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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3

        

         끄득, 까드드득—…!!

         

         신발 밑창에 짓눌린 창문 파편과 병, 갈라진 돌 조각. 그 외 여러가지 날카로운 형태의 부산물들이 한데 어우러지며 소름 끼치는 소음을 연주하였다.

         

         그야 완전 군장까지는 아니더라도 장구류를 모두 착용하여 최대 무장 태세를 갖춘 건장한 성인 남성의 하중이 저런 상대적으로 작은 입자더미에 가해진다면 굳이 설명할 이유가 있나 싶을 정도로 당연하게 발생할 현상이지만….

         

         그런 객관적 사실이 뚜렷하다 한들 그게 불쾌함을 줄여주거나, 방금 그 경험을 한 사람의 냉정함을 유지하는데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런 씨발.”

         

         기업 공동 지질조사 현장 부지 B-8, 실제론 땅속 깊숙이 파묻힌 운석덩어리를 발굴하고 조각내는 공사 현장에 가까웠지만. 하여튼 명목상으로 그곳의 야간 경비를 위탁받은 업체 소속 남자가 엉망이 된 전투화를 내려다보며 나지막하게 욕설을 뇌까렸다.

         

         잘나신 중견기업, 대기업들이 자사 직원만으로 할렘가 한복판에 24시간 경비 체재를 유지하기엔 반발과 부담이 심하다며 소규모 현지 업체 쪽에도 두루 하청을 준 건 물론 그들의 생계에 있어서 잘 된 일이었으나.

         

         이 지하가 얼마나 난장판인지 제대로 고려하지도 않은 채, 왜 변변한 전투조차 안 하는 대기조와 경비조의 장비 소모율이 극심하냐고 옆 자재관리부에 매번 쪼이는 건 또 어떨지.

         

         “하, 바깥에서 위험하게 반기업 시위대나 미친 사이비쟁이들이랑 대치한 채로 피곤하게 있는 것보단 이쪽이 훨씬 낫긴 한데…. 어차피 똑같이 안팎으로 욕 먹을 거라면 일선에서 진짜 뭐라도 하다가 먹는 게 덜 억울하지 않겠어?”

         

         저기 냉난방 빵빵하게 나오는 방안에 붙어있는 사무직 놈들은 현장의 어려움을 잘 모른다~

         발에 금속 덩어리가 박힌 채로 걸을 때마다 딸깍거리고 다니면 메가코프 쪽 조사원이랑 연구자들이 잘도 우리를 예쁘게 봐주겠다~

         

         원칙적으로 2인 1조로 같이 다니는, 이번 시프트를 함께하는 동료에게 고충 사항을 가장한 사적 불만을 마구 늘어놓으며 심심한 공감이나 건지려던 남자의 입은 쉬지 않고 떠들고 있었으니.

         

         “그리고 애당초! 씨바, 희귀한 원석이라도 정도가 있지. 돌 쪼가리를 노리고 숨어드는 좀도둑이 세상에 어디 있어? 수당이 잘 들어오긴 한다만, 출입구랑 철조망 점검하는 외부조만 있으면 됐지 내부 순찰까지 이렇게 따로 돌 필요가 정말 있나 모르겠다 난.”

         

         편하게 일하는 것도 충분히 좋지만, 특별히 경계할 대상이 지반 붕괴밖에 없는 광산 같은 장소를 매일 밤새도록 빙빙 도는 것도 못해먹을 고문이라 여기는 남자에 대해.

         

         그의 파트너는 배불러 터진 고민 좀 하지 말라는 타박과 한 세트로 이런 지하를 경계하게 근무가 짜인 곳에도 다 이유가 있다며, 알고 지내는 사무 담당자에게 들은 논리를 마치 제 것 마냥 전해주었다.

         

         “으휴, 야 이 등신아. 넌 점마들이 체면이랑 상징성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도 모르냐? 그러다가 여기 현장에 불법 침입자가 들어오고 표본이 훼손돼서 기업들이 피해를 봤다는 말이 새어 나가면, 그게 진짜 양면 전선으로 좆 되는 거야. 이것도 나름 존나 중요한 거라고!”

         

         꿀을 빨 수 있을 때 빠는 거니까, 우리 지랄 헛소리는 좀 자제하자.

         

         얼핏 보면, 슬슬 그런 생산성 없는 잡담이 귀찮고 짜증난다는 것처럼 버럭 화를 냈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파트너의 목 언저리와 눈가에 송골송골 맺힌 식은땀, 명확하게 의사 표현을 하고 있음에도 흥분한 것처럼 흔들리는 초점 같은 신체 징후는 뭔가 다른 얘기를 하느라 바빴고.

