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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3

       국뽕이라는 말이 있다.

        

       보통 별것도 아닌 것, 혹은 외국에도 당연히 있는 것을 외국인한테 보여주고, 외국인들이 ‘이런 건 자기 나라에는 없다’라는 반응을 보이는 짜인 각본을 뜻한다. 아니면 ‘그렇게 반응 중이다’라고 주장하는 영상이나 글을 쓴다던가.

        

       보통 삶이 팍팍한 사람들이 그걸 보면서 위안을 얻는데, 사실 나도 가끔은 그런 영상들을 보곤 했다.

        

       솔직히 재밌잖아.

        

       대체로 보는 나도 낯 뜨거워지긴 하지만 묘한 곳에서 공감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고, 무엇보다 현실판 이세계물 보는 것 같은 분위기라 조금 재미있었다.

        

       이세계를 직접 다녀온 권위자로서 말하자면, 내가 가진 상식만으로 이세계 문화를 완전히 바꿔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 물론 나도 나름대로 영향을 끼치긴 했다.

        

       자동 권총으로 구사하는 더블탭같은 것은 의외로 누구나 생각할 수 있을 법하면서도 권총이라는 개념이 나온 지 한참 뒤에야 정립된 것이다. 심지어 대놓고 자동 권총 같은 게 나온 뒤에도 한참 동안 권총은 ‘권’총, 즉 한 손에 쥐고 쏘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니 얼치기로나마 미래의 사격술을 알고 있던 내가 피나는 반복 연습으로 구현해낸 그 사격법들은 나름대로 이세계 문화에 영향을 끼칠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정작 당장 구사자는 나랑 레나뿐이었지만.

        

       하지만 그 외에는 내가 특별히 바꿀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내가 가진 지식은 기껏해야 학사급의 지식이었고, 그나마도 대학교를 졸업하고 시간이 지나며 많이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지독하게 복잡해진 현대의 전문지식은 박사 정도 되는 인물이 혼자서 완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박사쯤 되는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감자 정도의 지식을 가진 학사가 뭘 해낼 수 있겠는가.

        

       오히려 과학기술이 다른 방향으로 발전한 그 세계에서는 시계공이 가진 지식이 내가 어설프게 가진 반도체나 축전지 같은 것에 대한 개념 따위보다 훨씬 쓸모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런 감각을 느꼈다는 건, 반대로 아제르나에 살던 인물이 이쪽으로 넘어와서 똑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넓은 길에 이렇게 많은 자동차라니. 이만한 기계들을 만들어낼 기술력이나, 그런 기계들을 서민들도 살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은 둘째치고, 이런 복잡한 체계가 제대로 굴러가게 하기 위해 법적인 정비가 얼마나 필요할까?”

        

       앨리스가 하는 그런 말은, 옆에서 듣는 내가 자부심을 느끼기에, 충분한 말이었다. 사실 이쯤 되면 국뽕의 문제가 아니긴 하다.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자동차 중에는 국산 차가 아닌 외제 차도 많았으니까. 관련 법률이 있는 것도 한국뿐인 것이 아니다. 웬만큼 굴러가는 나라에는 그런 법률이 기본적으로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나라보다 효율적인 법률을 가진 곳도 있을 거고.

        

       하지만, 세계 대 세계의 기준으로 보면 어떨까?

        

       내가 저쪽 세상에서 꽤 오래 살았고, 나름대로 애정도 느끼고 있고, 돌아간다면 앞으로도 그곳에서 살 생각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쪽 세상에서 태어났다는 사실만큼은 바꿀 수 없다.

        

       그러니 이 세상은 내 고향이고, 내 고향을 그런 식으로 칭찬해준다면 기분 좋을 수밖에 없다.

        

       솔직히 여유만 된다면 이 나라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의 다른 나라 명소까지 전부 돌면서 보여주고 싶을 정도였다.

