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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2

       지금 자신은 머리부터 떨어지고 있다. 

       

       이 상태로 수직 낙하한다면 틀림없이 즉사할 것이다.

       

       두려웠다. 

       

       하지만 저들에게 겁간당하는 것보다야 나았다. 로즈마리는 질끈 눈을 감으며 최후를 기다렸다.

       

       그때였다.

       

       “공주님!”

       

       엘라가 소리치며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엘라는 초인적인 기지를 발휘하여 로즈마리를 정확하게 붙잡았다. 휘리릭! 두 사람의 몸이 허공을 따라 반 바퀴 회전했다.

       

       곧이어 엘라의 몸이 공기 속으로 침전한다. 마도사들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멀어진다.

       

       “젠장!”

       “빨리 아래로 내려가!”

       

       쿵!

       

       둔탁한 소리.

       

       로즈마리는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아, 윽.”

       

       뇌가 지잉지잉 떨려온다. 관성 때문에 충격이 머리까지 전해져 오는 것이다.

       

       확실히, 엘라 덕분에 머리부터 떨어지진 않았다. 만약 혼자 떨어졌다면 몸도 못 가누고 즉사했겠지.

       

       ‘맞아. 엘라.’

       

       로즈마리는 필사적으로 몸을 꿈틀거렸다. 자신은 엘라의 품에 안겨있었다.

       

       그런데.

       

       이건.

       

       “피?”

       

       옷 앞쪽에 피가 흥건하게 묻어있다. 혹시나 하는 불안한 생각에, 로즈마리는 고개를 점점 들어올렸다.

       

       “아….”

       

       전신이 으스러진 모습.

       

       엘라는 처참한 몰골로 변해있었다.

       

       “왕, 녀, 님.”

       

       메말라만 가는 입술을 겨우 달싹이는 엘라. 그와는 반대로 로즈마리의 눈앞은 흐릿해지기 시작한다.

       

       “반드, 시, 살, 아…….”

       

       투욱.

       

       “엘라? 엘라?”

       

       로즈마리는 어깨를 움직여 엘라를 흔들었다.

       

       몸이 물컹거린다. 사람이 아니라 지점토를 만지는 것처럼. 뼈가 작살 난 탓에 반쯤 문어처럼 변해버린 것이다.

       

       명민한 머리가 엘라의 현 상황을 강제로 이해시켜주고 있었다.

       

       전신골절, 다발성 장기부전.

       

       쇼크사.

       

       ‘이, 이럴 수는 없어.’

       

       말이 안 나왔다.

       

       숨이 턱턱 막혀왔다.

       

       지금까지 없었던 분노가 끓어올랐다.

       

       ‘개, 새끼들.’

       

       아무런 명분 없이 침략해 온 제국인들을, 인간들을, 정령 신앙을 믿는 모든 존재를 말소해버리고 싶다는 충동.

       

       그런 충동이 로그 웨이브처럼 닥쳐온다.

       

       시간은 로즈마리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저쪽에 있다.”

       “사악한 년들!”

       “잡아!”

       

       저들이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일단 살고 싶으면 움직여야 한다. 움직여서, 전속력으로 도망쳐야 한다.

       

       “윽.”

       

       몸이 정신을 못 따라온다.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얼음송곳을 맞은 다리에선 피가 철철 흘러넘쳤다. 그에 더해, 떨어지면서 받은 충격이 다리와 팔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았다.

       

       사지 중 뒤틀리지 않은 곳이 없었다. 오장육부와 두부의 피해는 거의 없었지만, 팔다리는 전부 골절되고 말았다.

       

       이래서야 걸어가는 것도, 기어가는 것도 할 수 없다.

       

       ‘굴러가야 해.’

       

       로즈마리는 견갑골과 어깨 관절을 축으로 몸을 회전시켰다.

       

       터억.

       

       “끄흑…!”

       

       아파 죽겠다.

       

       생각해 보니 빠르게 굴러가려면 사지의 보조가 필수다. 사람의 몸이 본래 그런 구조였다.

       

       이 상태로는 한 바퀴 구르는 것도 힘들었다.

       

       “대장님, 한 명 뒈졌는데요?”

       “뭐라? 남은 한 명은?”

       “남은 한 명도 제대로 걷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그년이라도 됐으니까 데려와. 오랜만에 금안족으로 즐겨 보자고.”

       

       젠장.

       

       결국 이렇게, 어쭙잖게 살아서 수모를 당하는구나.

       

       죽느니만 못하다.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넘어서, 세상에 대한 증오심이 악에 받쳐올랐다.

       

       ‘죽여버릴 새끼들.’

