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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4

        

         “그래서, 얌전히 구경만 하겠다는 내 말은 들었지만. 기어이 못 참고 우리 문제의 인물을 살짝 찔러보려 했는데… 결과적으론 자꾸 기묘하게 엇갈려서 별반 훼방은 못 놓으셨다?”

         

         – …정말 죄송합니다. 확신을 기하려는 접근 방식이 다소 과격했다는 점, 반성하고 있습니다. –

         

         “진짜… 이건 그나마 큰 일이 안 나서 다행인 거야 너! 안 그래도 이상(ideal)과 현실이 똑같이 돌아가리란 법이 없어서 조마조마하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 발짝 늦게 지하 미로 속으로 뒤쫓아가는 악조건이었을지라도. 날이 다르게 손이 커지는 제로가 깔끔하게 따돌려졌다는 것에 대해 놀라야 할지, 아니면 프롤로그가 여전히 아무 간섭없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에 안도해야 할지 영 감이 안 왔다.

         

         덕분에 제삼자가 보는 내 얼굴은 필시 레몬이라도 씹은 것처럼 애매하게 일그러져 있지 않았을까?

         

         굳이 거울을 보지 않더라도 복잡미묘한 기분이 들면서 입꼬리 부근의 근육이 움찔움찔하는 게, 겁나 어색한 표정을 딱 짓고 있겠구만.

         

         네트워크 공유 시야를 잠시 해제한 뒤에 침대 옆에 있던 하운드로이드를 냉큼 낑낑거리며 잡아 끌어올려, 진짜 반성하라는 의미를 담아 실리콘 비슷한 재질로 이루어진 귀 부분을 마구 만지작거리며 잡아당겼다.

         

         …와중에 이것도 전투용이라 그런지 더럽게 무겁네 진짜. 이 물리적 훈육이 안 먹히는 문제아 녀석 같으니라고!

         

         “그럼 결국 리얼 타임으로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지켜보려면, 유일하게 진행 속도를 따라 잡을락 말락 하는 첩보 드론의 열화상 화면에 의존해야 한다는 거네. ”

         

         원래 프롤로그 이벤트를 끝마치고 탈출하는 주인공의 얼굴만 확인해도 만족할 계획에 비하면 이것도 굉장히 감지덕지한 상황이 분명하지만… 막상 현장 특파원 제로가 지근거리 취재가 가능한 바로 근처까지 어찌저찌 접근하는데는 성공했다 하니 정말 뭔가 아쉬웠다.

         

         마치 리듬 게임을 하는데, 모든 노트를 전부 퍼펙트로 친 주제에 마지막 건 또 아예 안 눌러버린 찝찝한 느낌이랄까.

         

         98점도 참 높은 점수지만 기왕 받는 거 100점이 어땠겠니…라고 하면 역시 너무 막된 몬스터 패런트 같나? 그냥 안 하겠습니다. 네.

         

         “중간중간에 전파가 안 닿아서 끊기는 건 어쩔 수 없으니까, 최대한 알아보기 쉽게 부드러운 화면이 출력되는 드론 고도를 가급적 유지하기로 하고. 제로 넌… 그럼 일단 얼굴을 먼저 봤겠네? 인상은 어땠어, 혹시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비슷한 타입이 있나??”

         

         – ……. –

         

         제로의 서비스 지역 확대를 위하여 몰래 빨대를 꼽은 할렘가 불법 방송 경유지, 충돌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네오 헤이븐 외곽 기지국, 최근 탐지되지 않도록 독자적인 라인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는 각 비밀 기지들까지.

         

         내 사이버웨어로 들어오는 전송 채널의 품질을 정제하는 잠깐 동안, 스포일러가 되어도 괜찮으니 살짝 미리 귀띔해달라는 식으로 제로를 부추겼으나.

         

         재깍 나올 줄 알았던 제로스러운 대답, 벌써 상대를 위험 분자라 판독한만큼 꽤 신랄한 비난이나 공격적인 언사 대신 예상 외로 무겁고 긴 침묵이 이어졌다. 괜스레 나도 불안해질 정도로.

         

         단순히 혼란과 무질서를 경계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현재까지는 기대 이상으로 양식미와 상식적인 면모가 강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했나?

