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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0

       # 외전 02 : 로즈마리의 과거

       

       

       마왕이 여신에게 봉인되고 500년이 지났다.

       

       이 시기는 북방에서 내려오는 마수들의 움직임이 둔화된 시기로, 이에 필리우트 제국은 군사를 정비하고 내부 재정을 확충하는 것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필리우트 제국은 유례없는 최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재정은 풍족하고 민심은 안정되었으니, 조만간 우리나라를 침략하러 오겠죠.”

       

       필리우트 제국 동부에 위치한 소왕국, 타르케닐.

       

       한 소녀가 왕궁 회의실 내부를 오가며 그리 주장했다.

       

       황금처럼 반쩍반짝 빛나는 눈동자에선 총기가 엿보였고, 군청색 머리카락은 우아하게 피어난 꽃과도 같다.

       

       소녀의 걸음걸이에는 꽃사슴 같은 기품이 있었는데, 이는 그녀가 명민한 왕족임을 뜻했다.

       

       “전쟁을 준비해야 해요.”

       

       그리 주장하는 소녀의 이름은 로즈마리 타르케닐.

       

       타르케닐 왕조의 차기 왕위 계승권 3위를 지녔으며, 학식과 미모를 겸비하기도 한 천하의 재원(才媛)이었다.

       

       “대비하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사라질지도 몰라요.”

       

       국왕과 왕비를 포함한 모두가 로즈마리의 말에 의문을 품었다.

       

       왕비가 물었다.

       

       “로즈마리, 지금 우리는 제국과 사이가 좋잖니. 아무런 명분도 없는데 침략은 무슨 침략이니?”

       

       로즈마리는 한숨을 쉴 뿐이었다.

       

       “어머니… 국제관계를 그렇게 만만히 보면 안 됩니다.”

       

       로즈마리가 미리 가져다 놓은 어느 인물의 초상화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이번에 즉위한 켈슨 필리우트는 아버지와는 달리 폭군의 기질이 있어요. 자기 부모가 다져 놓은 내실을, 군사를 일으키는 데 소모할 가능성이 크다고요.”

       “사람을 모함하는 건 좋지 않다, 로즈마리. 무슨 근거로 그리 얘기하는 거니?”

       “우린 금안족이잖아요.”

       

       타르케닐은 금안족이 세운 나라.

       

       “제국인 대다수가 금안족을 혐오해요.”

       

       자국민의 지지와 영토, 부, 명예. 그 어느 것을 위해서라도 제국은 조만간 군을 일으킬 것이라는 게 로즈마리의 주장이었다.

       

       “그러니 대비해서 나쁠 거 없잖아요?”

       

       로즈마리가 침중한 얼굴로 제 부모를 바라봤다.

       

       “로즈마리야.”

       

       아버지인 국왕이 입을 열었다.

       

       “아빠는 인간들의 도덕을 믿는다.”

       “아버지!”

       “제국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잖니. 교역도 하고, 함께 마수를 막아냈던 적도 있었어. 먼저 의심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은 물론,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도 지양해야 할 일이란다.”

       

       로즈마리는 이마를 짚으며 비틀거렸다.

       

       기껏해야 열넷, 열다섯.

       

       언니나 오빠에 비하면 정치를 논하기에는 너무나도 이른 나이.

       

       하지만 로즈마리는 왕족 중에서도 총명하기로 소문이 난 수재였다.

       

       국제정세와 인간관계론을 익히자마자 제국의 침략을 예시한 그녀는 한 발자국도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왕녀 전하, 외람되오나 폐하의 말씀이 맞사옵니다.”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평소 그녀를 지지하던 가신들도 국왕의 말에 찬동한 것이다.

       

       “설령 적군이 쳐들어온다고 할지라도 이곳 타르케닐은 천험의 요새, 충분히 막아낼 수 있습니다.”

       “적이 들어올 만한 곳은 전부 산도입니다. 요충지마다 궁병대를 배치하면 대비가 가능합니다.”

       

       대신들은 허허 웃을 뿐이었다.

