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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1

   흑마녀도 어찌하지 못하는 공간의 너머 세계 허무.

   그런 허무 속에서 멸화를 터트린 크라슈는 왜인지 추락하고 있었다.

     

   크라슈는 추락하는 허무의 공간이 이리저리 뒤틀리는 것이 보였다.

     

   크라슈의 멸화가 허무 자체를 뒤흔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슈욱!

     

   그러는 순간 얼마 안 가 크라슈는 자신의 주위가 뿌옇게 변한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건축물들이 불타올라 만들어진 구름이었다.

   열기를 머금은 구름이었지만, 크라슈는 큰 피해가 없었다.

     

   어차피 그의 몸 또한 불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구름을 뚫고, 크라슈가 상공에 진입했다.

     

   그러자 크라슈의 눈에 타오르고 있는 건물들이 보였다.

   하지만 건물 양식은 크라슈가 알던 것과는 어딘가 많이 달랐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아니다.

   이곳은 명백히 다른 세계다.

     

   크라슈는 이곳이 어딘지 눈치챘다.

     

   ‘허무 속에 남은 흑마녀의 세계.’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불길을 피해 도망치는 게 보였다.

   그들을 본 크라슈는 추락하던 자세에서 몸을 바로 했다.

     

   쿠웅!

     

   그러고는 이윽고, 한 건물의 천장 위에 착지했다.

   석조 건물인 이곳은 그나마 비교적 다른 곳보다 덜 타고 있었다.

     

   흑마녀의 심상이 허무에 빗대어 만들어낸 세계 속.

   사람들은 죽어라 도망치고 있었다.

     

   “광란의 마녀가 이쪽으로 온다!”

   “달려, 달리라고!”

     

   그러자 크라슈의 귀에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콰아아아앙!

     

   그리고 목소리가 들려온 건물이 부서지며 새까만 검은색 문어 다리가 나타났다.

   불길을 헤치고 들어온 문어 다리는 크라켄의 것이었다.

     

   광란의 마녀.

   그 이름은 흑마녀의 세계가 마녀 사냥이라는 멍청한 학살 행위의 계기를 준 이였다.

     

   그러나 지금.

   크라슈의 눈에 비친 이는 광란의 마녀가 아니었다.

     

   크라켄의 머리 위.

   그곳에 앉아 있는 이는 흑마녀였기 때문이다.

     

   그런 흑마녀가 어째서 지금 이곳에서 광란의 마녀라 불리고 있는가.

   그건 흑마녀가 자신을 광란의 마녀와 동일시 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광란의 마녀 또한 분노로 인해 세계를 멸망시키려 했으니까.

     

   이곳은 현실이 아니다.

   흑마녀의 내면 깊숙한 곳에 담긴 세계를 향한 원한이 만들어낸 곳이었으니까.

     

   그녀는 자기 세계를 멸망시키고도 아직 원한을 풀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딸을 죽인 세계를 지금도 계속 원망하고 있었다.

     

   “흑마녀.”

     

   크라슈가 그녀를 불렀다.

   그러자 크라켄 위에 있던 흑마녀가 이쪽을 보았다.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크라슈는 그녀가 사랑하는 딸의 부활을 방해하려는 이였기 때문이다.

     

   “지금 이 세계를 보면서 배운 게 없어?”

     

   크라슈는 그리 고하며 우뢰성에 백염을 피워올렸다.

   타오르는 불길조차 잡아 먹은 백염은 거세게 빛났다.

     

   “네가 세계 침식의 신으로 만들어낼 세계 또한 결국 지금과 같은 꼴이 될 거란 걸 말이야.”

     

   과연, 세계 침식의 신으로 만들어낸 신이 흑마녀가 원하는 세계를 만들어줄까.

     

   그럴 리 없다.

   그녀의 몸속 깊은 곳에는 사람을 향한 깊디깊은 원한이 존재하니까.

     

   그 원한은 세계를 창조하려 할 때 반드시 스며들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세계는 또 이와 같은 꼴을 맞이할 것이다.

     

   “……뭘 안다고 멋대로 지껄이는 거야.”

     

   그 말대로 크라슈는 그녀의 세계에 관해 모른다.

   하지만 크라슈는 세계란 것이 어떤 것인지 안다.

     

   자신이 살아가던 세계가 어떤 식으로 바뀌고 있는지.

   크라슈는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으니까.

     

   스타론과 제국이 전쟁하고.

   4왕국 사이 내분이 일어나고.

   세계 침식자 전체와 전쟁해야 했던 세계.

     

   그러나 그 세계는 지금 어떤가.

     

   스타론과 제국은 지금까지 역사 중 가장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사이가 좋다.

   4왕국은 내분은커녕 오히려 서로의 끈을 단단히 조였다.

   세계는 익시온이라는 목표 하나로 힘을 뭉쳐 싸우고 있다.

     

   세계는 바뀌었다.

   그리고 세계를 바꾼 장본인이기에 크라슈는 말할 수 있었다.

     

   “불완전한 세계이기에 바뀔 수 있는 거다.”

     

   허점투성이에 엉망진창인 세계지만.

