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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2

       오랜만에 직접 내리쬐는 햇빛은 각별했다.

         

       그것이 설령 혈교의 신을 가장하는 인간이 모종의 술수로 만들어낸 것이라고 해도.

         

       무겁게 가라앉아 있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간다.

         

       “역시 사람은 햇빛을 보고 살아야 한다니까.”

         

       이곳에 해와 달을 만들어낸 혈교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고작 며칠 만에 보는 햇빛도 이리 반가운데, 도망자인 저들은 오죽했으랴.

         

       흙먼지 휘날리는 땅속에서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는데, 누군가 갑자기 해와 달을 드리워 봐라.

         

       아마 그것이 사이비라고 해도 믿고 따를 만큼 감동적이지 않았을까.

         

       지푸라기를 엉성하게 엮어 만든 삿갓을 살짝 들어 올리며, 백우진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렇군.”

         

       단순히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하늘이요, 해와 달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저것은 믿음이다.

         

       너희들이 나를 믿고 따르는 한, 저 하늘은 영원히 너희의 세계가 되어줄 것이라는.

         

       혈교도로 태어난 이들이 혈교주를 믿고 따를 수밖에 없는 믿음의 증거이자, 족쇄.

         

       하나 더 궁금한 것이 생겼다.

         

       자신들의 세상이 무너지고 족쇄에서 풀려나게 되었을 때.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을 구해달라며 혈교주의 이름을 부르짖을 것인지.

         

       “일단 도시 안을 돌아다녀 보자.”

         

       썩은 내 가득한 시체를 다루는 인간의 비애일까.

         

       마을로부터 멀리 떨어져 지어진 왕필의 거처를 벗어나 제법 활기가 느껴지는 마을로 향한다.

         

       “허…, 생각보다 본격적인데.”

         

       마을은 그야말로 세상 밖의 마을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밭을 일구는 이가 있는가 하면, 갖가지 물건을 파는 노점상이나 상점 등도 활발히 운영 중.

         

       딱 하나 없는 것이 있다면….

         

       “객잔은 없네.”

         

       음식을 파는 곳은 있을지언정 묵을 자리를 파는 객잔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곳 마을에만 없는 걸지도 모르겠으나, 아마 그럴 확률은 적을 터다.

         

       ‘애초에 객잔이 성행할 수가 없는 곳이긴 하지.’

         

       이곳은 낯선 이가 나타날 수 없는 폐쇄적인 세상.

         

       잠시 머물다 떠날 여행객들이 없으니, 객잔의 존재 이유 또한 상실할 수밖에.

         

       백우진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하기 위해 애썼다.

         

       신기하다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지도 않았고, 으레 익숙한 거리를 걷는 것처럼 지나쳤다.

         

       그 덕분인지 처음 보는 인상에 이따금 의아해하는 이는 있어도, 대놓고 의심은 하지 않았다.

         

       마을을 한 바퀴 대충 둘러보고 나온 백우진의 감상은 간단명료했다.

         

       “…그냥 사람 사는 마을이네.”

         

       딱 그뿐.

         

       그 이상의 무엇도 없었고, 그 이하의 무언가도 없었다.

         

       여기 사는 이들은 그저 혈교를 신으로 믿는 평범한 사람.

         

       그렇기에 더욱 혼란스럽다.

         

       이들을 그들과 같은 혈교도로 보아야 할지.

         

       정사연합의 승리로 전쟁이 끝나고 나면 이들의 처우는 어떻게 될 것인지 등.

         

       백우진은 쓰게 웃으며 엉성한 삿갓을 꾸욱 눌러쓰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차라리 똑같은 광인이었다면 나았겠어.”

         

       정말로 그랬으면 좋았을 것 같다.

         

         

       * * *

         

         

       해가 떠 있는 낮의 시간 동안, 백우진은 무려 세 개의 마을을 둘러보았다.

         

       전부 세상 밖과 똑같은, 평온하기 짝이 없는 삶의 모습.

         

       그 가운데에 이러한 삶을 송두리째 잃게 만들지도 모를 침입자가 아직 잡히지 않아 불안에 떠는 이들이 더러 존재하기는 했지만, 걱정과 근심 또한 삶의 일부 아니던가.

         

       “…….”

