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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5

       검을 휘두른다.

         

       후우웅-

         

       어떤 기교도 존재하지 않는, 그저 평범한 내려치기.

         

       모든 걸 잊었다.

         

       이세계에서 잔뜩 싸 들고 온 기술도, 이곳에서 마구잡이로 배운 무공들도.

         

       전부 깊숙한 곳에 처박아둔 채, 이제는 끝이라고 생각했던 기본을 다시 찾는다.

         

       이제는 없어도, 떠올리지 않아도 되는 줄 알았다.

         

       긴 시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해 온 것들이 제 몸에, 영혼에 각인되어 있다고 믿었기에.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가를 깨닫는 데까지 딱 하루 걸렸다.

         

       ‘자만심이란 참 대단하지.’

         

       자만(自慢).

         

       자기 자신에 대한 만족으로 가득 차, 뽐내거나 과시하고 나태해지는 감정.

         

       무인이라면, 아니, 무인이 아니더라도 그저 사람이라면 기피해야 하는 감정 중 하나.

         

       끊임없이 경계하고, 의심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조금이라도 긴장을 늦추는 순간 소리, 소문 없이 찾아와 온몸을 휘감아 버리니.

         

       ‘또 자만했다.’

         

       살기에만 급급했던 때와 달리 경험이 충만했기에, 또 이미 걸어본 길이기에.

         

       그대로 걸으면 그뿐이라며 자만했다.

         

       자만할 수 있을 만큼 성장은 빨랐고, 생각보다 큰 위기 없이 지금에까지 이르렀으나.

         

       ‘자만은 언제나 결정적인 순간에 앞을 가로막는다.’

         

       가장 필요한 순간에 제 앞길을 막아버렸다.

         

       현경.

         

       누군가에겐 인생의 목표이나, 이 세계의 강자와 싸워나가야 하는 백우진에게는 그저 최소한의 조건인 경지.

         

       그 최소한의 조건 충족까지 딱 한 걸음만 남겨둔 이 상황에서 말이다.

         

       한 가지 다행이라고 한다면 그의 머릿속에 있는 방대한 경험이었다.

         

       이세계에서의 10년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

         

       피 튀기는 전장 속에서 숨을 고르는가 하면, 호화로운 대접 속에서 흐물흐물 녹아내리기도 했다.

         

       노력하는 만큼? 아니, 노력의 배로 이어지는 성장에 자만 또한 겪어보았다.

         

       이미 겪었기에, 뒤늦게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의 상태 또한 다른 의미에서의 자만이었음을.

         

       몸에 아교처럼 눌어붙은 자만심을 떨쳐내기 위해선 두 단계를 거쳐야 한다.

         

       첫 번째는.

         

       ‘내가 자만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처음이자 가장 거대한 벽이다.

         

       충만하다 못해 흘러넘치는 자신감과 자존감은 이를 쉬이 받아들일 수 없기에.

         

       다행히도 이를 앞서 경험한 바 있는 백우진은 생각보다 쉽게 받아들였다.

         

       그렇기에 남은 것은 하나.

         

       ‘재조립.’

         

       일견 튼튼해 보이지만, 그 속은 허술하기 짝이 없는 공든 탑을 다시 쌓아 올리는 것.

         

       이때 가장 좋은 건 역시 기본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었다.

         

       내려치고, 휘두르고, 찌르고.

         

       기본기를 반복할 때마다 이미 단련된 근육들이 수축하고 팽창하기를 반복한다.

         

       백 회, 천 회, 만 회.

         

       수련의 양이 점진적으로 늘어갈 때마다 자세가 미미한 변화를 거친다.

         

       제아무리 눈썰미가 뛰어난 이라도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변화.

         

       그토록 작은 변화임에도, 커다란 결과가 뒤를 이었다.

         

       쐐애액-!

         

       달라진 파공음이, 이를 증명한다.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주변의 공기가 요동을 치는 탓에 이때부터는 위험이 찾아들었다.

         

       “이쪽에서 무슨 소리가 났다고 했는데…?”

       “육혈귀 님께선 아직 출타 중이지 않으셨던가?”

       “혹시 모르니 수색해 보자고.”

         

       강렬한 파공음이 전달하는 미약한 소음을 느낀 이들이 왕필의 거처까지 찾아온 것.

         

       백우진은 그럴 때마다 독고천의 머리를 손에 쥐고서 왕필이 쌓아둔 시체 더미에 숨었다.

         

       구더기가 들끓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시체의 산.

         

       “…네놈은 인간이 맞나?”

         

       오죽하면 독고천이 이리 묻기까지 했을까.

         

       그렇게 찾아오는 불청객들로부터 안전하게 대피하고 나면 다시 검을 휘두른다.

         

       아침이든, 밤이든.

         

       하늘에 걸린 것이 무엇인지 상관없다는 듯 몸을 움직이고, 지치면 누워서 잠이 들었다.

         

       대충 열흘이 지나갔을 무렵에는 안전을 위해 시체 더미 속에서 잠을 청했다.

