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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5

       

        

        

        

       “어수선하네. 활기차고.”

        

       “대도시잖아요. 그보다 날이 벌써 더워지네요, 여기는.”

        

       “괜히 걸어간다고 했나.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아유, 좀 걸어요. 오자마자 딸한테 걱정부터 받을라.”

        

        

        

        오전 11시, 서울. 영동대로 위.

        

        무려 14차로로 넓게 뻗은 길 양옆으로 나있는 도보, 그리고 그 위를 내려쬐는 햇살. 회색 계열의 여성 정장 차림 한 명과 타이트한 투버튼 베이지색 정장을 입은 다른 한 명. 칼처럼 예리하게 재단된 듯한 움직임으로 흔들림조차 없이 보행로를 따라 걸어간다.

        

        드물게도 푸른 날이었다. 적어도 이들이 기억하기로는 그러했다. 본래 서울의 봄은, 그리고 한국의 봄은 바람을 타고 실려오는 무지막지한 황사 먼지로 인해 흐려진 하늘로 대표될 수 있었기에.

        

        그러나 이들이 걷고 있는 한국은 그렇지 않았다. 한때 동아시아의 골칫거리 중 하나였던 하나의 중국은 일곱 개가 되었고, 엄격한 환경 통제에 따라 황사는 애초부터 없는 이야기가 되었다. 그리하여 두 명을 반긴 것은 청명하기 그지없는 하늘이었다.

        

        

        

       “많이 좋아졌네. 우리도 그냥 여기 와서 살까?”

        

       “헨슬로우가 바짓가랑이 붙잡고 늘어지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이사회 원격 참석으로 만족하면 될 것을.”

        

        

        

        5년.

        

        60개월이라는 긴 시간. 비록 모종의 방법론을 사용하긴 했지만, 강산이 절반이나 바뀔 정도의 시간은 한때 누군가의 부모였던 두 명을 세계 50대 기업 중 하나인 이카루스 인터내셔널의 핵심 인사로 적응시키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시간이었다.

        

        서울의 공기조차 잊어버리고, 한국어 대신 영어로 말하고 생각하는 것이 더욱 익숙해진다. 서울보다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날씨는 변덕스러우며, 물가는 하늘을 뚫을 것처럼 비싼 뉴욕과,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센트럴 파크 및 얼어붙은 허드슨 강의 전경이 뇌리에 더 선명했다.

        

        그러나 과거의 관습과 기억들이 하나둘씩 잊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놓을 수 없는 하나의 끈이 있었다.

        

        

        

       “생각보다 머네요.”

        

       “그러길래 차라도 타고 가자니까.”

        

       “마음의 준비가 되기도 전에 만나게 될 것 같아서 그랬죠.”

        

        

        

        작은 웃음소리. 그러나 그 사이 숨길 수 없는 그리움과 기대감까지.

        

        말과는 달리 2km는 너무나도 짧았고, 고작해야 과거의 추억 몇 개를 회상하는 사이 두 명은 영동대로의 끝자락에 도달했다. 누가 보아도 신축임을 알 수 있는 잡티 하나도 없는 건물 한 채가 한강 방향으로 서있었고, 두 명 – 유진의 부모님은 무어라 형용하기 어려운 표정을 지었다.

        

        자식의 성공이야말로 부모의 가장 거대한 기쁨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이 인세의 지옥을 헤쳐나간 결과로서 거머쥐게 된 보상이라면 그것을 반겨야만 하는가. 이들 중 자신의 아들 – 혹은 딸이 근 5년 가량 그려왔던 삶의 궤적이 어떤 형태를 그렸는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기에, 더더욱.

        

        하지만 확실한 사실이 있다면, 이젠 그 누구도 고통받지 않게 될 것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건물 1층의 로비로 들어선다.

        

        소리없이 다가온 두 명의 직원이 특정 권한을 오버라이드했고, 그리하여 두 명은 언제든지 특정 층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 물론 그 특정 층이 어디를 의미하는지는 설명조차 할 필요가 없었다.

