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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3

        

       노골적이다.

       너무나 노골적이다.

         

       또각.

       또각.

         

       아래에서 규칙적으로 들리는 하이힐의 소리.

       점차 가까워진다.

       또각거리는 소리가 점차 크게, 또렷하게, 입체적으로 들려온다.

         

       마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듯.

       서두르지 않으면 기회가 없다는 듯 말이다.

         

       무인들은 그러한 소리를 들으며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 위로? ]

         

       그들은 눈빛과 전음을 이용해 이 돌발상황에 어찌 대처해야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돌발상황이라는 것은 대처하기 힘들기에 돌발상황인 법.

         

       게다가 매뉴얼에 따라서 훈련을 반복하며 살아왔던 둘이었기에, 이런 상황에 대해서 대처는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위로 올라갔을 때 어떤 함정이 있을지 모르겠다는 점 역시 그들을 주저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 …잠깐 기다려보지. ]

         

       그렇기에 둘은 상식적인 결론을 내렸다.

       기다렸다가 하이힐 소리를 내는 것의 정체를 깨달은 후에라도, 어찌 행동해야 할지 결정해도 늦을 것이 없다고 말이다.

       평범한 경비업체 사람이라면 제압을 한 다음 약물을 투여해 기억을 희미하게 만들고 술에 취한 것 같은 상태를 만들어 현실감을 없애버리면 그만이고, 여의찮다면 죽인 다음 어디 야산에 파묻어버리면 그만이다.

         

       그리고 능력자일 경우도 마찬가지.

       무인 둘이 모여있으니 어지간한 실력자가 아닌 이상 처리를 하는 데는 문제가 없으리라.

         

       그렇기에 둘은 숨을 죽인 채 하이힐을 기다렸다.

       하이힐의 또각거리는 소리가 가까워지기를 기다렸으며,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그 주인이 윤곽을 드러내기를 기대했다.

         

       그것을 위해 눈에 기를 둘러서 안력을 한껏 끌어올렸으며, 기감을 넓혀서 위치와 그 형태를 알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런데.

         

       이상하다.

         

       [ …나만 그런 건가? 인기척이 느껴지질 않는데. ]

         

       [ 아니. 나도 마찬가지다. 인기척은 물론이고, 사람인지조차 모르겠군. ]

         

       [ 하지만 분명히 소리는 가까워지고 있는데…?]

         

       인기척.

       인기척이 느껴지질 않는다.

         

       분명 소리가 들리고 있는데.

       분명히 발소리가 들리고 있는데 인기척이 느껴지질 않는다.

         

       이상하지 않은가?

         

       발소리가 곧 사람이 존재한다는 증거인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니?

         

       [ 기계? ]

         

       [ 아니. 기계 특유의 잡음이나 기계가 가동할 때 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

         

       그냥 일반적으로 내는 소리와 기계를 통과해서 내는 소리는 분명히 차이점이 있었는데, 무인의 단련된 몸과 내공은 그 작은 차이점을 손쉽게 구별해낼 수 있었다.

         

       물론 고급 장비를 사용할수록 이러한 차이점은 줄어들고, 군사용으로 특별하게 개발한 물건이나 기본이 억 단위부터 시작하는 최고급 음향기기 같은 경우에는 이러한 차이점을 알아볼 수 없는 수준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 특별히 음향을 감상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곳도 아니고, 군사 시설도 아니고. 이런 곳에 우리의 귀를 속일만한 장비가 있을 리는 없다. 게다가 소리가 계속해서 이동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만약 그런 장비가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면, 이 계단 전체에 그게 깔려있다는 건데….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

         

       [ 즉, 저건 진짜라는 소리인데…?]

         

       억 단위 물건이 이딴 계단참에 빼곡하게 있다고?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최고급 빌딩에조차 계단엔 그런 시설을 만들지 않는다.