         

         두 사람이 용병이었다면 무슨 약을 빨았는지 모르겠는데 일단 후딱 깨고 오라며 각성제나 한 병 쥐여줬겠지만… 그래도 일하려면 결격 사유가 없어야 채용 가능하며, 자격 시험까지 따로 치러야 하는 전문 인력인 그들은 경우가 달랐다.

         

         “…너, 투입 전부터 계속 구시렁거리더니. 아직도 속 많이 안 좋냐?”

         “그냥 존나 뒤질 것 같아, 씨이이이바…….”

         

         그렇다고 막 고급지고 특별한 사연이 되는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뭐, 이미 닥쳐온 생리현상을 어쩌리오. 신체조절용 내장기관 임플란트가 소화 장애 특유의 불편함과 고통을 최대한 줄여준다 한들, 조그마한 변화에도 민감해서 시도 때도 없이 고장나고 발작하는 게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 몸의 못난 부분이었으니까.

         

         어차피 주변에 보는 눈도 동료 말고는 없겠다 정자세를 억지로 유지하던 것도 포기.

         

         겨드랑이에 견착하고 있던 소총 개머리판을 땅에 수직으로 세워 짚고 ‘흐어억…!’하는 기합과 함께 임산부처럼 열심히 복식 호흡을 하는 건… 아무리 그래도 좀 많이 꼴불견이 아니실지.

         

         “거 많이 힘든가본데. 화장실 다녀오는데 쓸 휴식 횟수는 남아있나 몰라.”

         

         “허어… 허읍! 씹, 있었으면 진작 간다고 말했다고!!”

         

         오늘의 리빙 포인트, 업무 집중력 유지 및 고의적인 생산성 저하를 방지하기 위하여 경비원들은 한번에 근무지 혹은 근무 경로 이탈을 할 수 있는 횟수가 제한되어 있다.

         

         차라리 모기업이 메가코프였다면 역으로 더 제한이 널널했을 게 분명하거늘, 파견 업무가 주력인 회사답게 직원을 쥐 잡듯 다그치는 시스템이 남아있는 건… 생각보단 이 동네 평균에 부합했다.

         

         당사자들조차 딱히 지침을 원망하거나 억울해하기보단, 자연스럽게 긴급 환자의 존엄성을 지킴과 동시에 따로 운영관리 측에 양해를 구하는 아쉬운 연락을 할 필요도 없이 능숙하게 처리하는 걸 보면 말이다.

         

         “나중에 꼭 갚아라? 존나게 담배 마려운 거 참고 한 번 빌려주는 거니까.”

         

         “알았어 알았어! 시발, 망할 계산이나 잔소리는 일단 주고나서 말해 제발…!!”

         

         찰칵! 원래는 쇄골 부근에 이식한 신체 조율기에 얌전히 박혀 있어야 할 GPS 식별 칩을 잽싸게 바꿔 낀 둘.

         

         배탈로 인해 입이 굉장히 험해진 파트너 쪽은 냅다 화장실로 우다다 달려갔고, 잠시 주변을 확인하고 움직이겠다며 무전을 친 남자는 부서진 기둥 구조물 쪽에 편히 등을 기대고선 뻐근한 어깨와 팔을 휘적휘적 풀었다.

         

         뭐, 여기까진 가벼운 근무 규정이나 안전 수칙을 몇 개 위반했을지라도 큰 탈로 이어질 리 없는 현장의 유연함이라 봐도 좋으리라.

         

         비록 상호 보완해야 할 시야에 일시적으로 사각이 생기고, 여차할 경우 발휘해야 하는 즉응력은 기준 미달 수준이 되었겠지만… 어쩔 수 있나? 사람이 하는 일에 이 정도 오차는 무조건적으로 따라오게 되는 법이니까.

         

         더군다나 거수자나 침입자가 나타났으면 가장 먼저 난리를 피울 책임이 있는 외부 순찰조도 무언가를 조사 중이라 할 뿐 아직 조용하지 않은가.

         

         언제나 밤은 길고 집중력을 요하는 장기전이 되는 만큼 다른 팀을 믿고 잠깐씩 쉬는 요령도 중요한 게 이 일이다~라고. 요령을 피운다며 한마디 할 수는 있겠지만 남자의 생각에 그렇게 틀린 점은 없었다 분명.

