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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5

        

       또각.

       또각.

         

       아래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규칙적으로 들리는 하이힐의 소리.

       계단 한 칸을 기어오를 때마다 팔로 내리치는 그 소리.

         

       저 소름 끼치는 소리가 지근거리에 다다르면 악귀가 그들에게 손을 쓰기 시작할 테고, 그렇게 된다면 순식간에 찢겨서 죽을 테지.

         

       하지만 피할 수는 없다.

         

       악귀에게서 도망칠 수 있는 경로에도 귀신이 있었으니까.

         

       사람의 형체를 간신히 흉내 내고 있는 귀신.

       비상구를 가만히 보고 있는 귀신이 말이다.

         

       [ …선택을 해야 해. ]

         

       무인은 이제 선택을 해야 한다.

         

       아래에 내려가 악귀와 맞서 싸우거나.

       비상구를 가로막고 있는 귀신을 물리치고 도망을 가거나.

       왠지 불길함이 느껴지는 창문을 깨고 밖으로 뛰어내리거나.

         

       혹은, 포기하고 죽음을 맞이하거나.

         

       [ 아무리 생각해도 창문이 가장 안전해 보이긴 한데….]

         

       [ 아니. 100% 함정이다. 거긴 가면 무조건 죽을 터. ]

         

       무인 둘의 마음에 조급함이 서렸다.

       하지만 그들은 조급함에 쫓기는 대신에, 최대한 머리를 차갑게 한 채 안전한 경로를 찾았다.

         

       냉정해져야 한다.

       이성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감정에 휘둘려선 안 된다.

         

       지금 이런 위기 상황에 정신을 놓아버린다면, 무조건 죽을 테니까.

         

       [ 아래에선 재앙신이라고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을 기괴한 악귀가 올라오고 있고, 저 비상구에 서 있는 귀신 역시 범상치 않은 녀석으로 보인다. 그런데 보란 듯이 이곳으로 가라고 광고하는 듯한 안전해 보이는 곳이 있다? 무조건 함정이다. ]

         

       [ 생각해보면 이상하지. 무언가를 가려놓은 것처럼 새까만데,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으니….]

         

       [ 아마 창밖에도 저것 비슷한 것이 있을지도 모르지. 창문을 가리고 있는, 악귀나 악령 같은 것이 말이다. ]

         

       [ 그럼 창문을 깨고 나가려는 순간, 생긴 틈새로 기어들어 와서 우리를 공격하겠군. ]

         

       [ 아니면 뛰어내리려는 순간 덮칠 수도 있지. 그럼 무방비상태로 당하게 된다. ]

         

       [ 하…. 뭐 이딴….]

         

       창문은 함정이다.

         

       무인 둘은 냉철한 머리로 그렇게 판단을 내렸다.

         

       [ 그렇다고 아래로 갈 수도 없지. 저건 우리가 상대할 수 없는 녀석이다. ]

         

       [ 그럼 남은 것은 하나인데….]

         

       무인 둘의 시선이 비상구 쪽으로 향했다.

         

       비상구 앞에 가만히 서 있는 귀신.

       비상구로 빠져나가는 것도, 위로 올라가는 것도 못 하게 가로막고 있는 저 귀신.

         

       [ …그나마 사람 형상이긴 한데. ]

         

       [ 최악에는 아래에서 올라오는 녀석과 비슷한 급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저 뒤틀려 있는 악귀는 쉽사리 볼 수 있는 녀석이 아니야. 박진성이라는 주술사 녀석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갓 성인이 된 몸으로 끔찍할 정도의 귀신을 하나 이상 부리는 것은 힘들 거다. ]

         

       [ 그…렇겠지. ]

         

       둘은 냉철한 머리로 상식적인 판단을 내렸다.

         

       저 끔찍한 악귀를 다룰 정도라면 강령술에 조예가 있는 주술사다.

       재능도 뛰어나고, 강령술과 궁합 역시 잘 맞을 터.

         

       하지만 박진성은 주술 불모지인 한국 출신이고, 나이가 갓 성인이 된 상태였다.

