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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3

       브루슈의 찌르기 동작은 완벽했다.

       

       급소를 비껴가는 공격. 철저히 계산된 각도. 빈틈을 파고든 민첩함까지.

       

       기사단에서 뼈 빠지게 연습한 결과였다.

       

       그 정도의 실력자였기에, 브루슈는 알고 있었다.

       

       상대방을 꿰뚫었을 때와, 꿰뚫지 못했을 때 손에서 느껴지는 맛의 차이를.

       

       “이, 이게 무슨!”

       

       꽂아넣긴 했으나, 관통했다는 감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기기묘묘한 느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동시에 불길한 육감마저 느껴졌다.

       

       “……!”

       

       검을 가져올 새도 없었다. 브루슈는 곧바로 손을 빼냈다. 그의 손이 있던 자리를 스태프가 쓸고 지나갔다.

       

       뒤이어 그가 자랑하던 장검은 날이고 가드고 할 것 없이 산산조각이 나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검은 머리 소녀는 그 검조각을 짓밟으며 브루슈를 노려봤다.

       

       다급해진 브루슈가 마도사들에게 소리쳤다.

       

       “뭣들 하고 있나!”

       

       마도사들이 마법을 장전했다. 그리고 몇 초 안 되는 시간에 바로 하나가 쏘아졌다.

       

       사대원소 마법 중에서도 가장 화력이 높다는 화계마법이었다. 그 마법의 궤적에는 소녀의 머리가 있었다.

       

       ‘피해!’

       

       그리 소리치고 싶었지만, 워낙 빠른 속도에 입을 열 시간도 없었다.

       

       퍼버벙!

       

       화염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소녀의 머리를 강타했다. 브루슈는 광대를 치켜올리며 비웃었다. 그 모습을 본 로즈마리의 눈앞이 아찔한 색으로 물들었다. 열다섯 난 소녀에게는 잔인한 광경이었다.

       

       이런 장면,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로즈마리는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다.

       

       화염구에 직격한 소녀의 머리가 뒤로 넘어갔다. 중심을 잃어 한 쪽 발이 땅에서 떨어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 이게 무슨….”

       

       뚜둑.

       

       소녀는 다시 중심을 잡았다.

       

       어쩐 일인지 머리카락은 불에 타지 않았다. 화상을 입은 흔적은커녕 그을린 자국조차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화염구를 내던진 마도사가 지레 겁먹으려 물러났다.

       

       당황하기는 브루슈 대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삿대질하며 검은 머리 소녀에게 소리쳤다.

       

       “너, 너흰 대체 누구냐. 사람이냐? 금안족이긴 한 거냐?”

       “…….”

       “대체 뭐하는 년들이냐!”

       

       뚜두둑.

       

       검은 머리 소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오른쪽 관자놀이를 누르더니.

       

       “괴물이다.”

       

       그리 대답하고는 달려들었다.

       

       소녀의 스태프 모양은 여태껏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이질적인 모양새였다. 당연히 그 재질도 일반적인 스태프와는 다르다. 합금으로 된 것이, 단순히 두들겨 맞기만 해도 치명적이었다.

       

       “대장님! 커헉!”

       

       누구의 것인지 모를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정신을 차려보니 벽면에 부하 한 명이 처박힌 뒤였다. 바지는 반쯤 벗겨졌고, 오른쪽 관자놀이에 핏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측두부가 함몰된 상태였다.

       

       “우선 한 놈.”

       

       소녀는 이마를 짓누르며 한숨을 쉬었다.

       

       “막아라. 대장님을 지켜! 커허억!”

       

       숨을 돌릴 틈도 없었다. 브루슈의 바로 옆에 있던 부하가 뒤로 날아갔다.

       

       수 미터를 날아간 부하가 정신을 잃었다. 눈은 까뒤집은 채였다. 미간에는 독사가 물기라도 한 것처럼 뾰족한 침 자국이 생겨나 있었다. 죽은 것인지 산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폭력은 멈추지 않았다.

       

       검은 소녀가 이번에는 제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다음.”

       

       브루슈는 몸이 굳어 있던 부하의 뒤에 숨었다. 어째 다음은 자기 차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자마자 눈앞의 부하가 수직으로 날아올랐다.

       

       “끄아아악─!!”

