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1화. 전쟁 군주 ( 1 )
《…뭐라? 군대가? 심연에 왔다고?》
발가르가 옥좌에 앉은 채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분명하다는 듯 눈알이 하나뿐인 악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키륵, 분명합니다. 수는 삼천! 키르르륵! 모두 성기사들이고 용사도 있었습니다! 용왕을 죽인 녀석도!”
《…좋아. 알겠다. 물러가라.》
손짓으로 악마를 물린 발가르가 습관적으로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극에 달한 그의 육체이건만 어째서인지 두통이 쑤셔오는 착각이 든다.
《도대체 어째서 인간들이 군대를…》
그리 말하지만 이미 그의 영민한 두뇌는 답을 도출했다.
다만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아 모른 척하고 있을 뿐.
‘젠장. 내 초대장을 좋지 못한 의도로 파악한 건가?’
최대한 정중한 어투에 고르고 고른 단어들만 사용해서 편지를 썼을 터인데. 도대체 어째서?
‘3천이라니. 전쟁을 상정하고 온 병력이다.’
자신은 제약에 묶여 지상의 것들을 죽일 수 없는 상황. 거기에 누구 하나라도 죽이거나 다치면 어버이께서 크게 노하실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인간들은 잔뜩 독기가 올라 기세등등하게 심연에 쳐들어온 상황.
겁먹은 개처럼 물러난다면 마왕의 자질부터 의심받을 것이고, 나아가 발가르의 권위가 흔들린다.
《아무나 들어와라.》
“예, 예에!”
후다닥 달려와 발아래에 부복한 중급 악마가 바짝 긴장한 채 대답했다.
발가르가 검은 눈동자를 빛냈다.
이미 엎어진 일은 무를 수 없는 법. 그렇다면 할 수 있는 일에 한해서 최선의 결과를 낼 뿐이다.
《손님이 오셨으면 마땅히 주인으로서 인사를 해야겠지. 아리오크에게 할 말이 있으니 서둘러 오라고 해라.》
“그리 전하겠습니다!”
소식을 들은 아리오크는 그야말로 하늘을 날듯 달려왔다.
《대ㅡ애ㅡ쟈ㅡ아ㅡ앙!》
쿠웅!
말 그대로.
무식한 각력으로 하늘을 박차듯 뛰어올라 천장부터 부수고 착지한 것이다.
우수수 떨어지는 돌가루와 먼지.
아리오크는 아랑곳하지 않고 붉은 안광을 피안개처럼 흘리며 거친 호흡을 내뿜었다.
《댸장! 인간들이 왔다고 들었다! 크워어어어! 전쟁? 전쟁인가! 나를 싸움터로 보내는 것인가!》
잔뜩 부풀어 오른 근육이 아리오크의 흥분을 보여준다.
《그렇다 아리오크. 손님이 오셨지. 그것도… 제법 많이.》
속이 제법 쓰라리다.
자신은 분명 아리오크와 견줄 정도의 전사 한 명만 보내달라고 했을 것인데.
‘아니지. 일단 아리오크와 겨룰 이들이 오기는 했으니 절반의 성공인가?’
절반의 성공에 온갖 폭탄이 주렁주렁 매달린 꼴이다.
《너를 위해 준비한 이들이다 아리오크. 이 내가 몸소 지상으로 초대장을 써서 저들을 불러왔지.》
발가르의 말에 아리오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뭔가 숨기는 것이 많은 수상한 대장이라고 여겼는데, 설마 자신을 위해서 저 많은 이들을 불러오다니!
《크흐으으으… 대, 대장! 정말인가! 정말 나를 크우웁! 위해서?》
《훗.》
감동한 아리오크.
이를 바라보며 작게 미소 짓는 발가르.
허나 발가르의 뇌는 필사적으로 회전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완벽하게 유도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지상에서 온 녀석들이 다치거나 죽는 것도 안 되고, 그렇다고 무작정 물러나는 것도 안 된다. 하지만 아리오크는 용사 혹은 용왕을 죽인 녀석과 싸우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 무슨 부조리함.
짧게 침묵하던 발가르가 옥좌에서 일어나며 두 쌍의 날개를 크게 펼쳤다.
《가라 아리오크. 아직은 때가 무르익은 것이 아니니, 싸움은 불허하겠다. 허나 네 눈으로 가서 인간들을 확인하고 오는 것은 허락하겠다. 가서 너와 견줄 정도의 전사들이 있는지 보고 와라.》
《크우으으? 어째서냐 대장. 왜 아직 싸울 수 없는 거냐!》
《그건… 이유를 모르는 건가? 아직 네가 알기에는 너무 이르다. 때가 오면 알려주도록 하지.》
《크웁. 알겠따…》
당장 싸울 수 없다는 사실에 조금 시무룩한 아리오크였지만, 이내 금방 기세를 되찾고 다시 천장을 부수며 뛰쳐나갔다.
쾅!
작은 점이 되어 사라지는 아리오크를 바라본 발가르가 다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나는 이만 가 볼 곳이 있다. 물러나라.》
“키륵! 예!”
펄럭!
두 쌍의 날개를 펼친 발가르가 쏜살같이 활강해 아리오크의 뒤를 쫓았다. 한참이나 달리던 발가르를 쫓아 얼마나 하늘을 날았을까.
인간들에게서 한참이나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아리오크가 투기를 뭉게뭉게 피워 올리면서 인간들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이건 또 의외군.’
의외로 아리오크는 자신이 시킨 대로 멀리 떨어져서 인간들을 관찰하기만 했다.
‘싸움에 대한 충동을 못 참을 것 같아서 따라왔는데. 정말 시킨 대로 보기만 할 줄이야.’
