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63

    그렇게 1년 같던 1시간이 지난 후, 시루드는 마침내 메이드복을 벗고 테이블에 앉아 머리를 처박고 있었다.

    일이 성공적으로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시루드는 현재 이루 표현할 길이 없을 정도로 갑갑한 심정이었다.

     

    시루드가 어찌나 어두운 분위기였는지 헬레나는 괜찮냐는 말도 못 붙이고 있었다.

     

    “…….”

    “…….”

     

    그 끔찍한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한 채, 루크는 활짝 웃으며 수고했다는 의미로 음료와 디저트를 쟁반에 올려 다가오고 있었다.

     

    “휴우, 이제야 한숨 돌렸구나. 시루드. 덕분에 살았다. 정말로……. 응?”

     

    가까이 다가가고 나서야 이상한 분위기를 읽은 루크는 뒤늦게 걱정을 담아 물었다.

     

    “……시루드? 괜찮으냐? 표정이 굉장히 안 좋아 보인다만.”

     

    그러자, 시루드의 모든 걸 잃은 듯한 눈빛이 루크를 향한다.

     

    괜찮을 리가 있나.

     

    그동안 시루드가 마음을 다잡고 태연하게 손님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저기 저 손님들은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것이라는 확신에 기반한 것이었다.

     

    그런데, 들켜버렸다.

     

    게다가 같은 반 여자애한테 들켜버렸다.

    그것도 평소 자주 대화도 안 하던, 말만 걸어도 어색한 사이의 여자애한테 들켜버렸다.

     

    자신이 여자애 옷을 입고 최선을 다해 손님을 받으며 돌아다니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 들켰다는 것은 당연히 심리적으로 커다란 압박이었다.

    헬레나, 루크의 경우에는 그나마 서로가 익숙하니 어느 정도 상황을 예상할 수 있지만, 에이미와는 평소 대화도 잘 나누지 않아서 그 애가 어떤 성격인지, 어떤 관심사가 있는지, 어떤 친구가 있는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니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 애 말로는 소문내지 않겠다고 하기는 했지만, 정말 그 애가 소문을 내지 않을까 하는 보장은 전혀 없다.

    그러니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묻는다.

     

    “루크, 혹시 사람의 기억을 지우는 방법 같은 건 없을까……?”

    “사람의 기억을 지운다고?”

     

    사람의 기억을 지운다니, 그 정도로 자신의 여장을 기억하기 싫었던 걸까, 시루드는?

     

    “뭐, 방법이야 몇 가지 있다마는…….”

    “몇 가지나 있어?”

     

    시루드의 목소리가 확연히 밝아졌다.

    기억을 지우는 방식이 한 가지도 아니고 몇 가지나 있다는 말은 시루드에게 기대감을 안겨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후 이어진 루크의 말에 시루드는 실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추천하지는 않는다. 모두 머리에 영구적인 손상을 입히는 방법들이니까.”

     

    단순하게는 머리에 강한 충격을 주어서 기억상실증을 발생시키는 방법부터, 마법을 이용해 뇌 속의 정보를 날려버리는 방법, 또 머릿속의 기억 일부만 제거하는 약물을 사용하는 방법까지…….

    사실 방법은 꽤 많다.

     

    특정 기억을 없애려는 시도는 오랜 옛날부터 모든 국가가 뒤에서 비밀리에 연구하던 방법이었으니까.

     

    하지만 결국 기억이라는 것도 인간을 구성하는 자아의 일부분이니만큼, 그 기억을 떼어내는 것에는 부작용이 필수 불가결이었다.

    어떤 방법을 사용하더라도 크고 작은 부작용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방법도, 특히나 예민한 십대 초반의 아이들에게 사용하기엔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니다.

     

    모두의 기억 속에서 여신의 존재를 지워버릴 때에 사용한 ‘위시’ 정도가 그나마 부작용이 덜하다 할 수 있겠지만…….

    그건 현시점에서 재현이 불가능하고.

     

    “뭐야, 그게…….”

     

    시루드는 힘 빠진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

    그럼 결국 자신은 그 에이미라는 여자애가 그 일을 떠벌릴지 알 수 없이, 계속 불안에 떨어야 한다는 말 아닌가!

     

    루크는 그런 시루드를 달래듯 말한다.

     

    “그러지 말고, 차라리 네 외모에 자신감을 갖는 게 어떠냐? 남자아이가 그렇게 예쁘기도 쉽지 않은 법인데.”