         

         ……그러나 이 모든 흐름을 ‘하나의 예정된 패턴’처럼. ‘틀림없이 일어날 일’이라 가정하는 걸 넘어 굳게 믿고, 차분히 침착하게 기다린 사냥꾼이자 공략자가 있었다면 얘기가 전혀 달라지겠지?

         

         “엉…? 끄, 흑!?!”

         

         털커덩! 하는 공허한 소음과 동시에, 남자의 손이 총을 바닥에 완전히 떨어트렸다.

         

         하품을 하던 와중에도 시야 한구석에 스치듯 지나간 검은 선을 용케 알아챈 건 충분히 칭찬할 만했지만, 이미 손톱으로 아무리 긁어 봤자 끊어질 리 만무한 탄소 강화 줄이 턱을 지나쳐 목에 들어온 이상 모두 뒤늦음이다.

         

         “극, 그륵…! 끆!!”

         

         암살? 원한 살인?? 이런 상황에 처하면 최대한 뒤를 돌아 상대의 얼굴을 기억에 담으려 노력해야 한다고 교육을 들었던 것 같은데 어림도 없는 개소리였다.

         

         이성적인 통제권을 상실한 채, 쥐고 있던 유일한 무기까지 떨어트려가며 목을 벅벅 긁는 손은 정말 미친듯이 떨렸고.

         점점 그 높이가 올라가는 통에 땅에 얌전히 디디고 있기 어려워지는 다리는 모자란 현실성과 공포로 인해 마구 헛발질을 일삼고 있었으니.

         

         자기가 이런 종류의 보복을 염려할 문제에 휘말린 적은 없는 만큼. 아마 이건 여기서 진행 중인 지질 조사에 어깃장을 놓으려는 프로의 소행…이라 추측할 수 있겠지만, 뭐 어쩌라고! 지금 당장 내가 뒤지게 생겼는데!!

         

         모자란 산소 때문에 남자의 사고가 이제 무의미하게 공회전하기 시작했다.

         

         교수형에서는 가하는 힘도 힘이지만, 스스로의 몸무게가 곧 대상을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추 역할을 한다 하였다.

         

         입을 아무리 크게 벌려도 도무지 숨이 들이마셔지지 않는 절망감, 서서히 현실로부터 멀어지며 하나 둘 작동을 멈춰버리는 오감, …최후엔 이대로 눈을 감으면 끝이란 생각에 드는 허탈함마저.

         

         결국 의식을 잃고 기절하기 직전까지, 신발이 망가지는 것도 개의치 않고 뒤편의 기둥과 지면을 온 힘을 다해 한계치로 걷어차던 남성의 고개가 푹 떨어졌고.

         

         나름 열심히 배우고 연습했던 ‘무력화 테크닉’이 문답무용의 살인 교사나 경추 손상으로 인한 사망으로 이어지지 않는 선에서, 실전에 써먹어보려 갖은 노력을 다한 범인.

         

         딱히 미스터리한 습격자 흉내를 내려던 건 아니고 단지 너무 집중하느라 다른 걸 할 겨를이 없었던 킴이 비로소 여지껏 다물고 있던 입을 열고 한숨을 푹 토해냈다.

         

         “으어어… 미친 손가락 끊어지는 줄 알았네! 아니, 이거 중간에 뭐 물체가 낀 상태로 하려니까 세밀한 조절이 거의 안 되는데?!”

         

         리어 네이키드 초크(Rear naked choke)인지 무슨 목 조르기인지 뭐시깽인지. 하여간 비숙련자인 자신이 누군가를 호흡 곤란으로 넘어트린다 하면 당연히 문명의 이기인 도구를 쓰는 편이 유리하리라 생각했는데.

         

         외려 이쪽이 사고율이 더 높은 게 아닌가… 킴은 남자의 목에 남은 선명한 로프 자국을 보면서 영 찝찝한 표정을 지었다.

         

         배움에 끝이 없다지만, 여차해서 발각되었을 때 여차해서 총을 쐈으면 쐈지 이건 숫제 고문 쪽에 더 가까운 가혹 행위가 아닌가…. 영화에서 보던 것과 다르게 손톱이 장갑을 뚫고 나올 기세로 버둥거려서 깜짝 놀랐네~ 라던가.

         

         그래도 무사히(?) 기절한 덕분에 목숨을 건진만큼 피해자도 깨어나면 굉장히 만족했을 거라는 뿌듯함과 함께. 킴은 축 늘어진 육체를 질질 끌어 기둥에 그럴싸하게 걸친 다음, 발각 시 교전에 대비해 여분 탄창과 총을 쏙쏙 골라 임시로 챙기고는.