의외였다.
전투광의 모습을 보인 아리오크라면 분명 제 성질을 못 참고 달려갈 것이라 생각했건만.
‘흠. 이러면 첫 번째, 여섯 번째 계획은 폐기인가.’
생각의 갈래가 뻗어지며 쳐내고 수정하여 계획을 세운다.
아리오크가 순순히 자신의 명령을 듣는 것은 기분 좋은 변수였다.
《…앗.》
문득 발가르가 흠칫 몸을 떨었다.
저 하늘에 걸린 일곱 개의 눈동자가 번뜩이며 매섭게 시선을 발하는 것이 느껴진 까닭이다.
《어버이시여. 오셨나이까.》
발가르가 꾸벅 허리를 숙였다.
예측하지 못한 변수가 있기는 했지만, 아직 상정 내의 범위다. 아리오크와 다른 대악마들도 충분히 통제하여 원하는 대로 상황을 이끌 자신도 있다.
‘지상의 인간들이 편지의 진의조차 헤아리지 못한 것은 상정 외였지만, 그 외에는 아직 내 능력 안쪽이다.’
그리 생각하며, 발가르는 어버이의 말을 얌전히 기다렸다.
* * * * *
“아이고 머리야.”
그냥 대충 보다가 자려고 했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모르겠다. 심연으로 화면을 돌리자 발가르가 곧장 허리를 꾸벅 숙였다.
조금 괘씸한 마음에 살짝 터치해서 꿀밤을 때렸다.
– 툭.
– 《윽?》
당황스럽다는 표정으로 이마를 만지는 발가르를 보니 한숨이 푹푹 나온다.
‘아니 그래. 왜 이렇게 했는지 충분히 알겠는데… 네가 편지를 직접 쓰면 어떡하니…’
장문의 기도에 참 꼼꼼하게도 적어서 앞뒤 상황은 대충 알고 있다. 말뚝, 대악마, 말뚝의 제거… 그리고 그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다는 것도.
‘그런데 정말 편지가 최선이었니…?’
발가르의 편지, 다른 말로는 마왕의 초대장이다.
그걸 지상으로 보내면 “아이쿠. 심연에 사는 마왕이 엄청 강한 전사 한 명을 보내달라고 하네? 자기 부하랑 싸우게 한다는데?” “아하. 마왕님이 그렇다고 하면 보내드려야지 하하하.” 이러지는 않을 것 아닌가.
“어휴.”
그 결과가 저기 보이는 3천 명의 병력이었다. 기세가 무시무시한 것이 바짝 독기가 올라왔다.
“케니스랑 한스… 이스칼도 왔네.”
…일단 대악마랑 싸울 체급의 애들이 오기는 했으니까 이걸 절반의 성공이라고 봐야 하는 걸까. 이걸 도대체 어떻게 수습해야 하는지 감도 안 온다.
“큼, 흐흠. 흐음! 아, 아아.”
우선 가볍게 목을 풀고.
《…발가르여.》
– 《듣고 있나이다 어버이시여.》
도대체 무슨 말로 시작해야 할까. 한참이나 고민하다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삼천의 인간이 심연에 왔도다. 너는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느냐?》
어지간하면 나는 누군가 다치는 상황을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너무 감싸기만 하면 안 된다는 것도 안다. 살아있는 존재는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며 성장하는 법이니까.
온실 속의 화초는 언젠가 자연으로 돌아가면 죽는 법이다.
‘그래도 이런 일에서는 누구 하나 안 다치게 해주는 게 맞는 거 아닌가…? 한 명이면 충분한 일에 발가르가 어그로를 끌어서 삼천 명이나 온 건데.’
긴가민가하다.
– 《맡겨 주시옵소서. 제가 모두 해결하겠나이다.》
발가르가 단단한 목소리로 말하며 눈을 부릅떴다. 믿어 달라는 저 눈빛. 자신의 결정에 확고한 믿음이 있는 표정이다.
‘하… 돌아버리겠네 정말.’
이걸 허락을 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수십 번을 고민하다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좋다. 해보거라. 삼천의 인간부터 네가 말했던 말뚝의 존재까지. 네가 어떻게 행하는지 지켜볼 것이다.》
– 《감사합니다.》
이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저렇게까지 믿어달라고 하니 내가 한 발 물러났다.
도대체 어떻게 하려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계속 보다가 이건 아니다 싶으면 늦게라도 개입하면 되는 거니까.
– “세상에… 하아. 세상에 세상에…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요…?”
“나도 몰라. 나한테 묻지 마…”
화면 구석에 나타난 SD 케넬름이 머리 아프다는 시늉을 하며 죽어가는 척했다.
“하아 진짜 돌겠네. 아니 발가르 얘는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자각이 없나? 어떻게 마왕이나 되는 애가 이렇게 막 움직일 수가 있지?”
– “…”
말하고 나니까 조금 기분이 이상하다.
어쩐지 내 얼굴에 셀프로 침을 뱉은 느낌?
– “……”
“…왜 날 그렇게 보는 거야.”
– “…휴우. 아닙니다.”
SD 케넬름이 눈을 굉장히 미묘하게 뜨고 바라보는 것을 애써 모른 척했다. 나는 무죄야. 죄가 없다고.
– “………”
아 왜.
뭐.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엄청나게 무지막지하게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구아아악…!! 군대?! 어째서 군대가 온 데쟈아아앗?! 폭거! 인간들의 비인간적인 폭거인데샤아앗!! 아리오크! 가서 똥닝겐들을 몰래 보고오는 데샷!! 테에에엥! 이러다가 일가실각 당하는 레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