       

       그 부하는 먼저 쓰러진 부하의 몸 위로 정확히 안착했다. 쿠웅, 하는 소리와 함께 신음이 잇달아 터져나왔다. 해당 부하의 턱 부분에도 선명한 독니 자국이 생겼다.

       

       도대체가, 무슨 무기인지 알 수 없었다. 브루슈의 안색이 새파랗게 변했다.

       

       “하다하다 움직이지 못하는 동료를 방패로 삼을 생각까지 하다니. 인간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의 쓰레기였군.”

       “네 이년! 나는 제국 창룡기사단의 단장 미하일 브루슈다! 가, 감히 나를 쓰레기로 매도하다니! 이 불손한 것!”

       “그래?”

       

       소녀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본관은 상천(上天) 에테르다. 만나서 반갑다.”

       

       툭툭.

       

       검은 머리의 소녀, 에테르가 자신의 가슴팍을 두들기며 입꼬리를 올린다.

       

       명치를 가격하겠다는 신호였다.

       

       “잘 가라.”

       

       다음 순간, 소녀의 신형이 사라졌다. 직감이 죽음을 예고한다. 브루슈는 예비용 검을 꺼내 쳐들었다.

       

       검에 마나를 동원한다. 검강을 엿가락처럼 뽑아냈다. 전신에도 마력을 둘러 스스로를 보호했다.

       

       소드 엑스퍼트(Sword Expert)의 경지.

       

       속성이 부과되지 않는 마나는 순수하다. 너무나도 순수해서, 모든 종류의 속성 공격을 막아낼 수 있다.

       

       당연히 통상적인 물리 공격에도 견디는 것이 가능했다.

       

       브루슈는 자신했다. 어떤 충격이라도, 이 정도 마나를 둘렀으면 받아낼 수 있으리라.

       

       “어억!”

       

       그러나 그리 알고 있었던 브루슈의 믿음을, 검은 머리 소녀는 너무나도 간단하게 뒤집어엎었다.

       

       “으아아악!!”

       

       소녀는 마나를 두른 브루슈의 검을 단번에 부숴냈다. 날 선 스태프가 곧이어 그의 명치를 사정없이 후렸다.

       

       뻐억, 하는 음색과 함께 브루슈의 하늘이 뒤집혔다.

       

       횡격막이 터지는 느낌이 들었다. 브루슈는 걸쭉한 핏물을 토해내며 뒤로 넘어졌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필사적으로 호흡하려고 해도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그는 한참을 헐떡이다가, 어느 순간 맥이 풀려 축 늘어지고 말았다.

       

       “엄살떨기는. 일어나라. 타박상 수준이다.”

       “언니, 인간은 명치를 맞으면 죽어.”

       “…그래?”

       

       검은 소녀가 머리를 긁적였다.

       

       “나머지는 내가 정리할게.”

       

       하얀 머리 소녀도 연초를 물고 스태프를 꺼냈다. 끝부분이 고슴도치처럼 벌어진 모양의 쇠막대기였다.

       

       그녀가 스태프를 한 번 휘두르자 번갯불이 일었다.

       

       콰직!

       

       덜덜 떨고 있던 마도사들이 각혈하며 하나둘씩 쓰러졌다.

       

       “방해물은 사라졌군. 그 아이는 어때?”

       “잠깐 봤는데 팔다리 상태가 영 아니야. 치료한다면 생명에 지장은 없겠지만, 사람답게 살아가긴 힘들겠지.”

       

       척, 척.

       

       스태프를 집어넣은 두 금안족 소녀가 로즈마리를 살폈다.

       

       “저기, 당신들은.”

       

       둘 다 보통 인물은 아닌 듯하다. 그렇다고 타르케닐에서 보던 사람들도 아니다.

       

       이런 쌍둥이 자매가 있었더라면 왕족인 로즈마리가 몰랐을 리 없다. 틀림없이 처음 보는 여인들이었다.

       

       “나는 아카샤. 이쪽은 내 쌍둥이 언니인 에테르. 우리 꼬마 아가씨는 왕족일까?”

       “당신들은… 뭐 하는 사람들이죠?”

       “글쎄. 얘기해 주기 쉽지는 않은데.”

       

       왕족인 걸 알면서도 반말을 한다.

       

       설마 같은 왕족인가? 아니면 그보다 더 위의 신분? 마법을 쓰는 것처럼 보였으니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래봤자 로즈마리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이제 자신의 처분은 눈앞의 여인들에게 달려 있었다.

