는 무능하다. 역시 볼셰비키는 패배할 운명이다. 황녀는 주님의 축복을 받았다 등은. 백군의 사기를 끌어올리는데 한몫했다.

       

       

       “시발, 뭐야. 이거 사람 죽일 수 있는 총 맞아?”

       “저거 봐 황녀 멀쩡하잖아!”

       “빌어먹을 총알 하나 제대로 없으면서 무슨 혁명을!”

       

       

       황녀가 죽는 것으로 사기를 끌어올리려 했는지, 나한테 총을 쏜 볼셰비키들을 중심으로 많은 적군이 있었다.

       

       그들은 내가 설령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않았어도 군납 비리로 인해 사람도 제대로 못 죽이는 총알을 만들었다며 경악했다.

       

       삽시간에 백군은 더 기세가 올라 볼셰비키들에게 총탄을 퍼부어댔고, 방금 전까지 기를 쓰고 폐허에 몸을 감추면서 싸우던 볼셰비키들은 완전히 힘이 빠진 듯 제대로 저항조차 못했다.

       

       볼셰비키들의 저항은 서서히 죽어들었다.

       

       어차피 싸워 봤자 무기도 없고 상대에게 피해를 주지도 못하고 죽는데 뭘 어쩔까.

       

       

       “항복.항복하겠소.”

       “항복할 거면 진작 했어야지. 죽어라!”

       

       

       독기가 바짝 오른 백군은 볼셰비키의 항복을 받지 않았다.

       

       나도 가만히 지켜만 봤다.

       

       분명 나는 항복하라고 한 적이 있는데, 저놈들이 하지 않은 거다.

       

       그런데 뒤늦게 싸울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 하는 항복은 진짜 항복이 아니지.

       

       결국 제 목숨 살고자 그런 거다.

       

       백군들은 그런 적군을 용서하지 않았다.

       

       페트로그라드 전 도시에서 남김없이 볼셰비키들이 소탕되었다.

       

       일부는 페트로그라드 시민들. 그러니까 미처 피난하지 못한 이들을 인질로 삼아 도망가려다가 실패하기도 했다.

       

       그러다 의문이 든 것이 있었다.

       

       

       “다 피난 간 거 아니었나?”

       “뒤늦게 피난 가다가 소비에트를 위해 일하라며 인질로 잡힌 자들입니다!”

       

       

       페트로그라드에서 백군에게 최대한 피해를 주려면, 공장을 굴려야 하니까.

       

       사람들이 나가지 못하게 공장에 집어넣은 모양이다.

       

       

       “미친놈들 아닌가.”

       

       

       이제는 막 가자는 거구나.

       

       아니, 막가기는 했다. 이미 소비에트에 반발하는 놈들은 모조리 죽여댔으니. 페트로그라드에서도 소비에트가 소비에트 했다고 봐야 한다.

       

       역시 빨갱이는 소탕해야 해.

       

       러시아 땅의 모든 빨갱이들을 없애야 중공도, 북괴도 없을 게 아닌가.

       

       

       “빨갱이들은 보이는 족족 다 정화해라.”

       “트로츠키는 어찌합니까?”

       

       

       트로츠키라, 그래. 그놈이 여기에 있었지.

       

       

       “트로츠키는 생포하되, 여의치 않으면 죽인다.”

       “예. 황녀님.”

       

       

       트로츠키가 과연 또 도망칠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노피아 대역 2위…!

    옆동네 신작 대역 장르부분 17위…!

    선작, 추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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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Status: Ongoing Author:
I became a Russian princess destined to die in a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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