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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4

       이렇게 즐거워도 되는 걸까?

        

       너무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은 후에 지독하게 우울한 사건이 올 예정이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게 개소리라는 것은 알고 있다. 원래 삶이라는 것은 그냥 하루 이틀 살고 끝나는 것이 아니므로. 1년, 아니, 일주일 안에도 행복한 일과 불행한 일이 번갈아 일어날 수 있고, 대게 이 두 가지 유형의 사건들은 서로 별다른 연관이 없다.

        

       그냥 앞에 겪었던 사건 때문에 뒤의 사건이 더 크게 느껴질 뿐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불행한 사건을 겪으면 반드시 행복한 사건이 일어난다는 말인가?

        

       물론, 아직 걱정해야 할 일은 많다.

        

       이대로 어느 정도 지낼 수는 있겠지만, 내가 모아둔 돈이 다 떨어지면, 그리고 방송 시청자 수가 떨어지고 들어오는 돈이 적어지면 우리는 바로 지금처럼 즐겁게는 지낼 수 없게 되리라.

        

       두 사람 모두 유능하니 어떤 일이건 찾아서 할 수는 있겠지만 당장 이곳에서는 학위도 뭣도 없는 처지이니 많은 돈을 버는 것은 힘들 거고.

        

       물론 그게 가까운 시일 내에 닥쳐올 만큼 내가 돈을 모으지 않았다는 소리는 아니지만…….

        

       이상한 점도 있다.

        

       내가 모아둔 돈을 지금의 내가 쓸 수 있다는 소리는, 이 세계에서 살아가던 ‘나’라는 존재와 여기 넘어온 나, 실비아 팬그리폰이라는 존재가 연속성 있는 존재라는 증거가 될 수는 있겠지만……

        

       내가 이쪽 세상에서 죽었다면, 원래 내가 모아둔 재산은 모두 내 가족이 상속받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원래대로’라면, 나는 빈털터리여야 했다. 전셋집은커녕 그 방 안에 있던 모든 재산은 가족들이 회수해갔을 테니까.

        

       그렇다고 마냥 내버려 둔 상황이라기에는 내가 너무 자연스럽게 그 재산을 쓸 수 있게 되었고—

        

       찰칵.

        

       문득 들려온 그 소리에 나는 정신을 차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클레어가 나를 향해 스마트폰 카메라를 향하고 있었다.

        

       “잘 나왔다.”

        

       그렇게 말하며 미소 짓는 클레어가 예뻤다.

        

       그리고 클레어의 그런 표정을 보고 있으면,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어차피 당장 고민해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돈이 부족해질 건 그때 가서 고민해도 괜찮았다. 돌아갈 방법은 지금도 꾸준히 고민하고 있었고.

        

       즐길 수 있을 때는 즐겨야겠지.

        

       앨리스와 함께 오늘 찍은 사진을 넘겨보는 클레어는, 그 자체로 그림이 되었다.

        

       카메라가 하나 더 없는 것이 조금 아쉬웠을 정도로.

        

       *

        

       우리가 있는 곳은 경복궁이었다. 원래는 입장료가 있지만, 한복을 입으면 입장료가 무료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서점과 가까운 곳이니 내친김에 바로 온 것이다.

        

       ‘동양’이라는 개념은 있지만, 그런 동양에 진짜로 와본 것은 처음인 두 사람은, 여기가 ‘궁전’이라는 말을 듣고는 엄청나게 예의 바르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심지어 클레어는 목소리조차 조금 낮췄을 정도다.

        

       그렇게까지 진지할 필요 없다고 말은 했지만—

        

       “비록 왕이 없던 곳이라도, 이 나라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곳이라면 마땅히 예의를 갖춰야지.”

        

       앨리스는 그렇게 말했다.

        

       아니, 우리나라 왕실은 국민들한테 그다지 지지받지 못하는데. 심지어 왕실이라는 주장을 할 수 없도록 헌법이 짜인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구한말의 이미지가 너무 시궁창이라, 심지어 그 시절의 이미지 때문에 조선왕조 전체의 이미지에도 어느 정도 해를 입었을 정도다.

        

       하지만 그런 역사 하나하나를 다 이야기하기에는 내가 지칠 것 같으니, 그냥 나중에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동영상이나 보여주자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우리는 왕위가 있는 나라에 살다 왔잖아.”

        

       클레어의 그 말에는 굉장히 반박하고 싶은 점이 많았다.

        

       당장 얘 앞에 있는 나도 아직까지는 황녀였다. 돌아가면 전투가 끝났을 터이고, 내가 실제로는 황제와 피가 섞이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들은 사람들이 있으니 위치가 어떻게 바뀔지는 알 수 없지만, 클레어는 내가 황녀라는 사실을 인지하고도 당당하게 ‘언니’라고 불렀었던 것이다.

        

       게다가 대놓고 티격태격하는 상대는, 향후 일이 굴러갈 방향을 생각했을 때 차기 황제가 될지도 모르는 인물이었다.

        

       샤를로트와 대화하면서도 딱히 주눅 드는 모습을 보인 적은 없고.

        

       그런데 이제는 존재하지도 않는 왕조를 보고 그렇게 긴장할 필요가 있나?

