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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1

        

       돌계단을 내려가는 발걸음은 가볍고 경쾌했다. 요정이 새벽에 풀잎을 사뿐히 지르밟으며 숲으로 향하는 것처럼, 이슬이 작게 흘러내리는 소리처럼 미미하고 작은 소리만이 맴도는 밤처럼 무인의 발걸음은 한없이 가볍기 짝이 없었다.

         

       초상비(草上飛).

         

       풀을 밟는 것처럼 흔적도, 소리도 거의 남기지 않는 보법이 무인의 발에서 재현되었다.

       잠입하기 위해 익혀두었던 발걸음은 발소리뿐만이 아니라 무인의 기척 자체를 줄여주었고,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는 이상은 인기척을 거의 느낄 수 없게 만들었다.

       호흡하고 있음에도 호흡 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고, 존재하고 있음에도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뜨거워야 하는 사람의 체온 역시 특별한 방법으로 기를 돌려서 열기가 밖에 느껴지지 않도록 했으며, 몸에 달라붙는 옷은 혹시 옷이 펄럭이며 낼 수 있는 소리마저 없애버렸다.

         

       상위권이라고 하기에는 힘들지만, 그래도 이 정도라면 수준급으로 취급될만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상위권이 아니기에 아티팩트나 경보장치에 걸릴 확률이 높고, 경지가 높은 무인이나 육감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눈치챌 수 있는 수준이기는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빌딩은 보안이 개판인 듯 보였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자물쇠에, 다 낡아빠진 내부의 모습이라니.

         

       ‘거기다가 쇠사슬도 얇았지.’

         

       무인은 들어올 때를 떠올리며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기를 많이 불어넣은 것도 아닌데, 그렇게 허무하게 잘리다니.

       중국산 쇠사슬이라고 해도 그것보다는 단단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중국 공장에 가보면 제대로 된 설비가 아니라, 대충 땅을 파서 거기다가 쇳물을 흘려서 물건을 만드는 경우도 왕왕 있다고 하던데, 문에 칭칭 감겨있던 쇠사슬 역시 그런 싸구려 불량품이 아니었나 싶었다.

         

       ‘그러고 보니 그 쇠사슬은 어떻게 했던가?’

         

       허무하게 잘린 쇠사슬은 바닥에 쓰레기처럼 널브러졌다.

       그들은 그 쇠사슬을 뒤로 하고 들어갔는데….

         

       생각해보니까 그 쇠사슬을 치워야 하지 않나 싶었다.

         

       지나가던 행인이 쇠사슬이 끊겨있는 것을 발견한다면 뭔가 이상함을 느끼지 않을까 싶었다.

         

       게다가 그 쇠사슬이 널브러진 위치를 생각해본다면….

         

       ‘그러고 보니 쇠사슬이 어디에 있었더라?’

         

       문득 무인은 의문 하나가 떠올랐다.

         

       쇠사슬이 건물의 밖에 떨어져 있었는지, 안에 떨어져 있었는지.

       그것에 대한 의문이 떠올랐다.

         

       ‘안이었겠지.’

         

       하지만 무인은 이내 자신이 이상한 생각을 했음을 깨닫고 실소를 흘렸다.

         

       당연히 안일 수밖에 없다.

         

       그들은 박진성이 건물 안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들어왔다.

       박진성이 외출했다가 빌딩에 들어갔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온 것인데, 당연히 쇠사슬이 안에 감겨있지 않았겠는가?

         

       빌딩에 머무르는 사람이 안에 있는데, 정문의 바깥쪽에 쇠사슬이 감겨있을 리가 없었다. 그럴 이유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

         

       안쪽에서 바깥쪽의 손잡이에 쇠사슬을 칭칭 감고 자물쇠를 잠근다고?

         

       왜 그런 짓을 하겠는가?

         

       게다가 쇠사슬 역시 팽팽하게 매여있었고, 그 쇠사슬을 붙잡고 있는 자물쇠 역시 바깥쪽을 바라본 채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목이 돌아가지 않을 정도로 팽팽하게 되어있었기에 자물쇠의 방향을 돌려서 잠근다는 것은 말이 안 됐다.