    그러자…….

    -탁.

    “자꾸 그런 말 하지 마!”

     

    “헤, 헬레나?”

    루크의 말에 항의한 것은 시루드가 아니라 이상하게도 헬레나 쪽이었다.

    헬레나의 항의에 놀란 것은 루크뿐이 아니었다.

    시루드 역시,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벙찐 표정을 지었으니까.

     

    “시루드가 그런 거 싫다고 하잖아! 시루드는 남자애란 말이야, 왜 자꾸 그런 말 해!”

     

    헬레나는 열변을 토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루크가 만약 시루드의 여장을 좋아한다면, 그건 자신에게 너무도 큰일이다.

    루크는 여자애를 좋아하는 취향이니까, 시루드를 여자로 본다면 자신과는 연적이 되고 만다!

    그리고 자신은 루크와 연애전선에서 정면으로 맞붙어서 이길 자신이 전혀 없었다.

     

    그렇기에, 여기서는 물러날 수 없었다.

    시루드는 반드시 남자아이여야 한다.

     

    “아무리 그렇게 꾸몄어도, 시루드가 남자라는 건 절대 변하지 않아!”

     

    그리고 그 말에 루크는 꽤 충격을 받았다.

    헬레나가 왜 시루드를 저토록 열렬히 변호하고 있는 지 모르겠으나, 그 말의 내용과 감정만큼은 묵직했으니까.

     

    그래, 겉모습이 어떻든, 결국 내면은 변하지 않는다.

    여자아이처럼 입고 여자아이처럼 꾸민다고 해도, 설령 그것이 정말 놀랍도록 잘 어울린다고 해도.

    시루드가 스스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은 별개의 문제다.

     

    옛날엔 남자 옷, 여자 옷이라는 개념이 비교적 희미한데다, 어릴 때에 부모들이 나서서 재미로 아들을 여장시키는 경우도 있어서 자신은 여장에 대해 큰 거부감이 없었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는 자신의 생각보다 크디큰 충격이었을지도 모른다.

     

    남자로 살아온 자신의 정체성이 잠깐이나마 바뀌는 경험은, 시루드에겐 정말 견디지 못할 정도로 강한 압박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자신이 시루드에게 너무나 가혹한 일을 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루크는 곧장 고개를 숙였다.

     

    “내가 생각이 짧았구나……. 미안하다. 시루드, 용서해주거라.”

    “어…….”

     

    하지만, 시루드는 헬레나의 변호에 안 그래도 창백했던 안색이 더욱 창백해져가고 있었다.

     

    “헬레나. 설마 나, 아까 그렇게 남자처럼 보였었어……? 정말……?”

    “……어?”

     

    헬레나는 시루드의 심상치 않은 반응에 상황이 자신의 의도와는 어긋남을 느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나, 나는 자, 자연스러운 줄 알고, 그런 줄 알고, 그럼 남들은 그냥 여자애라고 생각할 테니까, 자연스럽다고……. 그렇게 꾹 참고 있었던 건데……. 만약 그 모습이 누가봐도 남자였으면…….”

     

    자신은 누가봐도 남자인 꼴로 손님을 받았다는 것이고, 손님들은 모두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기만한 것이다!

    그럼 애초부터 같은 반 여자애한테 자신이 시루드라는 걸 들킨 게 문제가 아니다!

     

    그 뿐 아니라, 그게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본 사실이 아니라면…….

    그런 꼴을 보고서 ‘근데 나, 이렇게 보면 정말 여자애 같기는 하구나’ 하고 일순간이라도 생각했던 자신은 대체 뭐가 되냔 말인가?

     

    ‘그건 그냥 이상한 변태 같잖아!’

     

    차마 내뱉지 못한 뒷말을 삼킨 채, 시루드는 곧장 카페를 박차고 도망치듯 뛰쳐나갔다.

     

    “시, 시루드! 잠깐,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시루드!!”

     

    그에 헬레나가 그런 시루드를 뒤따르듯 달려나갔다.

     

    “……?”

     

    그 광경을 보던 루크는 손도 대지 않은 디저트들과 함께 덩그러니 남겨진 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래도 그 와중에 자신의 서클 컨트롤만큼은 참 뛰어나군. 시루드는 역시 재능이 있어.’

     

    ——–

     

    사람이 어느 정도 빠져서 비교적 한산한 시간.

