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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0

        

         

       “부정한 것들에게 고한다. 너희는 마땅히 벗이 될 자, 부하가 될 자, 섬겨야 할 자를 맞이하기 위해 스올(שְׁאוֹל)에서 나와 그들에게 환대해야 할 것이니라.”

         

       [ 그리하여 그들은 우리와 같은 존재가 되리라. ]

         

       [ 피부는 싸늘하게 식을 것이고, 심장은 뛰지 않게 될 것이다. ]

         

       [ 몸의 벌레가 늘어나 살을 파먹을 것이며, 보드라운 부분은 모조리 짐승의 먹이가 되리라. ]

         

       [ 몸을 유지하는 피는 땅속으로 스며들어 스올에 다다를 것이며. ]

         

       [ 그 맥은 스올에서 고통받는 영혼에게 다다라 마땅히 찾아올 그 날의 구원을 기다리며 얼어붙어 있을 것이니라. ]

         

         

         

         

        * * *

         

         

         

       셋은 자신들을 걱정하는 와타나베의 말을 무시하고 밖으로 나섰다.

       

       “여기로군.”

         

       미리 앞서 보아두었던 경로를 이용해 인적이 드문 길들을 이용해 움직인 그들은, 마침내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나름 괜찮은 자리에 박혀 있으나 기이하게도 입주한 가게가 아무것도 없는, 폐 빌딩이나 다름없는 황량한 빌딩.

         

       박진성이 머물고 있다는 ‘숙소’에 말이다.

         

       “누가 주술사 아니랄까 봐 이딴 곳에 머무르는 꼴 하고는….”

         

       빌딩에 도착한 그들은 볼품없는 빌딩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밤의 어둠에 파묻혀 있기 때문일까?

       빌딩은 너무나도 볼품없어 보였다.

       유리창 곳곳에 붙어있는 종이만 아니라면, 아직 공사가 채 끝나지 않은 빌딩이라고 해도 믿었을 정도로 황량했다.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고, 그 대신에 더러워진 유리창 너머에는 쓰레기와 자재만 널브러져 있었다. 게다가 어둠을 꿰뚫어 보는 그들의 눈에 선명하게 보이는 두터운 먼지라니!

         

       먼지가 어찌나 두껍게 쌓여 있는지 발을 조금이라도 질질 끌면 확 일어나 사방으로 퍼질 것처럼 보였고, 조금만 격하게 움직이면 허공에 퍼지며 폐 속으로 먼지가 들이마셔질 것이 보였다.

         

       이 애송이 주술사는 청소라는 것을 모르는 것인가?

         

       “누가 조센징 아니랄까 봐 더럽기 짝이 없군.”

         

       “미개한 놈들이 어디 가겠어?”

         

       “옛날 조선 놈들이 그렇게 지저분했다지? 우리가 근대화시켜줬어도 그 근성이 어딜 가질 않는구먼.”

         

       그들은 먼지가 그득한 유리창 너머의 모습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그들은 박진성을 욕했고, 깔끔한데다가 질서정연하게 살아가는 일본인과는 너무나도 다른 한국인의 근성을 욕했다.

         

       그들이 흙먼지에 거부감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방 안에 틀어박혀서 허구한 날 컴퓨터나 논문만 들여다보고, 이상한 기계를 만지작거리고, 설계도를 끄적이는 마법사 놈들과는 달리 그들은 무인이었다. 몸을 움직이는 데 익숙하고, 땀방울을 흘리는데 더없이 익숙하며, 흙먼지를 들이마시는 것은 물론이고 진창에 몸을 굴리고 오물을 덕지덕지 묻히는 것이 일상인 무인 말이다.

         

       그들은 다른 샌님 같은 능력자들과는 달리 그런 것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진짜 사나이들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꺼리지 않는다고 해서 자발적으로 먼지 속으로 기어들어 가는 취미는 없었다.

         

       하물며 그것이 항상 청결한 일본의 먼지도 아니고, 닿는 것만으로도 불쾌감을 불러일으키는 한국의 먼지라면 더더욱.

         

       그들은 솟아난 짜증을 한국을 욕하는 것으로 해소하였고, 혹시 박진성이라는 애새끼를 만나게 된다면 좀 더 거칠게 손을 봐주겠다고 생각하며 건물에 접근했다.

       건물의 앞쪽에는 CCTV로 보이는 것이 있었지만, 그들은 거침없이 앞으로 나섰다.