         

         사실 칼밥 먹고 사는 인물에게 ‘살인을 멀리하라~’ 같은 대가리 꽃밭 뜬구름 잡는 헛소리를 하면 ‘그럼 내가 대신 죽어 주리?’하는 비아냥거림을 들어도 싸다. 당장 나만 해도 순수하고 무고한 피해자와 22세기를 살아가는 이상 피할 수 없는 죽음을 구분 짓고자 냉정한 시각을 유지하려 애 쓰고 있기도 하고.

         

         하지만 자신에게 여유가 있을 때 쓸데없는 피를 흘리는 걸 경계하고, 그 빠져들기 쉬운 증오의 나선을 줄이기 위해 나름 노력하는 인물 정도면 그래도 꽤 괜찮은 편 아니야?

         

         긍정적인 부분을 높게 평가하는 것도 아니고 방해가 될 것 같다며 낮게 폄훼하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얘가 이렇게 누군가에 대한 견해를 펼치는데 망설일 이유가 뭐가 있지.

         

         “야, 나까지 불안하게 왜 그래…?”

         

         – …아닙니다. 골격과 일부 검증된 비고 사항을 토대로 신원은 이미 특정하였으나…. 차후 직접 보고 인상을 결정하시는 게 아샤님의 판단에 도움이 될 것 같아 고민 중이었습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제 견해를 잠시 보류해도 괜찮겠습니까? –

         

         “무, 므에? 세상에. 말을 아끼겠다고? 너가??”

         

         막대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한 운석이 어느새 우리집 안방에도 몰래 떨어졌었나.

         

         웬일로 소극적인 면모를, 사실상 내가 따로 물어본 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사양한 걸 감안하면 제로가 이렇게까지 난색을 표하는 건 정말 처음이다 처음.

         

         끼익, 끽. 끼잉…!

         

         애가 뭘 잘못 주워 먹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직접 업데이트해주는 보안 프로그램도 있는 만큼 일개 단말기에서 발생한 오류가 본체에 피드백을 줄 수는 없으리라 생각되는데, 정보 생명체의 경우엔 매커니즘 자체가 전혀 다를 수도 있으니까.

         

         그런 생각으로 품에 안은 하운드로이드의 머리를 쓰다듬던 걸 중단한 채 입안을 막 손가락으로 쑤시니, 과연 입을 닫는 것도 도망치는 것도 선택하지 못하고 버둥거리다가… 이내 본심을 실토했다.

         

         – 놈의 이상성을 관측한 결과, 섣부른 선입견을 심어드리는 것보단 이것에 대해 더 잘 알고 계실 아나스타샤님의 판단을 중시하는 편이 훨씬 좋을 것 같아 첨언을 자제한 것입니다. 그리고 부디 이빨에 손이 다치실 수도 있으니 그런 위험한 장난은 좀 그만두어 주시면…. –

         

         “그래, 그런 게 걱정되면 처음부터 그렇게 얘기하면 되지! 그러게 왜 인상이 어떻냐니까 갑자기 수상하게 말을 싸악 돌리려고 해??”

         

         요 녀석, 요 깜찍한 녀석! 하며, 입질하는 귀여운 강아지를 데리고 노는 느낌으로.

         

         물론… 전갈 같은 꼬리와 상어 이빨을 닮은 치아 구조, 악어와 유사한 치악력을 가져 외형적으로 예뻐할 구석이 애매한 모델인 데다가, 당초에 내용물이 저 제로니까 애완동물과는 거리가 멀기는 하다만. 아무튼 그런 태도로 우선 웃어넘기는 척했다.

         

         뭐, 실제로도 상반신만 내 품에 안겨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드로이드에 비하면 약간 작은 사냥개 제로를 가지고 놀고 있었지만 속으론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말이 되시겠다.

         

         아, 서스펜스물에서나 감돌 분위기가 피어오른다거나 나쁜 의도로 속이려는 게 보인다는 건 아닙니다? 이 바보가 나한테 설마 그럴 리가 없지.

         

         그렇지만 분명한 이점이 있다 계산하였을 때, 무언가를 고의적으로 숨기거나 누락하는 걸 망설이지 않는 것도 제로 특유의 앙큼한 배려 중 하나. 이미 몇 번이나 겪어봤던 상황이다.