       한 층마다 한 개씩만 놓는다고 치더라도 천문학적인 금액이고, 빌딩 하나를 따로 세워도 될 정도의 금액이 나올 것이다.

         

       중동의 석유왕도 이딴 돈을 땅에 버리는 짓거리는 하지 않으리라.

         

       군사 장비?

       그 역시 마찬가지다.

         

       군사 장비 특성상 시중에 돌아다니는 제품보다 단가가 훨씬 비쌀 수밖에 없으니, 그 군사 장비가 이런 곳에 깔려있으리라고는 더더욱 상상할 수 없다. 그리고 아주 만약에 그런 시설이 정말로 필요했다고 할지라도, 이딴 낡아빠진 빌딩이 아니라 대통령 같은 중요한 인물들이 머무르는 장소에만 설치가 되어 있으리라.

       선진국인 한국조차도 허리가 휠 정도의 예산을 쏟아부어야 할 테니까.

         

       그러니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저 소리는 스피커 같은 것이 아니라, 진짜 사람 소리라는 소리인데….

         

       [ 인기척뿐만이 아니다. 아예 생물의 기척이 느껴지질 않아. ]

         

       [ 기계 특유의 소리도 들리지 않아…. 혹시 소환수인가? ]

         

       [ 가능성은 있긴 하지만….]

         

       인기척을 넘어서, 아예 생물의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생물이 아니라면 기계라는 소리인데, 기계 특유의 소리나 느낌도 나지 않고….

         

       그렇다면 남은 것은 단 하나.

       지구의 생물과는 이질적인 존재인, 소환수일 가능성밖에 없다.

         

       [ 소환수라면 변수가 좀 많기는 할 텐데….]

         

       [ 그래도 우리 실력이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터. ]

         

       둘은 몸에 기를 끌어올렸다.

       그리고 언제든 모습이 보이면 튀어 나갈 수 있도록 준비했다.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때와는 다르게, 제압이 아니라 아예 힘을 단번에 쏟아부어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소환수는 개체마다 그 특징이 천차만별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지구의 생물과 닮지 않은 것들도 많았고, 아예 생물인지 의심스러운 것들도 넘쳐났다.

       돌덩이나 다름이 없는데도 영양제를 빨아먹으며 성장하는 개체도 있었고, 지구의 동물과 똑 닮았음에도 배를 갈라보면 텅 비어있는 이상한 개체도 있었다. 지옥에서 온 것 같은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었고, 고열을 흡수해서 에너지로 삼는 기괴한 식성을 가지고 있는 개체도 있었다.

         

       당연하게도 이렇게 이질적인 소환수의 특징은, 곧 변수로 이어진다.

       몸을 토막 냈으니 이겼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토막 난 몸체마다 재생해서 수가 갑자기 불어나기도 했고, 죽였다고 생각하고 안심하고 있었는데 불을 빨아먹고 몸을 재생시키고 적의 머리통을 날려버리는 예도 있었고, 슬라임이라고 안심하고 마법을 날렸는데 오히려 마력을 먹어 치우고 몸집을 불리는 일도 있었다.

         

       그렇기에 소환수를 적으로 만난다면 반드시 경계하고, 온 힘을 쏟아붓고, 철저하게 처리를 해야 하며, 죽인 후에도 몇 번이고 확인해야만 한다.

         

       무인들은 이러한 기본적인 수칙을 지키기 위해 힘을 끌어올렸다.

         

       소환수가 오기만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또각.

       또각.

         

       하지만 이 둘이 간과한 것이 하나가 있었다.

         

       또각.

         

       이 세상에는 살아있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 있다.

         

       또각.

       또각.

         

       기계가 아님에도 움직일 수 있고, 육신이 없음에도 물리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어둠 속에서 나타나 사람에게 해를 가하는 것.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나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며, 사람은 아니나 사람에게서 태어나는 것이며, 그 힘과 위세가 강해지면 재앙이 될 수 있는 것.

         

       또각.

