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64

     지브롤터 후작령.

     

     바르셀로나를 지브롤터와 별개의 영지로 두고 본다면, 에스파니아 땅에서 두 번째로 제국과의 전쟁으로 인해 입은 피해가 적은 곳이라고 볼 수 있다.

     

     1등은 당연히 바르셀로나.

     영주성도 영지도 안전하게 지켜낸 바르셀로나와 달리, 지브롤터는 두 가지 핵심 장소가 공략당했다.

     첫 번째, 협곡.

     500년 동안 단 한 번도 뚫리지 않았던 협곡이 뚫렸다.

     이것만으로도 노스트럼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기에 가장 적절한 상징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두 번째, 영주성.

     500년 동안 이어져온 지브롤터 구 백작성에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로 인해 많은 것들이 소실되었다.

     다행히 재빠른 피난 명령으로 지브롤터 후작령 영지민들이 제국군에게 추격을 당하여 살해당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으나, 구 백작성이 불타면서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말았다.

     지브롤터 500년 역사.

     500년 동안 무너지지 않았던 구 백작성은 활활 타버렸고, 성으로서의 틀은 남아있으나 그 내부에 있던 온갖 역사적인 물건들이 전부 불에 그을리거나 녹아내리고 말았다.

     심지어 지하에 있던 지브롤터의 모든 조상들까지.

     지하 안치실에 역대 가주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던 영안실에도 불이 옮겨붙었다.

     관 속에 누워있던 백골들은 전부 관과 함께 불에 타들어가며 잿더미로 남았고, 남은 건 오직 그런 영안실이 있었다고 하는 흔적 뿐.

     지브롤터의 역사가 전부 불에 타버렸다.

     그러나 죽은 이들의 유해보다도 더 끔찍한 죽음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건 지브롤터를 마지막까지 지키려고 했던 한 여인의 죽음이었다.

     샤를로트 지브롤터.

     과거에는, 샤를로트 렘부르 군터라고 불렸던 여인.

     그녀가 죽었다.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다고는 하지만, 실종 이후 그녀는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합스베르크 폰 테르시안이 실종되었으나 실질적으로는 죽은 것으로 사료되는 것처럼, 샤를로트 지브롤터 또한 죽은 것으로 세상은 널리 인식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샤를로트 지브롤터는 죽었다.

     지브롤터 후작령에서는 공식적으로 실종된 두 사람, 아니 세 사람에 대한 장례식이 열렸다.

     그레이 지브롤터.

     샤를로트 지브롤터.

     그리고 그레이 지브롤터의 실종과 함께 자취를 감춘 아스타시아-지브롤터.

     그렇게 셋이 사라지고 난 뒤, 지브롤터는 둘로 갈라졌다.

     하나는 여전히 지브롤터에 남은 자.

     그리고 다른 하나는, 지브롤터가 아닌 다른 곳에 머무르며 새로운 삶의 희망을 이어나가는 자.

     새롭게 후작성으로 이름을 붙여야 하는 지브롤터 후작성, ‘캐롤라인 성’.

     로버트 경은 몇 번이고 드나들었던 그 언덕 위의 백악의 거성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찾으셨습니까, 후작 각하.”

     “아아.”

     캐롤라인 성의 정원.

     “공사다망한데 불러서 미안하네, 바르셀로나 백작.”

     

     제복이 아닌 평범한 복장을 한 적발의 중년, 크림슨 지브롤터가 백발의 여성 메이드의 보좌를 받으며 정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지브롤터는 오직 한 명.

     크림슨 지브롤터 후작, 단 한 명 뿐.

     그의 팔은, 한 쪽이 비어있었다.

     * * *

     쪼르르르.

     백발의 메이드는 익숙하면서도 우아한 손길로 차를 따른다.

     메이드의 솜씨치고는 너무나도 우아한 귀부인의 솜씨였으나, 로버트는 찻잔만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후작 각하.”

     “그래.”