         

         우리 인공지능이 언급한 ‘그’의 이상성은 간단, 특별히 내부 정보를 입수하거나 돌아가는 전체 상황을 객관적으로 조율할 근거를 얻을 수 없음에도.

         꼭 두 눈으로 본 것처럼 기묘한 확신을 가지고 행동한다…가 제로가 내세운 주요 관측 요소임과 동시에 내가 특별한 존재라고 한 게 이해가 간다는 논리였는데.

         

         ……내가 앞서 ‘네오 헤이븐’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막 과장되게 떠들었던 주인공의 특수성은 어디까지나 ‘항상 살아나갈 구멍을 찾는 기적적인 호운’, 거기에 ‘더러운 말썽에 휘말려 드는 천부적 악운’.

         

         또 ‘중요한 순간과 장소에 있게 만들어주는 귀중한 인맥을 얻는 능력’과 ‘플레이어가 조종하는 캐릭터였다 한들, 개인의 시야로 보면 절대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진취성’ 등등 그 막강하고 기가 막힌 서사에 관한 올려치기였지, 미래 예지 같은 얼토당토않은 영역에 한 발 걸친 허튼 소리가 아니었다고?

         

         인간의 몸으로 빅데이터를 기반 활용하는 시뮬레이션 시스템이나 해석 인공지능에 준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무시무시한 괴물이랑 엮이는 건, 아무리 나라도 고민을 좀 더 해보겠다며 만남을 미루겠지~

         

         어?? 애당초 그런 게 가능하려면 나 같은 초 희귀 케이스가 아니고서야 절대….

         

         그러니까, 아마 절대로 불가…능한…….

         

         – 위신호 제거(Fragment Anti-Aliasing) 프로세싱 완료. 정밀 드론이 촬영한 열화상 시야, 지금부터 사이버웨어로 송출해드리겠습니다. 그럴 가능성은 적지만, 열화된 입체 시야로 인한 울렁증이 심하게 발생하실 경우 신속히 중단해 주셔야 합니다. –

         

         “아? 응, 그래. 어.”

         

         사람이 척하면 척하고 흩어진 정보 파편들을 이어 붙여 결론만 낼 수 있다면 얼마나 편했을까?

         머릿속 간질간질한 부분을 파악하고, 미처 시원하게 긁어서 해결하기 직전에 제로가 끼어들었다.

         

         사실 이걸 방해를 했다 표현하는 것도 한창 상념에 빠져 있던 내 주관적인 시선이지, 제로는 그저 빨리 해달라 부탁한 화상 전달 준비를 마치자마자 보고한 것뿐이리라.

         

         그냥 단순한 우연의 일치겠지.

         

         헌데 이렇게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착착 돌아가는 일의 흐름 속에서, 난 지독한 기시감과 함께 약간 깜짝 상자의 뚜껑을 여는 걸 미적거리는 세계의 의사 같은 걸 느꼈다 하면 누가 믿어 주려나 모르겠네.

         

         직접 보고 판단하라. 제로가 미리 선입견을 걱정할 정도라면 혹시… 예상 외로 내가 아는 얼굴이 튀어나왔다는 뜻과 마찬가지가 아닌지.

         

         그런 비약과 상상을 한 켠에 미룬 채로, 전송된 현장 열화상 촬영물을 심각하게 모니터링하기 시작한 나는 생각보다 금방 오만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어쩐지 화질이 많이 안 좋을 거라 경고를 다 하더라니.

         

         아오 씨, 겁나 눈 아프네 이거! 여기 전파 송수신이 얼마나 불안정한 거야 대체!! 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야 현장 자체가 방해 물질로 가득한 땅 속 깊은 곳이니까….

    분량이 많이 적습니다. 죄송합니다.
    쭉쭉 써서 본격적으로 분석하고 현장 판도를 해설하는 부분까지 쓰고 싶었는데, 아나스타샤가 화면을 붙잡고 무서운 얼굴로 노려보는 건 결국 후편이 되겠네요.
    대신 실질적으로 자기보다 체장이 큰 금속 로봇 사냥개를 인형처럼 끌어안은 채 불만스럽게 뒹구는 그녀를 상상하며 기다려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익명을 희망하시는 독자님의 10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재밌게 읽어주시고 계시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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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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