        

       “제국에서 이런 카메라를 만들려면 얼마나 더 오래 기다려야 할까? 필름을 갈아 끼울 필요가 없으니 사진도 잔뜩 찍을 수 있고, 비용도 절감하고, 작기도 훨씬 작고. 게다가 색도 선명하고. 내가 살아있는 동안 이런 사진을 또 찍을 수 있을 날이 올까?”

        

       내 스마트폰을 아련하게 바라보는 클레어의 표정은 어딘가 초점이 엇나간 것 같았고 조금 애잔해 보이기도 했지만, 그 스마트폰을 만든 나라가 이 나라라는 것도 꽤 그럴싸한 기분을 선사해주었다.

        

       이게 엄청 일차원적인 기쁨이고, 사실 내가 그 회사에 다니던 것도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다지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도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아무튼 기분은 좋았다. 어쩌겠는가. 소속감이 있는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월드컵에서 우리나라 선수가 골을 넣으면 기분 좋은 것과 마찬가지다. 내가 그 팀원도 아니고 골이 들어간다고 월급이 오르는 것도 아닌데 기분이 좋지 않은가?

        

       “언니, 기분 좋아 보이네.”

        

       내 기분이 좋으면 자기 기분도 좋은 듯 클레어가 그렇게 말해서 양심이 조금 찔렸다.

        

       하지만, 뭐, 그래도 두 사람과 있어 좋은 것이라는 것도 사실이니까. 만약 이 두 사람이 그냥 모르는 사람들이었다면 나는 불편하기만 했을 거다. 이런 자부심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고.

        

       “차가 맛있어서요.”

        

       그렇다고 두 사람에게 이 마음을 밝힐 생각은 없다. 쪽팔리잖아.

        

       “확실히, 괜찮은 잎이긴 해. 역시 운송 수단이 발달했기 때문일까.”

        

       “앨리스, 놀러 왔는데 굳이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잖아.”

        

       앨리스가 거의 본능적으로 이야기를 운송업으로 돌리자, 클레어가 타박했다.

        

       평소라면 앨리스도 클레어에게 반박을 했을 것이고, 두 사람이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렸겠지만—

        

       “확실히, 일에서 떨어져 있는데도 일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겠지. 관련 서적이 있다면 돌아갈 때 바리바리 싸 들고 가긴 하겠지만 말이야.”

        

       확실히 그건 나쁘지 않은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이 세계의 기술력을 한 번에 다 옮겨놓는 것은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저쪽에서도 석탄을 때 수증기를 만드는 기술은 충분하고도 넘칠 정도이니 대용량 발전기와 축전기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만 전달해주어도 혁명이 일어날지 모른다.

        

       오버테크놀로지가 판치는 세상이 아니던가. 내 예상보다 훨씬 바르게 발전할지도 모르지. 저쪽 세계 사람들이 특별히 못나서 기술 발전이 안 되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도움은 될 것 같군요. 한 번 보시겠습니까? 근처에 큰 서점이 하나 있습니다만.”

        

       “오, 그래?”

        

       흥미롭다는 듯 눈을 반짝이는 앨리스를 보고 나는 이번에도 뿌듯함을 느꼈다.

        

       “사진에 관련된 책도 아마 많을 겁니다.”

        

       카메라가 발명된 이후로 수많은 사진작가가 쌓아온 기법들이 있을 것이다.

        

       사진은 아니고 영화의 이야기지만, 지금은 당연히 여겨지는 온갖 기법들도 수많은 감독과 대학에서 연구한 끝에 완성되었다지.

        

       사진에 관심이 많은 클레어라면 분명 그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좋아!”

        

       노는데 일 얘기한다면서 앨리스를 흘겨보던 클레어도 나의 이야기를 듣자 바로 눈을 반짝였다.

        

       정말 알기 쉽다니까. 두 사람 모두.

        

       아마 나도 그렇겠지만.

        

       *

        

       음…….

        

       순서를 조금 다르게 할 걸 그랬나.