       

       “살고 싶니?”

       

       하얀 머리의 여인, 아카샤가 물었다.

       

       “네.”

       

       로즈마리가 대답했다.

       

       “살고 싶어요.”

       

       골절상을 입어 움직여지질 않는 팔을 힘겹게 허우적거리며, 눈앞의 여인들에게 하소연한다.

       

       “살아남아서, 제국에게 복수하고 싶어요. 다 죽여버리고 싶어. 피떡으로, 인육으로, 만들어버리고 싶어.”

       

       아픔보다 분노가 컸다.

       

       죽어버린 사람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까.

       

       그러니 자신만이라도 살아남아야 한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인류가 파멸하는 미래를 보아야만 한다.

       

       좋지 못한 생각을 해서 그런 것일까?

       

       다리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조금씩이지만 검게 변하고 있었다.

       

       “왕녀치고는 입담이 험하구나.”

       “뭘 그래. 이 참상을 보고도 쌍욕하지 않는 게 이상한 거지.”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기도.”

       “아무튼 우리가 발견했으니 우리가 책임을 쳐야겠지.”

       

       쌍둥이 자매는 서로를 마주보며 계획을 짧게 논의했다.

       

       결론은 간단했다.

       

       “더 늦기 전에 데려가자.”

       

       두 사람은 쓰러져 있는 로즈마리 주변에 타원형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

       

       

       쌍둥이 자매에게 실려 온 로즈마리는 어둡고 서늘한 장소로 옮겨졌다.

       

       “꼬맹이. 우리는 마왕군이다.”

       “넌 마수들한테 잡혀 온 거야.”

       

       로즈마리는 의외로 놀라지 않았다.

       

       “흣.”

       

       여기까지 오면서 추론할 결과 짐작하고 있었다. 자신이 마왕군의 소굴에 들어왔다는 것쯤은.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한가.

       

       이들이 없었더라면 진작 죽었을 목숨이다.

       

       “두 사람에게 부탁 드릴 것이 있어요.”

       

       로즈마리는 캡슐 같은 곳에 들어가기 전, 에테르와 아카샤를 바라보며 목 놓아 탄원했다.

       

       “부디 저를, 마왕군에 받아주세요.”

       

       타르케닐 왕조는 멸망했다.

       

       국민은 제국인 손에 죽임당하거나 뿔뿔히 흩어졌다.

       

       꿈도 희망도 없는 상황에서 남은 것은 복수 뿐. 마왕 휘하에서 제국을 멸망시키고, 모든 것을 불태우리라.

       

       그런 로즈마리의 다짐을 아는지 모르는지, 에테르는 고개를 까딱하며 물었다.

       

       “입대 사유는?”

       “다시는 그 누구도 금안족을 깔보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자 아카샤가 씩 웃었다.

       

       “합격이다.”

       “마왕군은 우리 금안족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조직. 이곳에 들어온 순간부터 너는 우리의 가족이었다.”

       

       두 여인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인다.

       

       ‘가족….’

       

       로즈마리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실제 피가 이어진 가족은 제국군의 손에 죽었고, 양모처럼 따랐던 엘라는 왕성 첨탑에서 떨어져 유명을 달리했다.

       

       가족도, 재산도, 국민도.

       

       지켜야 할 모든 것을 잃어버린 로즈마리에게, 가족이라는 단어는 너무나도 생소해진 것이었다.

       

       “우선 그 팔다리부터 어떻게 해야겠군. 이렇게 된 이상 너도 괴물하자.”

       “괴물이 되면 두 분처럼 강해질 수 있는 건가요?”

       “물론이지. 급에 따라 편차가 있기는 하겠지만.”

       

       그렇다면.

       

       “까짓거, 마수 한번 해 보죠.”

       “요거 맹랑한 꼬맹이네.”

       

       이전에는 마수도 나쁜 줄 알았다.

       

       인간, 엘프, 금안족, 수인족, 드워프족 할 것 없이 모든 종족을 배척하는 악의 축으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이런 일을 겪고 나니, 마왕이 되어 금안족을 제외한 모두를 절멸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즈마리는 그런 생각을 품고선, 치료용 캡슐 안으로 들어갔다.

       

       이때쯤 소녀의 타락은 끝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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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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