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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1

       사실 나도 꽤 신난 상태였다.

        

       남자였을 때는 호텔에서 묵어본 일이 그렇게 많지 않았으니까.

        

       친구들과 여행 갔던 기억을 따져봐도, 고등학생 때 간 수학여행이나 대학생 때 학과에서 간 MT는 기본적으로 맨바닥에서 잘 펜션을 예약해 다 같이 바닥에 널브러져 자고 그랬다.

        

       심지어 대학을 졸업한 뒤 친구들과 모여 놀러 갔을 때도 대충 근처의 펜션을 잡았으니 호텔과는 여러모로 거리가 멀었다.

        

       아늑한 분위기에 제대로 된 침대가 세 개나 있고, 창밖으로는 문자 그대로 도시의 야영이 펼쳐지는 장소.

        

       ……저 도시의 야경 대부분은 일하는 사람들에 의해 생기는 것이겠지만, 아무튼 지금 우리는 놀고 있으니 그런 것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맛있어!”

        

       호텔로 오는 길에 사 온 과자 봉투를 뜯어 테이블에 올려두었더니 클레어는 정말 즐거운 표정으로 과자를 종류별로 하나씩 집어먹으며 말했다.

        

       어째 미아가 떠오를 듯 말 듯 했다. 그나마 다른 점은, 미아는 이 과자를 입 안에 잔뜩 넣어서 볼을 부풀렸을 거라는 거다. 클레어는 그래도 하나씩만 집어다가 입에 넣고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과자가 맛있는 것도 맛있는 거지만, 지금 이 상황이 더없이 즐겁다는 분위기였다.

        

       저렇게 좋을까?

        

       “게임 속의 클레어였다면 과자를 먹으면서도 잔뜩 비꼬았겠지?”

        

       클레어를 보는 내 표정을 본 앨리스가 그런 말을 하자, 과자를 하나 집어 들었던 클레어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러는 너는 과자를 먹으면서도 불평불만이 한가득하였을 거 아냐.”

        

       클레어는 앨리스를 흘겨보면서 그렇게 말하고는 꽈배기 모양 과자를 입 안에 넣었다.

        

       그 말에는 앨리스도 할 말이 없는 모양이었다.

        

       ……원래 게임 속 히로인이라는 존재가 처음부터 완벽한 경우는 별로 없으니까. 애초에 그런 히로인이라면 공략하는데 별로 재미도 없을 거다. 캐릭터의 관계는 원래 서로 단점을 보완하고 지탱해줄 때 가장 재미있는 법이다.

        

       “…….”

       “…….”

        

       와삭와삭 과자를 먹다 보니 두 사람이 말이 없어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두 사람이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혼자서 본인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처럼 그러고 있는 게 조금 짜증 나서.”

        

       “언니도 분명히 결점이 있었을 텐데.”

        

       그야 나도 사람이니 당연히 결점이— 아, 아직도 게임 이야기하는 거구나.

        

       클레어와 앨리스의 결점은 게임 시작부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시작했으니까. 복장 면에서나 성격 면에서나.

        

       반면에, 우리가 플레이 중인 최신작에서 나의 결점은 아직 드러나지 않은 참이다. 인터넷에서도 초반부를 플레이하다가 실비아 팬그리폰이라는 캐릭터가 너무 완벽 초인인 거 아니냐면서 주인 케냐고 불만을 터뜨리던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면,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건 아닌 모양이다.

        

       뭐, 보통 그런 캐릭터들은 뒤에서 결점이 드러나기 마련이니까.

        

       아직 등장하지 않은 결점을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지.

        

       어차피 놀림당할 거라면 그냥 마음 편히 먹고 받아들이는 게 낫다.

        

       “혼자 깨달음의 경지에 오른 표정이라 열받네.”

        

       “언니도 약점 나오면 엄청나게 놀릴 거니까 각오해.”

        

       …….

        

       클레어는 둘째 치고, 어째 앨리스도 생각이 점점 어려지는 것 같다.

        

       뭐, 고삐가 풀렸다기보다는 속박에서 벗어났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아 괜찮지만.

        

       내가 뻔뻔한 표정으로 아무 말 하지 않은 채 과자만 주워 먹고 있자, 두 사람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

        

       “뭔가 신기한 기분이야.”

        

       “신기한 기분이라니?”

        

       침대에 누워 베개를 앉은 채 천장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리는 클레어에게 앨리스가 물어보자,

        

       “이제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았잖아? 아직 자정도 되지 않았는데, 그리고 집에서부터 그리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기분이거든.”

        

       앨리스는 조금 멍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엄밀히 따지면 지금 당신들은 다른 세상에 와 있습니다만.”

        

       “……그런 말을 한 게 아니잖아, 언니.”

        

       아니면 말고.

        

       “내 말은, 우리가 이렇게 우리끼리만 밖에 나가본 적이 있느냐는 말이야. 왜, 그렇잖아. 우리가 밖에 나가서 지냈던 순간은 보통 아카데미에서 보내서 간 거니까 선생님들이나 교직원들이 함께였잖아.”

        

       “그리고 호위 병력도.”

        

       침대에 걸터앉은 앨리스가 말했다.

        

       “응. 호위 병력도. 여러모로 자유롭게 돌아다니기는 어렵지 않았어?”

        

       그런 것 치고는 거의 마음대로 돌아다녔던 것 같기도 한데…… 하긴 실제로 돌아다닌 이유는 자유롭게 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의뢰 수행을 위한 것이었다.

