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61

     

    “오늘 정말로 멋졌어. 박자나 음정도 완벽했고, 가사에 어울리는 감정선까지……. 11살이라고는 절대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니까.”

     

    헬레나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뒤늦게 밴드에 합류해 연습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너무나 빠르게 밴드와 동화 되어갔다.

    게다가 여러가지로 각자 개성이 확실한 아이들이 밴드를 하다보면 흔히 발생하곤 하는 팀원간 불화조차 하나도 생기지도 않았다.

     

    아니, 싸울 일이 없었다고 해야하나.

    헬레나의 목소리는 다른 부원들의 개성이 어떻든 바로 어울릴 수 있을 정도로 깊은 포용력을 갖추고 있었으니까.

    그만큼 그녀의 목소리는 훌륭했다는 것이다.

     

    그에 엠마는 자신이 음악교사임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재능을 눈치채는 것이 너무나 늦었다는 것에 죄책감마저 느껴질 지경이었다.

     

    헬레나는 그야말로 원석.

    아니, 어쩌면 이미 반짝이고 있는 보석 그 자체였으니까.

     

    하지만, 그런 칭찬을 받아도 헬레나의 반응은 시큰둥하기 그지없다.

     

     

    “그……. 칭찬은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 보다는 용건을 빨리 해줬으면 좋겠어요. 시루드가 기다리고 있단 말이에요.”

    “응? 하하하, 그렇구나. 그래, 알겠어. 선생님이 미안해. 그럼 빨리 용건만 할게.”

     

    엠마는 헬레나의 퉁명스러운 목소리에 난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혹시 정말로 가수 해볼 생각 없니?”

    “가수요?”

     

    헬레나는 뭔가 이상한 말을 들었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그냥 어쩌다보니 하게 된 보컬일 뿐인데 갑자기 가수라니, 너무나 터무니없는 소리가 아닌가?

    물론, 꽤 잘 불렀다는 자각은 있다만…….

     

    헬레나는 어쩌면 이 말도 그저 평범한 칭찬멘트에 불과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살펴본 엠마의 표정과 목소리는, 너무나도 진지했다.

    그것은, 분명하게 진심으로 장래를 권유하는 사람의 눈빛과 표정이었다.

     

    그리고 엠마가 한 장의 종이를 건네는 것을 받고서야 헬레나는 깨달았다.

    절대로, 빈 말이나 농담이 아니었다는 것을.

    ——–

     

    그렇게 헬레나의 상담은 예정대로 금방 끝났다.

    사실 상담이라기보다는 용건만 간단히 이뤄진 대화에 가까웠으니까.

     

    급하게 이루어진 상담인지라, 준비된 상담거리는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짧은 대화는 헬레나의 가슴 속 깊은 곳에 고민으로 자리잡았다.

     

    오디션.

     

    헬레나는 엠마가 건네 준 광고지 한장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오디션이라…….’

     

    광고지에 인쇄된 누군가의 무대 장면이, 헬레나의 시선을 끌었다.

     

    선배들과 공연을 준비 하는 과정이 약간 힘들기는 했어도 즐거웠고,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를 당시의 자신은 분명 자유롭다고 느꼈으며, 무대를 마치고 난 후 느껴지는 성취감은 그야말로 짜릿했다.

     

    그 모든 감각이 마치 이것을 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운명이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그렇지만, 헬레나에게는 이미 정해진 길이 있었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를 물려받아서 운영한다는, 확실하게 성공이 정해진 장래가 말이다.

    그런 미래를 걷어차고 노래를 하겠다고 하는 것을 아빠가 허락해줄 리가 없다.

     

    게다가 어떻게 노래를 한다고 해도 확실히 성공하리라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라, 그런 보장된 성공을 버리고 불확실한 곳을 향할 이유는 적어도 헬레나에게 없었다.

    헬레나는 확실한 보장이 완벽하게 되어있지 않은 길이라면 꺼리는 편이었다.

     

    헬레나는 루크 못지않은 완벽주의였으니.

