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6

       중층까지 오르는 것에 성공하는 마법사는 입탑한 이들의 반의 반도 되지 않는다.

        멋모르고 급행에 몸을 실은 바보들을 제외하면 현재 공역에 주둔 중인 이들은 최소 5위계에 해당하는 마법사.

        지금까지의 행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명’을 가지며, 핏속에 자신만의 마력의 총체를 생성하기 시작하는 경지였다.

        그런 자들이 잔뜩 모여있는 회의실에서 자력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마법사는 비나를 제외하면 한 명도 없었다.

       

        “아니, 나는……!”

        “저놈 잡아라!!!”

        “영창을 막아!! 경비들은 뭐하고 있나!!”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게 두지 마라!!”

        “어이, 너! 정보부에 연락해!! 아직 공역에 남아있는 이들이 있겠지?”

        “급행은 운영 중지다! 선로를 모조리 끊어라!!”

        “공역을 폐쇄해라! 갤러리의 주인을 찾았다고 전해!”

       

        빈센트가 입을 연 순간부터 사방에서 엄청난 마력이 그를 애워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축하를 건내던 호의적인 시선은 온데간데 없이 온통 적의와 탐욕만이 가득했다.

        지금껏 정체를 숨겨왔던 갤러리의 주딱이 직접 모습을 드러낸다면 어떻게 될까.

        그 궁금증에 대해 이보다 명확한 해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끄억, 커헉……!”

       

        회의실 바닥에 처막힌 그의 몸에서 뼈가 부스러기처럼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나름 방어용 아티펙트를 두르고 있었지만 가히 백 명 가까이 되는 마법사들 앞에서는 설탕 코팅 정도에 불과했다.

        고위 마법사라면 내뱉는 숨결에 담긴 마나 한 줌으로도 어마어마한 피해를 만들어내는 마법을 발현한다.

        앞뒤 사정 따위 나중에 고려하고 우선 확실하게 제압해야 한다는 그들의 합심에 빈센트는 순식간에 곤죽이 되었다.

       

        — 살, 살살…….

        “그러게, 좀 살살하지. 저러다 진짜 죽겠네.”

        — 사살, 사살……!

        “아니었어? 그럼 좀 더 구경해.”

       

        나는 살살이가 잘 볼 수 있도록 검을 위로 치켜올려 주었다.

        다들 그에게만 정신이 팔려서인지 구석에 앉아있는 내게는 별 관심이 없었다.

        이쪽이 신경써야 할 것은 당연히 갤러리.

        예상대로 전례없는 혼란과 함께 차단도 어려운 양의 게시글이 게시판을 막론하고 쏟아지는 중이었다.

       

        ====

        [주딱 미쳤어!!!?]

       

        갑자기 왜 자폭이야?

       

        — 에이, 설마

        — 이러다 갤러리 폐쇄되는 거 아니지?

        — ㄴㅏ 추워, 무서워……!

        — 이미 글 지워짐

        — 걍 장난치는 거 아니냐

        — 부계정으로 올리려던 글 잘못 쓴 듯?

         ㄴ 뭘 잘못 써 제목에 떡하니 입장문 박아놨구만

        ====

        ====

        [이상성벽을 들킨 나머지 자살을 해버린…….]

       

        대 주 딱

       

        — 진짜 꿀벌 때문이냐

        — 사회적 자살 vs 그냥 자살

         ㄴ 둘 다 한 거 같은데요……?

        — 이렇게 된 거 다음 주딱 후보나 받을까?

        — 꿀벌이 부끄러워?

         ㄴ 솔직히 좀 부끄럽긴 해

         ㄴ 나도 들켰으면 가문에서 당장 쫓겨났을 듯 물론 지금은 의심만 사는 주, 주우…… 주우와아앙!

         ㄴ 우와아아앙! 부아아아앙!!!

         ㄴ 꿀벌단 쳐내!!

        ====

        ====

        [그래서 주딱이 원소학파였다고?]

       

        크 역시 이럴 줄 알았다

        니들이 아무리 음해해도 마탑 최고 권력자는 결국 원소였다니까?

        일단 메테오가 소환이니 정령이니 지껄였던 새끼들은 다 대가리 박도록

       

        — 그럼 메테오가 물마법이냐 개자식아?

        — 뭔 최고 권력자여 운드라면 기껏해야 백가 서열 3위구만

         ㄴ 서열 3위가 좆으로 보이냐? 칠현자 직계세요? ㅋㅋ

        — 원소학파 일동은 주딱을 지지합니다~

         ㄴ 저희 ‘전술핵 연구소’도 주딱을 지지해요~

         ㄴ ‘주딱에게 고로시당한 고닉 연합’도요~

         ㄴ 숨어있던 악질 새끼들 다 튀어 나오네

         ㄴ 주딱 죽을 거 같으니까 바로 가면 벗는거 봐라 ㅋㅋㅋㅋ

        ====

        ====

        [속보 지금 빈센트 에본 공역에서 붙잡힘]

       

        마침 회의실에 있어서 도망도 못 쳤다네

        지금 왕성 분위기 혼란 그 자체임

        구속구 줄줄 채워서 끌고 가던데 제대로 걷지도 못하더라

        조만간 발표 나면 확실히 밝혀질 듯?

