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0화. 의문의 초대장 ( 2 )
만신전이 관리하는 성도에, 그것도 인파가 많은 광장에 던져진 한 장의 검은 편지.
부의 기운으로 가득 찬 이것은 존재하는 것만으로 주변을 오염시키는 순수한 악의 결정체였다.
쾅!
“이것은 명백한 도발입니다. 감히 성도에, 그것도 인파가 가장 많은 광장에 이런 물건을 던지다뇨? 놈들의 같잖은 의도가 너무 뻔하지 않습니까!”
“그 편지 때문에 아직도 정신 착란을 호소하는 이들이 수두룩합니다. 사제들이 밤낮을 달라붙어야 간신히 정신을 차릴 지경이에요.”
“심연의 구석에 처박혀 있던 벌레 놈들이 주제도 모르고 기어오르다니. 기세가 크게 죽었다고 생각하여 소홀히 했는데, 한 방 먹었습니다 이거.”
대사제들이 목에 핏줄을 세워가며 소리 질렀다. 자신의 외침을 목청껏 소리 높여 외친다.
심연의 건방진 도발에 대한 대응.
이에 성도가 돌려줄 대답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성전입니다.”
전쟁, 결코 다시 전쟁!
이번에야말로 심연의 벌레들의 싹을 모조리 말려버릴 각오로 임해야 한다. 감히 이토록 맹랑하게 성도의 코앞에 도발을 하다니?
“그런데 그 편지, 혹시 자세한 조사 결과는 나왔습니까?”
한 대사제가 정신을 차리고 그리 묻자, 매부리코의 대사제가 종이를 뒤적였다.
“음. 그것이 워낙 부정한 기운의 총체여서 조사가 쉽지는 않았지만 어떻게든 종이를 펼치고 내용을 보는 것에는 성공했다고 합니다.”
단순히 봉인된 편지를 꺼내고 내용물을 펼치는 과정에서 거품을 물고 쓰러진 사제가 14명, 눈의 통증을 호소하며 기절한 수습 사제는 23명, 탈진으로 쓰러진 성기사가 9명이었다.
“그 편지의 내용은… 아직 계속해서 분석하는 중이지만, 일단 중요한 단어 몇 개를 간추려서 정리했습니다.”
흠, 크흠.
목청을 가다듬은 매부리코의 대사제가 종이를 읽었다.
“나, 마왕, 발가르. 지상… 음, 이다음은 아직 분석 중입니다. 워낙 부정한 기운이 강해서. 크흠. 그리고… 지상의 전사, 원하다, 하나의. 초대, 심연.”
“이 내용은…”
짧은 단어의 나열이었지만 원하는 바는 얼추 알 수 있는 수준.
대사제들의 표정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지, 지금… 감히 자신을 마왕(魔王)이라고 칭하는 부정한 것이! 저, 저저저희들한테! 제, 제물을 요구하고 있는 겁니까!!”
“크아아아아!! 감히 우리! 만신전에게!! 제물을 바치라고 하다니!!”
지상의 전사를 원한다. 심연으로 초대한다.
아무리 봐도 전사 한 명을 제물로 삼아 심연으로 보내라는 내용이었다.
더불어 악마에게 제물로 바치라니.
이는 만신전의 오점, 대사제들의 죄업이며 데모닉의 역린인 리아를 떠오르게 만드는 대목.
까득.
얼굴이 일그러진 데모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전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화가 잔뜩 난 만신전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편지를 받은 당일.
늦여름의 더위가 한풀 꺾인 저물녘.
심연으로 가는 관문을 열 수 있는 유니콘을 대동하여 강철 성기사 부대, 창익 성기사 부대, 신의 사도 부대 도합 3천 명의 기사가 성도를 나섰으며.
“간만의 출정이네요.”
“그러게 말이야 케니스.”
“…한창 좋을 때군.”
오붓하게 손을 잡고 있는 한스와 케니스, 유부남 이스칼이 포함되어 있었다.
* * * * *
우웅, 우웅ㅡ!
“으, 어…?”
피곤함에 찌든 뇌가 당장 침대에 누워 기절하라고 비명을 지른다.
허나 뒷주머니에 울리는 핸드폰의 진동에 반사적으로 몸이 움직이며 알람을 확인했다.
“음… 이게 도대체 뭐지.”
푹신한 침대에 눕기 무섭게 감겨오는 눈이었지만, 놀랍게도 스마트폰의 불빛을 쬐니 졸음이 조금씩 가시기 시작한다.
스마트폰이라는 문물에 길들여진 현대인의 슬픔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알람 : 발가르가 기도합니다.》 《알람 : 발가르가 기도합니다.》《알람 : 발가르가 기도합니다.》
발가르가 나에게 몇 번인가 기도했다는 내용.