         

       어차피 가문에서 준 물건 덕분에 CCTV에는 찍히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접근한 그들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이야, 이걸 보안이라고 해놨네.”

         

       너무나 허술한 보안 때문이었다.

         

       주술사의 거처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허술한 보안.

         

       유리로 된 현관문의 위쪽과 아래쪽에 설치되어 있는 조그마한 잠금장치 두 개, 싸구려 소리는 듣지 않을 정도로만 돈을 들인 듯한 도어락, 거기다가 얇은 쇠사슬을 손잡이에 칭칭 감아놓은 것까지.

         

       어이가 없을 정도로 허술했다.

         

       셔터가 내려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함정 같은 게 보이지도 않았다. 심지어는 만일을 대비해서 접근하지 못하게 만들 방화벽조차 흔적도 보이지 않았고, 주술을 이용한 보안 장치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아티팩트?

         

       자물쇠부터가 저 지경이다.

         

       그런 게 있을 턱이 있나.

         

       “이건 그냥 도둑도 뚫고 들어가겠군.”

         

       “정말 어이가 없으려니 원….”

         

       “정말 애송이로군.”

         

       그들은 헛웃음을 터뜨리며 애송이 주술사가 해놓은 ‘대단한’ 보안을 순식간에 해체하기 시작했다. 도어락을 전기로 지지고 열을 가해서 무력화 시켜버렸고, 문의 위와 아래에 있는 자그마한 잠금장치는 손가락에 기를 불어넣은 뒤 딱밤을 때리듯 톡톡 쳤다.

         

       타앙!

       타앙!

       

       잠금장치는 간단한 딱밤에도 순식간에 무력화되어버렸다.

       찌그러지는 것은 물론이고,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잠금장치째로 저 멀리 튕겨 나갔다.

         

       쇠사슬?

         

       찰그랑!

       

       무인 중 한 명이 칼에 기를 불어넣고 커터칼로 긋는 것처럼 사뿐히 긋자마자 잘렸다. 마치 날이 잘 선 사시미 칼로 고깃덩어리를 자르는 것처럼 너무나도 손쉽고 깔끔하게 잘렸고, 두 동강이 나버린 사슬 뭉치는 힘없이 바닥에 떨어지며 소음을 냈다.

         

       그들은 허무할 정도로 손쉽게 무력화되어버린 보안 장치에 헛웃음을 터뜨리며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보안 장치부터가 나사 빠진 것처럼 어이가 없었기 때문일까?

         

       그들의 태도에서 긴장감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고, 그 대신에 교만과 오만이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이 애송이 녀석은 우리한테 고마워해야 할 것 같은데.”

         

       “흐흐. 자기 거처에 이렇게 안일하고 멍청한 보안 장치를 해놓고도 목숨을 부지하는 게 어디야?”

         

       “진짜 감사 인사를 들어도 모자란다니까. 아니, 진짜로 감사 인사를 들어보는 건 어때?”

         

       아무리 상대를 우습게 본다고 해도 작전은 작전.

       침묵을 지키고 주위를 살펴보는 것이 기본이었지만, 그들은 그 기본을 지키는 대신에 들뜬 태도로 수다를 떨기 바빴다.

         

       조심해야 한다는 자각도 없었고, 적진에 있다는 위기감조차 없었다.

         

       낙제라는 말조차도 부족한, 너무나 태만하고 안이하기 짝이 없는 태도였다.

         

       아무리 군기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사실상 화족의 번견이자 장식이나 다름없는 존재라고는 하지만…심하다고 생각될 수준이었다.

         

       ‘흠. 이상하게 긴장이 안 되는군.’

         

       ‘이상하게 포근하게 느껴진단 말이지.’

         

       ‘뭐 어때. 무인의 육감에도 아무런 위협이 안 느껴지는데,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뜻 아니겠어?’

         

       그들의 이러한 태도는 단순히 그들이 품고 있는 자만심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이상하게도 이 빌딩에 들어오자마자 묘한 포근함과 편안함을 느꼈으며, 무인의 육감에 아무런 위협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 한몫한 것이다. 거기에 더해, 혹시 몰라서 퍼뜨린 기감에도 아무것도 잡히지 않기까지 했다.

         

       생각해보면 기이한 일이었다.

         

       이 빌딩은 겉보기에도 심상치 않아 보였다.