    다만 루크와 헬레나의 차이점이라면, 루크는 자신의 능력과 잠재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헬레나는 자신의 능력과 잠재력에 확신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헬레나에겐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성공유무를 따지지 않고 몸을 던져넣을 용기가 없었다.

     

    ‘뭐어, 노래는 가수가 되지 않더라도 나중에 시간이 나면 취미로 얼마든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어.’

    그러니 헬레나에겐 이것이 최선.

    그래, 그런 것이다.

     

     

    결국 그렇게 결론을 내린 후, 헬레나는 약간은 후련한 감정이 들었다.

     

    하지만, 그 후련함 한켠에 남는 이 쓸쓸한 감정은 뭘까?

     

    ‘…….’

     

    시원함과 허탈함 사이, 그 어딘가에 위치한 그 감정이,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 때문이리라 생각한 헬레나는 시루드가 씌워준 목도리를 고쳐썼다.

    그렇게 하니 뭔가 잡념이 사라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참 신기했다.

     

     

    “그나저나, 루크가 한다던 카페가 여기가 맞나?”

     

    어느덧 도착한 거리에서 발을 멈춘 헬레나가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였다.

     

    그 이유는 카페 앞에 늘어선 지나치게 길다란 줄 때문만은 아니다.

    밖에서 사람들을 안내하는 사람들의 복장이, 너무나도 익숙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저건 메이드 복 아니야?’

     

    메이드라니, 설마 카페의 일손이 부족해서 집에서 고용한 메이드를 이곳에 부른 건가?

    하지만 외부의 지나친 개입은 축제의 본질을 흐린다는 이유로 학생이 축제기간 외부인력을 축제 인력으로 고용하는 것은 교칙 위반에 해당한다.

     

    그 말은 즉, 저기서 줄을 안내하고 있는 것은 명백한 교칙위반이던가, 아니면 분명한 아카데미의 학생이라는 이야기다.

     

    “흠, 하지만 루크가 저렇게 대놓고 교칙위반을 할 리가 없지.”

     

    최소한 외부인력을 몰래 사용하고 싶었다면 교복이라도 구해서 입혔겠지, 저렇게 대놓고 메이드복을 입힐 게 아니라.

    게다가 사람이 많이 몰린 상황이다보니 축제 관리 위원 두명도 와서 사람들을 보며 서있다.

     

    헬레나가 알기로, 루크는 절대 바보가 아니었다.

    게다가, 그 옆에서 보고 있는 축제 관리 위원들도 바보가 아니었고.

    헬레나가 사람의 얼굴을 일일이 기억하지 않기 때문에 모를 뿐이지, 아카데미를 다니는 학생일 가능성이 높았다.

    얼굴을 봐도 학생에 걸맞는 연령대라는 것을 알 수 있었으니까.

     

    ‘음, 아무래도 저 언니는 저런 옷이 취향인가 봐.’

     

    사람의 유형은 많고, 그 중에는 메이드 복을 입는 것이 취향인 사람도 있겠지.

    그리고 뭐……. 메이드복, 솔직히 귀엽기도 하니까.

    솔직히 자신도 집에서 청소하고 있는 메이드 언니들을 보고 있으면, 한번쯤은 입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자신도 어느 날은 한번씩 하지 않은가.

    또 즐거운 축제라는 특수성은 그런 옷을 입을 핑계로 꽤 당위성이 있다.

     

    아니면, 그냥 귀여운 복장을 이용해 홍보를 하는 것이던가.

     

    ‘그나저나, 장사 잘 되네.’

     

    헬레나는 카페 앞에 늘어선 줄을 천천히 세어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루크가 있으면 당연히 잘 될거라고 막연히 생각하긴 했지만, 이건 거의 자신의 무대를 보러 온 사람 숫자만큼 많아 보이지 않나?

    고작 카페에 이 정도의 인파라니…….

     

    이 정도로 사람이 많으면 시루드는 아직도 카페에 들어가지 못한 거 아닌가 걱정이 좀 된다.

    하지만, 그 긴 줄에 시루드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루크가 들여보내 준 거겠지?

     

    그렇게 생각한 헬레나는 줄을 지나쳐 들어갔다.