시간을 보니 한창 바빴을 오전에 왔던 알람이다.
‘오전에 왔던 알람을 자기 직전에 확인하는 지금 워라벨이 진짜 레전드다.’
기도의 내용이 무엇인지 확인이라도 하려는 심정으로 게임을 실행했다.
띠링!
《‘일꾼 1호’ 외 34명의 드워프가 미접속하는 동안 68개의 ‘날카로운 장검’, 34개의 ‘튼튼한 방패’, 23개의 ‘작은 단검’을 만들었습니다.》
《엘프 장로 ‘알랜시아’ 외 13명의 엘프가 미접속하는 동안 19개의 ‘삐걱거리는 활’을 만들었습니다.》
《밤의 일족 ‘5호’ 외 18명의 밤의 일족이 미접속하는 동안 9개의 ‘제련된 구리’, 6개의 ‘제련된 납’을 만들었습니다.》
거의 24시간을 미접속한 만큼 우수수 올라오는 메시지를 기계적으로 읽고 처리한다.
‘드워프랑 엘프, 밤의 일족 사이에 인프라 발전 차이가 좀 심한가?’
인제 보니 서로 만드는 양의 차이가 제법 큰 편이다.
골드를 확인하니 제법 쌓이기는 했다.
그간 만든 건물도 거의 드워프 위주의 건물이었고.
“…얘들 것도 조금만 올려둘까.”
내친김에 건물 리스트로 가서 엘프와 밤의 일족의 적당한 건물 몇 개를 해금했다. 골드도 왕창 쌓였겠다, 고급 건물부터 해금하는 플렉스를 선보인다.
띠링ㅡ!
《‘생기 넘치는 영혼의 화원’이 완공되었습니다! 엘프들이 꽃의 생기를 머금으며 작업 속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작업 시 일정 확률로 활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구불구불한 요술 오솔길’이 완공되었습니다! 숲의 오솔길을 따라 엘프들이 더욱 빠르게 이동합니다. 엘프들이 쉽게 지치지 않습니다.》
《‘흔들리는 구름 그네’가 완공되었습니다. 엘프들의 작업 속도가 소폭 상승합니다.》
띠링ㅡ!
《‘축축한 고성’이 ‘오싹오싹한 고성’으로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밤의 일족이 세공하는 속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어두침침한 다락방’이 ‘축축하고 눅눅한 작업장’으로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밤의 일족이 작업 후 체력을 회복하는 속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푹신푹신한 관짝 모양의 양털 침대’가 완공되었습니다! 밤의 일족이 낮에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대폭 늘어납니다.》
뚝딱뚝딱, 건물 완공 패키지의 힘을 빌려 순식간에 올라가는 건물들.
이렇게 여러 건물을 업그레이드하고 새로 해금했는데도, 그간 쌓인 골드는 절반 정도 남았다.
“음. 이건 나중에 무기나 해금하자.”
슬슬 롱소드나 검, 활, 단검 말고 뭔가 좀 재밌는 무기를 만들 때가 됐지.
‘쌍검, 쌍검이라… 쌍검이 게이 무기가 맞기는 하는데. 뭔가 재밌는 컨셉을 살릴 수 있을 것 같단 말이지.’
머릿속으로 그리 계획을 세우며 슥슥 화면을 움직였다.
– “삐히이익!”
괜히 온천에서 자고 있는 이베르의 뱃살도 한번 꾹 눌러준다.
‘발가르가 또 기도했었지.’
그제야 떠오른 접속의 이유.
흐아아암- 늘어지게 하품하며 별 생각 없이 발가르의 기도를 확인했다.
툭, 주르르륵ㅡ
길고 긴 장문의 텍스처가 화면을 가득 가린다. 기가 차다 못해 질릴 정도의 장문.
발가르가 이렇게 장문으로 기도를 보낸 건 처음이 아니었다. 짧으며 사흘에 한 번, 길면 닷새에 한 번 이 꼴로 기도를 보냈다.
‘진짜 길다 길어…’
구구절절 미사여구 가득한 서론을 쳐내고, 은유법으로 가득한 본문을 정리하면 딱 석 줄의 본론만이 남는다.
멍하니 발가르의 기도를 읽는 내 몸이 점점 똑바로 일어서기 시작했다.
“…뭐?”
눈을 비비고 다시 발가르의 기도를 읽는다.
이건 기도의 탈을 쓴 보고서였다.
그간 발가르가 알아낸 대악마들의 특징을 정리했으며, 이후 행동의 방침에 대해 선조치하여 후보고한 내용들.