         

       ‘그래. 자물쇠는 우리 쪽으로 되어있었지.’

         

       입구에 들어올 때를 떠올리던 무인은 문득 이상한 사실을 깨달았다.

         

       ‘잠깐만. 자물쇠가 왜 우리 쪽으로 되어있었지?’

         

       우리 쪽.

         

       즉, 바깥쪽이다.

         

       어째서 자물쇠가 바깥쪽으로 되어있었다는 말인가?

       그것도 자물쇠를 돌릴 수 없을 정도로 사슬을 팽팽하게 감아놓고서 말이다.

         

       대체 왜?

         

       ‘잠깐만. 자물쇠는…. 열쇠가 맞았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자물쇠가 열쇠로 여는 것인지, 아니면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하는 녀석인지.

       자물쇠가 쇠로 되어있었는지, 강화 플라스틱으로 되어있었는지.

         

       아니, 애초에 자물쇠가 어떤 모양이었지?

       있기는 했었나?

         

       하지만 없었다면 쇠사슬이 그렇게 팽팽하게 감겨있을 리가 없는데?

         

       ‘쇠사슬?’

         

       무인은 위화감을 하나 깨달았다.

         

       쇠사슬.

         

       그래, 쇠사슬이다.

         

       쇠사슬이.

       어디에 있었지?

         

       안에…있었나?

         

       ‘잠깐만.’

         

       무인은 왠지 모를 오싹함을 느끼며 발걸음을 급하게 멈췄다.

       다행히 수준급의 보법을 익히고 있는 터라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고 멈추어 설 수 있었다.

         

       ‘잠깐만. 잠깐만. 잠깐만. 잠깐만….’

         

       멈춰선 무인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 표정이 굳었다.

         

       ‘왜, 기억이 안 나지?’

         

       기억이 애매하다.

       기억이 흐릿하다.

       활자로 된 정보를 쑤셔 박고, 대충 거기에 그림 몇 장을 끼워 넣어서 홀리려 드는 것처럼 빈약하고 허술하다.

         

       대체 왜?

       기억이 끊긴 것도 없고, 정신도 말똥한데.

       대체 왜 이렇단 말인가?

         

       ‘아무리 내가 이 일을 쉽게 보고 있다고는 했지만….’

         

       방심했다?

       우습게 봤다?

         

       인정한다.

       그게 맞다.

         

       하지만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는 무인이었다.

         

       무인은 육체 자체가 일반인보다 훨씬 단련된다.

       그리고 이 육체에는 뇌 역시 포함이 된다.

         

       무인은 일반인보다도 판단 속도가 빠르고, 기억력 역시 꽤 뛰어난 편이다.

       무인으로서 높은 경지에 이를수록 뇌의 능력은 점점 강화되고.

         

       물론 이를 닭과 달걀에 비유하기도 한다.

       무인이었기에 뇌가 강화된 것이 아니라, 뇌의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무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어찌 되었건, 특이한 무공을 익히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지능이 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어리석은 행동을 한다거나, 우둔하게 행동하는 경위가 있기는 하지만 그건 소프트웨어의 문제. 하드웨어인 뇌 자체는 뛰어난 경우가 많았다는 말이다.

         

       이는 그 역시 마찬가지다.

       좀 편협하고 맹목적이며, 사람이 일차원적이라는 이야기는 들을지언정 어디 가서 멍청하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어지간한 책은 한 번만 읽고도 줄줄 외울 수 있으며, 눈으로 본 것은 CCTV라도 된 것처럼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재생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대체 왜.

       그런 기억력을 가지고 있는데 왜, 이렇게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인가?

         

       ‘이상하다.’

         

       무인은 엄습해오는 불안감에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이건.’

         

       이것은.

         

       ‘그림 몇 장을 보고 중간은 상상으로 끼워서 맞춘 것 같잖아?’

         

       무인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이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애초에 왜 아티팩트가 없다고 생각한 거지?’

         

       줄기를 뽑으니 감자 덩이가 줄줄이 딸려 올라오듯, 한 번 위화감을 깨닫자 이상한 점이 수없이 딸려왔다.