    헬레나는 혹시 자신의 행동이 남들에게 새치기처럼 보일라 걱정하며 목도리를 눌러 얼굴을 가렸지만, 주문은 어차피 번호표를 사용하기 때문에 연신 ‘죄송합니다, 지나갈게요. 친구가 기다리고 있어서요.’라고 양해까지 구하는 여자아이에게 모진말을 내뱉는 사람은 없었다.

     

    —–

     

    어떻게든 몸을 카페 안으로 집어넣은 헬레나.

    그러자 보게 된 광경에 살짝 충격을 받기에 이른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일하고 있는 모든 학생들의 복장이 바로, ‘메이드 복’이었기 때문이다.

     

    설마 저 밖의 언니 한명의 취향이라던가, 시선끌기용이 아니었던 건가?

    경악할 일은 그것에 그치지 않는다.

     

    카페 안에서는 그 루크조차 머리를 단정하게 묶어 올린 채로 메이드 복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맙소사, 루크까지?’

     

    헬레나는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루크가 메이드 복이라니, 전혀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면 워낙에 얼굴이 귀여워서 다 괜찮아보이는 모양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루크의 앞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는 메이드의 모습도 꽤 익숙하다.

    키나 몸의 형태, 머리모양과 이목구비가 전체적으로 헬레나가 아는 사람과 닮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내, 헬레나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외쳤다.

     

    “잠깐, 시루드? 혹시 너야?”

    “어, 헬레나?”

     

    얼핏 시루드가 아닌가 했던 사람은 아니나다를까, 실제로 시루드가 맞았다.

     

    ——

     

    루크가 주방에서 외치듯 말했다.

     

    “으아, 미안하구나. 지금 손님이 하도 많아서……. 부장이 부른 친구가 도착할 때까지 한 시간만 도와달라고 내가 고집을 좀 부렸다.”

    “그렇게 된 거야…….”

     

    시루드는 정말로 부끄럽다는 듯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얼굴을 붉히며 조그맣게 말했다.

    아무래도 난생 처음 입어보는 치마와 스타킹의 감촉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듯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때려 치우고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수치스러웠지만, 루크가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해 왔다.

     

    ‘위험’하다는 이유로 가르쳐주지 않은 수많은 서클마법들을 전부 알려주겠다는데, 어떤 마법사가 거절할 수 있었겠는가!

    안 그래도 지닌 서클에 비해 할 줄 아는 마법이 폭이 너무 부족해서 의욕이 없던 시루드에게 그것은 상당히 구미가 당길 수 밖에 없는 제안이었다.

    게다가, 이미 전에 도와주기로 한 말도 있었고…….

     

    “그러니까, 한 시간만 기다려 줄래. 그 뒤에 놀자.”

    “으, 응. 그럴게.”

     

    그렇게 헬레나는 얌전히 한시간을 기다리기로 했다.

    시루드가 루크에게 서빙이라도 도와주겠다고 약속을 한 것도 옆에서 보았으며, 충격받은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라도, 시간은 필요했으니까.

     

    비록 불가항력이라지만, 평소에는 상상도 하지 못한 모습이라서 너무 놀랐다.

    그리고, 왠지 잘 어울려서 더 놀랐다.

     

    시루드의 새로운 면을 보고 말았다는 느낌이라고 할까…….

     

    얼마나 놀랐는지, 아까까지 생각하고 있던 고민거리가 완전히 머릿속에서 흔적도 없이 표백되어버릴 정도다.

     

    “그나저나, 나라는 걸 어떻게 바로 알았어? ……역시 이상한 거지?”

     

    그렇게 묻는 시루드의 목소리는 정말로 작았다.

    굳이 자신이 남자아이라는 사실을 크게 말해서 들키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시루드의 복장은 그렇게까지 이상하지는 않았고, 무난하게 어울리는 수준이었다.

    애초에 시루드의 얼굴이 워낙 곱상했던지라, 크게 이상해 보이는 곳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순혈 하이엘프인 시루드는 성장이 느리다.