‘자, 잠깐만. 말뚝? 말뚝으로 영혼의 뒤틀림을 막았고… 아리오크라는 대악마의 말뚝을 시험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지, 지상에서 전사를 파견받겠다고?’
너무나 갑작스러운 상황에 머리가 따라가지 못한다.
“아니 이게 무슨 미친 소리야?”
지금 마왕이 편지를 써서 지상에 전사 한 명을 보내달라고 했다는 것 아닌가? 어느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이걸 순순히 보내줘?
거기까지 상황이 파악되자 곧장 <세계 탐험 모드>로 화면을 돌렸다.
“미친 새끼, 미친 새끼, 미친 새끼!!”
너 마왕이야 미친 놈아!!
* * * * *
뚝, 뚜드드드득-!
유니콘의 일각을 따라 허공이 거칠게 찢어졌다. 임무를 마침 유니콘이 불만스럽게 고개를 투레질했다.
《푸히히힝… 본인은 빛으로 만들어진 신수이거늘, 요즘 너무 문지기처럼 부리는 것 아니오?》
케니스가 유니콘의 갈기를 쓰다듬으며 달래자, 유니콘의 불만은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저 멀리서 데모닉이 이 광경을 보고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전군, 전진!”
척, 척, 척.
삼 천의 군화가 하나의 음악처럼 울리며 힘차게 전진한다. 균열을 넘어서기 무섭게 펼쳐지는 검붉은 대지와 보랏빛의 하늘.
“모두 사전에 지급받은 항마부를 꺼내라! 항마부 한 개의 유효 시간은 30분이다! 항상 항마부를 꼼꼼하게 확인해라!”
심연의 가장 큰 위험 요소는 공기 그 자체에 퍼져있는 독기.
일반인은 아주 짧게 노출되어도 호흡 곤란과 환청, 환각, 구토 등을 유발했으며, 그 상태로 5분이 지나면 사지가 변형됐다.
신의 기적인 신성력 덕분에 쉬이 대처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사제들은 성법진을 개시하라! 일대를 정화하고 요새를 구축한다!”
성기사들 사이에서 보호받던 사제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심연의 땅 곳곳에 성물을 묻으며 축성을 퍼부었다. 성물을 따라 하얀 신성력이 퍼져나간다.
사제들이 비가 오듯 땀을 흘리고 기절하기 직전까지 신성력을 쥐어 짜냈다. 사제들의 노고 덕분에 심연의 어느 구석에는 아주 작게 인간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진지를 구축한다! 경계를 엄중히 하고, 기절한 사제들은 후방으로 이송!”
성기사와 사도 부대원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뚝딱뚝딱 진지를 구축했다. 경계를 서는 이들은 각자 무기를 꼬나쥐고 심연의 광야를 노려본다.
그리고 눈을 잔뜩 부라린 성기사들이 볼 수 없을 정도로 까마득하게 떨어진 곳에서.
아리오크가 붉은 안광을 흘리며 인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크흐흐.》
멀리 떨어져 있어도 바람에 실려 오는 것들이 느껴진다.
삼천의 병력이 발하는 날카로운 살기.
피부가 아릴 듯 따가운 예기.
전장을 앞둔 고참병이 애써 숨기는 두려움.
아리오크는 이 모든 것을 한껏 만끽했다.
두 팔을 벌려 다가오는 전장의 아른함을 껴안았고, 크게 숨을 마셔 비릿한 쇠와 피의 향기를 맡았다.
《크우으으…》
전쟁의 향기와.
피에 젖은 군가가 들려온다.
쿵, 쿵, 쿵, 쿵.
가죽으로 만든 북을 두들기고, 뿔을 깎아 만든 나팔을 울려라.
적들의 목을 잘라 깃대에 세우고, 포로의 비명을 하늘 높이 올리자.
여자는 힘줄을 끊어 노예로 만들고, 남자는 산 채로 가죽을 벗겨 북을 만들어라.
피와 폭력은 우리의 승리를 알게하는 개선의 노래가 될지니.
《크흐흐흐흐.》
전쟁 군주 아리오크의 시간이 오고 있다.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엄청나게 무지막지하게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새벽에 노벨쟝이 전산실에서 떡볶이를 먹다가 흘린 모양입니다…!! 그야말로 감자 서버…!!! 아니, 그 이하!!
오엑, 거기에 며, 몇 자요…?? 오에에에엑…!! 자, 작가 죽어버려요…?? 거기에 어깨 같은 관절은 매우매우매우 중요한 부분이니 항상 아프지 않도록 관리를 하셔야 합니다…!! 오에에엑…!!
자식은 부모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하죠…!!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