         

       ‘아티팩트를 탐지하기 위한 장비를 사용한 것도 아니고, 정신을 집중해서 기감을 퍼뜨려서 아티팩트를 수색하지도 않았다. 직접 발로 뛰어서 찾아다니지도 않았고. 아니, 아예 눈으로도 바라보지 않았어. 그냥 아티팩트가 없다고 단정을 지었어.’

         

       잘못되어간다.

         

       ‘게다가 분위기도 그래. 아무리 쉬운 작전이어도 그렇지, 왜 소풍을 온 것처럼 그렇게 떠들고 다녔지? 최소한의 긴장감을 가지고 있어야 했는데, 대체 왜 그러지 않았지? 그냥 일반 가정집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안의 사람들에게 들키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최소한의 긴장은 했는데. 대체 왜 주술사의 거처에 들어가는데도 그렇게 편안함을 느꼈던 거지?’

         

       아니, 잘못되었다.

         

       ‘엘리베이터도 마찬가지야. 왜 엘리베이터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거지? 엘리베이터 통로를 사용하면 허를 찌르는 잠입이 가능했을 텐데. 안에 CCTV도 없을 테니 계단보다 은밀하게 잠입할 수 있었을 테고, 우리 실력이면 올라가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고. 엘리베이터가 작동할 수도 있는 리스크는 해킹하거나 아예 전기를 끊어버리는 걸로 대처할 수 있는데…?’

         

       시작부터 잘못되었다.

         

       ‘그리고 계단으로 이동했을 때도 그래. 왜 계단에 들어오자마자 분위기가 갑자기 바뀐 거지?’

         

       잘못된 시작은 계속해서 잘못된 길로 그들을 인도했다.

         

       ‘그리고 왜 자연스럽게 둘로 나뉜 거지?’

         

       잘못된 길.

       잘못된 판단.

         

       ‘아무리 애송이라고 하지만 주술사야. 안전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세 명이 가는 게 나아. 그런데 왜 둘로 나뉜다는 판단을 한 거지?’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

         

       ‘아니 애초에.’

         

       모든 것이 말이다.

         

       ‘나는 왜 지하로 향한 거지?’

         

       오싹.

         

       무인은 그제야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냥 잘못된 것이 아니다.

       시작부터.

       시작부터 지금까지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

         

       ‘빌어먹을.’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게 유도되어 이곳까지 와 있었고, 멍청하게도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대체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제대로 된 근거도 없이, 그냥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둘로 나뉘어서 계단의 위아래로 가는 꼴이라니. 게다가.

       게다가….

         

       ‘나는, 왜, 여기 혼자 온 거지?’

         

       그는 혼자다.

         

       위에는 두 명이 갔지만, 아래로 간 것은 한 명.

         

       오직 그 혼자란 이야기다.

         

       ‘빌어먹을!’

         

       무인은 입술을 바싹 깨물고 고개를 홱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뒤를 바라보자 보이는 것은 희끄무레하게 보이는 계단의 윤곽.

       너무 짙은 어둠에 휩싸여 있기에 눈에 기를 불어넣어도 윤곽밖에 보이지 않았다.

         

       계단의 윤곽은 길게 늘어서 있었고, 그가 많이 내려왔음을 알리고 있었다.

         

       그래.

         

       길게.

       길게 늘어서 있었다.

         

       ‘이게, 말이 되나?’

         

       보법을 사용하면서 내려왔다.

       아무리 소리가 나지 않게 주의했어도, 일반적인 속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르고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 보법이다.

         

       그런데 그 속도로 내려왔는데, 아직 지하층에 도착하지 못했다고?

       지금까지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고?

         

       그렇게 위화감을 점차 깨닫고 있던 무인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머릿속에 소름끼치는 사실 하나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왜 계단이, 계속 쭉 이어져 있는 거지?’

         

       그는 계단참을 마주한 적이 없었다.

         

       그저, 내려오기만 했을 뿐이다.

         

       일직선으로.

       쭉 뻗은 계단을 계속해서 말이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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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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