     “우선, 누아르 도련님을 위시한 자녀분들은 현재 오로솔 아카데미에서 잘 지내고 계십니다.”

     “음.”

     로버트의 보고에 크림슨 후작은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오로솔에는…그녀가 있으니.”

     “카르멘 공왕께서 자녀분들의 대모가 되어주셨으니, 분명 따님분들도 안심하고 오로솔에서 지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분들이 지내는 곳은 다름아닌…협곡 재단 장학회 건물이니.”

     “음. 안전 하나는 확실한 곳이지.”

     “예. 그레이 도련님이 지내셨던 곳이었죠.”

     침묵이 감돈다.

     한 때, 그곳의 주인이 있었으니까.

     “누아르는 어떻게, 재단 이사장을 하겠다고 하던가?”

     “예. 졸업하자마자 바로 협곡 재단을 이어받아, 오로솔 아카데미 재건 및 난민 복지 사업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주인은 바뀌었다.

     “레타르 아가씨는 1학년으로 입학하여 어린 학생들을 이끌고 있고, 에단이 호위기사로 항상 붙어있습니다. 누아르 도련님이 장학회 활동을 하는 동안, 자녀분들은 카르멘 공왕께서 대모가 되어주시어 돌봐주시고, 화이츠들이 유모가 되어 1:1로 붙었습니다.”

     “그 아이들은 예전부터 아이들을 잘 돌봐주고는 그랬지.”

     “예. 어머니를 잃었지만, 어머니의 빈 자리에 따른 상실감을….”

     로버트는 바로 앞, 후작의 옆에 앉은 백발의 메이드를 보며 눈을 파르르 떨었다.

     “그레이 도련님께서 상실감으로 인해 얼마나 괴로워하셨는지, 샤를로트 마님께서는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뜨끔.

     백발 메이드 여인은 눈을 좌우로 굴렸다.

     크림슨 지브롤터의 머리카락보다 더 붉어진 눈동자를 깜빡이고, 날카로워진 손톱을 꼼지락거리며 로버트의 눈치만 봤다.

     “크림슨 후작 각하.”

     “그래, 로버트 경.”

     “언제까지 비밀로 하실 생각이신지?”

     “공식적으로는 평생.”

     크림슨 후작은 조용히 차를 들이켰다.

     “비공식적으로는, 아이들이 오로솔 아카데미를 졸업할 때.”

     “아이들이 행여나 ‘어머니는 살아계신다’라는 말을 할까봐 걱정되시는 겁니까?”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거든.”

     크림슨 후작은 한탄하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실종되었던 어머니가 살아서 돌아온 것도 그런데, 이렇게 변해버렸으니.”

     그러고는 남아있는 팔로 백발 메이드의 목을 끌어안듯 손을 뻗더니, 메이드의 입을 살짝 들어올렸다.

     “어머니가 이렇게 되어버렸는데, 어찌 함부로 말을 할 수 있을까.”

     “…….”

     백발 메이드의 송곳니는 너무나도 날카로웠다.

     그리고 그보다 더 특이한 점이 있다면, 어느 한 여인과 흉부 크기가 상당히 비슷하다는 점 정도.

     “심지어 말도 못하지.”

     “…….”

     실어증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불을 한껏 삼키는 바람에 목을 다쳤던 것이, 인외의 존재가 되어버리면서도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

     “글은 쓰실 수 있지 않습니까.”

     끄덕.

     백발 메이드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됐네. 유감스럽지만, 샤를로트 지브롤터는 죽은 것으로 하는 게 유리하다고 결론이 나왔잖는가.”

     “…….”

     “셜롯이 살아있다면, 애초에 살아있을 때도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어. 자신이 만일 죽는다면, 카르멘과 재혼을 하라고.”

     “……아직은 하지 않으셨잖습니까.”

     “때는 카르멘에게 맡겼지. 에스파니아가 제대로 기반을 마련한 것도 아닌데 덜컥 결혼을 해버린다면, 사람들이 어찌 생각하겠나.”