       게다가 자료를 보아하니 다른 강령술사처럼 몸 어딘가가 뒤틀리거나 변형이 일어나지도 않았고, 정신 역시 또렷해 보였다.

         

       즉, 악명과 위명을 떨치고 있는 강령술사들에 비해서는 손색이 있는 것이 당연할 터.

         

       아무리 재능이 출중하고 재주가 있다고 해도, 저렇게 강력한 악귀라면 하나를 다루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 즉, 저 비상구에 있는 녀석은…. 시간 끌기 용도일 가능성이 크겠지. ]

         

       [ …그래. 일리가 있어. 저 악귀의 속도가 엄청나게 느리니까, 그것을 보완하려고 저런 것을 세워뒀을 수도 있겠어. 저것을 상대하는 동안에 악귀가 도착할 수 있게, 시간을 끄는 용도로 말이야. ]

         

       그렇기에 둘은 상식적으로 판단했으며, 상식을 기반으로 둔 가장 올바른 결론을 내렸다.

         

       아래층에서 올라오고 있는 악귀가 그들의 코앞까지 도달하기 전에, 비상구를 가로막고 있는 저 귀신을 물리치고 어서 이 건물을 빠져나가기로 말이다.

         

       둘은 동시에 칼을 꺼내 들고 기를 불어넣었다.

         

       검기.

         

       그들의 몸속에서 흘러나온 내공이 검을 휘감으며 빛을 발하기 시작했으며, 날카로운 절삭력을 부여했다. 그리고 그러한 에너지는 점차 두터워지기 시작했다. 날은 여전히 날카로웠으나, 두텁게 자리 잡은 에너지는 충격과 함께 언제든 폭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절삭력으로 가르고, 에너지로 때린다.

         

       일격필살(一擊必殺).

         

       비효율적으로 내공을 사용해서라도 한 번에 뚫고 지나가겠다는 그들의 의지가 돋보이는 모습이었다.

         

       둘은 검에 내공을 피워올리며 천천히 귀신에게 다가갔다.

       폭발적으로 일격을 가할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가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둘은 귀신에게 점차 가까워졌고, 그들이 가까워짐에 따라 귀신의 고개가 서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끼긱.

       끼기기긱.

         

       비상구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 귀신의 고개가 서서히 아래로 내려갔다.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 관절에 녹이 슬어버린 기계가 내는 것처럼 기괴한 소리를 내었고, 귀를 어지럽히고 소름이 돋게 만드는 비명 같은 소리를 내면서 천천히 고개를 움직였다.

         

       끼기긱.

       뚜두두둑.

         

       그렇게 고개를 숙인 귀신의 머리가 서서히 돌아간다.

         

       무인이 다가올수록, 그들의 생기가 느껴질수록, 그들의 숨결이 귀신에게 닿을수록.

         

       점차 귀신의 고개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가로로 고개를 돌렸고, 그 속도는 점차 빨라졌다.

         

       그리고 이윽고 귀신의 고개가 완전히 돌아갔다.

         

       윤곽만 남은 이목구비로 무인과 마주 보았고, 자신의 머리통이 공이라도 되는 것처럼 세로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빙글.

       빙그르르.

         

       미술관에 전시된 오브제라도 되는 것처럼 머리는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했고, 그 속도는 점차 시간이 지나갈수록 빨라졌다. 처음에는 아주 느릿했지만, 종국에는 모터가 달린 것처럼 아주 빠르게 말이다.

         

       토옹.

       토오옹.

         

       그것은 머리를 그렇게 회전시키며 제자리에서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운동을 하는 사람이 몸을 풀기 위해 발을 구르는 것처럼, 아주 가벼운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그 움직임은 점차 격렬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통.

       통.

       통.

         

       한 발로 뛴다.

       발 대신 붙어있는 손에서 손가락이 이리저리 춤을 추며 몸을 튀어 오르게 만든다.