   그렇기에 이 세계는 바뀔 수 있었다.

     

   완벽하게 공들여 만들어낸 세계였다면 조금만 금이 가더라도 결국 전부 무너져 버리고 말았을 테니까.

     

   여기저기 부서지고, 덧댄 곳이 많더라도.

   불완전한 세계는 완성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시끄러.”

     

   그러나 흑마녀는.

     

   “시끄러, 시끄러워!”

     

   불완전한 세계를 견디지 못했기에 무너뜨리고 말았다.

     

   그렇기에 크라슈와 흑마녀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흑마녀는 세계를 멸망시킬 자.

   크라슈는 세계를 지킬 자니까.

     

   크라켄의 다리가 크라슈에게 솟구쳤다.

   크라슈가 건물 천장을 박차며 질주했다.

     

   크라슈의 머리 위 돋아난 새하얀 뿔이 거세게 빛을 토해냈다.

   멸천화신의 효과가 아직도 크라슈에게 남아 있었다.

     

   크라슈의 검이 날아드는 크라켄의 다리를 불살라 지워 버렸다.

     

   이제 크라켄의 다리로는 크라슈를 막을 수 없었다.

   크라슈의 다리 너머 두 번째 종 바르그가 튀어나왔다.

     

   바르그의 늑대 이빨이 크라슈를 향해 뻗어왔다.

   그러나 크라슈의 검은 그보다도 빨랐다.

     

   퍼걱, 퍼걱, 퍼걱!

     

   순식간에 뻗어나간 크라슈의 검이 바르그의 턱을 연달아 꿰뚫었다.

   놈들을 갈라버린 크라슈의 앞에 세이렌이 나타났다.

     

   그녀는 이제 노래 대신 검은색 먹물의 파도를 일으켰다.

   크라슈는 그것을 뛰어넘어 세이렌의 목을 날렸다.

     

   크라슈의 앞, 검은 낙뢰가 떨어졌다.

   떨어진 낙뢰는 아주 잠시 크라슈를 멈추게 했다.

     

   하지만 이는 크라슈가 낙뢰의 중심을 붙잡기 위함이었다.

   검은 낙뢰와 함께 질주하던 타라니스의 몸이 크라슈에게 잡히고 말았다.

   겉모습은 쥐에 가까운 형태인 타라니스를 크라슈는 그대로 백염으로 불태워 버렸다.

     

   태워버린 타라니스를 던진 크라슈는 곧 바닥이 울림을 느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그리고 크라슈의 발아래에서 거대한 뱀이 크라슈를 집어삼키며 공중으로 치솟았다.

   나라 하나를 통째로 잡아 먹을 수 있는 뱀은 크라슈를 삼킨 입을 담았다.

     

   다섯 번째 종 요르문간드다.

     

   꾸구구국!

     

   그러나 놈의 몸이 대뜸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요르문간드는 고통스러운 듯 공중에서 휘청이더니 이내 입을 쩌억 벌렸다.

     

   그러자 그의 입에서 새하얀 연기가 치솟아 올랐다.

     

   서걱!

     

   양단 당한 요르문간드의 몸이 갈라지며 불타고 있는 왕국 위에 쓰러졌다.

   크라슈는 그런 무너진 요르문간드의 틈 사이로 검을 머리끝까지 든 채 내려오고 있었다.

     

   크라슈의 몸 안에서 열린 세이블이 백염을 거세게 토해냈다.

   크라슈가 머리 위로 쥔 검은 더더욱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크라슈가 낙하하는 아래.

     

   흑마녀의 손아귀에 검은 소용돌이가 모여들고 있었다.

   흑마녀는 조용히 크라슈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말하였다.

   불완전한 세계이기에 세계는 바뀔 수 있는 법이라고.

     

   하지만 흑마녀는 말할 수 있었다.

     

   “……내 세계는 진작 끝났었어.”

     

   내 딸 이자벨리아.

   축복이 죽은 그 순간부터 흑마녀의 세계는 이미 끝나 있었다.

     

   그녀가 바란 건 딱 하나.

   이자벨리아가 행복하게 사는 세계였다.

     

   그런 세계에서 무얼 더 하란 말인가.

     

   그렇기에 그녀는 새로운 세계를 택하기로 했다.

   이자벨리아를 살리고, 그녀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계를 만들기로 말이다.

     

   공간을 뒤틀려 만들어낸 소용돌이가 그녀의 몸 전체를 휘감으며 치솟아 올랐다.

     

   칠흑공간(漆黑空間)

   공형(空浻)

     

   닿는 모든 곳을 소멸시켜 버리는 소용돌이가 상공을 향해 들이닥쳤다.

   크라슈는 자신을 집어삼키려는 검은 소용돌이를 보며 검을 든 채 고했다.

     

   “모르지.”

     

   그런 세계에서 대체 무엇을 더 해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절망감을 어떻게 이겨내야 할지.

     

   크라슈는 아직도 모른다.

     

   그 또한 자기 세계가 무너지는 것을 보았고, 자신에게 더없이 소중한 사람을 잃었으며 자신을 지키고자 했던 이를 잃었다.