        

        언제부턴가 두 남녀 사이의 대화는 완전히 끊어졌다. 최상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내부에는 적막만이 맴돌 뿐이었다. 그러나 결코 할 말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침을 꿀꺽 삼키고 몇 년 전부터, 몇 달 전부터, 그리고 며칠 전부터 몇 번이고 그리던 광경이 눈 앞으로 다가왔기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광활한 복도가 나왔다. 거주민들로 하여금 감탄과 눈정화를 위해 아름답고 고요하게 꾸며놓은 홀의 형태였지만 두 명에게는 단 한 점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의식하지조차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발걸음은 빨라졌으며, 그리하여 몇십 초도 지나지 않아 문 앞에 도달한다.

        

        저절로 꽉 쥐어지는 주먹. 초인종을 눌러야만 할까, 문을 두드려야 할까. 불과 며칠 전, 몇 시간 전, 그리고 몇 분 전까지 생각해두었던 재회의 방식은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고 텅 빈 머릿속만이 남는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시간과 상황은 누군가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철컥.

        

        

        

        자동으로 문이 열린다.

        

        그동안 화면으로밖에 볼 수 없었던 딸이 현관에 서있었다.

        

        하도 꽉 쥔 탓에 하얗게 질린 손과, 숙였는지 정면을 쳐다보고 있는지 애매모호한 각도의 목, 꽉 물었다가 풀어지는 입술, 그리고 볼을 타고 뚝뚝 흐르기 시작하는 눈물까지.

        

        목이 메이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토록 먼 거리를 달려온 유진의 부모님 역시도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는 없었다. 그녀의 부모님이 소리내어 울지 않는 이유는 오로지 눈 앞에 서있는 딸 때문이었다.

        

        힘겹게 입이 열렸다.

        

        유진의 목소리였다.

        

        

        

       “…아빠, 엄마.”

        

       “….”

        

       “저 돌아왔어요.”

        

        

        

        뚜벅.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거리가 좁혀지고, 현관의 중간 즈음에서 유진과 그녀의 가족은 조심스럽게 서로를 껴안았다. 비록 기억하는 것과는 다르지만, 그리고 서로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지만. 감촉을 타고 퍼지는 온기와 모습이 변했음에도 알아볼 수 있는 과거의 흔적이 그 자리를 메웠다.

        

        아들은, 그리고 딸은, 5년이 지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또다시 누군가의 입이 열린다.

        

        

        

       “…살아있어줘서 고맙다, 진아.”

        

       “아빠…!”

        

       “어서 오렴, 우리 딸.”

        

       “엄마….”

        

        

        

        훌쩍거리는 소리가 점차 커지고, 이내 오열로 바뀐다.

        

        맞춤형 정장 위로 번져가는 눈물 자국과 함께, 유진은 그 자리에서 무너졌다.

        

        

        

       “나, 나…정말,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고…흐윽…너무 힘들었어요….”

        

       “….”

        

       “진짜…보고 싶었어요, 진짜아아….”

        

        

        

        그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었던 숨겨진 진실.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조차 말할 수 없었던 비밀이, 그리고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했던 – 5년 4개월간 보고, 느끼고, 받았던 쓰라린 마음의 상처가 눈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한 사람, 또는 세 사람, 혹은 그 이상으로 무수한 피해자를 양산했던 세계선 간의 충돌 사태가 눈물과 함께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아빠랑 엄마는 잘 지냈지, 그럼.”

        

       “다행이다.”

        

       “얘는, 누가 할 소리를….”

        

        

        

        4월의 말, 청담동. 실로 드물게도 거실 위의 대형 테이블 위로 다채로운 한식이 놓여졌고, 거의 쓰이지조차 않은 채 먼지만이 쌓여가던 여러 개의 의자 중 두 개가 오래간만에 제 용도로 사용되었다.