       

       “왕녀 전하께서 걱정이 많으실 나이입니다.”

       “총명하시군요.”

       

       저 말에 악의가 없어서 더 답답하다.

       

       이 사람이고, 저 사람이고.

       

       전부 다 착해 빠져서 답답하다고!

       

       “후우.”

       

       로즈마리는 한숨을 쉬며 방으로 돌아왔다.

       

       이날 이후로도 마찬가지였다.

       

       제국의 외침 가능성을 벌써 몇 번이고 얘기했지만 무용지물. 부모님은 들은 체도 안 한다. 왕녀라서 우쭈쭈 둥가둥가를 받고는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그 어떤 신하도 로즈마리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지 않았다.

       

       끼이익.

       

       “왕녀님, 음이 틀리셨잖아요.”

       

       아.

       

       “자, 다시. 이쪽 악절부터 반복해서 연습해 봐요.”

       

       로즈마리는 떨리는 손으로 바이올린을 고쳐 잡았다. 그녀의 음악 가정교사인 엘라가 자상하게 웃으며 포지셔닝을 도왔다. 말총에 송홧가루를 묻히고, 줄 길이를 조정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러고도 찰현할 때마다 불안한 음색이 흘러나왔다.

       

       “오늘 집중이 안 돼.”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으신가요?”

       “아니.”

       

       로즈마리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높다.

       

       가을이다.

       

       “있지. 엘라. 가을이면 수확철이지?”

       “네. 제국인들은 추수감사절이란 것을 지낸다고 하더라고요. 여신에게 이번 해 풍요에 감사하며, 내년에도 그와 같은 수확을 바라는 의미에서 여는 축제라고 들었어요.”

       

       엘라는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도 그 축제에 꼭 한번 가보고 싶어요.”

       

       그야 먹을 게 많을 테니까.

       

       “엘라는 먹보네.”

       “아이, 공주님도 참.”

       

       후우.

       

       로즈마리는 맑고 높은 하늘을 다시 한번 바라봤다.

       

       가을이면 수확철. 만약 풍년이라면, 다음 해 전쟁을 일으키기에는 더없이 좋을 것….

       

       “잠깐만, 저거 뭐야.”

       “네? 뭐가요?”

       

       산 너머로 연기 세 줄이 피어오르고 있다.

       

       봉화였다.

       

       하나는 경계를 의미하고, 두 개는 교전을 뜻하며, 세 개는.

       

       “…기습.”

       

       불시의 습격을 의미한다.

       

       로즈마리는 바이올린을 내려놓고 곧바로 왕성의 중심으로 달려갔다.

       

       “아버님! 어머님! 제국군이 쳐들어왔어요!”

       

       로즈마리는 본 것을 과장하여 전했다.

       

       사실 과장도 아닐 것이다. 봉화가 세 개나 올라왔다는 건, 벌써 수도의 코앞까지 뚫렸다는 소리였으니까.

       

       그러나 비슷한 시각에 보고를 받은 국왕은 전혀 다른 반응을 내놓았다.

       

       “걱정하지 말거라. 오작동이라고 하는구나.”

       “오작동이요?”

       “그래. 그러니 문제 될 거 없다.”

       “봉수대가 오작동할 리 없어요. 제국군이 거짓 정보를 흘린 게 분명해요.”

       

       이건 기만 작전이다.

       

       그냥 기만도 아니고, 이중 기만.

       

       “왕녀 전하. 걱정이 지나치십니다. 만에 하나 적이 쳐들어온다고 해도, 무엇하러 봉화를 올리겠습니까?”

       “봉화가 오작동이라는 정보를 흘려 모두가 안심하게 한순간에 치명타를 때릴 거예요. 제국군이 역사에 남긴 족적을 생각해 보세요. 주변 나라를 어떻게 잡아먹으며 자랐는지, 마수들의 공격은 어떻게 막았는지….”

       

       인간들은 실로 기상천외한 방법을 많이 사용했다.

       

       그리고 그만큼 폭력성도 높았다.