     “…….”

     여러모로 할 말은 많았지만, 로버트는 침묵하기로 결정했다.

     “지금 제일 신경을 써야 할 건 백성들의 마음이야. 지브롤터 또한 크게 피해를 입었다. 지브롤터도 죽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우리는 모두 같은 죽음의 고통을 함께하는 동지들이다.”

     “…예. 실제로 어떤 이들은 저열한 생각도 하고 있더군요.”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다.

     귀족이라고, 마스터라고 갑작스러운 죽음이 피해가는 게 아니다.

     “그레이 도련님이 한 때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간이란 마음 속에 저열한 의식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라, 자신보다 잘난 이들을 항상 자신보다 아래에 처박고 싶어한다고.”

     “…….”

     “자신의 가족이 죽었는데, 지브롤터는 전부 무사하다. 잘못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지만, 지브롤터를 향한 억하심정이 분노와 증오로 촉발될 수 있지요. 제국을 끌어들인 자들에 대한 분노로.”

     “그것이, 지금 두 사람의 죽음으로 어느정도 상쇄되고 있지.”

     “예. 후작각하의….”

     “이것도 마찬가지고.”

     크림슨 지브롤터는 자신의 비어있는 한쪽 팔을 가리켰다.

     “자네와 이야기를 하는 게 꼭 그레이와 이야기를 하는 것 같군.”

     “…….”

     “그레이가 자네를 얼마나 신경을 많이 썼는지 새삼 느끼게 되는군. 그러니 자네에게만 이렇게 밝히겠네.”

     크림슨 후작이 백발 메이드를 손으로 가리켰다.

     “앞으로 내 빈 팔을 내가 죽을 때까지 책임져줄 블러드 엘프, 샬롯일세.”

     “…….”

     “뭐,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도록 할까. 바토리 소장, 그녀가 원래 샤를로트를 납치하려고 계획했다고 하더군. 그런데….”

     “그 때, 세인트 지오가 나타났다?”

     “…그래.”

     크림슨 후작이 짜증을 내고, 메이드 샬롯이 표정을 굳힌다.

     “그레이가 분명 묻었을 테고, 내가 죽여버렸어. 그런데도 그렇게 나타난 건 어쩌면 황금룡이 마지막으로 후손에게 기회를 준 것일지도 몰라. 황금의 망령들이 깨어나 지브롤터를 향해 끊임없이 지상에서 일어나던 것처럼.”

     “…….”

     “정말 끔찍할 정도로 질긴 녀석이었지. 다행히…하아.”

     크림슨 후작이 메이드 샬롯을 꼭 끌어안는다.

     “셜롯이 결계 속에서 불을 지르면서까지 동귀어진 할 생각을 하는 바람에 놈은 죽은 거지. 셜롯은…바토리 그녀가 몰래 빼돌려 흡혈귀로 만들어버린 거고.”

     “흡혈귀…블러드 엘프라고는 하지만, 피를 빨아야 살 수 있는 거 아닙니까?”

     “피 대신 다른 걸 빨리고 있으니 괜찮네.”

     툭.

     메이드 샬롯이 크림슨 후작의 허리를 툭 쳤으나, 크림슨 후작은 그저 낮게 웃기만 했다.

     “하여튼, 자네에게 기대는 게 많아. 나의 역할도 이제는 끝났고, 이제는 자네나 카를로스 경과 같은 젊은 이들에게 모든 걸 맡긴 채 살아가야 하는 상황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 손으로도 저 정도는….”

     “어허. 금방이야. 몇 년 안 걸리겠지.”

     크림슨 후작은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 자네에게 주어진 칭호를 몹시 좋아한다네.”

     “…….”

     “본인이 말하기 껄끄럽다는 건가? 그렇다면 내가 직접 말해주지. 그레이 지브롤터가 벼려낸 명검.”

     “……후작 각하의 도움도 받았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고맙군.”

     “…그런데, 샬롯이라는 이름은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마님을 부르던 이름 아닙니까?”

