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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2

       나도 이미 십 대 시절부터 오타쿠였기에, 사실 친구들과 그런 이야기를 나누어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다음 생에는 미소녀로 태어나고 싶다거나 그런 말 있지 않은가.

        

       물론 그게 진심이라는 것은 아니었다. 오타쿠가 아닌 사람들도 자기들끼리 헛소리하며 놀듯, 이것도 나름대로 오타쿠식 개드립이었을 뿐이다.

        

       하다못해 잘생기게 태어났다면 뭔가 조치라도 취했을 텐데, 그렇지 못해서 그냥 패션이니 뭐니 포기하고 산다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던가, 미소녀로 태어났으면 인터넷 방송이나 코스프레 같은 걸로 돈을 벌었을 거라는 거.

        

       실제로는 그런 일들이 마냥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패션도 나름대로 공부가 필요하고, 잘생겼다고 진짜로 아무거나 대충 막 입고 다니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본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예쁘게 태어난다고 삶이 마냥 쉬워지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알고 있고. 인터넷 방송이니 코스프레니 하는 것도 여러모로 이상한 놈들 꼬이기 좋은 일 아니겠는가.

        

       그런데 나는 지금 그 모든 것을 다 하고 있네.

        

       세상일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뭐, 나 같은 한국인이 한복 입은 것을 보고 코스프레라고 하기는 조금 과한 면이 없지 않지만, 사실 우리가 주민등록은 되어있다 쳐도 다른 사람들 눈으로 보기에는 관광하러 온 외국인 그 자체라 아마 코스프레 이상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관광하러 온 외국인들은 한복을 코스프레 하는 기분으로 입고 다니니까.

        

       클레어는 다소 진한 남색 위주의 한복을 입었다. 만약 단순히 위아래 모두 같은 색이었다면 여러모로 촌스럽게 느껴졌겠지만, 상의는 부드러운 흰색에 가까웠고, 클레어의 하얀 피부에 참 잘 어울렸다.

        

       앨리스가 입은 한복의 배색도 비슷하게 상의는 흰색 계통이었다. 다만 치마는 옅은 하늘색이었다. 그 색깔을 보고 순간 앨리스가 입었던 바니걸 복장이 떠올랐지만, 나는 그걸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나도 그때 바니걸 복장을 입었었으니까.

        

       생각해보니 코스프레는 이미 하고 있었구나. 이쪽 기준으로 보면 아카데미 교복도 코스프레였으니까.

        

       “언니, 진짜 잘 어울려.”

        

       클레어는 내가 입은 한복을 보고 진지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조금 어두운 색인 게 아쉽지만, 그래도 네 분위기랑은 잘 어울리네.”

        

       내 옷을 고르는데 한 몫 거든 앨리스도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색 한복’이라고 하면 막연히 떠오르는 것이 상복이지만, 내가 입은 것은 그런 류의 단순한 색은 아니었다.

        

       팔 부분은 촘촘한 망사로 되어있어 팔이 드러나 보였고, 소매와 저고리에도 다소 화려한 꽃무늬 자수가 들어가 있었다. 짧은 저고리 아래로 보이는 치마 윗부분은 부드러운 크림색 계통이라, 한복 전체가 지나치게 칙칙해 보이지 않도록 해주었다.

        

       음, 그러니까 완전히 전통식 한복은 아니라는 소리다.

        

       물론 진짜 전통 한복이었으면 이 정도 가격에 빌리는 게 불가능했겠지만.

        

       찰칵.

        

       카메라를 좋아하는 클레어의 손에 들려준 내 스마트폰에서 쉴 새 없이 찰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찍는 건 좋은데…… 가지고 갈 수 있으려나.

        

       혹시 모르니 사진은 인쇄하거나 인화해두어야지. 그리고 돌아갈 때 가지고 가야겠다.

        

       여기서 지낸 모든 시간은 우리 세 사람이 순수하게 즐겁게 지낸 추억 그 자체가 될 테니까.

        

       함박웃음을 지은 클레어를 보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

        

       “사람들이 우릴 쳐다봐.”

        

       “혹시 뭔가 이상한 점이라도 있는 건가?”

        

       클레어의 말에 앨리스가 자기 몸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혹시 이 나라의 전통 복식을 잘못 입었나 싶은 모양이었다.

        

       “아마 예뻐서 쳐다보는 것이겠죠.”

        

       내가 그렇게 말하자, 앨리스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어.”

        

       “사실을 말하는 겁니다.”

        

       내 감은 그랬다.

        

       적어도 아까부터 이쪽을 쳐다보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여자보다 남자가 많다는 점은 사실이었으니까.

        

       그건 어쩔 수 없다. 나, 앨리스, 그리고 심지어 클레어까지, 우리 세 사람은 외모가 상당히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나야 두 사람에 비하면 다소 수수한 인상이지만, 앨리스는 엄청나게 잘 관리된 문자 그대로 황금색의 윤기 흐르는 금발이었고, 클레어는 선명한 푸른색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우리 세 사람은…… 이런 말을 하기는 다소 민망하지만, 몸매가 상당히 두드러지는 편이다.

        

       다소 펑퍼짐한 한복을 입고 있어도 적나라하게 드러날 정도로.

        

       “두 사람 다, 저와 바짝 붙어있으십시오.”

        

       사실 나는 살아생전 다른 사람의 번호를 따본 적도 없고, 따여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일단 따인 적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만큼 잘생기거나 유명하지 않았으니까. 만약 어떤 미인이 나와 말 한마디 섞어보지 않고 내 전화번호를 물어본다면 그건 다단계 아니면 종교 권유를 위함일 것이다.