       

       당장 백 년 전만 하더라도 두더지족이 사는 땅굴 앞에 불을 피워 질식시켜 죽이지 않았던가?

       

       이번의 일도 마찬가지다.

       

       “혹시 몰라요. 저 봉화로 우리를 둘러싼 산을 전부 불태울지.”

       

       로즈마리는 당장 왕궁의 모든 창문을 열었다.

       

       봉화가, 불이.

       

       분지를 따라 번지고 있었다.

       

       “…….”

       

       국왕도, 왕비도, 다른 왕족들과 문무백관까지. 모두가 할 말을 잃고 번져가는 불길을 바라보았다.

       

       타르케닐의 수도가 천험의 요새라고?

       

       상대방은 폭군의 기질이 있다고 소문 난 제국의 황제다.

       

       옛날 두더지족을 잡을 때 불을 피웠던 것처럼, 산지에 틀어박힌 금안족도 전부 불을 질러 죽여버릴 생각이다.

       

       “이럴 수가! 이럴 리가 없는데…!”

       

       그때였다.

       

       – 와아아아!

       

       사면(四面)에서 고함이 들려왔다.

       

       쿵, 쿵, 쿵, 쿵!

       

       “저게 뭐냐!”

       

       흙이나 철 따위로 빚어 만든 듯한 무생물체가 불타는 삼림을 뚫고 나타났다.

       

       “마법으로 만든 건가?”

       “그런 것 같아요!”

       

       금안족은 마법을 사용할 수 없었기에 고전적인 수단과 지형에만 의존하여 제국군을 막아야 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제국군을 막을 요충지는 소리소문없이 먹혔고, 수도 인근의 산도는 전부 불탔으며, 하늘은 아비규환을 암시하는 듯 진한 회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이게, 이게 다 짐이 부덕한 탓이다.”

       “아버지! 지금 이럴 때가 아니에요. 빨리 사람들을 모아서 탈출해야죠!”

       “힘들게 세운 금안족의 나라다. 이대로 무너진다면 선조들 얼굴을 볼 수가….”

       “아빠─!!”

       

       그래, 이 사람들 죄는 하나밖에 없다.

       

       착한 거.

       

       자신이 조금이라도 더 강경하게 주장했어야 한다. 그랬으면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 피할 수 있었겠지.

       

       로즈마리는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며 기사단장과 신하들을 불러모았다.

       

       “친위대, 제가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무얼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겠죠?”

       “알고 있습니다, 왕녀 전하. 반드시 폐하를 지켜 보이겠습니다.”

       “좋아요. 불타지 않은 산길로 서둘러 도망치세요.”

       “왕녀 전하, 전하는 어떻게 하시고요?”

       “저는 여기 남아서 도망치지 못한 국민을 수습하겠습니다. 곧 뒤따라갈게요.”

       

       이때에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개념이 있었다.

       

       로즈마리는 왕족으로서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굳게 믿었다.

       

       “왕녀님께 친위대의 일부를 남겨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후일을 도모할 수 있기를.”

       

       기사단장은 허둥지둥거리는 왕족들을 이끌고 성을 빠져나갔다.

       

       가족들이 같이 가자고 소리를 질러댔지만, 로즈마리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금안족은 소수민족.

       

       한 명 한 명의 목숨이 그들의 눈동자 빛과도 같다.

       

       “왕녀 전하, 빨리 도망치세요!”

       “엘라, 당신이나 먼저 도망치세요. 저는 여기 남아서 민심을 바로잡을게요.”

       “안 돼요! 왕녀님은 어리시잖아요. 폐하가 가신 이상 수습은 어려울 거예요.”

       “저는 죽어도 형제자매가 있지만, 아버지는 돌아가시면 국가가 구심점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구심점은 폐하에게 있으니, 제가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을 수습할 수 있을 테죠.”

       

       그러자 엘라가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러면 저도 여기 남겠습니다.”

       

       로즈마리가 떫게 웃었다.

       

       이윽고, 그녀가 있는 왕성을 향해 제국군이 쳐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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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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