         

         이제… ‘맨손으로 해야 하나?’ 같은 무서운 말을 중얼거리며 고개를 갸웃한 채 자리를 바꿔서 다시 한 번 숨었다.

         

         응? 왜냐니, 그야 방금 전에 소중한 교훈을 배웠으니까 까먹지 말고 화장실에서 돌아온 경비원한테 재차 실습을 해야지.

         

         

         “아~ 미안. 시발, 진짜 네 덕분에 살았다! 다음에 아예 담배도 한 갑 사줄 테니까…. 뭐야, 얌마! 그만 일어나서 움직이자. 다른 팀 보조에 맞출려…… 커헉!?”

         

         

         구태여 2차 시기를 설명하자면, 어쭙잖은 실력으로 영화 장면을 흉내 내듯이 따라하는 것보단 분명 맨손으로 관절기를 시도하는 편이 편했으나.

         목표물이 거칠게 반항하다가 점점 호흡이 잦아드는 걸 근접한 상태에서 실시간으로 느끼는 건… 별로 정신 건강에 좋지 못했다 정도가 되시겠다.

         

         “앞으로… 15명? 아, 드론 굴리는 조종사까지 16명 남았나? 특수 이벤트는 인카운터가 고정이라 다행이야 진짜….”

         

         위치를 안다. 빈틈도 파악했다. 심지어 적절한 각종 수단까지 보유하고 있다.

         그림자를 타고 움직이며 야간 현장 경비원 한 명을 침묵시키는데 킴이 투자하는 시간은 불과 1분 내외.

         

         순수하게 돌파력만을 따져도 잠입과는 거리가 먼 수준의 속전속결을 자랑하는 움직임이었다.

         

         흡사 게임을 공략하듯, 일부러 별것 아니라는 것처럼 가볍게. 그렇지만 철저하게 스케쥴 따라 움직이면서도.

         

         네오 헤이븐 프라임의 주인공이 ‘프롤로그’에서 겪게 되어야 하는 필연적인 클라이맥스와 고난에 내심 느끼고 있는 두려움을 숨기듯 그는 과장된 혼잣말과 자기 최면을 반복하며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고.

         

         – ……. –

         

         얼마 지나지 않아 킴이 지나가고 난 자리의 풍경을, 한 기의 초소형 카메라 드론. 바깥을 돌아다니는 걸 넘어 잘도 이 지하까지 비집고 날아들어온 기계 취재원이 슬쩍 훑었다.

         

         더 깊은 곳으로 향하고 있는 게 뻔한 만큼 앞지르고자 마음먹는다면 따라잡을 수 있어야 하거늘, 설마 목격자들을 피해가며 두 발로 움직이는 드로이드를 이용해선 절대 보조를 맞출 수 없는 퍼포먼스를 선보일 줄이야.

         

         안 그래도 정당한 핑계없이 아나스타샤에게 즉각 보고하지 않고 정보 전달을 보류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직한 인공지능의 거슬림은 벌써 한계에 도달한 형편.

         

         킴은 구태여 무리수를 두지 않은 것뿐이었으나, 마주치지 못하고 따돌려진 시점부터 실패했다 자책한 제로는 주인의 고견을 구하면서.

         

         조용히, 촬영 및 데이터 전송을 끊기지 않도록 아슬아슬한 고도를 유지하며 놈의 발자취를 뒤쫓아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지름길만 골라가는 얄미운 녀석.

    미움받는 역할에 들어가게 된 킴인지라, 감히 아나스타샤 루트를 노려?! 하면서 화를 내시는 독자분들이 많네요 역시.

    그만큼 아샤가 여러분들에게 매력적인 주인공으로 자리 잡았다고 믿겠습니다.

    물론 그와는 별개로 약간의 연출적인 오해와 제 부족한 필력이 겹쳐 ‘킴이 너무 무게감 없이 손쉽게 받아들이는 게 아니냐!’ 하실 수도 있는데.
    내부 시간 제한이 있는 미션인 만큼 일단 움직이고 봤을 뿐, 실은 스스로를 미친 듯이 채찍질하고, 무서운 가능성을 억지로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는 편에 가깝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마무리를 위해 아껴두고 있다가 그만 소설 내적으로 충분히 그런 부분이 표현되지 않은 것 같아서 면목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별개로, 항상 재밌게 읽어주시고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큰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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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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