     

   그런데도 크라슈는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삶 속에 여러 기연을 통해 이어진 회귀가 그를 이토록 바꿔 놓았다.

     

   삶의 해답 같은 게 있었다면.

   수많은 절망 속에 그런 명쾌한 해답이 있었다면.

     

   인생에 기구하다는 수식언은 붙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걸 알아 가는 중이다.”

     

   크라슈는 흑마녀에게 닿을지 모르는 대답을 내놓았다.

   이윽고, 크라슈의 검이 또 한 번 내리그어졌다.

     

   멸화침식(滅火浸蝕)

   십식(十式)

   멸화(滅火)

     

   허무 속을 휘감았던 백염의 불길이 흑마녀의 심상 세계를 덧대어 만들어진 장소에 들이닥쳤다.

     

   흑마녀의 공형은 쏟아지는 백염에 맞섰으나 끝없이 쏟아지는 백염을 결국 견뎌내지 못하고 무너졌다.

     

   쩌적, 쨍그랑!

     

   허무 속에 만들어졌던 가상의 세계가 열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깨졌다.

     

   깨져 나가는 파편 속.

   흑마녀는 바닥에 곱게 누운 한 소녀의 앞을 막아선 채 서 있었다.

     

   딱 한 명의 행복을 바랐던 그녀는.

   이제 그 행복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있었다.

     

   크라슈는 그런 그녀의 앞에 섰다.

     

   “……내가 잘못된 거야?”

     

   흑마녀가 물었다.

   단 하나의 행복을 바란 것이 그토록 잘못된 거냐고.

     

   그녀는 묻고 싶었다.

     

   하지만 크라슈는 그녀의 잘못을 논하지 않았다.

     

   “사람은 원래 이기적으로 살아간다.”

     

   스스로가 정의라고 울부짖은 이는 결국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누군가를 짓밟아야 한다.

   그러나 그 정의 때문에 구원받는 사람도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다.

     

   사람은 원래 이기적이다.

   자신이 정의라면 그 정의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법이니까.

     

   “너도, 나도 결국 자신의 정의를 위해 내세울 뿐이겠지.”

     

   크라슈는 흑마녀에게 동정도 분노도 하지 않았다.

     

   그저, 크라슈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길 앞.

   흑마녀는 적이었고, 쓰러트려야만 하는 이였을 뿐이다.

     

   흑마녀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자신의 목표를 위해 크라슈를 쓰러트리고, 그의 이그니스가 필요했기 때문에 그와 맞섰다.

     

   여기에 어느 누가 잘못을 따질 수 있을까.

   그저, 조금 더 강한 정의가 이기며 나아갈 뿐이다.

     

   “……난 후회 안 해.”

     

   흑마녀는 자기 세계를 멸망시킨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고했다.

   마지막까지 거세게 타오르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크라슈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 또한.”

     

   지금까지 나아온 길에 후회한다면 지금의 나를 부정하는 것이니.

     

   크라슈가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뻗어나간 크라슈의 검이 흑마녀를 가르고, 그녀가 마지막까지 지켜왔던 딸 이자벨리아를 갈랐다.

     

   쩌적-

     

   그리고 흑마녀의 전신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자벨리아 속에 남겨 두었던 그녀의 영혼이 백염에 불태워진 것이다.

     

   몸이 무너진 흑마녀가 이자벨리아를 조용히 감싸 안았다.

   그녀는 눈물 대신 이자벨리아의 이마에 자기 이마를 대었다.

   

   

   

   

     

   “내 축복, 다음 생, 에도 내 딸, 이 되어주, 렴.”

     

   그녀의 속삭임이 조용히 울려 퍼졌다.

     

   쨍그랑!

     

   그리고 산산조각이 난 흑마녀가 깨져 나가며 사라졌다.

   그에 따라 허무의 공간도 무너져 내려갔다.

     

   쿠웅, 쿵!

     

   무너진 공간과 함께 크라슈는 어느새 아까와 같이 상공을 날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까와 다르게 자신의 아는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저 멀리, 하늘 위에서 떠오르고 있는 태양이 보였다.

   꼬박 하루를 넘게 흑마녀와 전투를 치렀다는 증거였다.

     

   아침 해는 늘 그렇듯 떠오른다.

   그리고 크라슈는 저 해가 앞으로도 매일같이 떠오르기를 바랐다.

     

   추락하는 크라슈가 공중에서 몸을 돌렸다.

     

   익시온의 수장 흑마녀를 쓰러트렸다.

     

   그러나 아직 익시온과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익시온의 잔당은 지금도 세계와 전쟁을 치르고 있다.

     

   게다가 발화시킨 최흉의 씨앗이 본격적으로 폭주하기 시작했다.

   크라슈는 그것을 막기 위해 또 움직여야 한다.

     

   더불어.

     

   ‘아벨라.’

     

   아직 아벨라가 남아 있다.

     

   크라슈가 허공을 박차 날았다.

     

   흑마녀는 영면이라는 휴식에 들어갔지만.

   그녀를 꺾어낸 크라슈는 아직 쉴 때가 아니다.

     

   자신의 정의를 주관하는 영웅은 정의를 증명하기 위해 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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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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