        

       반대로 내가 번호를 따보지 않은 것도 이유만 두고 보면 일맥상통한다. 그런 행위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외모에 자신감이 없는데 어떻게 모르는 여자 번호를 딸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런 것들을 직접 겪어보지 않았더라도, 나는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겉보기에는 외국인 같으니 난이도는 조금 있을지 몰라도, 자기 얼굴에 지나치게 자신감을 가진 사람은—

        

       “익스큐즈 미?”

        

       —거 봐라, 있지 않은가.

        

       나머지 두 사람에 비해서 신체적인 능력은 다소 떨어져도, 전투적인 감각 자체는 가지고 있다고 자부한다. 특히 나는 사격술이 장기였다. 시선으로 저 멀리 떨어진 사람이 무슨 행동을 하는지 감시하는 법 정도는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시야 멀리서 이쪽을 보면서 자기네끼리 어깨를 툭툭 밀며 웃던 남자 두 명이 있었다는 것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다.

        

       두 사람 다 대학생 정도 되는 나이일까. 얼굴은 그럭저럭 잘생겼고, 옷도 나름대로 세련되게 입었다.

        

       여러모로 자신감 넘쳐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열받게도.

        

       혹시라도 두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는 애가 하나라도 있다면 거기 제대로 된 대답을 해볼 생각은 했겠지만, 정말 다행히 앨리스나 클레어 모두 딱히 동한 표정은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는 이 두 사람이 우리한테 왜 말을 걸었는지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한국인입니다.”

        

       일단 그렇게 말했다. 우리의 말이 저 사람들에게 번역되어 들린다면 일부러 영어 쓰는 척을 해도 티가 날 것이다. 우리끼리는 한국어로 대화하는 것으로 보일 테니까.

        

       “아.”

        

       남자들은 조금 놀란 표정으로 서로 눈을 마주쳤다가 다시 우리를 보았다.

        

       “미안해요. 저희가 오해해서…….”

        

       “용건이 뭔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내가 쓰는 군대식 극존칭에 두 사람은 눈에 띄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뇨, 저, 그게, 혹시 시간 되시면—”

        

       “죄송합니다만, 저희 자매끼리 놀러 나온 참입니다. 다른 분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은 조금 애매하다고 생각됩니다만.”

        

       일부러 대놓고 딱딱하게 굴자, 두 사람은 더욱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음, 그래도 만화에서 나오는 쌩양아치 같은 인간들은 아닌 모양이다.

        

       ……하긴, 길거리에서 헌팅하는 인간들이 죄다 그런 범죄자라면 이 나라의 치안도 끝난 거나 다름없겠지.

        

       “아, 그래요? 자매끼리 나왔으면…… 예,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내가 빤히 쳐다보자, 두 사람은 자기네가 뭔가 잘못한 것 같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게 아니면, 내 뒤에서 정말로 왜 말을 걸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서 있는 두 사람을 보고 오히려 멋쩍어졌거나.

        

       “언니, 왜 그래? 친절한 사람들 같던데.”

        

       “……저희와 놀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응? 그래?”

        

       하지만 내가 말을 해줘도 클레어는 조금 의아하다는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귀족가 딸로 컸는지라, 이 나라에서 성인끼리 만나 놀면 최종적으로는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모르는 모양이다.

        

       “두 사람 다, 잘 들으십시오.”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물론 두 사람이 이 세상에 있는 한은 제가 웬만하면 붙어있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요. 이 세계에서 성인끼리 논다는 것은 최종적으로는 성적인 단계까지 갈 수 있다는 소리입니다.”

        

       물론 나는 그렇게 놀아본 적이 없으니 한 번에 어느 정도의 단계까지 가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일단 얽히면 더럽게 귀찮아지리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여러모로 오해도 살 수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 그런 식으로 노는 것이 모르는 이 두 사람이라면…… 어, 사실 막판에 그냥 다 때려눕히고 탈출할 수는 있겠지만, 그랬다가는 또 경찰과 면담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내가 하는 말을 듣고 나서야 두 사람은 상황을 파악한 모양이었다.

        

       아제르나 제국에서도 평민들은 비교적 성적으로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고, 귀족 중에서도 문란하게 지내는 이들이 있다고는 들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결혼 전의 여성이 문란한 경우는 거의 없다. 그걸 ‘흠’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미망인이라면 몰라도, 결혼 전의 여성은 그렇다.

        

       그러니 두 사람 다, 성교육은 받았어도 이런 일을 상상해보지는 못했을 거다.

        

       “그러니 여러모로 일이 꼬이기 싫다면 애초에 단호하게 자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두 사람 중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말리지 않아도 될까, 하다가, 나는 단호하게 그렇게 말하는 것을 택했다.

        

       되긴 뭐가 돼.

        

       주민등록증에는 성인으로 기재되어 있어도 얘네들 실제 나이는 열여섯이잖아.

        

       조금 성숙해 보이더라도 아직 애다, 애.

        

       당연히 하면 안 되지.

        

       “아셨다면, 이만 차라도 한잔하러 갈까요?”

        

       내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하자, 그제야 클레어와 앨리스의 표정도 밝아졌다.

        

       “아, 언니, 잠깐만! 여기 빛이 좋잖아.”

        

       빛이 좋다, 라는 것이 무슨 말인가 했는데, 셀카 찍기 좋다는 소리였다.

        

       ……내가 가르쳐준 적도 없는데 그렇게 찍는 법을 터득한 걸 보면, 클레어도 사진 찍는 걸 어지간히 좋아하는 모양이다.

        

       기왕 나온 거, 두 사람한테 핸드폰 개통이나 시켜줄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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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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