         

       어찌 고통스럽지 않고, 괴롭지 않으랴.

         

       나흘째에는 이러다 정말 코가 비틀어질 것 같아 귀식대법(龜息大法)의 사용까지 고려했으나, 그는 꾹 참았다.

         

       사용하는 동안 오감이 닫혀버리는 귀식대법은 상대에게 들켰을 때 아무런 저항이 불가능하단 단점이 존재했기에.

         

       “후우…, 후우….”

         

       몸이 점점 무거워진다.

         

       아무리 인간의 한계를 초월했다고 한들, 결국 벽은 존재하는 법.

         

       좀처럼 이루지 못하는 수면과 점점 더해가는 수련의 강도는 육신을 갉아먹었다.

         

       더없이 고통스럽고, 잔인하게.

         

       만 번을 휘둘러야 거칠어지기 시작하는 숨이 이제는 천 번만 휘둘러도 찾아온다.

         

       그러면서도 하루 동안 해내는 양은 변함없으니, 하루하루 지쳐가는 건 당연지사.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지.

         

       ‘조금만 더.’

         

       몸이 부서져 내릴 때마다 반대급부로 정신은 더욱 또렷해지니.

         

       눈에 무언가가 아른거리기 시작한다.

         

       주마등인가, 깨달음인가.

         

       ‘둘 다 아니지.’

         

       백우진이란 인간은 이곳에서 죽을 운명이 아니니 주마등이 보일 리 없고.

         

       깨닫기도 이미 다 깨달았으니 깨달음일 리 또한 없다.

         

       눈에 아른거리는 것은 그저 길이다.

         

       딱 한 발 모자랐던 탓에, 여태껏 보지 못했던 너머의 길.

         

       눈꺼풀 위를 까맣게 색칠하고 있던 자만이 점점 벗겨지니 드디어 보이기 시작한 것.

         

       박차를 가한다.

         

       억만 근은 나갈 듯한 팔을 위에서 아래로, 좌에서 우로 힘차게 내지른다.

         

       그럴수록 눈앞에 아른거리는 길은 선명도를 더해갔다.

         

       ‘조금만 더.’

         

       그가 마지막으로 검을 내리쳤을 때.

         

       마침내 변화는 시작되었다.

         

       육신 안에 갇혀 있던 정신이 마침내 자유를 얻어 보다 멀리 뻗어나가고, 날카롭게 벼려져 있던 감각은 도리어 뭉툭해진다.

         

       날 선 감각에 도리어 다가오지 못했던 것들이, 그제야 안심하고 찾아와 제 몸을 간질인다.

         

       세상과 육신을 연결하는 통로, 백회혈(百會穴).

         

       그것이 열림으로 인해 닫혀 있던 상단전 또한 열린다.

         

       텅 비어 있던 것을 제힘으로 채워야 했던 하단전, 중단전과 달리 상단전은 스스로 채울 필요가 없었다.

         

       백회혈을 통해 열린 길이 멋대로 기운을 빨아들여 상단전을 충만하게 하였으니.

         

       “후우….”

         

       짧게 숨을 내쉬자 온몸에 달라붙어 있던 부정적인 것들이 떨어져 나간다.

         

       시체 더미 속에서 얻어 온 썩은 내도, 육신을 갉아먹던 피로와 고통도.

         

       마침내 현경에 발을 들여놓은 백우진은.

         

       “…일단 자자.”

         

       그대로 누워 잠이 들었다.

         

         

       * * *

         

         

       모산을 수색하기 시작한 지 어언 스물하고도 하루가 넘은 날.

         

       “…더 이상의 수색은 힘들 것 같네요.”

         

       지칠 대로 지쳐버린 조원들을 보며 제갈연지가 체념하듯 말을 꺼냈다.

         

       제아무리 경지에 오른 무인이라도 완전히 녹초가 될 만큼, 그들은 강행군을 이어 왔다.

         

       사실 지금까지 버틴 것도 용한 일이었다.

         

       그들의 육신은 이미 나흘 전에 한계를 맞이했다.

         

       지난 나흘간 더 수색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정신력 덕분.

         

       “일단…, 마을에서 푹 쉬는 게 좋겠어요.”

         

       결국 그들은 하산을 결정했다.

         

       수색을 아예 포기한 것은 아니고, 적절한 휴식과 더불어 준비를 더 하기 위함이었다.

         

       산의 초입에 다다른 제갈연지가 함께 내려온 각우에게 물었다.

         

       “각우 도장, 저희와 함께 가시는 게 어떠세요? 저희 때문에 고생하신 보답을 하고 싶어요.”

         

       그녀가 간곡히 청했으나, 각우는 제안을 거절했다.

         

       “허허…, 오랜 수행 탓인지 빈도는 속세보다 산이 더 편하오.”

       “하지만….”

         

       못내 아쉬운 그녀가 한마디 덧붙이려 했으나, 각우는 고개를 저었다.

         

       “정 미안하거든 다시 올 때 구수한 찻잎이나 좀 가져다주시구려. 이곳은 다 좋은데 차 마시기가 참으로 힘들어서 말이오.”

