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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4

        

       그들의 얼굴에는 공포가 떠올라 있었다.

         

       그 공포는 마치, 산에서 캠핑하고 있던 사람이 곰을 마주했을 때 보이는 듯한 공포와 흡사해 보였다.

         

       항거할 수 없는 존재와 마주했을 때의 표정.

         

       바로 그 표정이었다.

         

       [ 저 정도 악귀라면 우리가 상대할 수가 없어! 빨리 퇴각해야 한다! ]

         

       악귀는 강력한 존재다.

       하지만 같은 악귀라고 해도 그 힘은 다 다른 법.

       대부분은 능력자들이 준비만 하고 있다면 상대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파사(破邪)나 퇴마(退魔)의 힘이 담긴 주물이나 아티팩트를 사용한다면 능히 맞상대할 수 있는 녀석들도 많았다. 사람을 홀려서 해를 가하는 악령 같은 경우에는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나, 퇴마를 전문으로 익힌 영능력자, 신력을 사용하는 신관, 혹은 주술을 익힌 사람이 필요했지만…물리력을 주로 다루는 악귀의 경우에는 무인이 직접 맞상대할 수도 있었다.

       물론 높은 경지에 이른 게 아닌 이상은, 주물이나 아티팩트의 도움이 필수적이었지만 말이다.

         

       장비만 있다면 군인도 맞상대를 할 수 있는 것이 악귀였다.

       악귀가 물리력으로 현세에 간섭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현세의 존재 역시 물리력으로 악귀에 간섭을 할 수 있다는 것과 같다. 그리고 거기에 악귀에게 효율적인 장비가 더해진다면, 정신력이 강하고 실력만 있다면 상대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저 악귀는 그런 수준을 넘었다.

         

       주물이나 아티팩트를 들고 있다고 가볍게 맞상대할 수 있는 수준을 가볍게 넘은 악귀였다는 말이다.

         

       아예 사람의 형체조차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뒤틀린 악귀라니!

         

       본래 귀신이라는 것은 사람의 형체에 가까울수록 존재를 유지할 수 있을 확률이 높다. 자아를 유지한다는 것은 곧 존재를 유지하는데 유리하다는 뜻이며, 존재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오랜 시간을 보내며 힘을 쌓을 수 있다는 말과 같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저렇게 뒤틀리면서도 끝까지 오랜 시간 동안 존재를 유지한 채 힘을 모아온 족속들.

       끔찍한 원한과 증오만을 원동력으로 삼아 형체가 완전히 무너져버린 존재들.

         

       다른 귀신들보다 압도적인 원한과 증오가 있기에 인간에게 더없이 위험한데다가, 불리한 조건에서도 힘을 축적하며 악귀나 악령까지 도달한 괴물.

         

       옛날 일본에서는 저런 존재들을 재앙신으로 숭배하였고, 온 힘을 다해 봉인한 뒤 빠져나오지 않기만을 기원하며 공포 속에서 그들을 섬겼다.

         

       지금에 와서는 재앙신으로 모시는 대신 강력한 악귀라고만 불렀지만….

         

       명칭이 달라졌다고 해서, 그 힘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인간의 흔적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뒤틀린 악귀는 끔찍하게 강하고, 끔찍하게 잔혹하다.

         

       옛 사람들이 상대하는 것을 포기하고 재앙신으로 모시기를 결정할 정도로 말이다.

         

       재앙신으로 불릴 정도의 악귀를 두 명의 무인이 상대한다?

       그것도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죽는다.

       벌레처럼 뜯겨 죽고, 장난감처럼 다뤄지다가 의미 없이 죽는다.

         

       무인 둘은 절대로 그렇게 죽고 싶지 않았다.

       명예로운 곳도 아니고, 고작 한국에서 그렇게 죽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둘은 미친 듯이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저 악귀에게 최대한 거리를 벌리고, 비상구 문을 이용해서 다른 층으로 이동한 뒤 건물을 빠져나가기 위해서.