         

       오른쪽으로 튀어 오르고, 왼발로 튀어 오르고, 양발로 튀어 오르고, 튀어 오른 상태에서 다리가 팔이라도 되는 것처럼 허공을 휘젓는다. 손가락이 꿈틀대었고, 손가락이 길어졌다 줄어들기를 반복하며 이리저리 허공에 선을 그린다. 어둠이었기에 그 경로가 보이지 않아야 정상이었지만, 저승의 등처럼 미미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 비상구의 표식이 조명이 되어 그 선을 비춘다.

         

       토옹.

       통.

         

       가볍게 뛰어오를 때마다 손가락이 선을 그리고, 머리가 회전한다.

       그리고 다리에 호응하듯 팔이 제멋대로 움직였으며, 팔에 붙어있는 손가락 역시 다리에 붙어있는 손가락과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가느다란 밧줄 뭉치를 들고 무당이 미친 듯 뛰는 것을 닮아있었고, 갈라진 천 쪼가리를 들고 춤을 추는 무용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뛴다.

       뛴다.

       또 뛴다.

         

       손가락을 휘저으며 뛰고, 촉수같이 늘어진 손가락을 오방색의 천이라도 되는 것처럼 휘두른다. 팔과 다리가 제각기 깃발이라도 된 것처럼 휘두르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머리는 춤을 위한 도구라도 되는 것처럼 사정없이 다룬다.

         

       [ … ]

         

       [ … ]

         

       무인 둘은 그 모습을 보고 말을 잃어버렸다.

         

       마치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귀신의 춤사위를 멍하니 바라보았고, 금방이라도 위에서 아래로 내려칠 것처럼 들어 올린 검 역시 휘두를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렇게 멍하니 서 있었다.

         

       또각.

       또각.

         

       아래에서 하이힐의 소리가 분명히 들리고 있음에도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는 듯 눈이 풀렸고, 귀신의 춤사위가 계속될수록 그 초점은 더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윽고 그들은 정신을 완전히 놓아버렸고, 춤을 추는 귀신에게 그대로 홀려버렸다.

         

       악령(惡靈).

         

       사람을 홀리는 귀신.

         

       정신력만 강하다면 경지가 낮아도 능히 저항할 수 있었으련만.

       안타깝게도 이 두 무인은 정신력이 그다지 강하지 못했다.

         

       화족 가문에서 애지중지 품어왔을 무인들이다.

       다른 무인이 일상적으로 겪는 고된 일 같은 것은 거의 겪지 않을 수 있었으며, 뼈를 깎고 정신을 부쉈다가 짜 맞추는 것 같은 고된 훈련이 없어도 큰 대우를 받았을 터.

         

       그런 무인이 악령에게 저항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리라.

       하물며 진성이 직접 만들어낸 악령이라면 더더욱 그러할 터.

         

       그렇게 무인은 정신을 놓아버렸고, 검에 피워 올리던 내공도 꺼트리고 말았다.

       그들은 얼어붙기라도 한 것처럼 그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고, 덩실덩실 춤을 추는 악령이 점차 가까워지고 있음에도 그 어떠한 저항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또각.

       또각.

         

       춤을 추는 악령은 회전하는 머리를 붙잡아 멈췄다. 그리고 머리를 찰흙을 주무르듯 이리저리 주무르더니 얇은 모양으로 만들었고, 손가락을 움직여 무인의 입을 열고 자기 머리를 그 안에 밀어 넣었다.

         

       마치 그 몸 안에 들어가려는 것처럼.

         

       꿈틀.

         

       악령은 몸을 꿈틀대며 무인의 몸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었다.

       입안에 들어가기 편하게 얇고 긴 모양의 머리를 시작으로 몸뚱어리를 이리저리 비틀었고, 뱀이 사람의 식도 안으로 기어가는 것처럼 스르륵 무인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무인 한 명은 악령에게 빙의되고 말았다.

         

       그리고 남은 무인 한 명은….

         

       또-각.

         

        – 돈벌레는동물계절지동물문다지아문순각강그리마목그리마과에속하는절지동물이다그리마는어두운곳에서볼수있으며다리가아주많다다리가길쭉하고어디든기어다닐수있으며다리가아주길고다리가아주많…

         

       악귀의 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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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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