         

       그의 말에 마음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게 된 그녀가 웃으며 포권을 취했다.

         

       “예, 그럼 그럴게요. 며칠 후에 올라올 테니 도장께서도 쉬세요.”

       “허허, 내 걱정은 마시오. 그럼 그때 뵙겠소이다.”

         

       짧은 작별의 인사를 나눈 뒤, 제갈연지를 비롯한 신룡조원들은 하산했다.

         

       “다들 멈추세요.”

         

       아니, 하산한 것처럼 꾸몄다.

         

       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조원들을 멈춰 세운 그녀는 곧장 혼자만이 품고 있던 의문과 의구심을 그들에게 알려주었다.

         

       “으음…, 그건 너무 비약이 아닐지.”

       “하지만, 그만큼 돌아다녔는데 흔적이 단 한 개도 없었던 것도 이상하기는 하지.”

         

       누군가는 비약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일리가 있다고 여겼다.

         

       양쪽 모두 일리 있는 말들.

         

       활발하게 토론이 오갈 때, 성격 급한 도경이 나섰다.

         

       “에잇, 그러면 가서 확인해보면 되잖아!”

         

       이에 기다렸다는 듯, 제갈연지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럴 거예요.”

         

       그러면서 그녀는 품에서 목갑 하나를 꺼내어 조원들을 향해 내밀었다.

         

       “이게 뭐요?”

       “천양보활단(天陽保活丹)이에요.”

       “헉…!”

         

       이를 들은 조원들이 헛바람을 들이켰다.

         

       천양보활단은 피로해진 몸에 활력을 불어넣는 보양단이다.

         

       그것도 의선이 직접 만든.

         

       “처, 천양보활단이면 의선께서 직접 만들어 해마다 극소량만 시중에 나돈다는 그…?”

       “네, 맞아요. 그 천양보활단이에요.”

         

       의선(醫仙).

         

       의술이 신선의 경지에 다다랐다고 하여 붙여진 별호.

         

       무공의 경지로 따지면 현경이나 다름없는 그가 손수 만든 천양보활단은 해마다 극소량이 시중에 풀려 비싼 값에 팔려나간다.

         

       한 알만 먹으면 평범한 사람이 나흘간 잠을 자지 않아도 피로를 느끼지 못한다는 최고의 보양단.

         

       달칵

         

       경쾌한 소리를 내며 열린 목갑 안에는 그러한 천양보활단이 무려 열 알이나 들어 있었다.

         

       “이, 이걸 어떻게 구한 거야?”

         

       당선영이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하오문에게 부탁했어요.”

         

       각우가 극구 만류했던 장소를 뒤지기 위해선 그를 자신들로부터 떼어 놓아야 했다.

         

       그래서 제갈연지는 지친 조원들을 이끌고 하산하겠단 핑계를 댔다.

         

       실제로 조원들은 걷는 것조차 쉽지 않을 정도로 지쳤으니 의심할 수 없었을 터.

         

       며칠 뒤에 오겠다는 말로 방심하게 해두었으니, 지금이야말로 기회가 아닌가.

         

       “다들 한 알씩 먹고 운기조식을 취하도록 해요.”

         

       목갑에서 천양보활단을 한 알씩 꺼내 가는 조원들.

         

       제갈연지의 말이 이어졌다.

         

       “지금부터 두 시진 뒤. 해가 떨어지고 나면 우리는 그곳으로 향할 거예요.”

         

       말을 마친 그녀의 시선이 혈수마녀에게로 향했다.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앞서 읽어들인 그녀가 설핏 웃으며 대답했다.

         

       “다들 동시에 삼키도록 해라. 본녀가 호법을 서줄 것인즉.”

         

       그녀의 목소리에 마음을 놓은 조원들이 곧장 편한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천양보활단을 삼킨다.

         

       이윽고 동시에 운기조식을 시작하는 조원들을 보며 혈수마녀는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조금만 기다리거라, 금방 구하러 갈 테니.’

         

       동시에 불길한 상상이 떠오른다.

         

       과거 제 소중한 이들이 그러했듯, 눈조차 감지 못하고 처참하게 죽음을 맞이한 그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생각하기 싫지만…, 어쩌면 이미 죽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때는 어찌해야 할까.

         

       ‘무덤 앞에서 명복을 빌어주진 못할 듯하구나.’

         

       자신은 눈물이 메마른지 오래라 더 이상 흘릴 눈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눈물 대신 피를 뿌릴 것이다.

         

       혈교라는 거대한 몸집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죽여 없앨 것이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심지어 그들이 기르는 그 작은 잡초 하나마저도.

         

       모든 생명으로 그의 넋을 위로해주리라고.

         

       본녀가 그만큼 너를 아꼈노라고, 회피했던 낯부끄러운 고백에 답해줄 것이다.

         

       그녀는 그리 다짐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번 에피소드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아마 다음 편, 늦어도 다다음 편이면 다음 에피소드로 넘어갈 듯합니다.

    그럼 저는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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