     “그거.”

     크림슨 후작은 피식 입꼬리를 비틀었다.

     “원래 내가 샬롯이라고 불렀는데 그 새ㄲ…그 자가 멋대로 샬롯이라고 부르더군. 그래서 내가 바꿨어.”

     “그….”

     “이제 그 자는 존재하지 않으니, 원래대로 불러도 되겠지.”

     “…….”

     “인간 샤를로트는 죽었고, 이곳에는 그저 백발의 메이드 샬롯이 있을 뿐이야. 캐롤라인 성에는 누구도 방문하지 않지.”

     “예. 그야….”

     로버트 경은 바깥을 바라봤다.

     “이곳은 ‘엘프의 성’이 되어버렸으니까요.”

     캐롤라인 성.

     집사의 제복과 메이드복, 그리고 기사의 제복을 입은 이들은 하나같이 수상할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들이었다.

     “차는 잘 마셨습니다. 혹시 따로 하명하실 게 있습니까?”

     “하명이라니. 내가 어찌 왕국 최강의 검성에게 명을 내린단 말인가. …그러나, 지금 바빠보이는 군. 혹시 일정이 있나?”

     “오로솔로 가야합니다. 카르멘 공왕께서 찾으시기에.”

     “그렇군. 바쁜 사람을 잡아놓고 실없는 이야기나 한 것 같지만…항상 고맙네.”

     크림슨 후작은 잔을 들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하네, 로버트 경.”

     “예.”

     “…그런데, 소식은 못 들었아보군. 카르멘 공왕은 지금 오로솔이 아니라, ‘자치령’에 있네.”

     “…예?”

     자치령.

     “남쪽으로 가게. 그곳에, 카르멘 공왕이 있으니.”

     에스파니아 왕국과는 다른, 새로운 장소.

     과거, 세이레네라고 불렸던 곳에 새로운 이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01

    폐기된 외전-어머니가 무능왕으로부터 ‘내 몸을 탐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방에 불을 지르는 장면

    사실 이거 삽화까지 만들어서 씬을 넣으려고 하다가, 써봤자 그 순간의 감성이 느껴지지 않을 것 같아 폐기하기로 했습니다

    본편에 들어갔으면 진짜로 죽냐?!?!?!?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제법 괜찮은 장면이었을 텐데

    아 진짜로 죽이게 되었다면, 본편에서 그렇게 불세탁으로 떠나실 예정이었습니다

    이 씬을 쓸까말까 고민했던 게 불꽃과 함께 사라지다 편

    생존여부를 끝까지 결정하지 못해서(비행황궁 최종전까지도) 씬을 안 썼습니다

    슈뢰딩거의 불세탁 어머니네요

    이제는 관측된

    #02 보너스 회차 다음 편 안 보이는/360화로 보이는 건에 대하여

    완결 체크 등록 이후 8일까지는 무료회차/비공개회차로만 등록됩니다

    정상적으로 다음편 보이게 하려면 완결 체크 해제 후 8일 동안 쉬어야 합니다

    외전은 전부 보너스 회차로 연재될 예정입니다

    #03 아마도 애써줘용에 작품 하나 시작할 것 같습니다. 28일 목요일 12시(정오) 즈음에 올릴 것 같습니다

    넵 신작입니다
    아직 연재를 할지 고민 중이기는 한데, 실제로 스타트하게 된다면 공지로 안내 드리겠습니다
    19금 하렘 판타지 쪽이고, 조금 능?욕 조?교 가 섞인 떡위주의 다크판타지가 될 것 같습니다

    매국명가랑 관련이 없는 소설이지만, 약간의 홍보…인 것입니닷

    그거랑 별개로 매국명가 외전은 외전 끝날 때까지 1일1편 계속 업로드 될 것 같습니다

    그레이와 아스타시아의 애만들기써줘용은 예정상으로는 3월31일 즈음이 될 것 같습니다

    다음화 보기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