         

       낮에 나가 주변을 둘러보겠단 생각은 하지 말았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가까이서 보지 않았더라면 괜한 번뇌에 휩쓸리지도 않았을 것이기에.

         

       왕필의 거처로 돌아온 백우진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며 우울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결국 하나도 해결 못 했네.”

         

       하늘에 걸린 해와 달의 정체를 밝히겠다는 목적은 이루지 못한 채 돌아오고 말았다.

         

       고작 마을을 둘러보는 것으로는 일이 해결될 것 같지 않아 위험을 무릅쓰고 몇몇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며 경전에 대한 내용을 미끼로 이런저런 질문을 던져보기도 했지만.

         

       “전부 허탕이었지.”

         

       그들은 그저 경전에 쓰인 그대로를 믿고 있었다.

         

       나이 많은 노인도, 젊은 청년도 모두.

         

       마치 그 이상의 의문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것처럼 아주 굳건하게.

         

       그들의 모습을 떠올린 백우진이 가볍게 몸서리를 쳤다.

         

       “이래서 종교가 무섭다니까.”

         

       백우진이 생각하기에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두 가지는 사랑과 신앙이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를 이용하는 자들.

         

       한없이 숭고하고, 깨끗해야 할 감정에 더러운 것을 섞는 이들이, 백우진은 싫었다.

         

       “할 수만 있다면 확 그냥, 어?”

         

       이놈이고, 저놈이고 전부 다 깨부수고 싶다며 투정부리던 찰나.

         

       무언가가 백우진의 머릿속을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오….”

         

       좋은 생각이 났다.

         

       무엇보다 확실하게 저 하늘을 시험해볼 방법이.

         

       ‘저기다 검강을 날려버리면 어떻게 될까?’

         

       드넓게 펼쳐진 하늘에다 검강을 날리면 어떻게 될까, 하는 말도 안 되는 방법.

         

       그러나 영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저것이 만약 눈에 보이는 거짓이라면 하늘을 뚫고 올라간 검강이 그 뒤에 숨어 있을 천장을 깨부술 것이요, 만약 저것이 실제라면 하늘을 향해 끊임없이 솟구치다 흩어질 테니.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검강을 날리는 순간 나 여기 있소, 하고 알리는 꼴이 된단 말이지.’

         

       이는 신호탄이나 다름없다.

         

       나 여기 있어요, 하고 적들에게 위치를 특정하게 해주는 최악의 신호탄.

         

       그 탓에 잠시 생각이 주춤했으나.

         

       “아, 그래도 하고 싶은데.”

         

       한 번 발동해버린 호기심과 막무가내식 생각은 주춤한 것보다 더욱 크게 도약했다.

         

       “그래, 하자.”

         

       하면 그만이지.

         

       대신, 여기서는 안 되고….

         

       “어디 보자….”

         

       적절한 곳을 찾기 위해 개구멍을 타고 밖으로 나와 숲길을 거닌다.

         

       왕필의 거처에서 적당히 멀리 떨어져 있고, 검강을 후려갈긴 뒤 이곳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올 혈교도들을 피해 도망칠 수 있을 만한 장소.

         

       “그래, 여기야.”

         

       인간의 손길이 제대로 닿지 않은 듯 넝쿨이 아무렇게나 자라 있는 숲속.

         

       이 어둑한 곳에서 검강을 날리고, 밤의 장막을 이용하여 잽싸게 숨어버리면?

         

       “좋아, 좋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리는 백우진.

         

       일을 거행하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왕필의 거처로 돌아가는 최적의 동선과 그것이 막혔을 때를 대비해 우회할 동선을 짜놓은 뒤.

         

       백우진은 오랜만에 검을 뽑아 들었다.

         

       마치 제 손에 쥐어지는 것만을 염두하고 만든 듯한 감각이 손을 타고 흐른다.

         

       검병에서 검극까지.

         

       마치 제 팔의 연장선인 듯, 세세하게 느껴지는 기운과 감각.

         

       그러한 합일은 아무런 징조도, 소리도 없이 검강을 덧씌운다.

         

       초식 따위는 필요치 않다.

         

       필요한 것은 오로지 저 하늘까지 닿게 할 가공할 위력과 기의 운용뿐.

         

       “흡!”

