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64

       캡슐에서 나왔을 때, 로즈마리의 몸은 여러모로 바뀌어 있었다.

       

       우선 가장 문제였던 팔다리.

       

       “이게 뭐야.”

       

       금속으로 되어 있다. 손끝부터 어깨가 있는 곳 직전까지 전부. 사람의 질감이 아니었다.

       

       “뼈가 아주 으스러져 있었어.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치료가 안 되더라고.”

       “그래서 절단하고 티타늄 합금으로 대체했다.”

       

       하루아침에 사지를 잃어버리게 됐다.

       

       로즈마리는 자신의 팔을 쥐었다 폈다 했다. 자기 의지보다 살짝 느린 템포로 움직이는 손가락을 보니 생소했다. 아니, 사실은 생소한 것을 넘어 흉측하게 느껴졌다.

       

       “진짜로 괴물이 되었군요.”

       

       팔이나 다리뿐만이 아니다.

       

       전신이 무감각하게 바뀐 느낌.

       

       당장 눈앞에서 가족이 죽고, 가정교사인 엘라마저 그런 끔찍한 꼴을 당했는데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요.”

       “마수는 감정이 희미하다. 철화의 축복을 받으면 그런 부작용이 반드시 따라오게 되지.”

       “그러면, 제가 정말로 마수가 된 건가요?”

       “그래.”

       

       이상하게 당혹스럽다는 생각이 거의 들지 않았다.

       

       이 또한 ‘철화의 축복’인지 뭔지 하는 효과 때문이리라.

       

       아카샤는 ‘철화의 축복’이 마왕님께서 각성한 금안족에게 내리는 축복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일어나 봐. 걷는 것부터 연습해야지.”

       

       잠시 잊고 있었다. 매끈했던 자신의 다리도 이제는 철이었다. 발가락을 움직이자 까딱거리는 소리가 났다.

       

       기괴하다.

       

       “적응해야 해.”

       

       로즈마리는 캡슐에서 나와 걷기 연습을 시작했다.

       

       왼손에는 검은 머리 여인, 오른손에는 하얀 머리 여인.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쌍둥이에게 양손을 맡기며 직선 코스를 천천히 이동해 본다.

       

       이러고 있으니 옛날 생각이 난다.

       

       왼쪽에는 오빠, 오른쪽에는 언니.

       

       막 걸음마를 뗀 자신의 손을 잡아주며 걷기 연습을 했었던 기억.

       

       눈물이 핑 돌아버릴 것 같은데도, 심상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하다.

       

       “축복이 아니라… 저주군요.”

       “응?”

       “아무것도 아니에요.”

       

       쌍둥이는 잘 모르는 듯했지만, 얼마 전까지 사람의 마음을 품었던 로즈마리는 알 수 있었다.

       

       세상만사의 기본 원칙.

       

       모든 것에는 대가가 있다.

       

       로즈마리는 새 생명을 얻은 대가로 마왕에게 감정을 빼앗겼다.

       

       그래도.

       

       “아, 아하하하.”

       

       웃음은 나온다.

       

       비록 기계가 내는 소리처럼 무미건조한 조소였지만, 이런 흉내라도 낼 수 있는 게 어디인가.

       

       “왜 그러니?”

       “아니요. 이러고 있으니까 옛날 생각이 나는 거 있죠.”

       

       로즈마리는 걸음을 연습하면서 사생활을 줄줄이 털어놓았다.

       

       “옛날에 제 가족도 지금 언니들이 해주시는 것처럼 제 손을 잡아주곤 했었죠. 그 손에 이끌려 나들이를 나갈 때마다 어찌나 신이 났는지….”

       “언니, 우리보고 언니라.”

       “여기에 들어온 순간부터 가족 아니던가요?”

       “그래, 맞다. 가족이지.”

       

       에테르와 아카샤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지금부터 언니라고 불러도 돼요?”

       “물론이지, 동생.”

       “물론이다, 동생.”

       

       그렇게 로즈마리는 언니들을 따라 복도 끝까지 향했다.

       

       마왕군의 진지는 스산한 분위기였다. 산뜻하고 평화롭던 타르케닐 왕도의 정경은 더는 볼 수 없었다.

       

       어릴 적 동화책에서 읽었던 괴물들의 소굴 같았다. 실제로도 그랬고 말이다.

