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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65

       혈교주를 죽이지는 않았다. 손에 피를 묻히기에는 아쉬움이 많은 작자인지라.

       

       대신에 차라리 죽기를 바라게 될 꼴을 만들어주기는 했다만, 뭐어 굳이 벌레의 날개와 다리를 뜯어버리는 작업을 되새길 필요는 없잖은가.

       

       일련의 과정을 끝마치고 난 후 나는 다시금 한 걸음을 움직여 빙궁으로 향했다.

       

       본인은 외부인으로써 이 곳에 자리한 것이 아니기에 여러 도움을 받지는 못한다만 괜찮다.

       

       작금의 본인에게 공간의 거리라면 것은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하니.

       

       내가 한 걸음을 앞으로 내딛은 순간 내 앞의 공간이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것처럼 부수어졌고, 그를 지나쳐 앞으로 나아가자 빙궁의 풍경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슬슬 새로운 경지의 힘을 다루는 것에도 익숙해지는구나.

       

       빙궁의 풍광을 눈에 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폭풍우처럼 쏟아지는 눈이 모든 것을 가리고 있었으니까.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눈을 그치게 하고 나서야 제대로 된 빙궁의 풍경을 볼 수 있었다.

       

       폐허라는 단어조차도 실례스러운 터만이 남은 공터.

       

       이전 화룡무인 속에서 보았던 낡았지만 제대로 서 있던 곳과는 전혀 다른 모습.

       

       당연한 일이었다.

       

       이 곳은 화룡무인의 세상이 아니라 본래 본인이 있던 세상이었으니까.

       

       “오랜만이구나.”

       

       인사를 건네 보았지만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녀석이 죽은 후로 얼마나 긴 세월이 흘렀는데. 이 세상에 윤회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녀석이 새로이 태어나 죽을 만큼의 시간이 지났으니 녀석의 원혼 같은 게 있을 리가.

       

       그런 생각이 들어 키득거리던 나는 곰방대를 입에 물었다.

       

       “짧았지만 내 생에 몇 안 되는 우정이었으니. 보답을 해야겠지.”

       

       과거 바루가 하던 것을 흉내 내어 보자꾸나.

       

       여전히 녀석이 펼치는 도술을 내 머리로 이해하지는 못한다만. 괜찮다. 녀석에게는 녀석의 방식이 있고 본인에게는 본인의 방식이 있는 것이니.

       

       바라는 바를 새기기 무섭게 흔적만이 남아있던 터 위로 토대가 세워진다.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광경은 일종의 기적과도 같았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본인이 기억하던 것과 같아진 건물을 확인한 나는 그 건물의 상태를 고정시켰다.

       

       바뀌지 않고, 바뀔 수 없도록.

       

       이전에 본인이 빙궁에서 발견했던 천마신공의 서적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다음에 올 때는 괜찮은 물건을 들고서 오마.”

       

       빙궁의 아해가 듣지는 못 할 터이나 본래 죽은 자를 만나러 온다는 것이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죽은 자의 평온보다는 산 자의 미련을 떨치기 위함인 게지.

       

       가뿐히 인사를 나눈 내 다음 행적지는 천마신교였다.

       

       여전히 본인은 이 미친놈들의 집단에 대해 조금도 좋은 생각을 품고 있지 않으나 그래도 내 한 번 들리기는 해야 할 장소가 있는지라.

       

       본인이 향한 곳은 천마신교의 뒤편이었다.

       

       천마신교는 말이다. 무덤을 만들기 않는다. 정신 나간 광신도들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니까.

       

       허나 나라는 인간은 천마신교의 교리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으니. 죽은 자에 대한 예우를 갖추는 게 옳다고 여겼고 실제로도 그리 행동했다.

       

       천마신교를 재건할 적에 어머님의 무덤을 만든 까닭은 그런 사유였다.

       

       “멀쩡하군. 신기하게도.”