       

       인간이 밉다.

       

       쓸데없는 교리 운운하며 자신의 나라를 침략하고, 빼앗고, 겁탈한 쓰레기 인간들이 죽도록 밉다.

       

       ‘독선적인 새끼들.’

       

       엘프가 밉다.

       

       정령 신앙이니 뭐니 고수하면서 나라도 제대로 못 이룬 주제에, 자신들을 깔보는 하이엘프가 죽도록 밉다.

       

       ‘무책임한 씨발년.’

       

       여신이 밉다.

       

       자신의 피조물로서 금안족을 만들어 놓고선, 마법 하나 못 쓰게 하여 온갖 수모를 겪게 한 여신이 죽도록 밉다.

       

       ‘전부 쓰레기들이야.’

       

       평생 몇 번 안 해본 욕이 튀어나올 지경이다.

       

       왜, 내가.

       

       잘못한 것 하나 없이, 가족들과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만을 바랐는데.

       

       이런 가혹한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는 거지?

       

       세상이 증오스러웠다.

       

       운명이 가증스러웠다.

       

       삶이 고통스러웠다.

       

       금안을 제외한 모든 종족을 멸절하고 싶을 만큼, 분노가 가마솥 안에 든 숭늉처럼 들끓는다.

       

       “야아, 이년 죽이는데?”

       

       찌익, 하고 옷감이 찢기는 소리.

       

       동시에 한 소녀가 생명체로서의 마음을 잃어버리는 소리.

       

       “야, 빨리 좀 해봐.”

       

       이 인간 새끼들.

       

       죽여버리고 싶다.

       

       한 마리도 남김없이 놋쇠에 담가 피떡으로 만들어버리고 싶다.

       

       ‘마왕에게 영혼을 팔아도 좋아.’

       

       그러니까, 제발.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을 짓밟은, 이 인간 이하의 것들에게 파멸을.

       

       – 하아, 언니. 한 발 늦어버렸어.

       

       사락, 사락.

       

       풀숲을 헤치고 나오는 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뭐야?”

       

       주섬주섬 바지를 벗으려던 병사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보았다.

       

       야심한 풀잎 사이로 스산하게 빛나는 금빛 눈동자가 두 쌍.

       

       마도사들은 바짝 긴장했다. 군인으로서의 직감이 본능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그러나 몇몇은 풀숲에서 튀어나온 이들의 얼굴을 보고는 바로 긴장을 놓았다.

       

       오히려 입맛을 다시기 시작했다.

       

       “이거, 살아남은 금안족이 더 있었잖아.”

       “쌍둥이인가?”

       “둘 다 미인인데?”

       

       이들을 이끄는 브루슈 대장도 휘파람을 불었다.

       

       “월척이군.”

       

       로즈마리는 꺼져가는 시야에 겨우 불을 지폈다.

       

       금안족이 둘.

       

       못 보던 얼굴인데, 머리색만 다른 쌍둥이였다. 둘 다 절세의 미녀라고 불러도 될 만큼 청초하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 둘이 내뿜는 분위기는 일반적인 금안족과는 사뭇 달랐다.

       

       “월척? 워얼척?”

       

       하얀 머리카락을 지닌 쌍둥이가 입매를 뒤틀었다.

       

       “월척은 고기를 낚을 때나 쓰는 말이다. 무지몽매한 인간들아.”

       

       뒤이어 검은 머리카락의 쌍둥이가 깔보는 듯한 표정으로 되받아쳤다.

       

       “본관이 인족과 엘프족을 도합하여 1천 번의 기회를 내주고 있다. 너희가 오늘 그 기회를 한 번 더 까는구나.”

       “언니야. 그거, 아직도 하고 있었구나. 그래서 쟤네도 보내줄 생각이야?”

       “중범죄자를 상대로 그럴 필요는 없지. 무고한 동족을 괴롭힌 일에 대해선 책임을 묻도록 할 것이다.”

       

       쌍둥이의 시선이 주위를 빠르게 훑었다.

       

       “아. 역시. 한 명은 이미 죽어버렸네. 추락사한 것 같아.”

       “남은 소녀는 강간하려 한 건가? 보통 쌍놈들이 아니었군.”

       

       두 금안족의 시선이 서늘하게 변한다.

       

       마도사들은 그 모습에 몸을 옴쭉 굳혔다.

       

       “뭘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는 거냐! 여신님께서 바라신다. 저년들도 빨리 포박해!”

       “대, 대장님…! 그게 아니라!”

       

       실제로 몇몇을 제외하고, 마도사들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

       

       석고가 된 것처럼 전신이 굳어버렸다.