       

       ‘설마 내가, 하루 사이에 동화에 나올 법한 괴물처럼 변해버리다니.’

       

       걷기 연습을 마친 로즈마리는 의자에 앉아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완전 좋잖아?’

       

       걸으면서 금세 느꼈다.

       

       이 신체는 압도적으로 강건하다. 몸의 일부가 기계로 되어있으니 걷고 또 걸어도 도무지 지치질 않는 것이다.

       

       또한 ‘철화의 축복’을 받아 뇌와 오감의 기능이 향상된 것도 체감됐다.

       

       예전보다 잘 보이고, 잘 들리고, 잘 생각할 수 있다.

       

       당장 복잡한 계산을 하라고 시키면 순식간에 풀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테르 언니, 언니가 그 애 좀 돌봐 줘. 나는 전선 시찰하러 내려갈 테니까.”

       

       아카샤가 손을 흔들며 떠났다. 로즈마리도 아카샤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는 에테르를 멀뚱히 올려다봤다.

       

       ‘쌍둥이라고는 해도 분위기가 미묘하게 다르네.’

       

       아카샤가 살짝 가벼운 느낌이라면, 에테르는 진중하고 무거운 분위기다.

       

       마치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눈빛이었다.

       

       “언니. 언니가 둘 중 먼저 태어났나요?”

       “어? 응. 그래.”

       “그러면 큰언니라고 불러도 되겠네요?”

       “…….”

       “안 돼요?”

       

       로즈마리는 일부러 슬픈 표정을 지었다.

       

       “되, 된다.”

       

       에테르는 머뭇거리다가 그리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기 쉬운 사람이다.

       

       ‘이게… 마수? 내가 알던 거랑은 다른데.’

       

       어쩌면 마수는 짐승형 괴물들만을 가리키는 용어일지도 모르겠다.

       

       눈앞에 있는 에테르 언니라든지, 실제 마왕군을 쥐고 있다는 이들은 의외로 평범한 사람일 수도.

       

       어쨌건 로즈마리가 하고 싶은 일은 하나였다.

       

       “큰언니, 저도 마법 배우고 싶어요.”

       “마법?”

       “네. 어제 보니까 언니들은 막 이렇게 이렇게….”

       

       로즈마리의 어휘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단어가 많다.

       

       스태프? 마법진? 원소마도?

       

       이름은 듣고 있어도, 막상 눈앞에서 보니까 뭐가 뭔지 알 리가 없었다.

       

       “어어! 이렇게 이렇게!”

       

       그래서 손짓 발짓을 동원하며 설명한다.

       

       “그런 거 저도 해보고 싶어요.”

       

       그러자 에테르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올라가는 것 아니겠는가.

       

       “좋아.”

       

       에테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오도록.”

       

       그러더니 로즈마리를 어디론가 끌고 들어갔다.

       

       텅!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은 책상에 앉아있었고, 눈앞에는 두꺼운 책들이 산더미처럼 놓여있었다.

       

       “아…?”

       

       자동으로 멍청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게 다 뭔가요?”

       “우리 금안족은 본래 전계마도를 다루던 종족이다. 하지만 전기는 다른 속성에 비해 직관적이지 않지. 여기, 내가 발견한 원리를 바탕으로 이론을 꼼꼼히 읽어보고 이해해야만 기초에 들어서게 될 거다.”

       

       대충 책장을 넘겨보니 모르는 기호투성이였다.

       

       “이걸 다 하라고요…?”

       “여기 다섯 권이 가장 기초다.”

       “기초요? 처음 하는 사람한테 기초로 이런 걸 가르치나요?”

       “기초는 처음이기 때문에 기초가 아니야. 모든 공부에 주춧돌(礎)이 되는 것이기에 기초(基礎)인 거다.”

       

       수식을 보니 어질어질했다.

       

       “인간들이 다닌다는 아카데미 보면 막 기초적인 공식만 외워서 마법을 쓴다고 하던데….”

       “전기에는 그런 게 없냐고?”

       “네.”

       “있기야 하지.”

       “정말로요?”

       “단, 그렇게 배우면 기초가 없게 된다.”

       

       로즈마리는 입을 비죽였다.

       

       “저는 아직 초심자인데요.”

       “너, 인간들한테 복수하고 싶다며?”

       “맞아요.”