        

       “그게…… 이제 우리는 평민이잖아? 이런 곳에 귀족들이 오진 않아? 평등하다고는 하지만 귀족이라는 계급이 그렇게 쉽게 없어지는 것은 아니잖아.”

        

       내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자, 클레어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이 둘이 긴장한 이유를 알았다.

        

       두 사람 다 나에게 대놓고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내 방의 상태를 보면 빈말로도 ‘귀족’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우리가 오늘 돌아본 정도, 그러니까 호텔의 건물 상태나 도심지의 커다란 건물들을 올려다본 것만으로도 내 방이 얼마나 초라하고 작은 곳인지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을 거다.

        

       왕이 없지만, 있긴 했었다. 그리고 당연히 왕이 있다면 귀족과 평민의 구분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권력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실제로도 민주주의라고 주장하는 유럽의 여러 국가도 아직 귀족이라는 개념이 존재하는 곳이 있었으니까. 법률로는 어떨지 몰라도 자기네들끼리 지위와 돈, 부동산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

        

       사실 한국도 그렇게 될 수는 있었다.

        

       “수십 년 전에 전쟁으로 다 같이 알거지가 된 적이 있어서, 그 이후로는 귀족이니 뭐니 하는 계급은 없습니다.”

        

       그렇다. 적어도 ‘가문’으로 귀한 자와 천한 자를 나누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돈의 유무라면 또 몰라도.

        

       “적어도 ‘이름만으로 알 수 있는 계급’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설령 조금 잘난 집안의 사람이라고 해도 이런 곳에서 다른 이를 대놓고 무시하지는 못하겠죠.”

        

       “……그런 거야?”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완벽하게 평등하다는 소리는 아닙니다만.”

        

       내가 쓰게 웃으며 설명하자, 두 사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실 내 위치도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잡히지 않을 것이다. 산업혁명기의 비인간성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아제르나와 비교하면 여기에서 내 위치는 훨씬 나은 편이었으니까.

        

       “역시 배울 게 많은 곳이네.”

        

       결국 앨리스가 내놓은 결론은 그런 엉뚱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따라 하다 보면 큰일 납니다. 따라 할 것을 추천하는 나라들이 있으니, 차라리 그 나라들의 역사서를 들고 가시는 게 나을 겁니다.”

        

       영국, 프랑스, 독일 정도면 괜찮을까.

        

       ……기왕이면 러시아 혁명에 관한 책도 하나 사 가자. 내가 살아있을 때 혁명이 일어나서 총살당하는 건 싫으니까.

        

       *

        

       “삼겹살이라고 했던가? 맛있었어!”

        

       호텔 방으로 들어와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침대에 벌렁 드러누우며 클레어가 말했다.

        

       “스테이크와는 다른 느낌이더라. 가끔은 그런 식으로 직접 구워 먹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앨리스가 침대 위에 두꺼운 책을 우르르 내려놓으며 말했다.

        

       “오늘 재미있었어, 언니.”

        

       클레어가 침대에 일어나 앉으며 그렇게 말했다. 얼굴은 활짝 웃고 있었다.

        

       “뭐랄까, 어린 시절에 언니와 함께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전부 해본 기분이야.”

        

       “그렇습니까?”

        

       “응. 언니랑 있었을 때는 아는 게 없어서 상상도 해본 적이 거의 없지만, 레오와 함께 자라면서, 그리고 열심히 놀면서, 언니가 옆에 있었다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클레어는 눈을 감았다가 떠서 나를 바라보았다.

        

       “가끔 그런 걱정도 했다니까. 언니라는 존재가 사실은 어렸던 시절의 내가 지어낸 존재는 아닐까 하고. 상상 속의 친구라던가.”

        

       “…….”

        

       “그래도 다른 애들도 언니를 기억하는 걸 듣고 실제로 있었다는 확신은 했지만. 역시 아카데미에 들어갔던 건 잘한 일인 것 같아. 언니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지만, 언니는 내가 아카데미에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거지?”

        

       “…….”

        

       그건 부끄러워서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내 표정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던 클레어는 몸을 살짝 옆으로 눕혀서, 내 너머에 있는 앨리스를 보면서 말했다.

        

       “앨리스, 너는 어때? 사실 너도 오늘 어린 시절 하고 싶던 거 다 해본 거 아니야?”

        

       “응?”

        

       불시에 그런 질문을 받은 앨리스는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얼굴을 붉혔다.

        

       “누, 누, 누가 그러는데?”

        

       “너도 사실은 어린 시절부터 언니랑 친하게 지내고 싶었던 거 아니야? 이래저래 투정하긴 했지만 실제로는 같이 놀고 싶었던 거지?”

        

       그런가?

        

       질투해서 그렇게 틱틱댔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내가 몸을 완전히 돌려 앨리스 쪽을 보고 앉자, 앨리스의 얼굴이 완전히 붉어졌다.

        

       바니걸 복장을 했을 때 이후로는 본 적 없는, 완전히 새빨간 얼굴이었다.

        

       “……왜 그런 표정으로 보는데!?”

        

       “으꺅!?”

        

       결국 앨리스는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고 내 얼굴에 베개를 던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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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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