         

       그렇게 얼마쯤 올라갔을까?

         

       신법 덕분인지, 악귀의 속도가 신법을 사용하는 그들보다 느릿느릿하기 때문인지….

         

       그들은 악귀와 충분히 거리가 벌려졌음을 깨달았다.

         

       또각.

       또각.

         

       조금 전 선명하게 들렸던 하이힐 소리는 흐릿해졌으며, 꽤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처럼 그 소리가 작게 변했다.

         

       [ 거리가 벌어진 것 같으니, 빨리 퇴각해야 해. ]

         

       무인 둘은 발걸음을 재촉해 위로 올라갔다.

         

       저 악귀가 그들을 따라잡기 전에 탈출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은 채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을 기다리는 것이 있었다.

         

       빛을 발하는 비상구 그림의 아래에 사람처럼 보이는 실루엣이 자리 잡고 있었다.

         

       [ 저건…?]

         

       [ 오, 아마테라스시여….]

         

       그것은 어두컴컴한 곳에서 제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듯 뚜렷하게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둠을 빚어서 만들어진 것 같은 아래층의 악귀와는 다르게 실제로 존재하는 육신으로 만들어진 것 같았고, 자신은 사람이라는 듯 기척을 내고 있었다. 그리고 숨을 쉬는 듯 가슴팍이 조금씩 오르락내리락했으며, 두 팔과 두 다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산발한 머리카락은 길게 늘어져 있었고, 이목구비로 보이는 것은 45도 각도로 틀어져 비상구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온몸으로 주장하고 있었다.

         

       나는 사람이다.

       나는 이곳에 존재하고 있다.

       그 증거는 내가 사람의 형상을 한 것이며, 인기척을 발하고 있는 것이며, 숨을 쉬는 것이다.

         

       그 존재는 그렇게 주장을 한 채, 비상구 문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들이 비상구로 나가기 위해서는 자신을 지나가야 한다는 듯.

       그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눈치채게 만들어야만 한다는 듯.

         

       그것은 그 자리에 그렇게 서 있었다.

         

       비상구 표식을 올려다본 채.

       비상구의 문을 등진 채.

         

       그렇게 있었다.

         

       [ 후우. 악귀가 아니니 다행이군. 빨리 제압하고 빠져나가도록 하자. ]

         

       무인 한 명은 비상구의 앞에 서 있는 존재를 확인하고 안심이 된 듯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무인에게 전음을 보내며 턱짓으로 재촉했다.

         

       악귀가 쫓아오기 전에 저 사람을 제압하고 비상구 밖으로 나가자는 신호였다.

         

       하지만 그 신호를 받아야 할 동료는 그 재촉에 응답하지 않았다.

       도리어 망부석이라도 된 것처럼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으며, 떨리는 눈으로 그와 비상구 앞에 서 있는 괴한을 번갈아서 바라보고 있었다.

         

       [ 이봐! 정신 차려! 지금 아래에서 악귀가 쫓아오고 있다고! 저 사람을 제압하고 빨리 빠져나가야 할 거 아냐! ]

         

       무인은 갑자기 패닉에 빠진 것처럼 얼어붙은 동료에게 전음으로 고함을 질렀다.

       어서 정신을 차리라는 듯 말이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야 하는 동료는 움직이지 않았다.

       도리어 절망이 가득 담친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 이봐, 대체 왜 그러는 거야! 답답하게 왜 이러는 거냐고! 저 빌어먹을 또각 소리가 가까워지잖아! ]

         

       또각.

       또각.

       또각.

         

       아래에서는 환장할 하이힐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규칙적으로 들리는 저 빌어먹을 또각거리는 하이힐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데, 대체 동료라는 인간은 왜 얼어붙은 것인가?

       그것도 아까 같은 기괴한 악귀도 아니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이는 것을 보고 말이다.