        

        직접 만든 음식은 아니고 로비를 통해 전달된 룸서비스. 그러나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 5년 4개월, 혹은 그 이상 걸렸던 가족 간의 재회였기에. 비록 외형과 사회적인 위치가 과거에 비하면 무척이나 달라졌단 사실조차 해후를 가로막을 수 없었다.

        

        물론, 유진의 부모님들 기준에서였다.

        

        유진은 여태까지 부모님에게 자신의 몸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려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상하지 않아요…?”

        

       “뭐가 이상하단 거니?”

        

       “꼬리라든가, 그, 여러가지로….”

        

       “그럴 리가 있니. 이렇게 귀여운데.”

        

        

        

        무어라 반응해야만 할까.

        

        하지만 확실한 건 이성보다는 눈물샘이 먼저 반응했단 사실이었다. 여태까지 몇 번이고 울었음에도 유진은 또다시 눈시울이 붉어졌고, 밥을 먹고 있던 그녀의 부모님은 또다시 딸의 눈물을 닦아줄 뿐이었다.

        

        손수건 위로 새겨진 금실의 자수, 그 위에 묻은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의 일이었다.

        

        그나마 식사가 전부 끝나가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골치아픈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유진은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몰랐다 – 그러나 부모님들은 그 모습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눈물 많은 것도 똑같네. 우리 딸.’

        

        

        

        강산이 절반 정도 바뀔 정도의 긴 시간 동안 만나지 못했고, 그 와중 아들이 전혀 모르는 외형의 사람으로 변모했건만. 어떻게 이렇게 자신들이 기억하던 것과 똑같은지. 유진의 모든 행동에는 과거의 모습이 배어있었고 – 잔뜩 마음의 준비를 했던 게 의미없어질 정도로 짙었다.

        

        분명히 현실에서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었지만, 유진의 가족은 이미 새로운 아들의 모습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거기에 더불어, 유진은 신변잡기를 위해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부모님에게 이야기할 필요조차 없었다.

        

        

        

       “다 보고 계셨다구요…?”

        

       “완전히 전부는 아니지만, 딸이 총 들고 돌아다닐 때는 무조건 봤지. 간혹 맞을 것 같으면 한두 발 정도는 빗나갈 수 있게 해줬고.”

        

       “어머, 또 우네. 방송 때는 안 울더니.”

        

       “…으, 방송 때는 안 울거든요.”

        

        

        

        울음바다 와중 작게 피어오르는 웃음.

        

        그녀의 부모는 이미 눈물이 많은 딸내미를 어떻게 다뤄야만 하는지에 대한 감을 잡은 상태였다. 무언가 조금 슬프거나 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자마자 비교적 사소하고 유쾌한 이야기를 덧붙이면 화들짝 놀라며 얼굴이 새빨개진다.

        

        분위기가 점차 가벼워진다. 테이블 위의 음식들이 하나둘씩 치워지고 환기 시스템이 음식 냄새를 전부 빨아들여 외부로 배출하는 사이, 유진이 이뤄낸 결과를 하나둘씩 훑어보던 가족들의 시야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어느 정도 크기가 있는 순수한 황금의 트로피. 그러나 내부는 어느 정도 비어있는지 외관보다 무겁지는 않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그게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파이널 챔피언십 1등 트로피였다.

        

        

        

       “이걸 직접 손에 들려주고 싶었는데.”

        

       “앗, 트로피!”

        

       “지금 봐도 참 디자인 잘 뽑았어. 그치?”

        

       “그럼요. 진이 주려고 얼마나 디자이너들을 달달 볶았는데.”

        

        

        

        진이?

        

        그러나 금방 답은 나왔다. 유진의 진을 따서 진이라고 칭한 것이었다.

        

        탱탱 부은 눈가, 한참을 운 끝에 발개져버린 얼굴을 살그머니 옆으로 돌린다. 부모님의 손에 들린 트로피. 자신이 이뤄낸 성과를 눈 앞에서 부모님께 보여지고 있다는 사실에 유진은 조금 부끄러운 듯 시선을 흘렸으나, 입가는 이미 스멀스멀 움직이며 호선을 그렸다.