       

        — 이러면 결국 주딱은 탑주가 아닌 거였네

        — 갤러리는 지금도 멀쩡히 돌아가는데?

        — 생각해 보니까 원소술사가 무슨 능력으로 갤러리를 만들었데

         ㄴ 그건 이제 정보부가 알아서 캐내겠지

        — 걍 이번에도 주딱한테 놀아나는 거 아님?

         ㄴ 이젠 현실에서도 분탕치기 시작한 주딱……? 이거 그냥 자연재해거든요

         ㄴ 순간 온 몸에 소름 돋음…….

         ㄴ 나 너무 무서워

        ====

       

        우선은 불이 더 붙게 내버려 두었다.

        중요한 것은 결국 혐의를 벗게 되더라도 조사 과정에서 다른 여죄가 드러나게 되는 것이었으니까.

        혹시 몰라 파딱들에게는 말해둘까 싶었지만, 본래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 속여야 하는 법이었다.

       

        ====

        — 초천재금발미소녀 : 드디어 죽었군요 악질적인 인간

        — 초천재금발미소녀 : 갈 때도 예술로 간 것이에요

        — 초천재금발미소녀 : 저는 자유의 몸이 되었으니 이만 떠나겠어요

        — 초천재금발미소녀 : 혹시 지하 1층에서 출소하더라도 다시는…….

        — 관리자 : (사진)

        — 관리자 : (새벽 근무표)

        — 초천재금발미소녀 : 살아있!? 서네ㅐ햐ㅗㅓㅈ디한우링나ㅡㄹ

        ====

       

        자꾸 까부는 마리엘에게만 빈센트가 끌려가는 인증샷과 함께 한 달간 새벽반 전담을 맡겨 입을 다물게 했다.

       

        어쨌거나 대부분의 유저들은 주딱, 아니 빈센트가 이대로 철저하게 몰락할 거라 믿는 듯했다.

        살살이도 기분이 좋았는지 피에 취하고 싶은 여흥을 내며 자꾸 몸체를 흔들거렸다.

        허나 모두가 그렇게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조금 전까지 ‘얼어서 더욱 예쁜 호수전경’ 떡밥을 굴리려다 완벽히 묻혀버린 비나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짐을 챙기세요 사감.”

        “예? 벌써요?”

        “저 자가 도주할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공역의 결계를 닫으려는 듯해요. 한 번 닫히면 다시 열리기까지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 지 모르니 저희는 급행이 끊어지기 전에 먼저 내려갈 예정이에요.”

        “비나 님께서는 앞으로 빈센트가 어떻게 될 지 관심이 없으신가요? 듣기로는 저번의 열차 테러 역시 그의 사주라고 합니다만.”

        “글쎄요. 그것만으론 다른 이들처럼 무겁게 처벌받진 않을 거에요.”

       

        백가의 하위 서열과 다르게 운드라 가문은 재력도 있고 탑 곳곳에 소유하고 있는 땅도 많다.

        빈센트 본인도 당황한 탓에 붙잡혔을 뿐이지 본래 상층 초입을 목전에 둔 실력있는 원소술사였다.

        트라팔가 호수를 빼앗긴데다 열차 테러로 인해 사실상 글레시아와 척을 지긴 했으나 아예 몰락할 정도는 아니라는 뜻이었다.

       

        “정말로 그가 갤러리의 주딱이라면 죄목이 더 늘겠지만요.”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주딱은 자기 권력을 절대로 제게 넘기지 않았던 겁 많은 인간이에요. 그렇다면 멍청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짓 따위 하지 않겠죠.”

       

        그야 너한테 파딱을 맡기는 순간 갤러리가 얼음 마법 찬양 모임으로 바뀌기 때문이잖아.

        얼음 마법과 관계없는 모든 글이 썰리며 빙하기가 찾아오게 될 것이 분명했다.

       

        어쨌거나 과정은 형편없었지만 결과는 대충 맞는 추리였다.

        다만 비나가 한 가지 간과한 점이 있다.

       

        내가 굳이 관리자 계정으로 글을 쓴 이유는 처음부터 적법한 처벌같은 걸 받게 할 생각이 없어서였다.

       

        “사실 겁이 많은 건 아닐지도 모릅니다.”

        “네?”

       

        주딱에게는 안티도 많지만, 그만큼 팬도 많다.