        

       일반적인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온 나는 공감하기 어려웠지만, 얘네들로서는 그냥 수업 듣는 기분이었는지도 모르지. 물론 일반적인 수업을 듣는 기분과는 아주 달랐겠지만 말이다.

        

       “확실히, 그렇게 생각하면 저도 조금 낯선 기분이 들긴 합니다.”

        

       물론 이유는 달랐다.

        

       아카데미에 관련된 일보다는, 지금 이 세상에 ‘다시’ 와있는 것이 신기했다.

        

       어쩌면 내 가족도 여전히 평화롭게 지내고 있을지 모르고,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친구 중 일부는 저 불빛 중 하나 안에서 야근하고 있을지 모른다.

        

       아직 두 사람에게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기왕 여기 올 수 있었던 거, 시간이 되면 내 가족이나 친구들 얼굴도 한 번씩 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

        

       내가 사라진 뒤에 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라는 것은 조금 궁금했다.

        

       그리고,

        

       그리고 말이다.

        

       ……사실, 조금 설레기도 했다.

        

       가족이나 친구 이야기는 생각하면 기분이 조금 가라앉긴 했지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둘을 보고 있으면, 솔직히 이렇게 말하는 것이 조금 지나치게 오타쿠처럼 느껴지긴 하겠지만—

        

       —꼭 일본 만화 속의 수학여행을 온 것 같지 않은가?

        

       물론 내 나이가 성인의 기준도 훌쩍 넘었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다.

        

       게다가 여기서는 주민등록증에 따르면 우리 셋 다 성인이었고.

        

       하지만 그래도 외모만큼은 아직 10대 중반의 외모다. 주민등록증에 18세라고 쓰여있다고 갑자기 2살을 더 먹고 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의 수학여행은 단체여행이 기본이었다. 거의 반 단위로 다니면서 좋게 보면 패키지 여행 같은 느낌으로 돌아다녔고, 나쁘게 말하면 그냥 활동반경 조금 넓은 MT 같은 분위기였다.

        

       물론 그것도 그 나이에는 꽤 즐거웠지만, 그렇다고 그걸 동경했던 것은 아니다. 같은 반 애 중에는 조금 불편한 애들도 있었고, 별로 친해지고 싶지 않은 애들도 있는 법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시절 내가 읽었던 일본 만화 속의 수학여행에서는, 같은 반의 친한 아이들끼리 조를 이루어서 방에 들어가지냐고, 낮에 돌아다니는 것도 거의 자유롭게 지역 여기저기를 쏘다녔다.

        

       물론 실제 일본 고등학생의 수학여행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마 내가 굳이 일본의 수학여행을 떠올린 건, 이 두 사람이 일본 게임회사의 게임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이라 그런 거겠지만.

        

       “언니?”

        

       아, 조금 칠칠찮은 표정을 지었던 것 같다.

        

       “사실 저도 이곳에 살면서 여행하는 기분으로 돌아다녔던 적은 없습니다. 여러모로 할 일이 많았거든요.”

        

       그래봐야 출퇴근이었지만, 아무튼.

        

       “그러니 내일은 다 같이 명소 이곳저곳을 돌아다녀 보도록 하죠. 혹시 가보고 싶은 장소가 있다면, 정 생각나지 않는다면 테마를 말씀해주시면 나름대로 동선을 짜보도록 하겠습니다.”

        

       내 말에 클레어와 앨리스는 모두 눈을 빛냈다.

        

       글씨 배우면서 이것저것 찾아보고 있었던 모양이네.

        

       뭐, 그렇게 해준다면 나야 좋지.

        

       *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조금 이른 시간에 호텔에서 나왔다.

        

       출근 시간과 조금 겹치긴 했지만, 우리의 목적지는 지하철이 아니었다.

        

       우리가 묵는 곳은 서울 한복판에 있는 호텔이었다. 아예 큰맘 먹고 질러버렸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걷기만 해도 볼만한 관광지는 넘친다.

        

       “이 도시는 이 나라의 수도라고 하던데, 그렇다면 이 도시의 전통을 느낄만한 곳을 보고 싶어.”

        

       앨리스가 내놓은 의견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의견을 따라 근처의 한옥마을과 지하철을 타야 하는 박물관 중 고민하다가 한옥마을 쪽을 골랐다.

        

       박물관도 좋은 곳이긴 했지만, 그런 곳은 ‘즐긴다’라는 감각과는 조금 인상이 달랐다. 기왕 처음 이렇게 나온 것이니, 다 같이 거리를 걸으며 이것저것 구경도 하고, 먹기도 하고 싶었다.

        

       “앗, 언니, 저 옷은 뭐야?”

        

       클레어는 흥밋거리를 금방 찾아냈다.

        

       “저건 한복입니다. 이 나라의 전통복장입니다. 아마 입고 있으면 근처 궁전 입장이 무료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이 근방에서는 종종 볼 수 있는 옷이었다. 보통 한국인이 입었으면 커플이었고, 그게 아니라면 외국인 관광객들이 입는 옷이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우리는 다른 사람들 눈에는 매우 외국인 관광객처럼 보일 터였다.

        

       “입어보시겠습니까?”

       

       

       생각해보니 나는 서울에서 한참 살면서도 입어본 적이 없네.

        

       “좋아!”

        

       클레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앨리스 쪽을 보았다.

        

       앨리스는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클레어를 보고 있었지만—

        

       뭐, 앨리스가 나의 표정을 읽을 줄 아는 것처럼 나도 앨리스의 표정을 조금은 읽을 줄 알았으니까.

        

       앨리스의 얼굴에 흥미와 즐거움이 스쳤던 것은 정확하게 포착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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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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