       

       본인이 이 곳을 떠난 지도 수십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신교의 놈팽이들에게 무덤이라는 것은 저들의 교리에 어긋나는 것. 이 곳을 지키던 본인이 사라지고서 오랜 세월이 흘렀으니 형체조차 없어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여겼다만.

       

       뭐어. 본인에게야 좋은 일이니.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머님.”

       

       그 동안에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마는. 무림에서의 일은 들어봐야 재미가 없으실 것을 아니 굳이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보다 말입니다. 더 재미난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길고도 긴 시간이 흘러야 마주할 수 있을 시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워낙에 내용이 방대한지라 처음부터 모든 것을 말씀 드릴 수는 없을 듯 하군요.

       

       걱정 마십시오. 이번의 방문이 마지막은 아닐 테니까요.

       

       “우선은. 예. 당신의 딸이 외톨이가 아니게 되었음부터 알려드려야 하겠지요.”

       

       사정이 있는지라 오늘은 빠르게 이야기를 하고서 다음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당신의 딸이 지닌 존엄에 대한 문제이니 부디 양해를 해주십시오.

       

       *

       

       민가라는 초월자의 강림에 의하여 혈교와의 전쟁이 끝나버리고 난 후에도 무림 연합에는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다치거나 목숨을 잃은 이들의 수습. 이번 움직임으로 인해 생겨낸 피해의 정리. 전공의 배분 등. 여러 절차들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허나 바루는 그런 움직임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신령. 속세의 일과는 저만치 먼 곳에 떨어져 있는 자.

       

       저기에 있는 이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그래서 바루는 일련의 소란을 무시하고서 다시금 화산으로 돌아갔다.

       

       백주가 여러 신령이 모인 김에 교류를 하자 이야기를 꺼냈음에도.

       

       혈교로 인해 생겨난 소란 탓에 모든 인원이 빠져나간 화산의 풍경은 적막했다.

       

       조금씩 푸른색이 자라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생명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숲.

       

       따로 청소를 하는 인원이 없는지라 금새 더러워지고 마는 계단.

       

       머무르는 사람에 비하여 과할 정도로 부지가 큰 지라 대부분 텅 비어 있는 화산의 건물.

       

       무인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괴담에 더 적합할 듯한 곳.

       

       “늦었구나. 기다리고 있었다.”

       

       그 곳의 한 가운데에 사람이 서 있었다.

       

       길지 않은 검은색 머리카락을 비녀로 고정했고.

       

       무심하던 검은 눈동자에는 장난기 어린 웃음이 자리했으며.

       

       입에 물고 있는 곰방대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바루가 기억하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아니했다.

       

       좀 더 단정하고, 온화하며, 기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의 주변이 조용하다는 것을 빼면 말이다.

       

       아. 복장도 추가를 해야 할 것이다.

       

       그녀는 평소에 입던 검은 색의 무복이 아닌 다른 복장을 입고 있었으니까.

       

       분명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무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재질로 된 천이다.

       

       분명 신기하고 대단하다고 느껴야 할 옷이란 말이다.

       

       허나 바루는 그녀가 입은 옷에서 후줄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었다. 입은 사람이 저토록 아름다운데 복장이 안 좋아 보이는 것이 가능하다니.

       

       저것도 재주라면 재주겠구나.

       

       그에 감탄하던 바루는 가벼운 웃음과 함께 목소리를 냈다.

       

       “민가야.”

       “어허. 내 이름을 알려주었을 터인데?”

       “…하. 그래. 아라야. 이럼 되느냐?”

       “그래. 그래야지.”

       

       아라는 가볍게 웃음을 흘리고는 바루의 앞으로 다가왔다.

       

       “늦었지만 약속을 지키마. 내 분명 그대에게 새로운 음식을 먹으러 가자 했었지?”

       “그래. 그랬다.”

       

       민가가 떠나기 전, 바루가 바다의 음식을 거의 알지 못하는 것을 안 아라는 함께 그 곳의 음식을 체험하러 가자고 했다.