        갤러리의 취지에 따라 대부분은 그저 컨셉과 가벼운 유머로서 좋아하는 것이지만, 개중 몇몇은 낯 간지러울 정도로 나를 숭배하기도 했다.

       

        “굳이 따지자면 방해되기 때문이겠죠.”

       

        특히 탑을 오르는데에.

       

        회의실에서도 빈센트를 때려잡지 않고 도와줘야 하나 갈등하던 마법사들이 있었다.

        지금도 몇몇 죽은 게시판에서는 주딱을 구하기 위한 구조대를 조직하는 움직임이 눈에 띄었다.

        만약 그런 이들에게 나를 사칭했다는 사실이 발각될 경우.

        그 불똥이 어떻게 튈 지는 모두 그가 감내해야 할 문제였다.

       

       

       

        *

       

        “그러니까, 빈센트 경은 갤러리와는 아무 연관이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럼 여기 올라와 있던 게시글 내역은 뭐죠?”

        “…….”

        “그야 단순한 장난이었죠! 뭣보다 원소학파인 저희가 어떻게 마녀들의 농간을 따라할 수나 있겠습니까?”

       

        공역 내에 급히 마련된 정보부의 취조실.

        운드라 가문의 변호인은 필사적으로 자신들의 범죄 행위를 부정했다.

       

        관리자의 공지가 무슨 의도인지는 모르나 자신들은 아무런 죄가 없다.

        열차에서 벌어진 사건은 단순히 글레시아 학파만을 겨냥한 것이었고, 피해를 키우려 한 것은 시행범들의 짓이다.

        다른 가문의 유망주들을 사냥해 왔다는 저격글의 내용 역시 명백한 증거가 없다.

        설령 사실이라고 한들 마탑의 행정부는 가문끼리의 항쟁에는 관여하지 못하기에, 어디까지나 도의적인 문제일 뿐이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시는 거에요?”

        “시엔. 잠시 이쪽으로 나와 봐라.”

        “부장님!”

        “그런 뜻이 아니야. 지금 밖에서…….”

       

        눈에 쌍심지를 켜고 꼬치꼬치 캐묻던 정보부 요원이 상사와 함께 사라지자 빈센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압을 빙자한 마법사들의 구타 덕에 온몸의 마력회로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당장 신성학파로 찾아가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심각한 외상이었으나 그보다 더 쓰라린 것은 바로 내면이었다.

        운드라 가문에서 급히 파견한 변호인은 식은땀을 닦으며 그에게 말했다.

       

        “별 문제 없을 겁니다.”

        “당연하지. 노트는 처분했나?”

        “예, 아무런 증거도 남지 않도록 소각해 두었습니다. 헌데 빈센트 님.” 

        “뭐지?”

        “그, 아, 아닙니다.”

       

        눈치빠른 마법사는 입을 닫았지만, 눈에 담긴 의구심은 그대로였다.

        당신이 진짜로 최근 갤러리에서 이상성욕의 대표주자로 떠오른 ‘꿀벌들’의 리더가 맞느냐는 시선이었다.

        당시에는 저런 게시판이 아니었고, 순순하게 테러 계획만을 모의하던 곳이었기에 분통이 터졌다.

       

        심지어 빈센트 본인이 작성한 게시글도 어느새 ‘우와아앙’이나 ‘부와아아앙!’처럼 저능아같은 제목.

        내용은 ‘꿀벌엉덩이에혀넣고와라랄랄라하고싶다’, ‘도감을보니더이상참을수없어졌어요’ 등으로 바뀌어 있었기에 항변도 소용 없었다.

       

        “어, 어쨌거나 크게 걱정하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기껏해야 벌금 정도만…….”

        “잠깐.”

        “예?”

        “방금 뭐였지?”

       

        지하 1층으로 가는 일은 없다는 변호인의 말에 안심하며 조금 눈을 붙이려던 찰나.

        갑자기 그의 망가진 마력회로가 경종을 울려댔다.

        주변에는 분명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데 이상했다.

       

        급히 오브를 꺼내어 감지할 수 있는 최대한의 범위로 마력을 퍼뜨린 빈센트는 이내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옆에 있던 변호인도 뒤늦게 깨닫고 사색이 되었다.

       

        “공역의 결계가…… 깨진 것 같은데요?”

        “…….”

       

        혹시 차원 마법 등으로 도망갈 지 모른다며 마지막 열차를 보내고 부랴부랴 닫아놓은 결계.

        그 파편이 마치 눈이 녹는 것처럼 공역 전역에 흩뿌려지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외부의 침입에 정보부조차 당황한 듯했다.

        위기감을 느낀 빈센트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찰나.

       

        “뭐야, 설마 진짜인가 했는데 사칭이잖아.”

       

       천칭과 꽃다발을 든 소녀가 눈앞에 나타났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

[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

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