         

       무인은 검지를 들고 천천히 동료에게 다가갔다.

       고통을 주는 혈을 눌러서 강제로 정신을 차리게 할 생각이었다.

         

       눌리는 순간 입에서 비명이 저절로 튀어나올 정도의 고통이 엄습해오겠지만, 적어도 위기 상황에서 넋을 놓고 있다가 악귀한테 찢겨 죽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그렇게 무인의 손이 점차 동료에게 가까워졌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손이 혈에 닿기 전 동료가 전음을 보냈다.

         

       [ …눈치 못 챘어? ]

         

       [ 뭘? ]

         

       무인은 동료의 물음에 인상을 찌푸렸다.

         

       [ 저거, 가슴이 우리 쪽에 있는데, 얼굴이 문 쪽에 있잖아. ]

         

       공포가 가득 묻어있는 듯한 전음.

         

       [ …뭐? ]

         

       무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 모가지가 180도가 돌아가 있는데, 저게 어떻게 사람이야! 씨발! ]

         

       공포에 젖은 동료의 말을 듣고서야 무인은 그제야 깨달았다.

         

       저 그림자의 형상이 사람과 그저 비슷하기만 하다는 것을.

         

       저 사람 흉내를 내는 것은 문의 위쪽에 붙어있는 비상구 표식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가슴 역시 문 쪽에 있어야 하니까, 숨을 쉴 때마다 부풀었다가 줄어들기를 반복하는 가슴 역시 문 쪽에 있어야 정상이다.

         

       그래.

       그게 정상이다.

       그게 정상적인 사람의 구조란 말이다.

         

       그런데 저것은 어떤가?

       얼굴은 문 쪽에 나 있는데, 문 쪽에는 가슴이 아니라 등이 있지 않은가?

         

       목이 180도 돌아간 것처럼 말이다.

         

       [ 게다가 말이야. 씨발 저걸 자세히 봐! 다리에 발이 아니라 손이 달려있잖아! ]

         

       게다가 그것뿐만이 아니다.

         

       발이 달려있어야 하는 발목의 아래에는 손으로 보이는 것이 있었다. 발 대신 붙어있는 손이 마치 자신이 발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손가락을 가지런히 모은 채 바닥에 딱 달라붙어 있었다.

         

       차라리 철저하게 숨기기라도 했으면 속아 넘어가련만.

       딱 붙어있던 손가락은 중간중간마다 떨어져서 제각기 촉수처럼 기괴한 움직임을 보였다.

        마치 손을 풀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 이, 런 빌어먹을. ]

         

       이상한 점이 그뿐이냐?

         

       아니다.

         

       찬찬히 뜯어보니 이상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평범하게 보였던 팔은 관절이 두 개나 더 있었으며, 왼쪽 손에는 손가락이 일곱 개, 오른쪽 손에는 손가락이 여섯 개가 달려있었다. 가슴으로 보였던 것은 숨을 쉬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으나, 실제로 숨을 쉬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저 사람 흉내를 내는 것의 얼굴에는 숨을 쉴 수 있는 구멍이 없었기 때문이다.

         

       저것의 얼굴은 만들다 만 조각상처럼 이목구비의 윤곽만 대충 있었다.

         

       게다가 목 역시 이상했다.

       연결되어있다면 근육이 변화해야 하는 게 정상이건만, 마치 목 없는 마네킹 위에 잘린 머리를 얹은 것 같지 않은가.

         

       [ 흐흐. 빌어먹을. 위에도 귀신, 아래도 귀신이라니….]

         

       위로 올라가라는 듯 느릿느릿하게 기어 오는 아래층의 귀신.

       자신을 지나쳐가라는 듯 떡하니 비상구 앞에 대기하고 있는 위층의 귀신.

         

       [ …갇혔군. ]

         

       그들은 두 귀신의 사이에 갇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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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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