       “별로 추천하지는 않는 방법이다만… 동생이 그걸 바란다고 하니까 직접 얘기해주도록 하지.”

       

       에테르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네가 생각하는 방법으로 공부하면 제국놈들에게 토벌당하기 딱 좋다.”

       “토벌, 이요?”

       “우리 군에 들어온 이상, 싫든 좋든 너는 마수다. 그 점을 유념하고 학문을 닦도록.”

       

       토벌? 토벌이라고?

       

       ‘웃기지 마. 내가 그놈들을 족쳐야지, 왜 그놈들이 나를 토벌하는데?’

       

       가뜩이나 가족과 왕국을 잃어버린 것도 진절머리 나는데.

       

       복수하려 했다가 도리어 당하고 끝난다?

       

       답답해서 못 참고 쓰러질 것이다. 로즈마리의 분개심은 ‘철화의 축복’ 따위로 막을 수 있는 감정이 아니었다.

       

       죽인다.

       

       족친다.

       

       전부 노예로 만들 것이다.

       

       필리우트 제국의 수도에, 마왕군과 금안족을 상징하는 깃발을 꽂을 것이다.

       

       “알았어요. 큰언니 말대로 하면 되잖아요.”

       “잘 생각했다. 내가 도와줄 테니까 처음에는 감을 잡는다는 생각으로 따라오기만 하면 돼.”

       

       에테르는 가장 쉬운 책을 꺼냈다. 펜과 종이도 꺼내서 백지에 적어주는 식으로 1:1 밀착 과외를 시작했다.

       

       이러고 있으니 가정교육을 받았던 때로 회귀한 것만 같았다.

       

       그 후로 로즈마리는 에테르의 수업을 잘 따라갔다.

       

       솔직히 말해, 에테르가 잘 가르친다고 할 수는 없었다.

       

       전형적인 천재 스타일.

       

       뭔가 아는 건 많은데, 한꺼번에 알려주려고 하다 보니까 초반부에는 따라가는 것이 엘랑카야 산맥을 등반하는 것처럼 힘들었다.

       

       그러나 로즈마리도 어릴 적부터 수재 소리를 듣던 재원.

       

       ‘할 수 있다. 아니, 하면 된다.’

       

       아직 군사훈련이니 뭐니 받지는 않았지만, 자신도 어엿한 마왕군의 일원이 되었다.

       

       만약 군사작전을 벌일 날이 온다면, 최대한 군을 지휘하는 지위까지 올라가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공부.

       

       오직 공부뿐이다.

       

       “생각보다 잘하는구나. 이 정도면 군단장급은 거뜬하겠어.”

       “군단장이요?”

       “마왕님이 여신의 손에 봉인되었다는 건 알고 있지? 그 봉인을 풀 열쇠를 찾기 위해 이번에 군단을 새로 조직할 계획이다. 그 수는 나를 포함하여 아홉 명이지.”

       

       그 말을 들은 로즈마리의 입이 떡 벌어졌다.

       

       “언니, 생각보다 높은 사람이었군요.”

       “응? 뭐, 아니….”

       

       브루슈, 그 인간말종의 말이 맞았다.

       

       ‘월척이다.’

       

       고장 난 시계도 하루 두 번은 맞는다더니.

       

       로즈마리는 그런 대화를 나눈 이후로 더욱더 열심히 책을 파고들었다.

       

       기본적인 마나를 익히고, 전자기론을 공부하며, 막 발명되었던 마력초를 피워 스태프를 빚어보기도 했다.

       

       “어라?”

       

       로즈마리의 스태프는 바이올린과 그 현이었다.

       

       “이게 맞나?”

       “스태프는 사용자의 심상을 반영하지. 동생은 연주를 좋아하나 보구나.”

       “연주 말이죠?”

       

       당연히 좋아한다.

       

       가정교사였던 엘라가 현을 튜닝해 주었던 그 기억을 좋아한다. 레슨했던 나날의 기억을 좋아한다.

       

       사교회 앞에서 첫 곡을 선보였을 때의 기억을 좋아한다. 죽는 순간에 연주했던 타르케닐 교향곡의 음색을 좋아한다.

       

       “어찌 싫어할 수 있겠나요. 추억이 담긴 물건인데.”

       

       로즈마리는 바이올린을 쓸어내리며 수심에 잠겼다.