         

       짧은 기합성과 함께 밝은 빛을 뿌리는 검강이 쏘아진다.

         

       어두운 밤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한 줄기 빛무리.

         

       그것은 꼭 별을 보는 듯했다.

         

       실수로 하늘에서 떨어졌다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올라가는 별.

         

       물론 실상은 저 하늘 자체를 부수기 위해 나아가는 거지만.

         

       “오, 슬슬 닿겠다.”

         

       경지에 오른 눈으로도 조금이라도 집중을 흩트리면 다시는 찾지 못할 정도로 멀리 가버린 검강이 마침내 사라진다.

         

       “……?”

         

       이를 본 백우진의 눈에 물음표가 그려졌다.

         

       “…내가 원한 건 이런 반응이 아닌데.”

         

       백우진이 생각한 반응은 두 가지였다.

         

       하늘 뒤에 숨어 있는 천장이 부서져 내리거나, 검강이 기운을 잃고 흩어지거나.

         

       그런데 실제 반응은 양쪽 모두 아닌, 제삼의 반응이었다.

         

       ‘사라졌어. 그것도 흔적도 없이.’

         

       날아가던 검강이 사라졌다.

         

       아니, 솔직히 그마저도 잘 모르겠다.

         

       사라진 게 아니라 흡수된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통과해 지나간 것처럼도 보였다.

         

       “대체 뭐지…?”

         

       호기심이 도리어 또 다른 호기심을 낳아버린 상황.

         

       백우진은 그대로 검강 하나를 더 쏘아 보낼까도 생각했으나.

         

       “아.”

         

       어느덧 지척까지 조여온 혈교도들의 날 선 기색에 검을 도로 집어넣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 튀자.”

         

       밤의 장막을 두른 백우진이 범죄 현장을 빠르게 벗어났다.

         

         

       * * *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공간.

         

       옥좌에 앉아 있던 혈교주의 눈이 번쩍 뜨였다.

         

       “…감히.”

         

       무언가가 제게 의구심을 품었다.

         

       그리고 제 세상에 이러한 의구심을 품을 불경한 자는 오직 한 사람뿐.

         

       “백우진, 또 그놈인가.”

         

       가만히 숨어 있어도 모자랄 판국에 감히 제 세상의 비밀을 파헤치려 하다니.

         

       이러한 기행이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

         

       다만, 괘씸할 따름이다.

         

       혈교를, 자신을 얼마나 우습게 보았으면 이러한 짓을 벌인단 말인가.

         

       어둠 속에서 들끓는 감정을 삭이기를 잠시.

         

       그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래…, 네놈이 많이 몰리긴 한 게로구나.”

         

       달리 생각하면 그러하다.

         

       만약 놈이 탈출을 꿈꾸고, 방도가 있었다면 이러한 짓을 하지는 않았을 터다.

         

       자칫 잘못했다간 제 위치가 발각되어 죽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방법이 없으니 뭐라도 해볼 참인 것이냐.”

         

       궁지에 몰릴 대로 몰렸기에 손에 닿는 건 무엇이든 물어뜯으려는 것일 테지.

         

       허나.

         

       물어뜯을 대상을 잘못 골랐다.

         

       이곳에 있어선 안 되는 하늘이야말로 혈교를 이루는 근간.

         

       더없이 중요하고, 침범당해선 안 되는 것은 맞지만.

         

       “어디 마음대로 물어뜯어 보아라.”

         

       그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제아무리 백우진이라고 해도 제 하늘을 깨트릴 수는 없다는.

         

       왜냐.

         

       이것은 수백 년에 걸쳐 쌓아 올린 정수이자, 무엇 하나 섞이지 않은 순수한 자신이기에.

         

       “듣거라.”

       “하명하소서.”

       “또 이러한 일이 있거든, 쫓는 시늉만 하라고 일러두어라.”

       “…명을 받듭니다.”

         

       그렇기에 그는 도리어 백우진을 더욱 자유롭게 풀어주었다.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제 세상 속에서 그가 더욱 허우적거리기를 바라며.

         

       타오르는 의지가 마침내 재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때.

         

       놈이 짓게 될 표정은 어떠할지.

         

       

       몹시도 궁금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과연 비밀은 무엇이고, 탈출은 어떻게 할지…!

    그럼 저는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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