    남성의 몸과 여성의 몸이 확실히 시각적으로 갈리기 시작하는 지점인 2차성징이 오지 않은 것이다.

    덕분에 목소리조차 성별의 구분감이 없다.

     

    그렇기에 아마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냥 귀여운 숏컷 알비노 엘프 메이드라고 생각할 게 뻔하다.

     

    “아니, 아니야. 이상하지 않아. 오히려 귀여워서 깜짝 놀랐어. 그냥 전체적인 분위기랑 그런 걸 보고 알았을 뿐이지.”

    “그, 그래……? 크, 흠.”

     

    헬레나의 말을 들은 시루드가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지어냈다.

    남자인 자신이 여자애한테 귀엽다는 말을 들어봤자, 그걸 칭찬으로 받아들이기란 쉽지가 않으니까.

     

    그리고 바로 그 때, 어떻게 들었는지, 루크가 주방에서 불쑥 튀어나오며 말했다.

     

    “그렇지? 정말 귀엽지않느냐? 그러니까 정말로 괜찮다고 좀 말해 주거라. 오히려 부끄러워 하는 게 더 이상하다니까.”

     

    그렇게 말하는 루크는 묘하게 들뜬 모습이었다.

     

    “어, 루크 말이 맞아, 정말로 귀엽…….”

     

    ‘잠깐.’

     

    그런 루크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순간, 헬레나의 머리를 스치는 한가지 생각.

     

    ‘루크는 남자애가 아니라 여자애를 좋아했잖아.’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말하면 루크의 취향은 시루드같은 남자애가 아니라, 레니에 아린세이아처럼 붉은 빛이 감도는 머릿결에, 의지가 강하고 용모가 아름다운 그런 여성을…….

     

    ‘머리카락만 빼면 시루드잖아!’

     

    이제보니 루크의 이상형이라는 거, 머리카락만 제외하면 의외로 스트라이크존이 꽤 넓은 것 같다!

    그리고, 어차피 머리야 염색하면 그만인 부위고…….

    ‘이, 이러면 위험한데……!’

    헬레나는 또 다른 고뇌에 빠졌다.

    ——-

     

    물론 루크가 들뜬 이유는 조금 달랐다.

    방금 전, 루크는 화장의 일종으로 시루드에게 ‘폴리모프’를 가르쳤는데, 시루드가 그것을 성공적으로 배우고 사용했기 때문에 들떴을 뿐이다.

     

    시루드의 서클은 어느덧 4서클을 목전에 둔 상태인지라, 했는지 안 했는지 잘 모를 정도로 미묘한 수준의 폴리모프 정도는 그럭저럭 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고, 시루드 역시 아무래도 자신이 이러고 있다는 사실을 다른 반 아이들에게 들키고 싶지는 않았던지라, 그 짧은 시간에 필사적으로 노력한 것이다.

     

    기껏해야 눈매와 코 너비를 정말 미묘하게 조작하는 정도에 불과한 정도였으나, 그 정도만으로도 원체 중성적인 얼굴의 시루드에게서 여성적인 면모를 끌어올리는 것으로는 충분했으며, 그것은 제자의 첫 4서클 마법의 성공이라는 기념할만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스승된 자로서 제자의 성장에 들뜨지 않을 수가 있을까?

     

    비록 생물의 본질을 꿰뚫는 정령적인 감각이 뛰어난 헬레나의 눈을 속이지는 못 했지만 말이다.

    그건 허들이 너무 높지. 

     

    루크는 그런 생각을 하다 문득, 헬레나의 미묘한 시선을 마주하며 고개를 갸웃거렷다.

     

    “응? 왜 그러지, 헬레나? 아, 혹시 입이 심심해서 그런 거라면 자몽 허브티라도 만들어 줄까?”

    “아니. 괜찮아.”

    “……?”

     

    루크가 아무리 부드럽게 말해도, 헬레나의 시선은 여전히 날카롭기만 하다.

    자신이 뭔가 잘못한 게 있는 것일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니 뭐.. 결국 이렇게 됐습니다.
    그나저나 헬레나는 이제 좀 조바심이 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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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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