    또 마침 바람도 잦아들고 햇빛을 받아 날씨가 제법 따스해진 덕에, 반가운 아이들이 루크의 카페를 찾아왔다.

     

    “루크 언니! 나 왔어!”

    “우와, 정말루 귀여운 옷이다!”

     

    그것은 신이 나서 손을 흔드는 파이리스와 루크의 메이드 복을 처음 보고 눈을 반짝거리고 있는 디아나였다.

    케일라를 비롯한 아이들은 그 아이들이 루크의 손님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았다.

    굳이 혹 ‘루크 언니’라는 말을 듣지 못했더라도, 파이리스는 푸른 머리칼의 루크를 축소시켜 놓은 듯한 모습이었으니까.

     

     

    “어머나, 얘들 네 동생들이야? 너무 귀엽다!”

    “아아, 그러고 보니 온다고 했었지.”

     

    루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지 말라고 돌려보냈는데, 결국 와버린 모양.

    그에 루크는 곧장 아이들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보이질 않는다.

     

    “왜 너희 둘뿐이냐? 다이튼은?”

     

    몸집이 몸집이라 어디 숨을 수도 없는 사람인데, 도무지 그림자도 보이질 않는 다이튼의 모습에 의문을 품자, 디아나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응,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겼다구, 막 빨리 가봐야 한다구, 우리는 그냥 집에 있으라길래. 근데 심심해서 우리끼리 왔어!”

    “뭐어? 몰래? 길을 어떻게 찾아왔느냐?”

    “히히, 파이리스가 잘 알던데? 언니는 어디에 있든 알아볼 수 있대! 신기하지.”

     

    디아나의 말에 루크는 그제야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깨달았다.

     

    뭔가 일이 있어서 다이튼은 축제에 아이들을 데려오지 않았으나, 심심해진 아이들이 직접 옷을 챙겨입고 집을 나선 모양이다.

    파이리스는 정령인데다 자신의 마력을 기억하고 있으니 당연히 길을 바로 찾을 수 있었을 것이고, 한곳에 처박혀 있는 걸 싫어하는 파이리스는 아마 그렇게 실망한 디아나를 꼬셨겠지.

     

    ‘그래서 이 녀석들이 이렇게 평소보다 훨씬 신이 나 있었군 그래.’

     

    보호자가 없는 외출은 아이들에겐 위험하지만 또 동시에 설레는 법이다.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 마음 내키는 대로 길을 걸을 수 있는 자유가 있으니까.

     

    하지만, 그런 자유가 때로는 위험할 때도 있다.

    자유에 취하면 길을 잃기 십상이니.

     

    뭐, 파이리스야 그런 자유를 누릴 능력이 되겠지만, 디아나는 아직 너무 어렸다.

    그렇다고 딱 봐도 파이리스가 꼬드긴 일에 디아나를 혼내기도 뭐해서, 푸념하듯 한숨을 내쉬고는 디아나에게 다가가 목도리를 벗겨주었다.

    아무래도 누가 씌워준 게 아니고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무작정 마구잡이로 목에 둘러놓은 것이라 엉켜서 영 벗어내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아아……. 후우, 다음부턴 그러지 말거라. 알겠지?”

    “웅, 언니! 아, 언니! 밖에 재밌는 거 엄청 많아! 이따가 같이 놀자!”

    “그래, 그래. 이따가 놀자꾸나. 에휴, 코가 다 빨개졌지 않느냐. 조금 더 따듯하게 입지.”

    “헤헤헤……. 나올 땐 따듯했는데.”

     

     

    그런 다정한 모습을 몇 걸음 뒤에서 지켜보던 케일라가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크윽, 너무 부럽다!”

     

    그러자 그 곁에서 에이미가 묻는다.

     

    “여동생이 귀여워서요? 근데 부장도 귀여운 남동생이 있잖아요.”

    “아니, 나도 저런 다정한 언니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너무 부럽지 않니?”

    “에-.”

     

    부장은 부러운 게 루크의 여동생 쪽이었구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루크를 견제하고 시루드를 위로하려던 헬레나, 역효과!

    —–
    대마법사였던것은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패치노트 1.03 ver

    늦었지만 삽화가 없던 4화, 어린현자의 삽화가 추가되었습니다!
    사용되지 않은 삽화 모음에 결국 사용되지 않은 시루드 여장관련 삽화가 하나 추가되었습니다!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