        

        표정을 잘 숨기지 못한다는 것도 과거의 유진과 동일했고, 아들의 어떠한 사소한 점도 기억하고 있는 두 명에게는 손에 훤히 잡힐 듯 보이는 사실이었다.

        

        

        

       “그 누구니, 로건? 그 분은 네 지인이시고?”

        

       “에, 네. 저쪽에서는 제 선임이셨어요. 근데 어떻게 하다 보니 여기서도 선임이더라고요.”

        

       “군대를 두 번 갔다왔구나, 우리 딸.”

        

       “그러게요….”

        

        

        

        차라리 바뀐 이후에 안 갔다면 좋았을 것을.

         

        물론 엄밀하게 따지면 셋이었다 – 몸이 바뀌기 전에 한 번, 저쪽 세계에서 5년간 굴렀던 걸 카운트할 시 2번, MAVNI 법안에 의해 미군에 입대했다는 이쪽 세계의 기억까지 친다면 세 번. 중간과 마지막은 사실상 동시에 양립할 수 없으니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는 두 번이긴 했지만.

        

        좌우지간, 한 번 물꼬가 트이자마자 대화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오후 1시 반에 끝난 점심 식사 이후로는 그야말로 풀어도 풀어도 나눠야만 하는 말이 끝없이 쏟아져나오는 수준이었고, 유진과 그녀의 가족은 집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하도 말을 많이 한 탓에 모두의 목이 까끌까끌하여 긴급하게 커피와 음료수를 가져온 유진이었지만, 이는 테이블을 가운데 둔 채 이어지는 토크의 서막일 뿐이었다.

        

        

        

       “그러니까, 그걸…한국어로 생각이 안 나네.”

        

       “영어로 할까요? 영어랑 중국어, 스페인어, 러시아어도 할 수 있는데.”

        

       “어째 라인업이 좀 예사롭지가 않구나.”

        

       “아하하….”

        

        

        

        어쩔 수 없는 직업병 같은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들은 영어로도, 한국어로도 대화하며 시간을 보냈고, 그동안 있었던 일들의 편린만을 풀어놓았을 뿐인데도 순식간에 오후 8시에 도달했다.

        

        그리하여 유진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오자, 그녀의 가족은 화들짝 놀라더니 이어 덧붙였다.

        

        

        

       “아유, 우리 딸 배고프겠네. 이번에는 엄마가 살게. 먹고 싶은 거 있니? 마침 파크 하얏트 스테이크 하우스에 프라이빗 룸 하나가 비었다는데. 리무진이 여기까지 들어올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용돈 부족하지는 않지? 언제든지 말하려무나.”

        

       “에….”

        

        

        

        부모님의 눈높이가 너무 높아져서 곤란해.

        

        대략 그리 생각한 유진은 자신도 모르게 실소를 터뜨렸다. 많은 시간과 변화된 사회적 지위가 이렇게나 무서운 법이었다 – 물론 그리 말하는 유진은 지금 머물고 있는 펜트하우스를 자신의 돈만으로 구매했다 – .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그녀는 딱히 호의를 거절하는 편은 아니었고, 간만에 부모님과 하는 외식을 거절할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조심스럽게, 하지만 확실하게. 유진은 아빠와 엄마의 품에 살살 팔짱을 꼈고, 둘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미소로 화답했다.

        

         

        

       “저녁식사 기대할게요.”

        

       “그래. 가격은 걱정하지 말고.”

        

       “저 많이 먹는데 괜찮아요?”

        

       “많이 먹는 것도 예쁘지, 우리 딸은.”

        

       “히히.”

        

        

        

        차분하게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감촉이 몸을 타고 느껴졌다.

        

        이 순간 유진은 최고로 행복했다.

        

        5년 4개월이라는 기나긴 시간 끝에 이뤄진 첫 가족 외식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유진은 응애야

    잘 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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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귀환했지만, 총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Score 4.1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Just the fact that I came back couldn’t be the end of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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