       

       “오우. 그래도 몇 놈은 위압이 안 통하네. 꽤 강자인 모양이야.”

       “귀찮게 됐군.”

       “테르 언니, 언니가 저 꼬맹이를 돌봐 줄래? 내가 여기 새끼들 정리하고 있을 테니까.”

       “아니. 오랜만에 이쪽이 처리하고 싶다.”

       

       뚜둑.

       

       쌍둥이 중 검은 쪽이 손을 풀며 앞으로 나섰다.

       

       소녀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물었다.

       

       연초였다.

       

       틱, 틱. 처음 보는 유형의 부싯돌로 불을 붙이더니 담배를 태우기 시작한 소녀. 왜 여기서 갑자기 담배를 피우는 것인지, 로즈마리는 자신의 영민한 머리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후우.”

       

       뭔가 멋있다.

       

       뒤이어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아니…!”

       

       스르릉.

       

       검은 머리 소녀는 칠흑처럼 어두운 공간에 팔을 집어넣어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스태프였다.

       

       “금안족은 마법을 사용할 수 없을 텐데!”

       

       브루슈 대장은 입을 떡 벌리며 칼을 뽑아들었다.

       

       “그 담배, 악귀의 물건이로구나!”

       

       시대는 중세. 인간의 모든 사고방식은 신에 따라 흘러간다. 

       

       브루슈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기합을 내지르며 빈틈없는 자세로 치고 들어갔다.

       

       “거기, 피해!”

       

       로즈마리가 소리쳤다.

       

       이미 늦었다.

       

       콰직─!!

       

       검은 머리 소녀의 심장에 브루슈의 검날이 꽂혔다.

       

       

       **

       

       

       “아뢰옵니다 폐하. 조금 전 타르케닐의 영토가 우리 제국군 손에 완전히 떨어졌습니다.”

       

       대신의 보고를 받은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결과로다.”

       “이게 모두 황제 폐하의 바다 같은 은혜 덕분이옵니다.”

       “음.”

       

       황제는 만족스럽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짐이 금안족을 토벌하는 업적을 세웠으니 여신께서도 필히 상서롭게 여길 것이다.”

       

       금안족은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종족.

       

       따라서 여신의 규율에 위배되는 종족.

       

       왜인지 모르게 마왕군과 결탁하여 살고 있을 법한, 아무튼 적대하고 배척해야 하는 사악한 종족.

       

       그런 종족을 토벌하였으니 자신이 천당에 가는 것은 당연하리라… 라고, 켈슨 필리우트 황제는 생각했다.

       

       “일주일 내로 병합과 이주 정책을 시행한다. 분지를 넘으면 마수의 서식지니 군사 배치를 소홀히 하지 말도록.”

       “뜻을 받들겠사옵니다, 폐하.”

       

       이것으로 제국의 영토는 한층 넓어졌다.

       

       황제는 그리 판단하며 다음 일을 생각했다.

       

       ‘어디 보자. 금안족을 정복하여 동쪽의 우환을 덜었으니, 다음은 서부에서 약탈을 일삼는 요호족을…….’

       

       쿠당탕탕!

       

       “폐하, 폐하! 큰일 났습니다!”

       “갑자기 무슨 소란이냐.”

       “마왕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뭐라고?”

       

       마왕군의 움직임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둔해져 있었다. 이는 필리우트 제국이 내정을 강화하고 타르케닐을 침공할 수 있었던 핵심적인 이유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지금 쳐들어온다고?”

       “그렇사옵니다!”

       “제대로 본 게 맞느냐?”

       “중앙기사단에서 마수들의 대규모 움직임을 동시다발적으로 관측했다는 보고를 방금 보내왔습니다. 여기, 보고서도 있습니다.”

       “현황은?”

       “타르케닐 분지를 중심으로 하스펠트 봉읍(封邑) 전역까지, 전체적으로 압박해 오고 있답니다.”

       

       황제는 머리에 핏기가 쭉 가시는 느낌을 받았다.

       

       단순히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켈슨 황제는 젊어서부터 고혈압 증세가 있었다.

       

       그래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황제는 대신에게서 약식 보고서를 건네받아 읽었다.

       

       100만. 80만. 95만. 110만.

       

       몇몇 영채에서 보내온 마수의 추산 병력만으로도 이 정도였다.

       

       말도 안 되는 규모였다.

       

       “수십 년 동안 병력을 증강해 지금 풀려는 모양입니다.”

       “어서 대비를 해야….”

       

       안 그래도 흐릿했던 눈앞이 이젠 아예 캄캄해질 지경.

       

       “폐하!”

       

       결국 황제는 비틀거리다가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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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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