       

       바루에게 있어서는 새로운 경험.

       

       민가, 아니 아라와 만나고서 수도 없이 해 본 처음이라는 경험.

       

       바루는 꼬리를 흔들며 그 날 만을 기다렸지만 민가가 갑작스레 자취를 감춤에 따라 약속은 미뤄지고 또 미뤄지고 말았다.

       

       “본의는 아니었으나 내 일방적으로 약속을 파토 낸 것은 사실. 거기에 상당한 책임을 느끼고 있는지라 내 그대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겠다.”

       “제안?”

       “그래. 바다의 음식이 아니라 더 대단한 것을 보고 느끼고 경험해보지 않겠느냐?”

       

       손을 내미는 아라의 웃음에는 장난기가 가득 묻어나 있었다.

       

       분명 내가 보고서 눈을 동그랗게 뜨리라 생각하는 것이겠지.

       

       여태까지 아라와 함께 다니며 수도 없이 촌뜨기 같은 반응을 보여 온 바루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바루가 바보 같은 모습을 보였던 것은 어디까지나 모든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

       

       세상을 돌아다니며 무수한 경험을 한 바루는 더 이상 그런 표정을 지을 일이 없었다.

       

       “하. 얼마나 대단하기에 그리 호언잠당을 하는지 모르겠군.”

       “적어도 그대의 서운함을 풀어줄 정도는 되겠지.”

       “좋다. 어디 한 번 가보자꾸나.”

       

       바루가 자신만만하게 백아라가 내민 손을 쥔 순간 주변의 풍경이 바뀌었다.

       

       적막한 화산의 풍경이 아닌 다른 세상의 풍경으로.

       

       외부인이 지닌 여러 특이에 익숙했던 바루는 풍경이 바뀐 것 자체에는 그리 놀라지 않았다.

       

       이러한 경험을 수도 없이 많이 해보았으니까.

       

       허나 그녀가 주변의 풍광을 눈에 담은 순간.

       

       바루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하늘에 닿을 것처럼 높게 지어진 수많은 건물들.

       

       저 아래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여러 가지 소음.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

       

       숲도 아니고 흙도 아니며 눈도 아닌. 자연 그대로가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가득 찬 도시의 풍광을 눈에 담던 바루는 저 하늘 위의 구름을 가르며 지나가는 무언가의 모습을 보고는 끔뻑거리다가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라의 우물거리는 입술은 그녀가 웃음을 참느라 고생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었지만 바루는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자잘한 것을 신경 쓰기에는 지금 주변에 펼쳐진 풍광이 너무도 놀라웠으니까.

       

       “여긴. 여긴 도대체 무얼 하는 장소더냐?! 무얼 하는 곳이냔 말이다!”

       “내 분명 그대에게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나. 바루야.”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그래. 내 그대가 한 번 구경하고 싶다 말을 했던 것도 기억하고 있거늘.”

       “…설마.”

       

       장난스러운 아라의 이야기에 바루의 머릿 속에 과거의 대화가 스쳤다.

       

       언젠가 아라가 해주었던 이야기.

       

       무림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한 곳이 있다는 소리.

       

       그 이야기를 들을 적에 바루는 진짜로 그런 곳이 있다면 좋을 것이란 생각을 하곤 했다.

       

       바꾸어 말하자면 그 곳의 실존을 믿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도 그럴 것이 바루에게 아라의 이야기는 너무도 허황되게 들렸으니까.

       

       허나.

       

       지금 이 순간.

       

       그 때의 이야기를 다시금 떠올린 바루는.

       

       “이 곳이 그대가 사는 곳이더냐?”

       “그래.”

       

       그녀의 이야기가 진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곳이 바로 현대이니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

    치킨님! 7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이 작품 뿐만 아니라 다른 작품도 즐겁게 봐주시고 계시다니 너무 기쁩니다!
    독자님의 기억에 제 작품이 오래토록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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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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