       

       동시에 이런 감정도 들었다.

       

       이 바이올린으로, 제국인들을 위한 장송곡을 연주해 주겠다는 감정.

       

       또한 이 바이올린으로, 타르케닐의 국민들을 위한 위령곡을 연주해 주겠다는 감정이었다.

       

       그런 생각을 품은 로즈마리는 자신의 재능을 살려가며 군 복무를 준비했다.

       

       “알겠지만 시작은 말단부터다.”

       “알아요. 낙하산은 필요도 없어요.”

       “좋은 마음가짐이야.”

       

       맨 아래부터 기어올라간다. 천천히, 그러나 끊임없이. 무던하게 훈련받고 연구하며 마도를 익혔다.

       

       덕분에 골초가 되었다.

       

       

       **

       

       

       “후우… 그런 시절이 있었지.”

       

       하지만 아무렴 어떠한가?

       

       언니의 충고 덕분에 지금의 자신이 있었다.

       

       “한때는 구천지대계 4석까지 올라갔지. 스크롤도 눈 감고 그릴 수 있게 됐었고 말이야.”

       

       어디 그뿐인가?

       

       “고유마도도 두 개나 익혔어.”

       

       ‘스코프’랑 ‘위령’.

       

       둘 다 전략적으로 무지막지한 위력을 지지는 마법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나는 맵핵이고 다른 하나는 마수 조종이었으니까. 군사를 지휘하는 입장에서는 최고의 능력들이었다.

       

       뭐, 지금은 아무래도 쓸모가 없지만.

       

       로즈마리는 티케이크를 포크로 찍어 입에 넣었다.

       

       우물우물.

       

       “맛있다. 제국인들은 이런 걸 참 잘 만든단 말이야.”

       

       지금은 티파티 시간.

       

       꿈에 그리던 두 언니를 포함한 금안족들, 제국인 몇 명과, 요호족을 위시한 수인족까지.

       

       모두가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초가을을 만끽하는 중이었다.

       

       도리어 옛날 이야기를 했더니 제국인들이 슬금슬금 눈치를 보고 있었다.

       

       “모두,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클라이스 하스펠트가 한숨을 쉬며 로즈마리를 측은하게 바라봤다.

       

       “저는 이해해요. 소중한 사람을 잃으면 눈이 돌아가서 아무것도 안 보이죠.”

       “응응. 그렇지만 이젠 괜찮아. 시대가 바뀌었는걸.”

       

       전계정령의 숫자는 어느덧 1천 체를 넘어갔다.

       

       ‘전자기학’도 충분히 보급되었고, 틸레트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금안족의 수도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비록 세상을 절멸하겠다는 전술적 목표는 좌절되었지만, 언니와 티파티를 벌이겠다는 전술적인 목표는 이룬 것이니 잘된 거 아닐까?

       

       “그래서, 32대 황제는 어떻게 됐나요?”

       “켈슨 필리우트 말이지?”

       

       로즈마리가 원수처럼 생각했던 사람.

       

       “물론 죽여버렸지.”

       “어떻게…?”

       “케이크.”

       

       척.

       

       로즈마리는 쇼트케이크를 찍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괴뢰국을 세운 다음, 그 왕국 편으로 베릴륨 케이크를 선물해 줬어.”

       “…….”

       “소리소문 없이 뒈져버리더라고.”

       

       역사서에 적힌 한 줄이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왜냐하면 본래 32대 황제는 고혈압과 고지혈증으로 병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후… 과거편을 연달아 쓰느라 길었습니다

    로즈마리는 외전이 헤를라인보다 적게 쓰였는데, 이는 대부분의 서사를 이미 본편에 풀어버린 것이라 그렇습니다. 기껏해야 나라 세 개(+제국까지 네 개) 멸망시켰다… 가 그 이후의 내용인데, 솔직히 볼 게 별로 없습니다.

    아무튼!

    이젠 컷이에요 컷!

    이번 화 마지막 장면부터 시작해서 미래편으로 넘어갈 겁니다!!

    미래편은 생각해 보니 에테르 시점에서 전개해도 될 것 같아요.

    역시 주인공의 시점에서 하는 것이…

    카우렐리아 혁명 파트 + 버멜과 못다한 이야기(if 아님) 풀다가 친구들이랑 행복하게 사는 모습 조금 보여드리고 완전히 끝맺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