         

       사람들이 귀(鬼)와 영(靈)으로 구분해서 부르는 존재가 바로 그것이었다.

         

       또각.

         

       그것은 하이힐의 소리와 함께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었다.

       어둠 속에 파묻힌 채, 어둠을 재료로 삼아서, 어둠을 빚어서 형체를 만들어 윤곽을 간신히 드러낸 채 그렇게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것은 기괴하게 비틀린 몸으로 계단을 기어 다니고 있었다.

       사람의 몸 여러 개를 빚어서 만든 듯 아주 흉하기 짝이 없는 몸체였는데, 그것은 마치 자신이 민달팽이라도 되는 것처럼 육중한 몸을 꿈틀꿈틀 움직이며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몸체에서는 가늘고 길게 뻗은 수많은 팔이 있었는데, 그것의 관절은 벌레의 것처럼 징그럽게 꺾여진 채 벽과 천장에 닿아 있었다.

         

       비틀린 몸이 기어 다닐 때마다 그 몸에서 뻗어 나온 팔 역시 같이 움직였고, 벌레가 소리 없이 벽면을 기어 다니듯 구부러진 관절로 그 위치를 계속 이동했다.

         

       또각.

         

       그리고 그 구부러진 팔 중 가장 앞쪽에 나 있는 팔은 하이힐 하나를 들고 있었다.

         

       단 하나.

         

       누군가가 술을 먹고 흘린 듯한 낡은 하이힐을 든 팔은 몸이 꿈틀대며 계단 하나를 오를 때마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듯 팔을 움직여 돌계단에 하이힐의 뒷굽을 부딪쳤다.

         

       또각.

         

       [ 이…런. ]

         

       몸이 꿈틀대며 계단을 오른다.

         

       또각.

         

       팔을 움직여 돌계단에 하이힐의 뒷굽을 부딪친다.

         

       또각.

       또각.

         

       계단 한 칸에 소리 한 번.

         

       하지만 그 속도가 너무나 빨랐다.

         

       뒤틀린 몸은 민달팽이처럼 꿈틀댄다고는 믿기지 않을 속도로 계단을 오르고 있었고, 그 속도에 맞춰 하이힐은 규칙적으로 소리를 내었다.

         

       마치 하이힐을 신은 여자가 평범하게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또각.

       또각.

         

       소리가 퍼질 때마다 계단 한 칸만큼 거리가 가까워진다.

       살아있는 사람과 가까워지고 있다.

         

       그것은 관절을 기괴하게 뒤틀며 팔을 움직이고 있었고, 몸통에서 팔을 몇 개 더 만들어내며 허공에 그것을 휘젓고 있었다.

         

       조금만 있으면 벽에 뻗지 않은 이 팔을 쓸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듯.

       너무나 기대가 된다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면서 말이다.

         

        – 히히히히.

         

       그것은 웃었다.

         

       손바닥에 나 있는 입을 히죽이며 소리를 내었고, 길쭉한 몸에 세로로 나 있는 거대한 입에서 혀를 날름 내밀어 입술에 침을 묻혔다. 그리고 더더욱 박차를 가하려는 듯 더 크게 크게 움직이며 계단을 계속해서 올랐다.

         

       [ 악귀, 악귀다! ]

         

       [ 위로 올라가-! ]

         

       악귀(惡鬼).

         

       물리력을 발휘할 수 있는 귀신.

       일반적인 능력자로는 상대하기 힘든 괴물이다.

         

       탓-!

         

       둘은 아래층에서 하이힐 소리를 내면서 올라오고 있는 것이 악귀임을 깨닫자 재빨리 몸을 돌려서 위쪽으로 튀어 올라갔다. 몰래 잠입한다는 생각조차 버린 채, 신법을 한껏 구사하면서 뛰어 올라갔다.

         

       악귀에게서 멀어지기 위해서 말이다.

         

       [ 빌어먹을, 사람의 형태라곤 찾아볼 수 없는 악귀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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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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