       가게는 하나도 들어와 있지 않았고, 그 흔한 경비원도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뽀얗게 먼지가 쌓여있는 것으로 보아 사람의 흔적 역시 찾아보기 힘들었으며, 이 빌딩에 사람이 산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았다.

         

       거기에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에, 이상하게 이 빌딩이 있는 길에는 사람이 다니지 않고 있기까지 하다.

         

       객관적으로 보면 폐가, 혹은 흉가를 연상케 만드는 빌딩이다.

         

       그런데 그런 빌딩에 들어오면서 꺼림칙함이나 공포 대신에 편안함을 느낀다?

       그것도 ‘작전’을 하고 있음에도 신경을 날카롭게 세우지 않을 정도로?

         

       이상한 일이 아닌가.

         

       집보다 전쟁터에 있는 것을 더 안심하는 사람도 있고, 작전 중에 삶을 실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경우는 사선을 너무나 걸어왔기에 위험한 장소가 익숙해졌거나, 뇌에 이상이 생겨서 그런 것이다.

         

       작전은커녕 화족 가문에서 귀하게 취급받으며 허송세월한 무인들이 그런 감각을 느낄 리가 없었다.

         

       백 보 양보해서 이들 중에 뇌가 망가진 이들이 있어 이런 장소에서 편안함을 느낀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도 이상하다.

         

       셋 전부가 편안함을 느낀다?

       이 음산한 곳에서 마음이 평온해지고, 긴장이 풀어진다고?

         

       이상한 일이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뭐, 보잘것없는 일이니 그럴 수도 있지.’

         

       ‘여기 터가 좋은가?’

         

       ‘동양의 주술사들이 풍수지리를 그렇게 따지던데. 여기 풍수가 좀 괜찮은가 보네.’

         

       무인들은 이 이상함을 인지하지 못했다.

       객관적으로 판단하면 기이하게 여기고, 위화감을 느껴야 함에도 그저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며 그냥 넘겨버렸다.

         

       그냥 풍수가 좋아서, 터가 좋아서, 너무 쉬운 일이라서, 그냥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아서….

         

       그저 온갖 이유를 붙여가며, 자신이 느끼고 있는 편안함에 이유를 붙여버린 것이다.

         

       어쩌면 이는 자기 육체를, ‘감’이라는 무형적인 것을 너무나 신봉하는 무인의 특성 때문에 일어난 실수였을지도 모른다. 단련된 육체와 발달한 감각을 믿는 것은 무인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자세였고, 이들은 그러한 기초적인 믿음에 기반하여 그러한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무인들은 나아갔다.

         

       자신들이 믿는 ‘올바른 판단’과 ‘합당한 이유’를 떠올리면서.

         

       그렇게 그들은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에 도달했다.

         

       “엘리베이터라.”

         

       “흠.”

         

       그들은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에서 멈추어 섰다.

         

       박진성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기 때문일까?

       비어있는 가게 터와는 다르게 이곳은 깔끔하게 청소가 되어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최상층에 가 있군.”

         

       “아무래도 엘리베이터를 사용하면 들키겠지?”

         

       “그렇겠지.”

         

       그들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대신, 그 옆에 있는 계단을 이용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려고 하면 반드시 소음이 일어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아무리 멍청한 놈이라도 이상함을 눈치채게 될 터.

         

       아무리 쉬워 보이는 일이라고 해도 너무 얕보면 안 되는 법이다.

         

       무인들은 엘리베이터 옆쪽에 나 있는 비상구의 문을 열고, 계단참으로 이동했다.

         

       계단참으로 이동하자 그들을 맞이해 준 것은 새까만 어둠이 가득 들어차 있는 계단.

         

       일정 간격으로 나 있는 창문에는 새까만 무언가를 붙이기라도 한 듯 밖의 풍경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있었고, 천장에 붙어있는 센서등 역시 고장이라도 난 것인지 그들이 움직여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비상구 문 하나 차이로 공간 자체가 다르다고 주장하는 듯, 가을 새벽을 떠올리게 만드는 싸늘한 공기가 감돌고 있기까지 했다.

         

       빈말로라도 좋은 곳이라고 하기는 힘들었다.

         

       “…가지.”

         

       싸늘한 공기에 긴장이 돌아오기라도 한 것일까?

         

       그들은 지금까지 보여줬던 태도와는 다르게, 진지한 얼굴을 한 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사람은 아래로.

       두 사람은 위로.

         

       그렇게 그들은 ‘작전’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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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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