        

       서울 한복판에 있는 대형 서점은 아무래도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곳은 아닌 모양이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면, 교보문고 안을 배회하는 이들 중 한복을 입은 외국인의 행색을 한 이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적어도 내 눈에는 우리뿐이었다.

        

       조금 기다리면 그래도 몇 사람 정도는 들어올지 모르지만, 일단 당장은 우리뿐이었으니 영 신경 쓰였다.

        

       하지만 앨리스와 클레어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이 나라의 전통복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그저 옷이라고만 생각하는 것일까?

        

       그러니 나 혼자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겠지.

        

       클레어는 사진 관련된 책을 원하고, 앨리스는 이쪽 세상의 기술을 원한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서점을 거의 전부 배회하게 되었다. 그나마 사진 관련된 책은 한곳에 모여있었지만, ‘기술’ 서적이라는 것의 범위가 굉장히 넓었기 때문이다.

        

       ‘전문’ 서적이라면 당연히 한 곳에 몰려있지만, 그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는 우리가 보기에는 교양서적이 더 낫다. 가지고 가더라도 저쪽 사람들이 한글을 모르는 이상 우리가 읽어주어야 할 텐데, 당연히 우리가 읽을 수 없는 단어가 나와서는 곤란하다.

        

       그래도 즐거웠다.

        

       처음에는 남들 시선을 의식하며 조금 부끄러웠지만, 클레어와 앨리스가 진지한 표정으로 책을 고르고, 나한테 이것저것 물어보고 대답하는 과정이 무척 즐거웠다.

        

       결국 이것도 전부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닌가.

        

       클레어와 앨리스는 나를 배려해서 각각 한 권씩의 책을 골랐다. 앨리스는 우리가 처음부터 생각한 기술사 전반이 요약된 인문 서적이었고, 클레어는 어떤 프랑스 사진작가에 관한 책이었다. 클레어가 아제르나에서 들고 다니던 필름 카메라와 비슷하게 생긴 카메라를 든 사람이었다.

        

       “……아.”

        

       그리고, 서점에서 나오다가 나는 깨달았다.

        

       “왜 그래?”

        

       앨리스가 물어서, 나는 조금 미안한 마음을 담아 대답했다.

        

       “차라리 서점을 나중에 올 걸 그랬습니다. 오늘 다니겠다고 생각한 곳이 많았는데, 두꺼운 책을 들고 다니는 건…….”

        

       “에이, 언니, 무슨 그런 걱정을 해!”

        

       뒤따라 나오던 클레어가 내 등을 찰싹 때렸다.

        

       “그냥 들고 다녀도 괜찮잖아. 우리 힘이 그렇게 약한 것도 아니고.”

        

       ……아, 참, 그랬지.

        

       두 사람 다 묵직한 검을 휘두르는 것이 장기였으니까.

        

       “그래, 걱정할 거 없어. 온종일 들고 다닌다고 무거워하지 않을 자신 있으니까.”

        

       앨리스가 웃으며 대답하는 것을 보자 걱정이 조금 사그라들었다.

        

       평범한 일상이라는 건, 생각보다 침투력이 강한 모양이다.

        

       이쪽에서 지낼 때의 상식과 이 두 사람과의 추억이 뒤섞여, 두 사람이 자꾸 평범한 자매라고 생각하게 된다.

        

       평범한…….

        

       “흐.”

        

       “뭐야? 왜 웃어?”

        

       “언니?”

        

       내가 뜬금없이 웃음을 흘리자, 두 사람 모두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뭐, 평범하긴 평범하지.

        

       그래. 여기서는 둘 다 그냥 평범한 내 자매들이었다.

        

       제위나 정치, 귀족 간의 알력, 검술이나 지보, 핏줄 같은 것은 상관없이,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

        

       “그럼 가볼까요.”

        

       “아니, 왜 웃었냐니까?”

        

       “언니, 무슨 일 있어?”

        

       걱정스럽게 물어보며 나를 따라잡는 두 사람에게 슬쩍 웃어주고 앞장서서 걸어가자, 한 박자 느리게 나를 따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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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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